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기사로 본 '백영희'
교계와 일반 언론에 소개된 많은 기사 중 일부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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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의 신앙적 노선
종교와 평화 [1996.06.30]
현재 예수교 장로회 한국청공회는 부산 서부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의 순수성과 경건성을 지향하며 성격적 신앙에 주력을 하고 있는 가장 근본주의 교회들의 한 기독교의 교단이다. 한국 장로교회의 신앙적 유형을 보면,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철저한 성경적 신앙을 고수하고 있는 재건교회가 있고,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을 표방하고 있는 기독교 장로회가 있고, 신앙적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통합측이 있다. 그리고 신학은 개혁주의 신앙적 방법은 자유주의 입장을 취하는 신복음주의 계통의 교회들이 있는 것이다.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 역시 조선 예수교 장로회 총회의 근원을 가지고 있으며, 가장 최근의 역사적 배경은 대한 예수교 장로회 고려파 부산노회가 1959년 9월 8일에 순교하신 백영희 목사를 파직한데 있다. 그 후에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는 개혁주의와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과 사람은 영과 혼과 육으로 되었다는 3분설을 주장하고, 구원에 있어서 기본 구원과 건설구원이라는 원리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의 신앙적 입장을 좀더 자세히 거론하려고 한다.
첫째 :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는 근본주의다.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는 가장 근본주의(Fundamen talism)적 신앙노선이다. 여기서 근본주의는 교회의 순결성과 신앙생활의 경건주의를 뜻한다. 쉽게 말하면 고려파와 합동측 보다 더 교리적 차별성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영유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총공회에 입장에서 보면 고려파와 합동측은 담회와 노회 그리고 총회의 다수결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교리적 교회행정직 많은 모순을 나타나게 한 것으로 여긴다. 그렇기에 한국총공회는 개교회와 진리 전원일치제도를 따르는 것이다.
둘째 :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는 개교회 주의이다.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는 개교회주의를 택하고 있다. 그들은 고려파와 합동측, 통합측 기장등을 일반 장로교라고 하며, 한국총공회와 다른점을 열거하고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이름에 있어서 총공회이며 회의는 진리 전원일치제이며 시행은 권유와 설득이다. 그리고 구성은 교역자(목사와 조사)와 평신도(장로와 집사)이며, 방청객도 인권을 허락하며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것이다.
반면에 일반 장로교는 이름을 총회라고 하며, 회의는 다수결이고, 시행은 명령과 강제성이고, 구성은 목사와 장로이며 인권은 오직 총회총대의원만하고 방향은 교단헌법위주로 하고 잇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렇기에 외향적으로 보면 한국총공회와 일반 장로교가 같은 것 같으나, 내부적으로 보면 상당한 신앙적인 차별성이 있는 것이다.
셋째 :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는 신앙적 특성이다.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는 신앙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이문제 때문에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는 한국교회로부터 많은 오해와 비판을 받아왔다. 말썽의 발단은 박윤신 목사님의 ‘거듭난 자의 영혼이 범죄할 수 있는가?’라는 특주였다.(박윤선, 성경주석:히브리서공동서신. 서울. 영음사. 1975. pp. 357~363)
그리고 한종희 목사의 ‘중생한 영혼은 범죄치 않는가?’(이단의 정체. 서울. 세종문화사. 1975. pp. 227~282)라는 글이였다. 그리고 대한 예수교 경북노회 제82회 정기노회(1968년 3월)의 결의 때문이다. 그리고 필자 역시 지난해 들소리신문에 ‘한국교회 이단종과 역사적 고찰’이라는 연재 글에서 한국교회의 이단사를 역사적으로 서술하면서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에 대해 표현적 오류를 범한적이 있었다. 그리고 <교회와 신앙>6월호 최삼경 목사의 거듭(중생)난 영은 절대 범죄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비성경적 구원파식 교리’라는 글 등이다.
여기에 대하여 좀더 자세한 내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박윤선 목사의 부산 서부교회의 백영희 목사와 만나서 자신의 주석 때문에 그동안의 고통을 당하게 한 것을 사과하였다고 한다. 자신의 주석은 신앙적인 견해차이를 말하였으며, 결코 백영희 목사를 정죄하거나, 기독교의 이단이라고 한적이 없다고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한종희 목사는 필자와 총회 신악교 동기동창이다. 그의 신앙적 자세와 혁구적인면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종희 목사는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의 신학적인 입장을 곡해하였고, 그로인해 법적으로 사과공증을 하였고 그 후로는 잠잠하게 되었다.
가장 문제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 경북노회의 결의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달성교회 문제에 관련되어, 백영희씨 일파의 가르치는 교훈은 칼빈주의 신학에 배치되는 이단설임을 규정하기로 하였다.
당시의 노회 상황은 점심 시간에 촉박하였고, 산회직전에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의 주장과 변호의 기회를 주지않고, 일부 임원들이 잠시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 자리를 뜬 사이에 일방적으로 결의하였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는 경북노회에 공한을 보내어서 당시의 결의를 변회하도록해야 한다. 이것이 필자가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에 당부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필자의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에 대한 잘못된 표기는 다음과 같다. 중생한 영혼이 범죄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며, 공식적인 교단명의가 있는데 백파라고 한 것과 순교한 목사를 당시의 언론의 기사를 인용하면서 피살된 것으로 서술한 것이다. 또한 백영희 목사의 신앙은 독자적인 것인데도 불구하고 돌아가신 김현봉 목사 계통으로 분류한 것 등이다. 여기에 대하여 필자는 당시의 들소리신문에 정정하였다.
최삼경 목사는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 의 항의 방문과 서면으로 곡해된 부분에 대한 글을 받았으며, 자신의 잘못된 부분은 정정하겠다고 밝혔다. 매우 잘한 처사라고 여긴다.
다음으로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는 삼분설을 말하고 있다 이문제 대해서는 같은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을 가진 교회와 신학자들 사이에도 분부하다. 대부분은 이분설을 말하고 있으나 일부 세대주의 교회와 성경 신학자 가운데는 삼분설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분설만이 성경적이고 삼분설은 비성경적이라고 해서는 절대로 아니된다. 반면에 삼분설만이 정통이고 이분설은 성경적이 아니라고 해서는 더욱 아니된다.
그 다음으로는 구원에 있어서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이다. 이 문제 역시 신앙적 표현 방법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원죄가 있다. 원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대속되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원죄는 단회적으로 속죄되었다. 그러나 속죄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도 죄를 짓는다. 이것은 자범죄이다. 자범죄는 원죄를 사람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단과 악령의 미혹으로 짓는 행동죄인 것이다. 우리는 자범죄도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서 용서함을 받아야 한다. 이 자범죄는 구원받은 성도의 인격이 짓는 죄이며, 하늘나라에서 받을 성도의 상급문제에 해당하는 것이다.
넷째 :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의 전망이다.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의 신앙적 문제점을 몇가지 제안을 하면서 이글을 마치려고 한다.
- 백영희 목사가 있지 않는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이다.
백영희 목사가 있으면,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는 순풍에 돛을 달고 항해를 할 것이다. 그러나 순교하고 이 땅에 있지 않으니 지금 풍랑과 폭풍을 계속 만나고 있는 것같다. 그러나 이 모든 위기상황은 백영희 목사가 생존시에 이미 교리와 행정에 대한 체계를 세워 두었으니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 최상의 길이며 극복의 지름길이라고 믿는다. -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의 내부적인 갈등이다.
백영희 목사의 순교로 인해서 벌써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는 백태영 목사의 노선의 대구 수정측과 부산 보수측으로 양분되었고 보다 훨씬 이전에는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의 신실한 목회자이며 신학자인 송용조 목사가 서울고신이라는 교단을 이룩하였다. 그리고 아직도 내부에는 꺼지지 않은 작은 불씨들이 있지 않는가? 이것은 지도력의 문제점이다. 분명히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에 대한 밖에서 보는 견해요 의문점이다. -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의 예배의 방법론이다.
21세기는 첨단문화시대가 도래하고있다.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 전체가 아니고 백영희 목사가 시무했던 부산 서부교회는 백영희 목사 생존시에 비디오로 촬영한 것을 종종 상영한다. 지금 서울의 소위 일부 대형교회들은 지교회에 광케이블 통해서 방영하며 예배를 동시에 드리고 있지 않는가? 필자 역시 매주일 아침예배를 비디오 촬영을 하여 점심시간에 교육관에 방영을 한다. 교육적인 효과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또한 백영희 목사의 전집이 출간되었다는데 그것을 반복 교육 차원으로 전국교회가 사용케하므로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는 백영희 목사의 생존시와 같이 부흥되고 성장되리라고 본다. -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의 십자가 고통이다.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는 지금까지 일부 한국교회로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그때마다 교회와 성도님들에게 신앙적 장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내하고 참아왔다. 약간의 비판은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이단시비는 이미 검증되었지 않는가? 자체적인 신앙적 실력을 더욱 배양하는 길 뿐이다. 현재도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에 대하여 율법주의적이다. 독선주의이다. 배타주의이다. 폐쇄적이다. 등등의 비판을 하고 있다. 이것을 하나의 십자가의 고통으로 여기고 인내하므로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는 더욱 성숙하게 보여 질 것이다. 일부 비판자들과 계속적인 대항은 자신적인 피해망상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의 전망이다.
그동안 필자가 수집한 자료와 연구를 토대로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의 미래의 전망은 매우 밝은 것으로 본다. 그것은 순교하신 백영희 목사의 성경적 교훈을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가 잘 이행하고 있으며, 교회의 대내외적인 문제가 발생시에는 교역자와 평신도들이 혼연일치되어 대치하는 것 등이다. 그리고 백영희 목사의 생존시 보다 더 복음전파에 열정을 갖고 애를 쓰고 있으며, 주로 세개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육이 가장 잘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에 있어서 가장 근본주의 신앙과 신학을 갖고 있으며, 신앙생활의 경건주의와 생활의 일치를 도모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예수님을 더 잘 믿고 신앙생활을 해보려는 교회와 성도들이 있기 때문이다.
박영관 목사
-한국기독교이단종파연구소
-한국기독교이단피해상담소
한국교회 이단종파들의 역사적 고찰<18>
들소리신문 [1995.10.01]
박영관 목사
– 중곡중앙교회 당회장
– 한기총 이단-사이비종파 피해상담소
그동안 본지를 통해서 연지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이단종파들의 역사적 고찰 가운데 제2호, 7호 그리고 8호에서 본의 아니게 예수교장로회 한국 총공회와 부산 서부교회, 대한 예수교장로회(개신측)과 창광교회, 예수교장로회총공회와 잠실동교회에 대하여 심려를 끼치게 되어서 유감을 표하며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하며 다음과 같이 해명을 합니다.
먼저 본인은 지금까지 어느 개인이나 단체 등을 기독교회의 이단이다 아니다 라고 하지를 아니했습니다. 다만 한국기독교회의 정당한 노회의 총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신앙적 집단에 대하여, 성경적 신학적 그리고 역사적으로 재조명 혹은 재평가를 하여왔습니다.
앞으로도 이 입장은 변함이 없습니다. 본지에서 돌아가신 김현봉 목사를 거론하면서, 그분은 한국기독교회에 있어서 유일하게 독립교회를 하였다고 재 00을 하였고, 21세기에 있어서 한국기독교회는 이와 같은 독립교회가 많이 생길 것을 말하면서, 김현봉 목사의 독립교회에 대해서는 다시 평가할 것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순교 하신 백영희 목사의 부산서부교회, 백태영 목사의 잠실동교회 그리고 이병규 목사의 창광교회는 지금까지 한국기독교회에 있어서 가장 신앙과 신학적으로 근본주의이며, 경건한 교회들인 것을 누구도 부인을 못합니다. 그런데 이 교회들에 대한 한국교회의 평가에 있어서 본인은 역사적인 사건을 취급하는 과정에서 곡해와 오해를 가지게 하였습니다.
첫째 한국기독교회는 진정한 독립교회운동에 대하여서는 다시 평가를 해야 한다, 그 중에 김현봉 목사와 아현예배당이다.
둘째 로마서 7:17장에 대하여, 중생한 영혼은 중생한 영이 범죄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정정을 합니다. 이것은 소위 2분설과 3분설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셋째 순교하신 백영희 목사는 당시의 교계신문들이 부산 서부교회의 교인이 살해하였다고 보도를 하였기 때문에 그대로 인용을 하였는데 부산 서부교회의 교인이 아닌 것이 본 교회로부터 확인되었다.
넷째 백영희 목사를 지칭하여 백파라고 하는 것도 생존시 백목사께서 흑파 보다는 백파가 더 좋다고 하셨다. 한문에 백은 흰백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지칭도 삼가는 것이 견덕상 좋은 것으로 여긴다.
다섯째 백영희 목사와 백태영 목사 그리고 이병규 목사를 신앙적 맥락에서 김현봉 목사 계통으로 분류를 하였는데, 이 문제도 앞으로 각자의 교닥적 입장이 있는 것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동안 연재로 하나님의 교회를 목회하는 목회자들과 교회 그리고 성도들에게 신앙적 피해를 주게 되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 역시 목회자이며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기에 이해를 하면서 이 글을 씁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의 교회에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호부터는 1950년대의 김벽문씨에 대하여 언급을 하겠습니다. 현재 00의 청수교회, 이스라엘 총회가 있습니다.
여기에 많은 일화가 필지에게 와 있습니다. 그것은 1969년 총회 신학교 대학원(현재 총신대 신대원 대학원)에 논문을 작성하는 가운데서 발생하였다. 논문의 제목은 “문선명 집단의 원리 비판”이다. 문선명 집단의 영리강론은 김벽운씨의 기독교 근본원리에서 ㄴ아ᅟᅩᆫ 것을 역사적으로 밝혔고, 그 내용을 분석 비판하였다. 당시의 청수교회의 박일한 목사와 추종자들이 난입하여 항의와 농성을 부렸던 것이다. 아마도 필자에게 최초의 수난 길을 만나는 일이었다. 그리고 청수교회의 방문시에 감금 아닌 감금을 당하였던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국기경례 거부, 승소 판결도 있다
한겨레21 [2006.04.25 제606호]
1975년 대법원이 “국가 모욕할 목적 없다”며 제천 남천교회 목사 손 들어줘… 일제 시대 신사참배를 승인한 교회들은 유신정권의 ‘국가 종교’에도 침묵
▣ 제천= 남종영 기자
1973년 6월 인구 7만 명의 제천읍(현 제천시)에 ‘국기 애국주의’ 열풍이 휘몰아쳤다. 1972년 ‘국기에 대한 맹세’가 제정된 이듬해 국기 교육은 한층 강화되고 있었다. 당시 제천 대제중학교를 다녔던 김동길(45·가명)씨는 “매 수업시간 시작 때마다 반장의 구령 아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고, 등교하면서 운동장에 걸린 태극기를 보며 경례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러던 중 교회 목사와 주일학교 반사가 국기 경례 거부를 선동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까지 가는 사건이 일어난다.
사건 뒤 제천의 모든 학교가 거부자 적발
“동명초등학교였지요. 국기 경례를 거부한 아이들을 조사하기 시작했어요. 애국조회 때 경례를 하지 않은 아이들을 다그치니까 모두 남천교회를 다니고 있다는 거예요.”
