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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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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br/>서부교회와 비교도 못할 만큼 훌쭉 커버린 부산의 초대형교회들. 최소한 부산에서는 견줄교회가 없어 서부교회라는 이름 하나만 가지고도 주위를 압도했습니다. 서부교회의 자랑인 청소년사역은 호산나교회가 다 끌어갔습니다. 부산 최대의 규모는 수영로교회가 서부교인들이 주눅들도록 커져버렸습니다. 백목사님 생전의 수영로교회는 서영준목사님의 광안동교회에 위협을 느낀 정도의 교회였고 호산나교회는 우리가 이름도 몰랐습니다. <br><br>처음에는 4층이 대들어서 그렇지 4층이 조용해지고 나면 목사님의 위력이 발휘될 것이라고 하는 분들, 목사님이 부임하자 벌써 새벽기도부터 새로 시작하는 교인들이 는다는 분들 참으로 별별 희망과 핑계가 많았습니다. 이제는 묻습니다. 서부교회의 22년 앉은뱅이 신세는 누구 책임입니까? 처음에는 4층이 도발을 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4층이 궤멸하고 소리없이 사라진 것이 이미 십수년 전입니다. <br><br>북한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세계자본이 남한기업에 투자하고 남한은 천안함 폭침은 물론 60년대에 청와대 습격과 70년대 푸에블로호 사건처럼 세계적 안보위협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세계10위권에 들었고 성장속도로 보면 세계 제일입니다. 수영로교회나 호산나교회 멀리 서울의 순복음교회도 다 내분은 있었습니다. 외우도 있었습니다. 이단 비판으로부터 교단의 정치투쟁까지. 사람 사는 곳이 어딘들 쉽고 편하고 좋기만 하던가. 한 사람 목회자가 수단방법 체면 가리지 않고 서부교회 담임직을 욕심내서 생긴 일이 아닐까요? 호산나교회와 수영로교회는 이제 후임까지 결정하고 떠납니다. 서부교회는 앉은뱅이를 만든 장본인이 일반신학과 일반교계를 가르쳐놓고도 정작 은퇴제도만 쏙 빼버렸습니다. <br><br>남은 것은 앉은뱅이 서부교회요 얻은 것은 한 목회자의 취리였다는 비판이 제기된다면 2층 교인들은 뭐라고 하실지요? 서목사님을 위해 목숨 걸고 투쟁한 투쟁한 목사님들과 서부교회 청년들을 향해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소리만 나지 않으면 된다고 모든 것을 묻고 세월만 낚고 있는 분들을 향해 묻고 싶습니다. 빌라도의 책임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 복음인데 앉은뱅이로 주저앉힌 책임을 따져야 우리 미래가 있지 않을까요?<br><br><br><br><br><br><br><br><br/>65세 은퇴한 최홍준 부산 호산나교회 원로 목사 “훌훌 털고 물려주니 홀가분”<br/><br/>2011.08.11 21:31 <br/><br/>최홍준(66) 목사는 참 편해 보였다. 그의 앞에는 이제 ‘부산 호산나교회 원로 목사’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지난달 24일 청소년 사역자로 유명한 홍민기 목사가 최 목사 후임으로 호산나교회에 부임했다. 한 사람이 가고 새사람이 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 그러나 자신의 인생을 바친 곳에서의 떠남은 언제나 아련할 것이다.<br/><br/>최근 호산나교회 담임목사실에서 만난 최 목사는 “섭섭한 마음이 하나도 없다. 정말 홀가분하다”고 했다. 그는 정말 편안한 모습이었다. 담임목사실은 깔끔했다. 전망이 좋았다. 2006년 부산 하단에서 명지동으로 교회를 이전하면서부터 최 목사가 사용한 공간이다.<br/><br/>“새 성전에 들어오면서 마음속으로 ‘2010년에는 이 자리를 깨끗하게 물려 줄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어느 곳 하나 정을 주<br/><br/>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훌훌 털고 떠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잠시 ‘빌린’ 담임목사실에는 최 목사의 책 등 그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br/><br/>최 목사는 지난해 12월 1일 공식 은퇴했다. 2000년 장로들에게 했던 ‘65세 조기 은퇴’ 약속을 지켰다. 당시 그는 ‘목양 장로’ 사역을 위해 장로의 시무 연한을 65세로 제한키로 하면서 자신도 65세에 조기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목회를 하면서 그는 한국교회의 문제가 목사와 장로 간 불화에서 기인한 점이 크다고 판단했다. 수많은 교회들이 양측의 갈등 때문에 무너지고 있었다. 그는 성경을 통해 장로의 역할을 생각해 보았다. 장로는 교회 행정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목회자와 함께 ‘양들을 치는’ 즉 목양하는 사역자였다. 최 목사는 장로가 목회의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될 때 행복한 교회가 되며 한국교회 부흥도 가능하다고 판단했다.<br/><br/>지난해 ‘장로, 걸림돌인가? 디딤돌인가?’란 책을 펴낸 그는 은퇴 이후에도 목양 장로 사역을 널리 펼치는 일을 할 계획이다. 이미 7차례 세미나가 끝났다. 조만간 미국 동부와 서부에서 8차와 9차 목양 장로 세미나를 인도한다.<br/><br/>최 목사는 대학 졸업 이후 회사원과 소규모 기업 대표로 지내다 35세에 부르심을 받고 신학교에 입학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을 길러 내고 싶었다. 어느 날 서울 장위동의 한 교회 대학부에서 왕성한 사역을 펼치던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이제는 고인이 된 옥한흠 목사였다. 