강태호(61)씨는 당시 남천교회의 주일학교 반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이 강씨를 찾아왔다. 아이들이 강씨에게서 국기 경례를 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강씨는 경찰에 끌려갔다. 다음은 백영침(소천·당시 51살) 목사 차례였다.
△ 1973년 제천 국기경례 거부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나간 이혜정씨. 그는 “신앙에 따라 국기 경례를 하지 않은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
“보통 사전에 목사님이 주일학교 반사들에게 공과공부를 시키거든요. 백 목사가 반사들에게 국기 경례를 하지 말라고 시켰다고 잡아들인 거지요.”
당시 교회 집사였던 이혜정(82)씨의 증언이다. 어이없게도 백 목사와 강씨는 구속됐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백 목사의 설교 내용을 문제 삼았다. 백 목사가 국기 경례를 하지 말라고 교인들을 선동했다는 것이다. 강태호씨의 경우는 1년 전에 한 말을 끄집어냈다. “1972년 7월 중순 일요일 오전 9시께 주일학교에서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5명의 학생에게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토록 선동했다”는 것이 강씨의 범법 행위였다.
백 목사와 강씨는 검찰 조사에서 “우리는 누구보다도 국가를 사랑한다. 단지 인격체가 아닌 대상에 절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계속 ‘국기·국가를 모욕할 목적’이었음을 실토하라고 종용했다. 이들은 “국기 경례가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어기는 행위”라고 말했지만, 검찰에겐 반국가사범의 변명으로밖엔 들리지 않았다.
다른 교회의 반응은 냉담했다. 제천에서 두 번째로 큰 교회의 목사가 구속됐으나, 모두 이를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지연구(50)씨는 “되레 다른 교단에선 남천교회가 국기에 경례를 하지 않는다며 이상하게 취급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남천교회 사건의 여파는 제천 전역으로 퍼졌다. 유신체제의 군기잡기에 제천의 모든 학교가 국기 경례 거부자를 적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초·중·고를 가리지 않고, 교사들은 회초리를 들고 조회대에 섰다.
“목사님 몸이 피멍으로 얼룩졌어요”
김동길씨에게도 1973년은 끔찍한 한 해였다. 여호와의 증인이었던 그 또한 경찰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던 동생이 이미 끌려와 무릎을 꿇고 있더군요. 형사들이 누가 시켰냐며 계속 캐묻는 거예요. 끝까지 내 스스로 판단해서 그렇게 했다고 우겼지요.”
김씨는 그 뒤 자퇴를 선택했다. 교장 선생님이 불러 “학교에서 너를 보호해주긴 힘들다. 학교 다닐 때만 국기 경례를 하고 사회에 나가서 안 하면 되지 않느냐”고 설득했지만, 그는 매일매일 양심의 시험대에 서느니 다른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의 법과 국가의 법이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여름방학을 보내고 자퇴 서류를 냈지요.”
남천교회 백영침 목사는 8월께 보석으로 풀려났다. 당시 교인들과 함께 철야기도를 하며 백 목사를 위해 기도했던 이혜정씨는 구치소에서 나온 백 목사의 몸이 망가져 있었다고 회상했다.
“두 달 정도 구치소에 있다가 보석으로 풀려났어요. 어찌나 조사를 험하게 받았던지, 목사님 몸이 피멍으로 얼룩졌어요.”
재판은 불구속 상태에서 진행됐다. 이씨는 증인으로 나가 “국기를 모독할 목적이 아니라, 우상숭배를 금지한 십계명 때문에 국기 경례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증언했다. 변호인 쪽은 백 목사의 ‘애국심’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국기 경례가 결코 애국심과 등가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변호인 쪽은 백 목사가 1973년 7월10일 주일 예배 설교 뒤 “성경 교리상 경례는 안 되지만, 주목하는 방식으로 경의를 표할 수는 있다”라는 취지로 말한 사실을 제시했다.
△ 당시 사건의 ‘진원지’로 지목됐던 남천교회(왼쪽)와 동명초등학교.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모든 학교에서 경례 거부자를 적발하기 시작했다. |
이 사실이 주효했는지 재판은 예상외로 남천교회의 승리로 끝났다. 청주지방법원은 1974년 “피고인이 국기를 비기할 고의나 국기를 모욕할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백 목사와 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국기를 모욕할 목적이 없다면, 형사처벌할 수 없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검찰은 즉각 항고했으나 그해 5월28일 고등법원도 원심을 유지했다. 대법원도 같은 견해를 고수했다. 남천교회의 완전한 승리였던 것이다. 매우 상식적인 판단이었지만, 이 사건과 흡사한 광양 진월중앙초등학교 국기 경례 거부 사건 판례를 뒤집은 작은 혁명이었다(상자기사 참조).
정치적이기보다는 신앙과 양심에 충실
서슬 퍼런 유신 시절 국가 종교와의 싸움에서 작은 승리를 일군 남천교회는 소수교단인 총공회 소속이다. 총공회는 일제시대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고신파에서 분리됐다. 여태까지 국기 경례를 거부하고 있는 교회들의 상당수는 고신파를 비롯해 재건파, 총공회 소속이다. 반면 일제시대 신사참배를 거리낌 없이 행했던 여타 교단들은 국가 종교화된 유신정권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으며 국기 경례를 거부하는 동료 기독교인들이 핍박받을 때도 침묵했다. 기독교인인 김두식 경북대 교수(법학)는 <기독교사상> 2월호에서 “일제시대 신사참배는 우상숭배가 아니라며 남산 신사에 올라가 고개를 숙였던 보수 교단은 그 부끄러운 역사는 슬쩍 감춘 채, 당시 신사참배에 거부한 소수 기독교인의 후예임을 자처한다”고 꼬집었다.
기독교와 국가주의는 근본적으로 화친할 수 없는 존재다. 절대자를 믿는 기독교의 신앙은 신보다 절대화된 국가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순교했던 기독교인들은 같은 이유로 국기 경례를 거부하고 있다. 이영인 목사(총공회)는 “당시 기독교인들의 국기 경례 거부는 정치적이었기보다는 자신의 신앙과 양심에 충실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최대 어린이교회와 故 백영희 목사
주간기독교 [1989.9-10, 제894호]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어린이가 모이는 예수교장로회 총공회의 서부교회. 그 교회의 담임목회자이며 총공회장을 역임했던 백영희 목사의 총공회장 영결예배가 수 많은 부산시민, 신도, 목회자들의 애도속에 엄숙히 진행되었다.
지난 달 27일 새벽설교도중 괴환이 휘두른 칼에 찔려 단상에서 순교한 백 목사의 순결하고 지조높았던 신앙의 일생을 되짚어 본다.
――――――――――――――(편집자 주)
찌르륵 찌르륵-
마치 풀벌레가 가을을 숨가쁘게 알리려는듯한 소리였다. ㅈ난 8월 31일 새벽 4시.
낯선 곳, 여염집도 여관도 아닌 교회당에서 청한 잠이라 쉽게 잠들지 못하였다가 피로에 몰려 붙인 눈이었는데 어떤 조그만 소리에 그만 눈을 뜨고 말았다. 사위(四圍)를 보니 부산한 몸놀림으로 수 백명의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새벽기도회의 준비였다. 아무런 말이 들려오지 않았고 다만 기도회의 준비를 알린 찌르륵 찌르륵 소리만이 귓전에 다시 맴돌고 있었다.
5일장으로 치뤄지는 부산 서부교회 故 백영희(白永僖·80·예수교 장로회 총공회장) 목사의 영결예배가 있던 날의 새벽은 경건한 새벽기도회의 준비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뜻하지 않았던, 그러나 평소의 소원처럼 강단에서 조용히 쓰러진 백영희 목사.
25세에 회심
28세때 목회시작
50평생을 목회와 교육으로 말씀의 연구와 실행으로 살아온 그의 삶의 궤적은 25세때 기독교에 입문하면서부터 일관되게 이어져 온다.
1910년 경남 거창지방의 유교적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25세 되던 1934년 어느 전도자로부터 복음을 받아들여 28세때에 목회자의 길로 들어선다.
이미 12살 때 이웃에 살던 고운선권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라 살라”는 말에 어린 마음에도 그것이 굉장히 충격적인 일로 느껴지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내면적으로는 항상 기독교 신앙에 대한 동경과 호감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막상 겉으로는 괜히 기독교를 핍박하려는 철부지 심술로 예수 믿는 친구들을 핍박했다고 한다.
그의 나이 25살 되던 때 양조장을 집적 경영하여 재미를 보고 있을 때였는데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물건을 사러온 고운서 권사 아들의 인품을 보고 예수의 체취를 충분히 느껴 “기회만 있으면 교회에 나가리라”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양조업을 하는 자기에겐 직접 전도하는 이가 없었다. 전도인들이 자신의 상점앞을 자주 지나가면서도 전도를 하지 않자 어느날 그는 한 전도인을 붙잡고 “왜 니겐 전도하지 않소”하고 물었다고 한다. 평소 믿음을 받아들일 것 같지 않아 전도를 기피했던 그에게서 이런 말이 나오자 전도인은 오늘 저녁에 전도강연이 있으니 함께 가자고 그때서야 비로서 전도의 권유를 했다고 한다.
전도강연의 말을 들은 그는 우리 집에서 직접 열면 어떻겠느냐고 자기의 제안을 제시하자 전도인은 감격, 쾌히 승낙하여 그날 저녁 그의 집에서 전도강연을 하게 되어 은혜를 서로가 충만히 받고 회심의 날이 되었다. 주님을 영접한 그는 주일이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하여 일주간을 보낸 후 첫 주일을 맞아 교회에 나가 창세기에 관한 장로님의 설교에 평소 갖고있는 많은 의심을 풀었다. 믿은 지 불과 나흘만에 술, 담배를 끊고 열이레만에 양조장을 그만두고 전업을 함으로써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했던 일화를 갖고 있다.
신사참배 단호히 배격
집 주위에 교회가 없는 탓으로 매일 새벽 전 가족을 이끌고 동산에 올라가 새벽기도를 드림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등 놀라운 변화의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의 이런 모습들은 평소 그를 알던 이웃, 친지들에게 놀라움과 함께 많은 감명을 주게 되었다.
일제 말기 교회조차도 신사참배를 당연시 하고 있을 무렵 단호히 이를 거부, 많은 곤욕을 치루었으나 주님의 보호로 극단의 위험에서도 보호를 받았으며 그가 출석하던 교회의 교인 어느 한 사람도 신사참배에 가담치 않음으로 신앙의 절개를 보여주었다.
해방 이후 거창 지역을 중심으로 4개교회를 한꺼번에 개척하기도 한 그는 복음만을 위해 모든 힘을 집중시켜 나갔다. 교역자가 절대 부족했던 시절이었고, 무급(無給)으로 일해야 했던 어려운 때였지만 그의 마음속의 타오르는 복음에의 정열은 어떤 고난조차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이겨나갈 수 있는 것으로 이미 변화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출옥 성도중 한 사람인 주남선 목사(그는 주 목사를 퍽 존경해서 주 목사가 물려준 성경을 특히 애용할 정도였다)의 권유로 유급전도사가 되었다. 고신대학 신학부에서 공부하여 고신교단으로부터 안수를 받았던 것이다.
세계 최대의 유년주일학교
그가 28년 3개월 동안 시무한 서부교회는 1948년 손이원 목사(손양원 목사의 동생)가 주축이 되어 설립한 교회이다. 이후 김창인 목사(서울 충현교회 원로목사)가 잠시 맡고 있다가 1951년 백 목사가 부임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교회로 비교적 부산지역에서도 큰 규모에 속하는 이 교회는 출석하는 어린이 수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규모의 교회이다.
서울의 순복음중앙교회 주일학교보다 훨씬 많은 어린이가 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전국 수 많은 교회의 교육관계자들이 끊임없이 찾아드는 이 교회는 89년 현재 장년부 약 4천명, 중간반으로 불리우는 중고등학생들이 약 2천여명 유년주일학교가 7천여명이나 된다.
어린이부의 재적인원은 3만여명, 여름 성경학교나 겨울 성경학교 때에는 평균 1만2천명 내지 1만 3천명이 모인다. 1951년 백영희 목사 부임당시의 장년 40여명 주일학교 70여명에 견주면 백배에 증가율이다.
서부교회는 여타 교회와 좀 특이한 교육방식과 조직을 갖고 있는데 첫 번째 특징이 학년별 구성을 하지 않고 있는 점이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심지어 미취학 아동까지 함께 모아 가르치고 있다.
학급을 나누는 것은 인원과 어린이를 전도했던 사람들로 함께 묶어 가르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한 교사가 전도한 아이들은 성별, 학년에 관계없이 그 교사가 맡아 가르치는데 학급당 50명 정도로 그 수를 나누어 정한다. 이 인원이 넘치면 3~4명씩 배치되어있는 보조반사가 맡아서 가르치게 된다.
학년과 지능이 다른 아이들에게 함께 가르친다는 것이 불가능하리라 여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세상학문과 하나님 학문이 다르듯, 장년들이 학력, 연령, 지능이 달라도 서로 함께 은혜를 받듯 어린이들도 마찬가지라는게 서부교회의 일관된 생각이며 경험의 결과였다. 어린이들의 예배 또한 어른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어른들이 즐겨부르는 찬송가를 어린이들도 즐겨 부르고 있고 따로 준비된 어린이용 공과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백 목사가 어른들에게 했던 지난 주의 설교를 쉽게 풀어 엮은 프린트물로 공부하지만 어린이들은 잘 따라오고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들 즉 율동이나 동화같은 것이없이 성경을 암송하는 등 교사와 학생이 함께 문답법식으로 해나가는 교육방식을 택하고 있지만 아이들이 무척 즐거워 하고 있다. 교사들의 헌신과 노력은 주일학교 성장비결중의 가장 큰 이유로 꼽을 수 있다.
반사들은 첫째, 신앙 둘째, 기도 세째, 심방을 그들의 본질적인 지침으로 꼽고있을만큼 뜨거운 신앙을 그 바탕으로 삼고 있다.
백 목사가 항상 강조했던 반사지침으로는 어린이가 오는 것은 반사 자신의 신앙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교회로 인도하는 어린이를 위해 날마다 한 차례씩 반드시 기도할 것이며, 토요일과 주일 심방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빠뜨리지 말것 등이라고 한다. 1천여명의 반사 중에는 고등하생부터 7순노인에 이를만큼 다양한 계층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서부교회가 세계 최대의 어린이 교회로 성장한데에는 백 목사의 의도적인 교회운영과 뒷받침, 그리고 교사들의 노고와 기도가 원동력이었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백목사의 목회방향은 어린이 선교에 그 중심이 담겨있다.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을 철저히 따르기 위함이었고 어린 생명에게 전도의 씨앗을 뿌려야 겠다는 믿음에서였다.
백 목사는 종종 『주일학생은 새교회, 중고등학생은 중고기계, 장년은 고물기계, 사기도 쉽고 잘 돌아가는 새 기계를 구입해야 성공하는 것처럼 주일학교의 부흥은 곧 교회의 부흥과 이어진다』라고 말했다. 서부교회에서는 주일학교 반사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알고 맡게되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전통처럼 내려오고 있다.
부산 지역에 설립한 30여개의 주일학교 분교는 그 지역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아직 교세가 약한 총공회의 지교회 확장으로 키워나갈 계획을 가지고 있다.
개교회의 보수적교단
백 목사 자신이 총공회장으로 있던 예수교 장로회 총공회는 어떤 교단인가를 알아보자.
기도교 대연감 453쪽에 있는 내용으로 말하면 좋을 것 같다. 총공회 교리에 관한 소개는 이렇게 되어 있다.
1) 신구약성경은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앙과 생활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으로 믿는다.
2) 사도신경을 믿으며 전통적인 초대교회신조인 니케아, 콘슨탄티노플 신조의 정통교리로 받는다.
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및 대소요리문답서를 성경과 사도신경의 가르침을 가장 잘 나타낸 교리로 인정한다.
조직은 총공회를 상부기관으로 5개의 상설위원회(행정, 교훈, 목회, 경제, 개척위원회)를 두고 있으며 88년 현재 전국에 105개의 교회가 있다고 소개하고 산하기관 및 협력기관으로 성경공부를 위한 연경회와 총공회, 신학대학격인 4년 과정의 목회자 양성원을 두고 있고 백영희 목사 목회설교록 및 목회자료 출간을 위한 목효ㅣ연구소를 두고 있다.
1987년 4월 25일 발행한 예수교 장로회 총공회의 교단현광이라는 자료를 보면 교단 본부가 있는 곳은 부산직할시 서구 동대신동 1가 382번지 서부교회에 두고 있음을 알리고 교단 창설배경을 이렇게 적고 있다.
『본 교단은 전통적인 조선 예수교 장로회에 뿌리를 두고, 특히 소주선교 영역이었던 경남지방 교회의 신앙에 근거를 두고 있다. 본 교단의 지도목사인 백영희 목사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고려 신학교를 졸업하고 부산 서부교회에서 목회하던 중, 고신 교단이 예배당 소송과 유엔군 철수 반대 성명서 발표 등 비성경적, 비신앙적 행위에 가담하는 것을 보고 강력히 반대하다가 1959년 상회 불복종으로 제명되었다. 그후 경기 보료 노회(고신)에 가입 청원하였으나 보류노회가 I.C.C.C에 가입함으로 가입 철회하고 독립교회로 남아있다가 1966년 예수교 장로회 총공회로 조직되었다』고 설명한다.
1966년 5월 26일 서부교회에서 백영희 목사를 중심으로 10여명의 교역자로 시작했는데 86년 현재 전국 총공회 교회 수는 109개 교역자 수는 목사 66명 전도사 41명 이고 교인수는 125,313명으로 되어있다.
서부교회에서 양성한 반사들이 목회자가 됨으로써 89년 현재 전국 120여명의 교역자가 활동한다.
1957년 이래 매년 2회씩 백영희 목사가 직접 인도하는 거창, 대구의 산상집회에는 2만 5천여 명이 참석하고 있는 경남지역의 가장 큰 집회이며 교파를 초월해 많은 신도들이 참석해 오고 있다.
80고령에도 불구 새벽 기도회 및 주일학교 반사공부까지 주 평균 11회 이상 설교해온 정력적인 설교가로 172권의 목회설교록을 남기고 있다.
【沈定基 기자】
흰 종이에 예수님을 그립니다
최종훈/목회와 신학 기자
교육학자들의 이론에 따르자면 사람은 태어나서 두 살이 될 때까지는 거의 동물적인 감각에 의지해서 살아간다고 한다. 그 후 일곱 살에 이르기까지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깨닫는 과정을 거치게 되고 초등교육을 마치는 14세가 되면 기본적인 사고의 틀은 거의 모두 마련된다는 것이다.
이 시기의 어린이들은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싶어하고 또 무엇이든 나타내 보이려고 애쓴다. 알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은지 한번 시작된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고 사랑받고 싶어한다. 읽기와 쓰기를 배우면서부터는 문자화된 모든 것을 통째로 믿어버리는가 하면 꼬치꼬치 이치를 따지기도 한다.
이러한 어린이들의 모습과 성품을 사람들은 곧 잘 흰 종이에 비교한다. 흰 마탕 위에 노란색을 칠하면 노란 종이가, 파란색을 칠하면 파란 종이가 되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장래가 크게 달라진다는 말이다.
교회는 일찍부터 백지같은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심어 주고 선과 악에 대한 성경적인 표준을 가르쳐 주려고 노력해 왔다. 한국교회도 예외는 아니어서 교회마다 주일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신학대학마다 소위 ‘기독교 교육’을 가르치는 학과를 설치해 놓고 있다. 이를 위한 교재나 보조기구를 판매하는 상점도 여러 곳 눈에 띄고 전문 잡지만도 서너 가지에 달하고 있으며 교사들을 위한 강습회도 심심치 않게 열린다. 이만 하면 기독교 교육에 있어서 최소한 후진국은 면했다고 자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꺼풀 벗겨내고 보면 그렇게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유년기 교육, 특히 기독교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은 많이들 하지만 실천을 위한 배려는 말을 따르지 못한다. 목회자들은 유년주일학교 사역에는 별로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다.
아예 노골적으로 “어린 아이들을 가르쳐 봐야 교회 자원으로 남는다는 보장도 없는데다가 교회를 유지하기 위한 재원은 장년으로부터 나오는데 애써 어린이 사역에 매달릴 필요가 있겠느냐”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서울 외곽에 위치한 어느 교회는 전체 예산 1억 여원 가운데 주일학교 예산은 3%인 3백만원에 불과해 여름성경학교를 치르고 나면 교사들이 주머니를 털어 주일학교를 운영해야 할 형편이다.
정말 유년주일학교 사역은 비경제적이며 비효율적인 사역인가? 교회 기관들 가운데 구색이나 맞추는 미미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어린이부를 통한 교회 성장은 불가능한 일일까? 이러한 의문들에 대하여 부산 서부교회의 사례는 좋은 반증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 교회의 사역은 유년주일학교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최대의 자원이 투자되고 있으나 장년부의 사역이 상대적으로 위축되기는커녕 오히려 병행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의 주일학교
부산직할시 동대신동에 위치한 부산 서부 교회는 약 45년이라는 짧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교회는 순교자 손양원 목사의 아우인 손이원 목사가 개척했다.
이 교회가 현저한 발전을 시작한 것은 1951년 현 당회장인 백영희 목사가 부임하면서 부터였다. 당시 장년층 신도가 약 40여 명, 주일학교 학생이 70여 명 정도이던 교회에 부임한 그는 오늘날까지 ‘어린이의 성장이 곧 교회의 성장’이라는 단순한 목회 방침을 고수해 왔다. 현재 장년부 출석인원이 약 4천명, 중고등학생이 약 2천명, 주일학교 학생들이 약 7천명에 달해 1백배 가량의 성장을 보인 셈이다.
이 교회는 기관 구성에 있어서도 독특한 면모를 보여 주는데 일반 교회와는 달리 주일학교, 중간반, 장년층을 대상으로한 남녀전도회가 기관의 전부이다. 주일학교는 미취학 아동에서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중간반은 다른 교회의 중고등부에 해당한다.
교회 전체의 신앙적인 분위기는 극히 보수적이며 남녀 구분이 엄격해서 부부라 할지라도 나란히 앉아서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 주일에는 교회와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물론 이날은 일체의 금전 사용이 제한된다. 이러한 교회의 특성들을 열거하는 것은 그에 대한 이해를 전제하고서야 비로소 서부교회 유년주일학교의 특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 살부터 6학년까지 모두 합반
서부교회 유년주일학교를 처음 찾는 사람이면 누구나 특이한 교육방식과 조직을 보고 놀라게 된다.
우선 반을 나누는 기준이 보통 교회와 크게 다르다. 보통의 교회들이 일반 학교의 교과 과정에 맞추어 1학년, 2학년 따위로 구분하는 것과는 달리 이 교회에서는 한 학급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심지어 미취학 어린이까지를 모두 수용한다.
학급을 나누는 기준이 되는 것은 오직 누가 그 어린이를 전도했느냐 하는 것 뿐이다. 다시 말해서 한 교사가 전도한 아이들은 나이나 학년, 성별에 상관 없이 그 교사가 맡아 가르친다. 한 학급은 평균 50명 정도로 구성되고 이 인원을 넘으면 기회를 보아 한 학급 당 3~4명씩 배치되어 있는 보조 반사에게 분반시킨다. 이 반이 무사히 독립할 때까지 분반시킨 모(母)교사가 지속적으로 관리함은 물론이다.
나이도 다르고 지능도 다르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도 현저하게 다른 어린이들을 어떻게 한자리에 앉혀 놓고 가르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하여 유년주일학교 총무 장영목 전도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 학문과 다른 것이 바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말슴은 누구나 다 들어야 하고 또 들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분은 우리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장년반을 생각해 보세요. 학력 수준도 차이가 나고 신앙 연륜도 다르지만 말씀을 들을 때 은혜는 똑같이 받지 않던가요? 우리는 그 원리를 어린이들에게도 적용시킬 수있다고 믿습니다.”
외울 때까지 묻고 답하고
반편성에서 충격을 받은 방문객들은 예배 프로그램에 한 번 참석해 보고 나면 더 큰 충격과 자극을 받게 된다. 보통 주일의 경우 오전 예배는 정확히 8시 30분에 묵도로 시작한다.
다음은 찬송시간, 어린이용 찬송곡이나 찬송가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장년부용 찬송가를 같이 사용한다. “내가 매일 기쁘게”, “인애하신 구세주여”등 어른들의 애창곡은 동시에 서부교회 어린이들의 애창곡이도 하다.
찬송이 끝나면 일반 교회의 설교에 해당하는 부장 교사 통반(統班)시간이다. 이때 사용하는 교재는 특별한 공과책이 아니라 지난 주일 당회장 목사의 장년부 설교를 간단히 요약·인쇄한 손바닥만한 종이 한 장이 전부이다. 내용은 주로 성경을 풀어 가르친 것으로 장로교 신조와 교리를 골자로 하고 있다. 원래 어른들을 대상으로한 설교를 요약한 데다가 교리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어려운 단어와 표현들이 적지 않게 섞여 있다. 예컨대 ‘피조물’, ‘단일 통치’, ‘인본주의와 신본주의’, ‘물질주의’ 따위의 말이다.
아무튼 부장 교사는 교재 내용에 과다한 설명을 붙이지 않은 채 차근차근 가르쳐 나간다. 대개는 문답법을 이용하는 전형적인 주입식 교육이다.
“오늘 재목이 뭔지 말해 보세요.”
“우리에게 주신 큰 구원!”
“에베소서 1장 3절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직책은 모두 몇가지?”
“세가지!”
“첫째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화평을 이루는 제사장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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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질문과 응답은 오전 예배를 드리는 동안 교과내용 전체를 훑어가면서 열차례 가까이 반복된다. 큰 소리로 문답을 주고 받느라고 교사들의 목소리는 벌써 탁해지기 시작한다.
통반에 이어서 이번엔 분반(分班)공부. 분반 공부의 내용도 통반 공부와 조금도 틀리지 않고 똑같다. 전체적으로 가르쳤던 내용을 작은 단위의 집단으로 나누어 한번 더 가르치는 것이다. 각 반을 담임하고 있는 교사들은 이미 교재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외우고 있다. 헌금(그들은 ‘연보’라고 부른다)을 드리는 것도 분반 공부 시간에 할 일이다.
분반 공부를 마치고 나면 다시 부장 교사가 앞에 나가서 전체를 대상으로 오늘 배운 내용을 되짚어 묻고 점검한 후에 기도를 드리면 예배는 모두 끝난다.
이러한 예배 순서와 기본적인 프로그램은 오후 예배 때에도 별다른 차이가 없으며 오전에 배운 내용을 다시 한번 복습한다. 이때 쯤되면 교사도 어린이들도 교재 전체를 달달 외울 정도가 된다.
아유회, 발표회 없는 행사계획
프로그램에 있어서 다른 특징은 말씀을 공부하고 외우도록 하는 것 외에 어린이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들이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교사가 재미있는 동화를 들려주는 일도 없고 찬송을 부르며 율동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없다.
다른 교회 어린이들 같으면 오후 예배 후엔 그림을 그리거나 공작을 하는 등 특별 프로그램을 가질텐데 이 교회에는 오로지 말씀뿐이다. 영화를 보여 주거나 교사의 인도로 신나는 게임을 하는 것은 더구나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서부교회 주일학교 운영안(案) 예배조(條)는 이점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뜻을 위주로 하고 학생들이 기뻐하는 아동 심리 위주로 하지 않는다.”
이러한 정신은 유년주일학교의 연간 행사계획 가운데 잘 반영되어 있다. 이들은 야유회, 성경 퀴즈대회, 발표회 등 부수적인 행사는 전혀 계획하지 않고 오직 하기 아동성경학교와 성탄절 기념행사만을 치룰 예정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경학교가 끝나는 날 야유회를 갔었지만 몇가지 이유가 있어 그나마 있던 특별행사도 사라지고 말았다. 장영목 전도사는 그 까닭을 구체적인 도표까지 제시하며 설명한다.
“여기를 좀 보세요. 우리가 1981년까지는 하기 아동성경학교를 끝내고 야유회를 갔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야유회를 다녀오면 사람이 대폭 줄어요. 성경학교가 끝났으니 한명이 늘어도 늘었어야 하지 않겠어요?”
실제로 그가 지적하는 부분에는 야유회를 전후해서 심각한 인원이 차이가 있었음이 수치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다음 해에는 비가 많이 와서 야유회를 갈 수가 없었거든요. 그리고 막상 성경학교 다음 주일이 되었는데 인원이 오히려 늘어난 거예요. 이런 일을 몇차례 더 겪고 나서 목사님께 야유회를 없애자고 건의해서 허락을 받았습니다.”
야유회가 없어진 성경학교는 주일 프로그램 가운데서 평소에 다시 한 번 반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 공과를 추려내어 가르치는 것을 내용으로 하며 성탄절 행사는 성경암송대회, 합창, 합주등 세가지가 전체 프로그램이다. 결국 이 교회는 ‘철저한 말씀 중심주의’에 입각해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교사는 주업, 직장은 부업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철저한 말씀 중심주의’가 서부교회의 성공적인 발전에 토대를 제공 했다면 그 위에 골격을 세우는 역할을 담당한 것은 역시 ‘교사’라고 할 수 있다.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조직은 매우 단순해서 교장 1명(땅회장 목사), 부장 6명(장로 3명, 집사 3명), 총무 1명, 임시 서기 10명, 교통지도 50명이 7천여 학생들을 위한 관리를 맡아본다.
실제로 아이들과 부딪혀서 교육을 맡아 보는 교사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이미 학생들을 전도해서 가르치고 있는 교사로서 이들을 ‘원반사’라고 부른다. 또 다른 종류의 반사는 ‘보조반사’로서 원반사를 도와서 어린이들을 돌보게 된다. 현재 서부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반사는 보조반사를 포함해서 총 1천여 명에 달한다. 전체 학급수가 6백개 학급이니 1개 학급당 반사가 1.7명꼴인 셈이다.
서부교회의 반사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백영희 목사는 자신의 신앙, 기도, 그리고 심방을 꼽는다. 교사들의 말에 따르면 백 목사는 평소에도 “반사직은 우리의 천직이요 주업인 것을 알고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자신의 신앙 관리에 만전을 기하도록 권면한다고 한다.