미국에서 돌아와 사랑의교회를 개척한 옥 목사는 최 목사에게 함께 사역할 것을 권했다. 한두 차례 거절 끝에 그는 1980년 사랑의교회에 합류했다. 7년 동안 옥 목사와 동역했다.<br/><br/>“옥 목사님은 제자 훈련에 목숨 건 분이셨어요. 사람들을 훈련시켜 그리스도의 제자 삼는 것이 목회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그분을 통해 배웠습니다.”<br/><br/>86년에 그는 호산나교회의 전신인 부산 새중앙교회의 청빙을 받았다. 당시 300여명이 출석하는 전통교회였다. 망설이는 그에게 옥 목사는 “전통교회에서도 제자 훈련 사역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달라”고 당부했다. 부임 이후 최 목사는 성실하게 제자 훈련 사역을 펼쳤다.<br/><br/>불교세가 강한 부산은 크리스천 비율이 전 인구의 10% 미만에 불과하다. 교회마다 “부산에서는 전도가 안 된다”고 아우성이었다. 최 목사는 거꾸로 생각했다. 10명 중 9명이 비신자라는 사실에서 역설적 희망을 발견했다.<br/><br/>“부산은 선교지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전도 대상자입니다. 꾸준히 전도해 제자 훈련을 시키면 부흥이 옵니다. 부흥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니까요.”<br/><br/>지금 호산나교회는 출석 성도 6500여명, 연간 예산 140여억원의 대형 교회가 됐다. 제자 훈련을 통해 부산에서도 부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라는 고 옥 목사의 당부가 이뤄진 것이다.<br/><br/>최 목사는 목회를 ‘생명을 낳고 기르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그에 따르면 목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의 비전을 갖는 것이다. 목회자는 끊임없이 ‘하나님 중심인가, 내 중심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야망 메이커’가 아니라 참다운 주님의 <br/><br/>‘비전 메이커’가 될 수 있다고 최 목사는 강조했다.<br/><br/>목회를 하면서 그가 항상 염두에 둔 것이 있다. 어느 날 주님을 만날 때, “너 뭐하다 왔니?”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하는 것이다. 은퇴 이후에도 그는 그 대답을 하기 위해 헌신할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br/><br/>부산=이태형 선임기자 <a href="mailto:thlee@kmib.co.kr">thlee@kmib.co.kr</a><br/><br/><br/><br/><br/><br/><br/><br/><br/><br/><br/><br/>수영로교회 정필도 목사 후임에 이규현 목사 내정 <br/>7월 10일 공동의회 투표로 공식 결정<br/><br/><br/>--------------------------------------------------------------------------------<br/><br/><br/><br/>2011-06-29 10:58 부산CBS 이강현 기자<br/><br/><br/><br/>부산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수영로교회의 정필도 목사 후임자로 이규현 목사(시드니 새순장로교회 담임)가 내정됐다.<br/><br/>수영로교회에 따르면 지난 26일 개최된 청빙위원회 회의에서 청빙위원 23명 만장일치로 이규현 목사가 정필도 목사의 후임자로 결정됐다.<br/><br/>수영로교회는 이 목사를 정필도 목사의 후임자로 결정하게 된 배경에 대해 Q.T에 관한 한 일인자로 인정받아온 이 목사가 지난 1992년 호주 시드니에서 유학 중 이민자들의 아픔을 목격하고 이듬해 한인 교회를 개척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오늘날 3천여명 출석교회라는 놀라운 부흥을 일궈낸 점을 들었다.<br/><br/>또 지난 1985년부터 1991년까지 6년 동안 수영로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기며 그 누구보다 수영로교회의 시스템을 잘 이해하면서 국제적 감각과 통솔의 리더쉽을 갖춰 제2의 부흥을 이끌어 낼 인물로 평가했다.<br/><br/><br/>테마가 있는 뉴스Why뉴스김학일 포인트뉴스강호동 은퇴선언에 동정여론 확산…왜?<br/>'이은결 사단의 팝 매직 콘서트 ESCAPE'"딱 추석연휴에만 할인…서둘러 예매하자"현재 호주 '시드니 새순장로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는 이 목사는 총신신대원을 졸업하고 풀러신학교 D.Min 과정을 수료한 뒤 국제 OM 오세아니아선교회 이사장으로 헌신해 왔다. <br/><br/>한편, 이 목사는 오는 7월 10일 수영로교회의 공동의회 투표를 거쳐 공식적으로 담임목사에 선정되게 된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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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03.10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03.10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03.10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03.10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03.10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03.10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 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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