반사들은 원칙적으로 주일 대예배, 삼일·오일 예배, 새벽예배 등 모든 집회에 꼭꼭 참석해야 한다. 교사들을 위한 수양회나 강습회가 전혀 없는 서부교회 형편에서는 집회마다 나오는 당회장의 메시지가 가장 좋은 훈령 교범이 된다. 특히 주일날 오전 예배의 설교는 다음 주일 공과가 되므로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곧 공과를 미리 준비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한편 반사들은 자신이 가르치는 어린이, 혹은 전도한 어린이들의 명단을 수첩에 적어두고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이상 기도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주중에 기회가 닿는 대로 학생들을 심방해서 학생들의 고민을 듣는다. 특히 토요일 오후와 주일 오전·오후의 심방은 반사들의 의무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힌다.
일반 교회들이 연초에 반사를 임명하는 것과 달리 서부교회의 반사 임명은 연중 무휴, 어느 때고 가능하다. 보조반사가 어린이들을 전도해서 그 수가 5명에 이르면 바로 원반사로 임명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그는 독립적으로 자기 학생들을 키워 나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서부교회 반사들의 선발과정, 학급 관리의 비결등을 훑어 보았다. 그러나 이런 도식적인 분석보다는 차라리 한 교사가 일주일을 어떻게 보내는지를 추적해 보는 것이 더 정확한 개념을 제공해 줄지도 모른다.
평일보다 바쁜 반사의 주일
서문행 씨는 직함이 많이 따라 다니는 사람이다. 우선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직책이 있고 회사의 경영에 직접 관여하고 있으니 그에 따르는 직함이 있다. 교회에 가면 장로라는 직함이 따라다니고 주일학교 부장이라는 감투(?)가 그의 것이다.
그러나 서 장로는 이 모든 직함보다는 오히려 ‘반사’로 불리워지길 바란다. ‘반사’라는 직책이 장로보다 값지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 일이 정신없이 바빠도 반사직을 감당하기 위해서라면 무리해서라도 시간을 내곤하는 까닭도 그 일이 너무 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일주일은 온통 주일학교 어린이들 생각으로 채워진다.
그는 당회장이 항상 주장하는 자기의 신앙관리, 기도, 그리고 심방의 3대 요소를 실천에 옮기려고 노력한다. 꼬박꼬박 참석하는 새벽기도 시간에 그는 자기 반 학생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수첩을 펼쳐 놓고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한다.
수요일 오후 4시부터 1시간 동안은 심방하는 시간. 직접 찾아가기도 하고 전화를 걸어서 안부를 묻기도 한다. 지난 주에 배운 공과를 잊지나 않았는지 점검해 보기도 하고 부모들과 만나 가정형편이나 나쁜 친구를 사귀는지의 여부를 묻기도 한다. 서 장로가 담당하고 있는 학생은 국민학생이 70명, 중고등 학생이 40명 해서 모두 110여 명이다. 이 인원을 한바퀴 다 돌자면 서너 시간은 눈깜작할 사이에 지나가버린다.
심방은 토요일 오후에도 계속된다. 남들은 회사 일로 바쁘고 피곤한데 쉬지않고 쓸데없는 일만 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반사가 주업이고 직장이 부업이라고 생각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
주일 오전 4시, 평일과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새벽기도를 마치고 30분 정도 더 기도한다. 이 시간이 어린이들을 위해 가장 집중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이 된다.
집에 돌아가 간단한 식사를 마치곤 바로 심방에 나선다. 이때가 오전 6시.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가정들이 있지만 심방은 무차별이다. 간혹 TV에 정신이 팔려 교회로 선뜻 따라나서지 않는 꼬마들이 있으면 큰 소리로 야단을 치기도 한다. “TV보다가 학교는 가면서 왜 교회는 못나와!”
8시 20분쯤 심방을 마치고 불러낸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교회로 내려온다. 이때쯤 되면 다른 반 반사들도 심방을 마치는 시간이라서 교회 앞은 일대 혼란을 이룬다. 반사 한 사람마다 적게는 5명, 많으면 40~50명씩 데리고 골목골목마다 쏟아져 나오는 장면은 장관이다. 교사가 마치 마술피리라도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8시 30분에 예배가 시작되면 1기간 동안은 아이들과 더불어 소리지르고 묻고 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전후좌우에서 큰 소리로 가르치는 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에 서장로도 소리지르지 않을 수가 없다. 교회안은 함성에 휩싸여 버린다.
9시 30분 주일학교 예배가 끝나면 바로 아이들을 바래다 주고는 이내 중고등 학생 심방에 나선다. 이들을 데리고 대예배에 참석하면 오전 10시. 예배가 끝나는 11시 30분부터 1시 30분까지가 주일 가운데 가장 한가한 시간이다. 이시간에 식사도하고 오후에 갖는 반사회의 때 보고할 자료를 정리하기도 한다.
오후 2시부터는 주일 오후 예배에 참석해야 한다. 모든 예배는 반사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이 시간에 열심히 말씀을 들어 놓지 않으면 다음 주일에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이다.
3시 30분부터 반사회의에 들어간다. 오전 통계가 발표되고 우수반, 모범반이 선정된다. 우수반이나 모범반이 되어도 무슨 상품이 있는 것이 아니고 박수나 한 번 쳐줄 뿐이다.
4시 오후 심방에 나서면 계속 어린이 오후예배, 중간반 예배를 마칠 때까지는 자기 시간이 없다. 오후 7시, 잠시 집에 돌아와 식사를 하곤 내쳐 교회로 간다. 오늘 설교를 다시 들으며 연구하는 ‘재독’에 참가하기 위해서이다. 재독을 마치고 대부분은 다른 반 반사와 신기도 하러 떠난다.
어떤 이는 “그러면 가족들과는 언제 같이 지내지요? 식구들이 싫어하지 않나요?”하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서 장로의 가족은 부인도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도 모두 반사이기 때문이다.
온 교회가 돌보는 어린이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성장 사례에 있어서 위에서 살펴본 주요 원인 외에도 많은 부수적인 요인들을 찾아낼 수 있다.
우선 목회자가 소신을 갖고 모든 목회의 방향을 주일학교 교육에 집중시켰다는 점을 들수 있다. 백 목사는 종종 “주일학교는 새 기계, 중고등학생은 중고 기계, 장년은 고물 기계이다. 사기도 쉽고 잘 돌아가는 새 기계를 구입해야 성공하는 것처럼 주일학교의 부흥은 곧 교회의 부흥과 이어진다”고 말한다.
목회자의 이러한 소신은 교회 전체에 파급되어서 모든 성도들이 주일학교에서 일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알고 기뻐한다. 보조반사 지원자들이 계속 줄을 서고 있고, 72세 된 노인이 반사를 맡아보고 있는 것이 모두 이것 때문이다.
이 교회에서 반사들이 갖는 위치가 얼마나 절대적인가는 감사헌금 봉투에 써넣은 감사제목을 보면 단적으로 알 수 있다.
“보조반사 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일학교 학생들을 전도하게 해주심 감사.”
“반사 활동에 더 충성하게 하소서.”
“반사 직분 귀한 것을 깨닫게 하심 감사.”
“반사 직책에 충성하는 남편되기를 원합니다.”
주일학교 조직을 방만하게 운영하지 않고 관리 요원을 최소화한 것도 돋보이는 점이다.
7천여명 어린이와 1천명 교사가 좁은 공간에서 뒤섞여 있고 더구나 그 어린이들이 부산 전역에서 몰려온다는 점을 기억해 보자. 문제가 한둘이 아님은 당연한 일이다. 아이들이 단순히 물 한그릇 먹기 위해 몰려나온다 하더라도 교사 열댓 명으로는 도저히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은 쉬 짐작이 간다.
그런데 교사를 겸한 사람을 제외한 순수한 관리요원이 10여명에 불과하다는 것은 놀라운일이 아닐 수 없다. 주일학교의 행정적인 면을 돕고 반사들을 지원하는 업무는 주로 서기부에서 담당한다. 이들은 미아를 보호하고 부모를 찾아 주며 교사들에게 필요한 출석부, 교재, 요절카드, 이름표 등을 나누어 준다. 예배 후에 인원통계를 내고 헌금·요절 등을 따져 모범반·우수반을 선정하는 일도 이들 차지. 인원이 워낙 많다보니 이 일만으로도 벅차다. 그러나 서기부의 수고 덕택에 더 많은 교사들이 학급을 맡을 수 있고 그 일에 전념할 수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는다.
전문가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계속 묻고 응답하게 하는 교수 방법과 반사에게 학급의 운영에 관한 모든 사항을 위임한 것도 효과적으로 보인다. 계속되는 질문과 어려운 교과 내용이 어린이들을 식상하게 할 듯 보였지만 뜻밖에도 그들은 교사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답변하기에 여념이 없다. 문답법이라는 교수방법이 어린이들을 강의의 복판으로 끌어들이는 작용을 한 것이다.
반사들은 아이들을 데려오는 것부터 집에 도착할 때까지 모든 책임을 맡고 있으므로 잠시라도 어린이들 곁에서 떠나지 않는다. 예배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아이들 앞에서 움직이지 않는 교사, 집에서 데려오고 길 건널 때 손 잡아 주는 교사, 이런 교사상이 어린이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중요한 요인으로 보였다. 이날 서부교회의 주일학교 운영 상황을 견학하러 왔던 부산 어느 교회의 정미봉 씨는 “객관적으로 볼 때에는 교육이 안될 만큼 소란하다. 그러나 환경을 뛰어넘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게하는 교사의 능력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교사가 정위치를 지킬 때 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짐을 배웠다”고 말했다.
30개의 분교, 복음의 전진기지
이제 서부교회 주일학교는 제2의 도약을 위해 몇가지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그 구체안 가운데 하나가 주일학교 분교의 설치. 부산의 각 지역에 분교를 설치해서 그 지역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진기지로 삼고 장차 지교회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이 계획은 지난 83년부터 이미 착수되어 그해 9월 괴정에 첫 분교를 열었다. 그 후 금년 까지 아미동과 감천동, 괴정동에 각 2개소를 비롯해서 총 30개의 분교가 이미 설립되었다. 분교 설립을 위해서 전교인이 4억원의 헌금을 작정하기도 했다.
이러한 서부교회의 활동은 많은 교회에 알려져서 매주 주일학교 관계자들의 견학이 끊이지 않는다. 그들은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면면을 살펴보고 많은 도전과 자극을 받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런 체제를 자신의 교회에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는 가에 대해선 의문을 표시한다. 서부교회 교사들은 “그대로만 하면 꼭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대로 하기까지 겪어야 할 갈등과 충돌이 두렵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그들을 저해하는 부분들을 이해할 수 있다. 이미 오랜시간 유지되어온 전통이나 관행을 하루 아침에 바꾸어 버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서부교회의 제도가 전적으로 옳다고도 장담할 수 없으며 시행 후에 같은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부를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몇가지 주요한 장점들은 도입·적용시킬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오락성 프로그램을 지양하고 복음을 있는 그대로 전한다든가 주일학교 교육에 더 큰 비중을 두어 본다든가 하는 정도는 언제든지 가능한 일일 것이다.
제2의 서부교회, 제3의 서부교회는 어느 곳에나 생겨날 수 있다. 서부교회에 간섭하신 하나님은 어느 곳에서나 동일하게 간섭하시고 세상의 모든 어린이의 마음은 한결같기 때문이다.
서부교회 주일학교
1. 학교개요
부산 직할시 동대신동에 위치한 서부교회 주일학교는 4층의 현대식 빌딩과 행정실로 사용되는 부속건물에서 교사 794명, 어린이 8,300명 내외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 서부교회 주일학교는 당회장 백 영희 목사를 교장으로 하여, 이 춘영 장로를 비롯한 다섯 분의 부장과 총무의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다. 어린이들을 여느 교회처럼 연령에 따라 유치·유년·초등부로 나누지 않고 학년공학, 남녀공학으로 반편성을 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많은 관계로 한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거나, 공부를 할 수 없어 예배장소를 지하층에 두 곳, 1, 2, 3층에 마련하여 각 층은 부장 책임(인도)에 따라 운영되도록 하였다. 부장은 각 층 예배인도, 설교자가 된다.
학급의 편성은 연령이나 어린이들의 숫자를 제한시켜 편성하지 않았다. 보조반사가 거리에 나가 5명의 어린이를 전도해 올 때 한 학급을 구성할 수 있으며, 이 때 교사는 정교사가 된다.
지금 현재, 한 학급의 최소 인원이 5명이 있는데서, 재적 300여명 – 출석 100여명의 학급도 있다. 한 학급의 어린이가 50명이 넘을 때 정교사가 원하면 보조교사를 한 사람 붙여 준다. 학급의 총수는 남자 교사에 의한 240학급(보조교사 105명), 여자 교사에 의한 274학급(보조교사 175명)이 있다.
서부교회 주일학교에 등록된 어린이 숫자는 2만 5천 163명이다. 지난 주일인 1월 5일에 출석한 어린이는 8천 300명 내외다. 지난 해 크리스마스 때는 1만 3천 750명이 나왔다.
2. 예배 프로그램
예배순서는 독특하다.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뜻을 위주로 한다”는 자세 아래 예배 이외에 일체의 다른 활동이 금지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동화구연을 한다거나, 영화를 시사한다든지 성극공연, 심지어 율동이나 레크리에이션은 일체 안 한다.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 외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한주간 동안 지내면서 오락, 유희, 동화, 영화 등은 세속사회의 산물로 지나치리만큼 접하기에 교회에서까지 그런 것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예배를 드릴 때도 어린이용 찬소가를 사용하지 않는다. 순서도 그렇거니와 어른과 똑같은 예배의식을 갖는다. 어른과 같은 찬송가를 사용하고, 주경 설교를 듣는다.
예배순서는 묵상기도, 부장의 개회기도, 찬송, 반사(교사)의 대표기도, 부장의 설교, 교사에 의한 분반공부, 찬송, 문답찬송, 광고, 폐회기도로 이루어진다. 주보를 펴내지 않아 예배 진행은 전적으로 부장에 따른다.
특기할 사항은 설교다. 어린이 예배의 설교는 전 주일에 목사님이 어른 예배 때 설교한 것으로 한다. 어른 예배도 주보의 도움이 없다. 목사님이 미리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 설교를 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때 그때 말씀을 주신다고 한다.
주일 오전의 목사님 설교는 다시 본문·제목·요절의 설교개요와 서론과 본론, 결론이 요약·정리되어 수요일 저녁예배 때 전 성도들에게 나누어주어(교사들도 포함)다시 같은 설교를 한다. 이 설교원고가 공과가 되어 다음 주일의 어린이 공과내용이 되고, 부장의 설교원고가 된다.
그래서 어린이는 문답시간과 함께하여 한 내용을 세번 익히게 되는 것이다. 공과는 스스로 재 작성하여 교인들에게 배부하고 있다. 교사의 위치에서는 한 설교내용을 4번~5번 다루게 된다.
문답시간에는 공과공부 때 교사들이 나누어 준 문답지(요절지)에 의하여, 대답하도록 하고 있다. 요절은 꼭 외워야 한다. 어린이들의 성경공부 내용은 진행이나 서술과정이 (용어포함) 어른의 것과 똑같다.
3. 학급운영
교사 자신이 전도한 어린이가 자기 학급원이 되므로 학급운영이 곧 학생관리와 연결된다. 학급만의 프로그램이 일체없이 교사분반공부만이 있다. 교사는 맡고 있는 어린이가 많아 일일이 출석을 부르지는 않는다. 몇명이 나왔다는 숫자만 서기에게 알려 준다.
어느면에서 조직이나 행정은 제로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교사는 어린이들을 공식적으로 1주일 동안에 1회 심방하고, 어린이를 데리고 주일학교에 출석하도록 하고 있다.
교사는, 자기가 맡은 어린이들의 이름을 수첩에 적어서 매일 한번 이상 기도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어린이들을 심방해야 하는데, 어린이 심방시에 그 가정의 부모와 먼저 만나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어린이의 미래에 대한 의논을 하고 협동적으로 지도할 것을 모색한다.
심방일자는 토요일 오후와 주일 아침이다. 주일 아침에는 어린이들을 심방하여 5명이든 50명이든 교사가 인솔하여 데리고 온다. 어린이들이 교회를 오고 가는데 책임지고 안보하여 예배 후에는 각각 집까지 데려다 주고 있다.
따라서, 교사가 주일 오전에 출석을 부르지 않더라도 어린이의 출·결 상태를 파악하게 된다. 자기가 인도한 어린이는 자기가 가르치고 끝까지 책임진다는 이론에서 이렇게 하고 있다.
4. 교사훈련과 처우
교사훈련을 위한 커리큐럼은 따로 없고, 예배에의 참여와 기도로 대신하고 있다. 주일 오전, 오후 예배 참석 및 수요일과 금요일의 예배 참석, 새벽기도회 참석 등으로 한다. 그리고 교사는 주일밤, 수요일밤, 금요일밤의 기도와 철야기도로 하고 있다.
교회에서는 주일학교에서 수고하는 교사들에게 물질적인 대접을 금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라도 기념품이나 회식을 베풀지 않는다. 여름성경학교 때 점심식사 대접이 교사들에게 베푸는 전부다.
교사들에게는 회개와 소망과 믿음에 불이 있기를 강조하고, 전적으로 주님의 대속과 사랑과 하늘에서 주님 만날 소망, 그 나라의 영광만을 대접으로 삼고 교사직에 충실하라고 권하고 있다.
대접은 어린이들에게도 없다. 어린이들에게는 년말 시상이 고작이다. 일반 교회의 주일학교처럼 때마다 후한 상품을 주는 일은 없다. 성탄절 때 빵을 주는 것과 시상이 최대의 선물이다.
서부교회 주일학교는 부산 시내의 각 지역에 분교를 두고 있다. 감천동, 영도, 좌천동 등 23곳에 분교를 두어 주일 오후와 수요일 오후에는 이들 분교에서 집회를 갖고 있다.
분교에는 장로님들이 배치되어 있어 장로님들의 인도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배운다. 분교에는 이 지역의 어린이들이 모인다.
어린이들 가운데 심방원을 두어 심방원이 어린이들을 이끌어서 함께 다니도록 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즐겨하는 프로그램도 없는데 어린이들의 출석률이 높은 이유를, 하나님의 말씀만 가르치는데 있다고 장 영복 총무가 강조한다. 한편 교사의 심방과 기도, 자기가 전도한 아이는 자기가 책임지고 돌보는 교사의 자세에서 어린이들이 많이 출석한다고 보여진다.
서부교회 주일학교, 꼼꼼히 따질 때, 논의되어야 할 점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교사들의 지칠줄 모르는 어린이에의 관심과 사랑은 우선적으로 본받을만 하다.
교회학교 교사를 위한 교사교육지침서
임세빈 저
부산서부교회 주일학교
(※이 글은 83년 2월호 마당지에 실린것을 그대로 옮겨 실은 것입니다.)
재적어린이 3만 2천
지난해 12월 25일 성탄절 아침. 부산시 서구 동대신동 1가 381의 1번지에 있는 예수교 장로회 한국 총공회 서부 교회에는 1만 1천 3백 명의 어린이들이 일시에 몰려 들었다가 일시에 흩어지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구덕 공설 운동장의 1킬로미터 남쪽이며 간선 도로와 지선 도로가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곳에서 있는 이 교회로부터 코흘리개 어린이들은 마치 팔방으로 뻗은 거대한 부챗살처럼 퍼졌다가 오므러들었다가 하는 것이다.
더구나 각종 차량과 일반 행인들이 복잡하게 엇갈리고 있는 속에서도 이들 어린이들만은 너무나 질서 정연하게 움직여 마치 철새 무리들이 군무라도 벌이는 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1년 전의’81년 성탄일엔 이보다 더 많은 1만 3천여 명의 어린이들이 한꺼번에 이 교회에서 예배를 보았었다.
많은 어린이들이 몰려드는 것은 굳이 성탄일만이 아니다. 매주 일요일 아침 8시 30분에 열리는 이 서부 교회의 주일학교에는 평균 7천 5백 명의 어린이들이 출석하고 있다. 봄 가을에는 평균 8천~9천 명으로 더 많은 어린이들이 몰려든다. 이 교회의 만12세 이하 어린이 재적 숫자는 3만 2천여 명이며, 해마다 어린이 신도 숫자가 3천~4천 명씩 늘어나고 있어 세계 최대의 어린이 교회임이 분명하다. 어린이 신도 숫자로 본다면 보통 교회의 50~1백 배이며, 일반 신도 수로는 국내 최대인 순복음 교회나 영락 교회를 훨씬 앞지르고 있고, 다른 나라에서도 이만한 유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
30여 년 전에 설립된 이 교회는 백 영희 목사(74)의 뜻에 따라 주일 학교에 절대적인 비중을 두고 있는 명실 상부한 어린이 교회이다. 중간반의 평균 출석 숫자가 1천 8백 명, 장년반이 3천 2백 명 쯤으로 주일 학교 보다 훨씬 밑돌고 있다. 전체 교인 숫자의 약 80퍼센트가 어린이들인 만큼 이 교회는
-이 하 중 략-
부산서부교회 주일학교
부산서부교회(백영희목사 시무)의 주일학교가 유명하다는 소식은 몇해전 주일학교의 한 학생의 미아사건과 더불어 전국에 알려졌다. 이러한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성공적인 발전이 각 지역과 교회에 알려지자 현재까지 500여교회와 외국교회 수십군데서 견학을 다녀갔다.
주일학교 운영에 남달리 관심과 효과를 거두었던 백영희목사는 거창교회 시무당시 서부교회의 요청으로 지난 34년전 부임했다. 그의 목회방향은 “어린이도 한 생명이다. 그 전도의 씨를 일찍부터 키우자”라는 목표아래 어린이 전도에 힘을 기우려 왔다.
현재 서부교회 주일학교 제적인원은 무려 2만 4천명. 학생들의 대부분이 교회와는 거리가 먼 부산지역과 김해지역까지 분포되어 있다.
서부교회 주일학교가 타교회와 다른 점은 우선 어린이 위주의 교육이 아닌 하나님위주의 교육이라는 점이다. 그러기에 학습 내용은 단지 성경뿐. 그외에 세상적인 동화, 예화는 일체 없다. 오직 순수한 복음전달 뿐이다.
또한 요즘 학생들의 흥미위주와 발마추어 상품을 통한 심리에 자극을 주는데 반해 이 교회는 일절 상품은 없다.
또 반사들에 대한 대접이나 선물도 없다. 오직 봉사에서 시작하여 봉사로 끝난다.
또한 장로건 집사건 심지어 목사까지도 보조반사를 거쳐 원반사의 과정을 엄격히 거쳐야 한다. 보조반사는 자기가 전도한 어린이의 수가 어느정도 되어야만 원반사로 분리돼 반을 구성하게 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한반의 구성이 유치부로부터 국민학교 6학년까지 섞여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조직구성이 방문하는 사람마다 혼돈을 주지만 서부교회는 이러한 조직형태로 큰 효과를 거뒀다.
특히 남, 여가 엄격히 구분되어 보수적이고 순결성을 고집하는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이 교회의 주일학교 교재는 없다.
목사의 주일날 대예배 설교말씀이 곧 선생이 아이들에게 가르칠 학습내용이다. 이러한 내용은 반사회의에도 새벽 기도회에서도 반복이 돼, 488명의 원반사와 259명의 조건반사가 거의 새벽기도회에 참석 목사의 보충말씀을 메모하고 그것을 가지고 기도하며 몸소 실천한다.
옛말에 “칡은 씹을수록 달다”라는 말과 같이 담임목사의 설교를 계속 1주일 생활속에서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여 학생들에게 전속될때 그속에서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다.
묵도, 찬송의 순서에 이어 부장의 보충설교외 분반공부가 이어지고 공부에 대한 문답시간이 계속된다. 이때 문답자는 아이들이 귀찮아 할 정도로 말씀에 대한 확신을 점검하고 심어준다.
한편 교사들은 각지역 단위로 분산 평일에 1~2회 심방 및 구역예배를 실시하고 학생들의 이름과 성격등을 적어 하루에 3번씩 기도하는 모범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중학교에서 대학1학년까지를 같은 구성으로 조직 중간반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현재 2,500명에 달하는 학생들은 자발적인 참여와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다.
아마도 세계에서 제1이 될 서부교회의 2만여명의 주일학교. 이 교회학교의 부흥은 오직 믿고 간구하면 이루어 주신다는 성령의 힘만을 믿는 그 확신속에 얻어진 결과라고 볼 수 밖에 없다.
합동 교단 백주년대회 첫 강의
성경을 정확하게, 깊고 많이 읽는 것이 설교 비결
(박희천의 백영희 평가)
kidok.com 홈페이지 게재 2012.5.18
통권 제 호
(‘명설교자 백영희’ – 합동 교단 백주년대회 첫 강의)
이미 두 달 전에도 교계의 큰 뉴스를 이 게시판에서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1796번, [외부] 박희천의 백영희 평가 – 크리스찬투데이 (제,관) [2] 김성도목사 2012-03-22
박희천 목사님은 평생 ‘백영희의 성경적 설교는 세계적 역사적’이라고 소개한 분입니다. 그 제자들이 국내 최대인 합동교단과 교계에 중진으로 다 자리를 잡게 되자 이제는 합동교단의 기관지도 지면의 제일 위에 큰 제목으로 관련 내용을 뽑고 상세하게 보도했습니다. 1968년 합동교단의 경북노회가 이단으로 정죄하고 합동교단과 교계가 상식처럼 인용한 것을 전면 취소하는 결과입니다. 열매로 나무를 아는 법입니다. – 행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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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신문 1면, 10면, 11면 – 2012.5.23.
(10면)
“성경을 정확하게, 깊고 많이 읽는 것이 설교 비결”
전국목사장로대회 트랙별 세미나 중 ‘설교’를 주제로 총 4편의 강의가 진행됐다. 목회에서 설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반증하듯, 박희천 원로목사(내수동교회)를 비롯해 김지찬 교수(총신대) 주승중 교수(장신대) 송태근 목사(강남교회)가 진행한 강의는 500명이 넘는 참석자들로 가득찼다.
참석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강의도 알찼고 수준 높았다. 처음 설교를 주제로 강단에 오른 박희천 목사는 ‘말씀 사랑과 좋은 설교’란 제목으로 강의했다. 박 목사가 제시한 설교 잘하는 비결은 “오직 성경을 끊임없이 읽는 것”이다. 박 목사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지만 오직 ‘성경읽기’를 통해 명설교자로 알려진 백영희 목사를 예로 들며 “성경을 정확하게 깊이 많이 읽는 것이 설교를 잘하는 비결”이라고 제시했다.
(11면)
“예수생명 회복 소망의 100년 만들자”
총회설립 100주년 전국목사장로대회 16일 폐회
2012년 05월 22일 (화) 12:01:12 강석근 기자 harikein@kidok.com
연인원 3만 1000명 참석, 통렬한 회개
22개 트랙세미나 호응 “교단 희망 봤다”
▲ “불씨가 되어 타오르게 하소서” 총회설립 100주년을 맞아 열린 목사장로대회는 총회가 새롭게 도약하는 디딤돌이 되었다는 평가다. 특히 참석자들은 다가올 100년의 소망을 바라보며 다음세대에 올바른 신앙을 물려줄 것을 다짐했다.
“우리가 불씨가 되어 불길이 타오르게 하소서. 예수생명이 우리의 비전이 되게 하소서”
제49회 목사장로 기도회 및 총회설립 100주년을 맞아 수영로교회(이규현 목사)에서 열린 전국 목사장로 대회가 5월 16일 2박 3일간의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6500여 명의 참석자들은 15일 저녁집회와 기도회에 참여하여 ‘내가 죄인이다’고 고백하고, 지난 100년의 회개가 없으면 다가올 100년의 소망도 없다면서 명예와 물질을 좋아했던 것을 깊이 반성했다. 또한 주일학교와 신학교 그리고 청장년 모임 등을 활성화 시키고, 선배들이 피 흘려 세운 한국 교회를 다음 세대에 바르게 물려줄 것을 약속했다. 특히 한국 교회의 소망은 북한 땅에도 복음이 전래되는 것이라는데 뜻을 같이하고, 주님의 도구가 되어 남북 평화통일에 기여하기로 했다.
이어령 박사(이화여대·명예석좌)는 ‘21세기 문화와 기독교’란 특강에서 “헛된 지식을 추구하지 말고 참된 지혜를 찾아 믿고 실현해야 한다”며, “머리로 생각하는 사랑을 가슴으로 느끼기만 할 것이 아니라 발로 이어지는 실천적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피터 릴백 총장(웨스트민스터신학교)은 ‘21세기 세계선교의 새로운 지평’이란 강의에서 “우리가 증거할 것은 십자가 중심의 복음의 메시지로서 세상과 결코 타협해서는 안된다”면서 “미국 교회의 실용적인 면을 배우지 말고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사역을 감당하라”고 권면했다.
또한 둘째 날 오전부터 진행된 말씀, 목회현장, 선교통일, 문화, 다음세대 등 5개 소주제 22개의 트랙세미나는 연인원 9500명이 참석하여 매 강좌가 차고 넘쳤다. 성경을 정확하게 알고 바르게 설교하려는 말씀 강좌와 북한 관련 강의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으며, 미래 목회를 진단하는 강좌에도 참석자들이 만원이었다. 이와 같은 트랙세미나를 듣고 교단의 희망을 보았다는 긍정적인 의견을 나타내는 참석자들도 많았다.
저녁집회에서 권성수 목사(동신교회)는 “예수 회복이 없으면 100년 후가 없다”며, “뼈를 깎는 각오로 예수생명의 열정을 회복하여 복음의 생명수가 유유히 흘러가는 교단을 만들자”고 강조했다. 특히 둘째 날 저녁집회 후 참석자들은 박성규 목사(부전교회) 인도로 기도합주회를 갖고 장자교단의 교세만 자랑하고 허세를 부린 것을 통렬히 회개하며 세상 쾌락을 버리고 주만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했다. 또한 목사장로대회를 계기로 새 생명이 되어 한국 교회에 소망이 되고, 북한과 세계선교의 중추적 역할을 감당하는 청지기가 될 것을 다짐했다.
또한 참석자들은 2013년 부산에서 열리는 제10회 세계교회협의회 총회 개최를 반대하는 교단의 입장을 밝히고 성명서를 채택하여 발표했다.
농어촌교회와 개척교회 목회자 초청 일환으로 마련된 누리마루 만찬과 대마도 선교기도회도 성황을 이뤘다. 360여 명이 참여한 대마도 미우라 해변 기도회에서 일본 나가이 아끼라 목사는 “일본 복음화를 위해 한국 교회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요청하고, “동북아 국가가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여 세계로 나가자”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일본을 미움의 대상이 여길 것이 아니라 사랑의 나라로 생각하고 복음의 꽃이 만발하도록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한편 총회설립100주년 전국목사장로대회는 강사 29명, 순서자 103명, 연인원 3만 1000명이 참석하는 기록을 세웠다.
[설교를 말하다 ⑧] 내수동교회 박희천 원로목사
65년간 성경 670번 읽어도… “알 수 없더라”는 고백
박희천의 백영희 평가
크리스천투데이 [2012.3.28 통권 제514호]
발췌문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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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께서 최고로 꼽는 설교자는 누구입니까?
“고 백영희 목사님 말 못 들어봤지요? 저는 신학생들에게 백영희 목사 설교를 모르고 설교학을 논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세상 뜬 지 20~30년 됐는가. 거창의 시골에서 자라신 분이고, 이 분은 초등학교도 못 나온 분입니다. 고려신학교 밖에 못했지요. 그런데 예수 믿고 나서 거창 산골짜기에서 한글 성경을 죽어라고 읽은 거에요. 나는 백영희 목사님 설교를 많이 들었는데, 백영희 목사님 설교는 전국적이 아니라 세계적입니다.
그분의 설교는 무엇인고 하니 오늘 목사들의 설교가 나는 그렇게 하지는 못하지만 제 소원은 ‘설교는 자살을 하러 가던 사람이 자살을 하러 가다가 마지막으로 예배당을 들려보고 가자. 예배당에 들렀다가 설교를 듣고 내가 왜 죽어? 이렇게 만들어야 된다’는 그겁니다. 백영희 목사님 설교가 바로 그런 설교였습니다. 설교는 약장사가 아니거든요. 인생을 살려야 하는 것이거든요.
백영희 목사님 설교마다가 그런 설교입니다. 그 분이 하도 유명해서 내가 53년도 7월 달에 물었어요. ‘설교 잘하는 비결이 뭡니까?’ ‘비결이고 목딱이고 뭐 있냐 말이야? 본문 많이 읽으면 다 해결된다’ 그 때 ‘아멘’하고 받았습니다. 그 말씀 듣고 60여년 지났는데 지날수록 백점 만점 대답이에요.
박 목사는 “고 백영희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 다른 설교는 듣지 못할 정도”라며 백 목사의 설교를 높이 평가했다. 백 목사는 고신 교단 출신이지만, 1959년 6월 제명을 당하고, 이단 시비 등으로 한 차례 아픔을 겪었다. 백 목사가 부산서부교회 담임 시절이었던 1979년 한 일간지의 특종 보도로 ‘세계 최대 주일학교’로 소개되어 당시 10여년간 기독교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그러다 1989년 8월 27일 백 목사는 주일 새벽예배 설교 도중 괴한의 칼에 찔려 순교했다. 그의 명맥은 예수교장로회 한국총공회(백영희 목사 창립) 교단이 잇고 있다.
매서웠다. 한국교회 설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얼음장이 되어 사방으로 튀었다. “건방지지만”으로 시작해 “맞아 죽을 각오로”로 끝나는 비판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내수동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봤다.
-내수동교회 대학부는 대단했죠?
“80년 그 무렵에 저는 행정을 할 줄 몰라서, 사람 끌어 모으는 재간이 없었어요. 교인이 450명이었는데 그 중에 대학생이 150명이었죠. 당시 예장 합동 교단에서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모일 때였어요. 그 때는 왜 이렇게 많이 모이나 몰랐어요. 그런데 제가 은퇴하기 1년 전에 송인규 목사(합동신학대학원 교수)가 그러더군요. ‘설교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 그 때서야 그런가? 했어요. 어설프게 회상이 떠올라요.”
당시 내수동교회 대학부의 멤버들은 현재 한국교회를 이끌어가는 리더들이 됐다. 박 목사의 영향이었을까? 대부분 설교에 일가견이 있는 목사들이다. 오정현(사랑의교회), 김남준(열린교회), 오정호(대전새로남교회), 박성규(부산부전교회), 화종부(제자들교회), 송태근(강남교회) 목사 등이 내수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박 목사의 영향을 받았다.
-지금 제자들을 생각하면 어떤 마음입니까?
“내사모라고, 내수동교회 사역자 모임을 1년에 한 차례씩 갖습니다. 같이 식사하고 교제 나누는데, 갈 때마다 하는 말이 ‘여러분 미안스럽다. 태평양을 누비는 고래들인데, 실개천에 가둬 놨으니 얼마나 미안한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무슨 뜻인가요?
“오정현, 김남준이 다 거물들 아닙니까? 나는 속이 좁은 사람인데, 나하고 일할 때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말이야. 그 말을 해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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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 & People
‘개척교회 선구자 백영희 목사 탄생 100주년’
뉴스메이커 [2010년 9월호, p90]
위기의 한국교회 해답 백영희 목사에서 찾는다
계속되는 종교편향 논란 속에 한국 기독교는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는 동시에 타종교와의 공존, 교회 이미지 개선 등을 위한 논의를 지속해 왔다. 이러한 기독교 내 자성의 목소리 덕분에 그간 열린 마음과 섬김의 방법으로 한국교회의 도덕성과 사회봉사의 실천성을 높여온 교회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김종필 기자 jp2707@
많은 사람들이 ‘한국교회의 위기’에 대해 말한다. 한국교회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교회들의 각고의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교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개혁교회 개혁의 선구자로 알려진 백영희 목사(1910-1989년)의 신앙이 주목을 받고 있다.
생전에 세계 최대의 주일학교 보유, 10만 페이지 설교(전 182권) 중 111권째 설교록이 출간되어 교계에 잘 알려진 백영희 목사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올해는 백영희 목사의 신앙연구의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백영희 목사는 서울을 제외하면 전국 최대였던 부산서부 교회를 목회하면서 평생 주보 한 장을 발행하지 않을 정도로 교회의 외부 홍보는 일절 없애고 내면의 하나님 인도만을 좇아 기도와 말씀 연구에만 주력해 한국교회에서 목회자나 신학자들에게 있어 숨은 신령한 지도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1910년 경남 거창에서 출생한 백 목사는 1936년 신앙생활을 시작해 1939년부터 시작된 일제의 신사참배 기간에 개척한 교회 교인 전체를 이끌고 교회적으로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해방 후 장로교 고신 목회자로 재직하면서 교계의 예배당 소송건을 반대하다 제명된 후 목회하던 교회를 개척해 오늘날 200여 개의 총공회 교단을 형성했다.
특히 1970년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목회자가 교회탈선의 원인임을 절감해 교단 전체 목회자가 매 2년 주기의 시무 투표를 받아 연임 여부를 결정하도록 제도화를 이끌어 소속 목회자들의 충성과 성결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후 2년마다 각 교회는 중학교 1학년 이상의 출석 전체 교인이 무기명으로 찬반을 투표하고 25%가 반대를 표시하면 담임 목회자가 현직에서 조건 없이 즉각 퇴직하는 전통을 유지하며 부분적으로는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현재는 이 제도가 완전히 정착한 상태다.
백영희신앙연구회 측은 “개혁교회는 바른 것은 유지 계승하나 잘못된 것은 즉각 개혁한다는 취지로 출발, 세월 속에서 이런 초심이 퇴색한 것이 사실”이라면서 “목회자의 탈선이나 불충문제는 초기 한국교회에서 일부의 문제였지만 현재는 덮어둘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백 목사의 목회자 시무투표 제도화는 한국교회를 향해 큰 과제를 던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연구회 측은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목회자도 사람인 이상 자유 상태가 된다면 현실에 안주하게 되고 불충이나 부덕한 일이 생기게 되면 하나님의 교회와 교인들의 신앙이 전반적으로 붕괴된다는 점에서 교회를 책임진 목회자라면 이러한 종류의 제도시행을 자청해야 한다”면서 “그러한 이유에서 목회자 모임인 교역자회의에서 교역자들의 전원 일치로 이 제도를 출발시킬 때 그들 전체를 지도했던 백영희 목사의 역할이 더욱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NM
故 백영희 목사를 추모하며
港都日報 [1989.09.23]
<美세인트루이스 장로교회 시무> 류정현
설교강단은 최후까지 지킨다는 신앙에 따라 범인을 보고도 끝까지 사수한 것이 예배참석신도들의 목격담을 통해 확인되어 한국교계 목회자들의 신앙자세를 돌아보게 하고 있다. 특히 20cm나 되는 칼이 가슴을 꿰뚫어 피를 다 쏟았으나 얼굴의 평안함을 잃지 않고 오히려 범인의 신변을 걱정하였다고 한다. 또 예배당안을 조용히 시킬 것을 말하며 숨을 끊어 주위의 모든 신도를 감동시켰다.
백목사는 일제의 신사참배강요에 자신뿐 아니라 소속 전신도들까지 굴하지 않게 하고 6,25동란 중에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예배를 인도한 신앙의 거목이라고 알려져 있다.
신앙의 正道를 고집한 진리의 파수꾼이기에 그에게 항상 생명의 위협이 계속된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백목사의 신앙과 설교에 정통한 교계의 인사들은 한결같이 이번 사건을 한국보수교단에 미친 심대한 영향을 두려워한 배후세력의 소양으로 보고 있다. 최근 그가 교회의 잘못된 정치관과 불건전한 종판에 대한 경각심을 남달리 강하게 외쳐왔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주일학교를 이룬 그의 목회, 수많은 제자를 일일이 지도하여 전국과 해외까지 1백 수십 교회를 개척시킨 후배양성, 1백 수십을헤아아리는 방대한 그의 설교집, 성경전체를 달통하여 많은 기독교의 교리적 문제점을 보완함으로써 한국신학계의 주목을 받아온 경력은 한국기독교사를 빛내기에 충분할 것이다.
수많은 신도들이 참여한 백목사의 장례식은 부산이 낳은 위대한 종교지도자를 역사를 인물로 아쉽게 보내야 하는 한국기독교계의 장엄한 환송식이었다.
어린이 신자만 2만 5천명
세계서 깜짝 놀랄 부산서부교회 규모
1981년 2월23일 (월요일) {일간}
화제의 샘
매주 일요일 오전 8시가 되면 동대신동 일대는 성경을 든 어린이들의 행렬로 뒤덮인다. 일반행인들의 발길이 뜸한 일요일에 교회를 찾는 어린이 들의 무리가 물이 흘러 가듯 교회 속으로빨려 들어간다. 9시가 되어 주일학교 예배가 시작되면 거리는다시 조용해지면서 일요일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한편, 예배가 끝나고 퇴장하는데만도 30분이 걸린다. 그래서 이곳에는 어른80명으로 이루어진교통 정리반이 따로 있다.
34년전에 세워진 이 교회는 총재적 인원 3만 4천 796명중 3분의2인 2만 5천 296명이 국민학교 어린이들로 이루어 졌다. 이 중에서 매주평균 1만명 가량의 어린이들이 참석하고있다고 하는데, 3천 8㎡ 의 교회건물로는 1만명 으로는 1만명의 어린이가 한자리에 모이기에에는 비좁다. 그러나 이들은 질서를 지키면서불편함을 이겨 나가고 있다고.
이렇게 많은 어린이가 참석하고 있는데 대하여 백 목사는 “우리는 교회 설립당시부터 어린이들을 위주로 성경 공부를 시켰고 어린이들을 나라의 주인으로 대접해 왔지요. 또, 이 어린이들이 자라서,새로운 어린이들을 인도한 결과 어린이 교회가 된 것이지요”하면서 “여기서 자라난 신자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단순히 입으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실천함으로써 어린 학생들에게
많은 감화를 주고 있다.”고 했다.
또한 416개의 학급으로 이루어진 주일학교의 부장 정 영덕 (37살)씨는 “일반적으로 교회에서선물을 줌으로써 어린이들을 끌어 모으은데, 여기서는 한 번도 그러한 일이 없이 오로지 성경에대한 공부만 가르치고, 선생님 자신이 인간적인 모범을 보여 온 것이 오늘과 같”은 결과로 발전된 것 같다.고했다.
한편, 416개 학급 (남자 211개반, 여자 25개 반) 으로 이루어진 주일학교 학생들이 교회에서 마시는 물만도 3드럼이나 되며,주일학교 선생님 수도 500명 이나되어 또 하나의 기록을 만들고 있다
신앙계
1983년 5월호 통권 제194호 값800원
세계 최대의 어린이 교회세계 최대의 어린이 교회라 불리는 부산 서부교회를 찾아가 보았다. 부산시 서구 동대신동 1가 381의 1번지에 자리한 예수교 장로회 한국 총공회 서부교회는 한창 4층 건물 증축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어린이 성도들을 수용하기 위한 대책이 바로 증축의 이유였다. 구덕 공설 운동장의 1킬로미터 남쪽이면 간선 도로와 지선 도로가 복잡하게 뒤 얽혀 있는 곳에 서 있는 이 교회에는 주일 아침이면 7천5백여 명의 어린이들이 일시에 몰려 들었다가 일시에 흩어지는 진풍경이 연출되곤 한다. 더구나 각종 차량과 일반 행인들이 복잡하게 엇갈리고 있는 속에서도 너무나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는 이들 어린이들을 목격한 어떤 이는 마치 “철새 무리들이 군무라도 벌이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고 했다.
이 교회의 만 12세 이하 어린이 재적 숫자는 2만5천여명이며, 해마다 어린이 성도 숫자가 3천명씩 늘어나고 있다. 중간반의 평균 출석 숫자가 1천8백명, 장년반이 3천2백명 정도로 전체 교인 숫자의 약 80퍼센트가 어린이들이다. 30여년 전에 설립된 이 교회는 당회장 백영희 목사(74세)의 뜻에 따라 주일학교에 절대적인 비중을 두고 이는 명실 상부한 어린이 교회이다. 한편 장년 성도의 경우에는 숫적인 면에선 부산 제1의 교회이다.
출옥 성도 주남선 목사의 권유로 목회자 되다
고희를 넘긴 백영희 목사의 구술에 의하면 이 교회의 내력과 그자신의 목회 동기는 대개 이러하다. 이 교회는 원래 1948년 손 이원 목사(손양원 목사 동생)가 주축이 되어 설립되었다. 그후 김창인 목사(현 서울 충현교회 시무)가 잠시 목회한 뒤 1951년에 백 목사가 부임하여 왔다. 올해로서 부임 33년이다.
백 목사는 경남 거창군 주삼면 도평리에서 유교적 가풍의 부모 밑에서 출생하였다. 12살 때 등교시 우연히 이웃의 고운서 권사가 지나가면서, “예수 믿고 하나님을 공경하십시오.”하며 전도하는 말이 마음에 찔려 그는 처음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다. 그때 비록 어린 마음이었지만 “아, 인생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면 그것보다도 더 귀한 것이 또 있겠는가!”생각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 늘상 마음 속엔 기독교 신앙에 대한 동경과 호감이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막상 겉으로는 괜히 기독교를 핍박하려는 철부지 심술이 나타나곤 했다. 그래서 꽤나 예수 믿는 친구들을 못살게 굴기도 했다. 그의 나이 25살 때의 일이다. 그는 당시 양조장을 경영하고 있었다. 어느 날 상점을 하고 있는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물건을 사러온 고운서 권사의 아들의 인품에 큰 도전과 감동을 받게 되었다. 유심히 살펴보니 그 학생이 물건을 사는데 예의 바르고, 겸손해 하고 의젓한 것이 여간 인상 깊게 느껴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어찌나 그 학생에게 마음이 쏠렸던지, “저 집 개라도 한 마리 가져다가 길렀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고 그것은 곧 이뤄져 그 집 양 한 마리를 달라는 대로 댓가를 지불하고 사다가 키우기 까지 했다. 그만큼 그 학생에게서 풍기는 예수의 채취를 충분히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후로 그는 “기회만 있으면 교회에 나가리라” 마음 먹었다. 그러나 양조업을 하는 그에게 전도하는 이가 없었다. ‘저런 사람이 뭐 예수를 믿겠느냐?’는 식의 전도자들의 성급한 판단 때문이었다. 전도인들이 자신의 상점앞을 자주 지나가도 전도를 하지 않자 어느 날 이내 그는 한 전도인을 붙들고“왜 내겐 전도하지 않소?”하고 섭섭해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평소 예수 믿을 것 같지 않던 그가 의외의 태도를 보이자 전도자는“그래요 오늘 전도 강연이 있으니 참석하세요”하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그가 “이왕이면 오늘 저녁엔 우리 집에서 하면 어떻겠습니까?”하고 뜻밖의 제의를 했다. 전도인은 감격했고 쾌히 승락하여 그날 그의 집에서 대 전도 강연이 벌어졌다. 이때 그는 말씀에 큰 은혜를 받고 예수 믿기로 작정했다.
주님을 영접한 후는 그는 주일 다가오기를 고대했다. 첫 주일을 맞아 교회에 참석하자 마침 설교하는 장로님이 창세기1장의 창조에 대한 말씀을 들려주어 평소 품었던 궁금증을 일시에 풀기도 했다. 예수 믿기로 작정한 나흘만에 그는 술, 담배를 끊었고, 더우기 17일만에 양조장을 정리하여 전업하는 결단을 보였다. 또 인근에 교회가 없자 가족을 이끌고 매일 아침 산에 올라가 새벽기도회를 갖는 열심을 보여 주기도 했다. 정말 그의 변화된 모습은 많은 주의 사람에게 감명을 주었다. 특히 일정 말기엔 신사참배 거부로 곤욕을 치루기도 했지만 주님께서 어려울 때마다 건져 주셔서 그 자신 뿐아니라 그가 출석하던 교회의 교인 어느 한 사람도 신앙의 절개를 저버린 자가 없었다.
해방 후 그는 거창을 중심으로 한 4개처의 교회에 집사로서 교회 봉사를 했다. 교역자가 절대 부족한 시절이라 그는 교회를 순회하며 예배를 인도하곤 했다. 그러던 중 출옥 성도인 주남선 목사가 그에게 유급 전도사가 될 것을 권유했다. 평소 교회 봉사하는데 유급으로 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생각했던 터라 그는 거부했다. 그러했던 그가 유급 목회자로 목회 일선에 뛰어들게 된 사유는 이러했다. 어느 날 뜻밖의 사건이 터졌다. 그의 둘째 딸이 기계에 의해 팔에 상처가, 다리에는 부러지는 불상사가 일어난 것이다. 그는 이것이 유급 전도사가 되라는 권유를 거부한데서 온 교만의 죄가라고 생각했다. 그는 곧 바로 엎드려 기도드렸다. “주님! 제가 잘못해서 이런 결과가 왔습니까? 지금 제 딸이 피투성인데 저 아이가 병신이 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인줄 알고, 순종하겠습니다. 하지만 자연적으로 서서히 치료되고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이 된다면 저의 유급 전도사의 사전과는 별개의 것으로 알겠습니다.”이런 일이 있는 후 두 주간 동안 부흥 집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그의 눈 앞에 둘째 딸이 고통이 없다며 마당에서 걸어다니는 것이었다. 그는 즉시로 주님의 섭리로 깨닫고 유급 전도자가 될것을 결심했다. 며칠 뒤엔, 가지고 있던 전 재산을 정리하여 구제도 하고, 당시 성서공회 등 선교 및 복지기관에 희사했다. 맨 몸으로 주님의 목회 일선에 뛰어들 결의의 표시였다. 이후 거창의 4개처 교회에서 목회를 하던 중 당시 고신교단의 중진들의 추천으로 오늘의 교회에 부임하기에 이르렀다.
성경말씀 외에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백 목사의 목회지론은 “아직 세속에 때묻지 않은 순진 무구한 어린이일 때부터 그들을 교회로 인도하여 신앙심을 심어줌으로써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한다.”이다. 따라서 주일 학교 성장에 큰 관심과 비중을 주어왔다. 그 결과 오늘의 내 놓을 만한 교회 성장을 가져 왔는데, 요사인 거의 1만명에 가까운 주일학교 어린이들은 1층과 2, 3층(극장 계단식), 그리고 지하층의 세 곳으로 나뉘어져 따로 예배를 드린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서부교회는 지난 1970년대 이후 급격하게 늘어나는 어린이 성도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네 차례의 증축 공사를 해 오고 있다.
주일 아침 8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드리는 주일학교 예배는 층별로 각 부장 선생이 인도한다. 우선 부장 선생이 기도를 한 뒤, 찬송, 질문과 대답, 기도순으로 예배가 이어진다. 분반 공부와 질문과 대답은 반 별로 하는데 부장의 강의 내용을 반사들이 다시 복습시키는 것이다.
이 교회의 반사만도 자그만치 7백명(원반사 470명, 보조반사 230명)에 이르고, 1명의 반사가 맡고 있는 어린이는 평균 100명을 웃들고 있다. 주일이면 어린이들을 위해서 교회 주변의 도로 교통 정리에 동원되는 어른이 80명, 물 당번 어른이 50명, 미아 담당 어른이 10명씩인데, 여름철에는 식수가 수십 드럼씩 소요 된다.
서부교회에 출석하는 어린이들은 인근 지역의 어린이들 뿐만 아니라, 태종대, 해운대, 구포, 다대포, 온천장, 수영 등과 같이 멀리 떨어져 있는 곳까지 부산시내 전역에서 골고루 퍼져 있다. 그러면 이처럼 어린이들이 많이 모이는데는 특별한 혜택이 있어설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이 교회의 첫째 특징이 바로 어린이들에게 일체 선물을 주지 않는 것이다. 다른 교회처럼 노트나 크레용, 연필도 주지 않는다. 성탄절 때 사탕 한알씩 주는 것이 고작이다. 둘째, 어린이들을 유치반이나 학년별로 반을 구분하지 않고 코흘리개부터 국민학교 6학년 학생까지 한반에 통합시켜 두고 있다. 따라서 꼬흘리개나 학년별 주일학교 교재를 쓰지 않고 독자적으로 만든 ‘공과’로 성경을 가르친다. 이 ‘공과’란 1주일 앞서 중간반, 장년반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했던 목사의 설교 내용을 그대로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다시 정리한 것이다. 셋째, 다른 교회의 주일학교들이 성경 내용을 동화나 성극, 노래, 그림 등으로 각색하여 흥미롭게 가르치는 방식을 전혀 채택하지 않고 있다. 이 세가지 특징이 다른 교회와 좀 달라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으나 결과론 적으로 볼 때 꼭 그렇게만도 생각할 수 없을 듯하다. 하지만 전인 교육을 지향하는 주일학교 교육에 있어서 시청각 교육의 도입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 주일학교 성장 비결은 교회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무엇보다 이 교회의 주일학교는 강력하고 열성적인 반사 운영 체제가 절대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는 반사들은 첫째 신앙, 둘째 기도, 셋째 심방을 그들의 본질적인 지침으로 삼고 열심히 뛰고 있다. 그들은 뜨거운 신앙을 바탕으로 주일학교를 위한 기도와 어린이를 위한 심방에 많은 시간과 정성을 다 바치고 있는 것이다. 주일은 두말 할 나위 없고 평일에도 반사들이 하는 일은 태산처럼 많다. 날마다 자신의 반에 적을 두고 있는 어린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하며, 토요일 하오와 주일 아침의 어린이 집 심방은 필수적이며, 거기에다 반원의 숫자를 한명이라도 더 늘리기 위한 전도도 쉬지 않고 펴야 한다.
1명의 반사가 350명의 어린이를 자기 반원으로 확보한 것이 최고 기록인데 지금까지 이만한 수준의 성과를 올렸던 반사가 200명쯤 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수고한 반사들에게 수고의 댓가를 주고 있는 것도 아니다. 교회에선 반사들에게 단 한푼의 재정적인 보조도 하지 않고 있다. 반사들은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어린이들의 버스표를 사주기도 한다.
행정실의 장영목 총무는, 백 목사가 항시 강조하는 반사의 지침에 대해 첫째 어린이가 오는 것은 반사 자신의 신앙이 있어야 한다. 둘째 교회로 인도하는 어린이를 위해 날마다 한 차례씩 기도할 것. 세째 토요일과 주일 심방은 어떤 일이 있어도 빠뜨리지 말 것 등이라고 말한다. 700명의 반사들은 중학교 3학년 학생부터 칠순 노인까지 참여하고 있다. 직업도 다양하다. 목사, 전도사, 장로, 집사는 물론이고 대학생, 중고교생, 회사원, 상업, 의사, 가정 주부 등이다.
서부교회가 오늘의 세계 최대의 어린이교회로 성장한 데는 백 목사의 의도적인 교회 운영과 뒷받침, 즉 교회의 행정, 사무 설교, 인적 구성까지 주일학교를 중심하고 있는 것과, 일반 사람들로선 감탄을 금치 못할 만큼 헌신적인 반사들의 노고와 기도의 결실임에 틀림 없다.
한편 서부교회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국 70여 지교회를 설립하였고, 현재 교회 내의 276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모두가 앞날의 교회를 위해 투자하는 인재들이라고 한다.
국토기행/금강산
세계 최대 어린이 교회를 가다
1983.2
마당통권제18호, 1983년2월1일펴냄.
1981년5월1일등록, 등록번호라-2561
서울종로구관철동12-19, 우편번호110
값2,750원
더구나 각종 차량과 일반 행인들이 복잡하게 엇갈리고 있는 속에서도 이들 어린이들만은 너무나 질서 정연하게 움직여 마치 철새 무리들이 군무라도 벌이는 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1년 전의 81년 성탄일에 이보다 더 많은 1만3천여 명의 어린이들이 한꺼번에 이 교회에서 예배를 보았었다.
많은 어린이들이 몰려드는 것은 굳이 성탄일만이 아니다. 매주 일요일 아침 8시30분에 열리는 이 서부교회의 주일학교에는 평균 7천5백 명의 어린이들이 출석하고 있다. 봄 가을 철에는 평균 8천~9천 명으로 더 많은 어린이들이 몰려든다.
이 교회의 만 12세 이하 어린이 재적 숫자는 3만2천여명이며, 해마다 어린이 신도 숫자가 3천~4천 명씩 늘어나고 있어 세계 최대의 어린이 교회임이 분명하다. 어린이 신도 숫자로 본다면 보통 교회의 50~100배이며, 일반 신도 수로는 국내 최대인 순복음 교회나 영락 교회를 훨씬 앞지르고 있고, 다른 나라에서도 이만한 유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
30여 년 전에 설립된 이 교회는 백 영희 목사 (74)의 뜻에 따라 주일 학교에 절대적인 비중을 두고 있는 명실 상부한 어린이 교회이다. 중간반의 평균 출석 숫자가 18,000명, 장년반이 3,200명 쯤으로 주일 학교 보다 훨씬 밑돌고 있다. 전체 교인 숫자의 약 80퍼센트가 어린이들인 만큼이 교회는 어린이 신도들의 왕국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반사만도 700명, 미아 담당 10명 거의 1만명에 가까운 주일 학교 어린이들은 1층과 2, 3층(극장계단식), 그리고 지하층의 세 곳으로 나뉘어져 따로 예배를 본다 서부 교회는 지난 70년대 이 후 급격하게 늘어나는 어린이 신도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세 차례의 증축 공사를 해 왔다.
강당의 크기는 1층 270평, 2층 270평, 3층 170평,
재적 어린이 32,000명, 반사가 700명. 교회 주변 교통 정리에 동원되는 어른이 80명, 물 당번 어른이 50명, 식수가 하루 수십 드럼씩 쓰여진다.
저녁 5시의 수요 어린이 예배에는 400명쯤이, 일요일 새벽 5시 30분의 어린이 기도 시간에 200명쯤이 출석하고 있다.
서부 교회에 나오는 어린이들은 인근 지역의 어린이들 뿐만 아니라 태종대, 해운대, 구포, 다대포, 온천장, 수영과 같이 교회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곳까지 부산시내 전역에 골고루 퍼져있다. 먼 곳에서 버스를 타고 오는 시간만도 1시간 30분이상이나 걸린다.
아무 것도 주는게 없는데도 지하층이 87평인데 어린이 숫자에 비해서 너무 비좁기 때문에 1층은 의자 없이 마루바닥에 수용한다. 그것도 모자라 네번째의 대대적인 증축 공사를 하고 있다. 오는 5월 어린이 달에 이 증축 공사가 완료되면 1층은 440평, 2층 440평, 3층 220평, 지하층 190평으로 늘어나 1, 2층의 강당은 웬만한 운동장만큼 넓어진다.
일요일 아침 8시30분부터 1시간 동안 갖는 주일 학교 예배는 층 별로 부장 선생이 주제를 한다 1층은 정순한 장로(브니엘 고교 교사), 2. 3층은 서분행(영신여객 근무), 지하층은 이춘영 장로(개인 사업)가 부장이다.
맨 먼저 부장 선생이 기도를 한 뒤, 찬송, 질문과 대답, 기도순으로 예배가 이어진다. 분반 공부와 질문과 대답은 반별로 하는데, 부장의 강의 내용을 반사들이 다시 복습시키는 것이다.
이 교회의 반사 만도 자그만치 700명(원반사 470명, 보조 반사 230명)에 이르고, 1명의 반사가 맡고 있는 어린이는 평균 1백명을 웃돌고 있다. 주일 학교가 열릴때 어린이들을 위해서 교회 주변의 도로 교통 정리에 동원되는 어른이 80명, 물 당번 어른이 50명, 미아 담당 어른이10명씩인데, 여름철에는 식수가 수십 드럼씩 소요된다.
주일 아침 학교 밖에도 어린이들을 위한 주일 오후예배가 하오5시30분부터 열리는데 평균700명이 출석한다. 또 수요일 주일학교가 열리는 일요일 아침에는 교회를 중심으로 골목길은 골목길대로 떼를 지어 걸어가는 어린이들로 넘쳐나고, 시내 버스는 버스대로 어린이들로 만원을 이룬다. 이들 어린이 가운데는 유치원에 다니거나 미취학 아동들도 적지 않게 포함돼있는데, 모든 어린이들은 주일 학교의 반사들이 집에서 교회까지 데리고 오고, 또 교회에서 집까지 일일이 데려다 준다.
서부교회가 세계 제일의 어린이 교회로 성장한 데는 물론 백 영희 목사의 의도적인 교회 운영과 뒷받침이 있었던 것을 엿볼 수 있다. 이를테면 교회를 행정, 사부, 설교, 인적 구성까지 주일 학교를 중심으로 하고있다.
백 영희 목사는 ‘아직 세속에 때묻지 않은 순진 무구한 어린이일 때부터 그들을 교회로 인도하여 신앙심을 심어 줌으로써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한다’는 뜻에서 주일 학교의 어린이 신도들을 늘리는 데 주력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주일 학교에 주력을 하고 있다는 세계 최대의 이런이 교회가 놀랄 만큼 어린이들에게 아무런 혜택도 주지 않고 있으며, 겉보기로는 신앙을 심어 주는 교육방식도 아주 단순하고 딱딱한 느낌을 준다.
이 교회의 첫째 특징은 어린이들에게 일체 선물을 주지 않는 것이다. 다른 교회처럼 노트를 주지도 않고 크레용도 주지 않는다. 크리스마스때 사탕 한 알씩 주는 것이 유일한 선물인 셈이다.
둘째, 어린이들을 유치반이나 학년 별로 반을 구분하지 않고 코흘리개부터 국민학교 6학년 학생까지 한 반에 통합시켜 두고 있다. 따라서 유치반 교재나 학년별 주일학교 교재를 쓰지 않고, 이 교회가 독자적으로 만든 “공과”로 성경을 가르친다.
이 “공과”란 1주일 앞서 중간반, 장년반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했던 백목사의 설교 내용을 그대로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다시 정리 한 것이다. “공과”는 강당의 층별 부장 선생이 1차로 가르치고, 그것을 다시 반사들이 반별로 복습을 시키게 된다. 어린이들은 찬송가를 부르기는 하나 따로 찬송가를 배우는 시간은 갖지 않으며, 오로지 성경을 중심으로 한 목사의 설교 만을 배우는 셈이다.
성장의 비결 – 다른 교회의 주일 학교들이 성경의 내용을 동화나 동극, 노래, 그림 등으로 각색하여 흥미롭게 가르치는 방식을 이 서부 교회에선 전혀 채택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외관적으로는 서부 교회의 주일 학교가 건조할 만큼 획일적이고 단순한 방식으로 어린이들에게 성경 공부를 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교회는 1만명에 이르는 어린이들을 수용하는 것에 비해서 부지가 비좁아 어린이들이 뛰 놀만한 뜰도 없고 꽃나무를 가꾸는 화단 조차 없다. 특별한 놀이 기구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도 엄청나게 많은 어린이들이 굳이 자기 집과 가까운 곳에 있는 교회를 마다하고 이곳 서부 교회의 주일 학교를 찾아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교회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무엇보다 서부 교회의 주일 학교는 강력하고 열성적인 반사 운영 체제가 절대적인 역할을 해 왔다고 한다.
이 주일 학교에서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는 반사들은 1.신앙 2.기도 3.심방을 그들의 본질적인 지침으로 삼고 초인적이다시피 뛰고 있다. 그들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주일 학교를 위한 기도와 어린이를 위한 심방 활동에 일반사람들로선 감탄을 금치 못할 만큼 많은 시간과 정성을 다 바치고 있는 것이다.
일요일의 이 반사들의 일과 새벽 4시 기상하는 순간부터 눈 코뜰새 없이 분주하게 계속된다.
자기 반의 어린이 집을 일일이 방문하여 그들을 안전하게 교회로 인도한다. 주일 학교 예배가 끝나면 다시 어린이들을 그들의 집까지 하나하나 데려다 준다. 다시 교회로 돌아온 반사들은 상오 10시~11시의 장년 예배를 보아야 한다.
점심 식사를 한 뒤에 하오2시부터 오후 예배를 본다. 이 예배가 끝난 하오 3시30분부터 반사 회의가 열린다. 반사 회의에서 반사들이 고쳐야할 일, 반성해야 될 사항들이 주로 논의된다. 더 훌륭한 반사가 되기 위한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기도가 이뤄지고, 새로운 지시 사항들도 전달된다.
반사 회의가 끝나면 곧 하오 5시 부터 오후 예배를 보고, 저녁 식사를 끝낸 7시부터는 산상 기도회에 가거나 교회 기도를한다.
평일에도 반사들이 하는 일은 태산처럼 많다. 날마다 자신의 반에 적을 두고 있는 어린이 한사람 한사람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하며, 어린이의 고민과 어려움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주어야 한다. 토요일 하오와 일요일 아침의 어린이 집 심방은 필수적이며, 필요에 따라서는 어느 날이거나 어린이 집을 찾아가는 심방 활동을 계속하게된다. 거기에다 반원의 숫자를 한 명이라도 더 늘리기 위한 전도 업무도 쉬지 않고 펴야 한다.
반사에게는 급수가 있다. 어린이들 인도해 온 숫자에 따른 능력별 급수이다. 급수는 1. 우승반사(150명 이상의 어린이를 확보했을 때) 2. 1등 반사(60명이상) 3. 2등반사(45~59명) 4. 3등반사(30~44명) 5. 등외 반사(29명 이하)로 나뉘어진다. 현재 1등 반사가 10여명이고, 2등반사는 50명, 3등 반사가 80명에 이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기도와 봉사, 1명의 반사가 350명의 어린이를 자기 반원으로 확보한 것이 최고의 기록인데, 지금까지 이만한 수준의 성과를 올렸던 반사가 200명쯤 된다고 한다.
어린이들을 교회로 인도하기까지 반사들이 겪은 애로 사항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어린이의 부모가 불교를 믿고 있거나. 교회를 거부하여 한사코 못데려 가게할 때도 있고, 애써 인도한 어린이가 멀리 이사를 가버려 심방을 가거나 교회로 어린이를 데려 오고 집으로 보낼 때의 어려움을 떠맡게 될 경우도 있다.
만일 반사 한 명이 100명의 어린이를 반원으로 확보하고 있다면, 100명의 어린이를 위한 기도를 그 반사는 날마다 해야한다. 그는 비록 보조 반사의 도움을 받기는 하겠지만, 적어도 토요일 하오와 일요일 아침에는 1백명의 어린이 집을 심방해야 한다. 일요일 주일 학교가 열릴 때 그는 보조 반사와 함께 100명의 어린이를 한 명도 빠짐 없이 그들의 집에서 교회까지 데려 오고 다시 교회에서 집까지 데려다 주게 된다.
이렇게 뛰어 다녀야 하는 반사들이지만 그들에게 교회는 어떠한 보상이나 대가를 제공하지도 않는다. 단지 우승 반사 또는 1등 반사에게는 반사회의를 할 때 ‘박수’를 한 차례 쳐주는 것이 유일한 보상이라면 보상이다.
우승 반사나 1등 반사가 되는 길은 한 두 주일 정도는 영웅 심리나 명예욕으로 찾아볼 수가 있다 하더라도, 진정한 신앙심의 바탕이 없으면 한 달 동안이라도 계속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많은 반사들은 1년이 아니라 10년을 하루같이 꾸준하게 우승 반사, 1등 반사의 자리를 훌륭하게 지켜 오고 있다.
반사들은 거의 누구나 끊임없이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채찍질을 한다고 한다.
1.어린이를 위해 기도를 하자.
2.성경을 많이 읽자.
3.심방을 열심히 다니자.
4.아침 일찍 산 기도를 가자.
5.어린이의 애로점을 풀어 주자.
6.한명의 어린이라도 더 많이 교회로 인도하자.
단 한명의 어린이를 교회로 인도하기까지 반사들은 때로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노력과 정성을 바치기도 한다. 몇일이고 몇 주 동안이고 한 어린이와 친분 관계를 맺고, 신뢰감을 갖게 해주며 교회를 다녀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게 된다.
일요일 아침마다 집에서 신나는 어린이용 텔리비전 만화를 즐겨 보던 어린이가 그 시간에 딱딱한 교회의 마루바닥에 앉아 설교를 듣는 것을 더 좋아하게 만들기까지의 반사들의 고충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교회에서 반사들에게 단 한 푼의 재정적인 보조도 하지 않고 있지만, 반사들은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어린들의 버스표를 사 주기도 한다. 한 두명도 아닌 수십명, 수백명의 어린이를 위해 날마다 기도하고 심방하며, 또 새로운 어린이를 찾아나서는 이들 반사들의 업무야 말로 신앙심의 발로가 아니고선 해낼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이들 반사들은 자신의 생업이나 일상 업무, 학업이나 가사에 종사하면서 그 많은 일들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질서에서도 최고일까? 기록적인 숫자라고 할 수 있는 350명의 어린이를 한꺼번에 교회로 인도한 바 있는 반사들 가운데 한 사람인 현재의 주일학교 총무 장영목씨(30)는 개인적으로 사업에 종사하면서도 거뜬하게 그 일을 해냈다고 말한다. 그는 20살이 되기 전까지는 교회에 가본 일조차 없었는데, 폐결핵을 앓아 거의 절망적인 상태에 빠졌다가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의 은혜로 완쾌되어 그때부터 교회와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350명의 어린이를 교회로 인도할 때는 보조 반사만도 7명을 두었고, 토요일 심방을 할 때는 350명의 어린이 집뿐만 아니라, 자신의 반 재적 어린이 800명의 집까지 일일이 찾아 갔다고 한다. 그 심방 시간은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계속되었다. 그래도 그는 신앙의 힘 때문에 한번도 지쳐 본 일이 없고, 할 일을 빼 먹은 일 또한 없다고 한다.
장영목씨의 아내 음승희씨도 반사이며, 행정실에서 총무를 보좌하는 일을 하고 있다. 장영목 총무는 백영희 목사가 항시 강조하는 반사의 근무 지침이 다음과 같은 세 가지라고 말한다.
첫째, 어린이가 오는 것은 반사 자신의 신앙이 있어야 한다.
둘째, 교회로 인도하는 어린이를 위해 날마다 한 차례씩 기도할 것.
셋째, 토요일과 주일 심방은 어떤 일이 있어도 빠뜨리지 말 것 등이다.
700명의 반사들은 중학교 3학년 학생부터 7순 노인까지 참여하고 있고, 직업도 다양하다. 목사 전도사 장로 집사들은 물론이고 대학생,중고교생, 회사원, 상업 종사자, 의사, 가정 주부 등등인데, 부부 반사들도 적지 않다. 학생의 경우 원반사가 130명, 보조 반사가 150명쯤 된다.
김두환군(20. 동아대 법학과 2년)은 이 교회 주일 학교 어린이 출신으로 지금 주일 학교 반사가 되어 일하고 있다. 그는 신앙의 깨우침으로 반사 일을 보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애로점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오는 3월에 동아대 영문과에 복학한다는 이기철군(24)도 제대하기가 바쁘게 주일 학교 반사로 봉사하고 있다. 그는 반사로서 빼앗기는 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른 사람이 놀러 다니거나 필요 없는 일에 허비하는 시간에 비하면 우리 반사들이 교회에 봉사하는 시간이 결코 많지가 않다. 학생들이 반사를 해도 학업에는 지장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해 부산 대학교를 졸업한 김정란양(23)은 여고 2학년 때부터 반사를 해왔다. 그는 반사를 그만 두고 싶어도 어린이들과 맺어진 두터운 정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도를 게을리 하면 당장 교회에 나오는 어린이가 줄어든다. 기도를 소흘히 한 채 심방 가보면 아픈 어린이가 있게 마련이다’라고 증언해 준다.
이처럼 반사들의 신앙과 기도, 심방에 대한 신념은 너무나 절대적이어서 여느 사람들에겐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없지가 않다.
부산 서부 교회의 주일학교는 이렇게 하여 세계 최대의 어린이 신도를 확보했다. 물론 양적 팽창에 주력한 나머지 원래 교회의 직분인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는 법하다.
한창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믿음의 품속에서 전인으로 육성 시키는게 주일학교의 할 일이라면 연극,동화, 미술, 캠프 생활 등을 일체 배제시킨 설교 중심의 신앙 교육 방식에 제고의 여지가 있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겠다.
이 교회는 현재 중축 공사가 이뤄지고는 있지만, 건물의 면적에 비해서 어린이의 숫자가 지나치게 많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강당 이외에 어린이들의 특별 활동을 위한 시설이나 놀이터가 없는 것도 주일 학교 중심으로 운영한다는 교회의 특징으로 본다면 상당한 의외성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주일 학교를 거쳐 나간 어린이들을 얼마만큼 중간반과 장년반으로 이끌어 올려 참된 신앙 생활을 하게 하느냐는 것도 검토해 볼 만한 일이라고 하겠다. 지금까지 주일 학교를 거쳐 나간 많은 숫자의 어린이들에 비추어 본다면 중간반과 장년반의 재적 숫자는 더 늘어나야 할 여지가 많은 것 같다.
세계 최대의 주일 학교가 숫적으로만 최대가 아니라 내용에서도 어린이 신도들에게 가장 훌륭한 믿음과 가르침의 전당이 되기를 바라고 싶다. (마당)
창간14주년특집호 6.25에 부친다.
하나님의 백성 한사람 참신앙이 튼튼한 국방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소망의 교회
(예수교 장로회 총공회장 서부교회 백영희 목사)
月刊 VOL 15 NO.6 通卷 162 互
국내는 물론 세계 종교계의 이목이 집중된 본교단은 지난 5월 5일간 경북 대구 팔달교 기슭에서 봄철 대 집회를 가져 매 시간마다 참석한 수천 교인들은 물론 대구 근교의 신앙인들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하신 축복의 은사를 맛보게 되었다고-
먼저 우리 성도들이 집회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하나님 안에서 바로살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우리를 지켜준다는 신앙의 확신을 갖게하고자 함이 본 집회의 의의라고 전한다.
무엇보다 성경대로 살기를 증거하는 총공회장 백목사는 다니엘서 이사야서를 강론하면서 하나님보다 세상의 그 무었을 의지할 때 분명히 하나님의 노를 면할 수 없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저주를 받게 되었다고 전하기도.-
특히 하나님의 백성 한사람 한사람의 참 신앙이 엘리야 그 시대의 튼튼한 국방이 되었다고 강조하면서 신앙의 무장을 힘주어 전한다.
본 대집회는 1년에 두번씩 거창 대구지방에서 교단 전체가 합심하에 모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장막 생활을 연상하게 할 만큼 하나님을 의지하고 찾는 모습이 필자로 하여금 감동케 하기도.-
특히 본문 이사야 36장 37장 말씀에 의지해서 민족과 국가를 위한 메세지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과 욕망을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사람을 만들어 영원 무궁토록 우주 만물에게 이 세가지를 이루어진 사람 곧 교회에 맡겨 하나님 은혜의 충만으로 만물들에게 은혜기관이 교회인고로 인생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며 잘되게 하신다고 역설하기도.
이 길이 이탈될 때에는 가시와 담으로 막아 줘서 이 일을 도와주어 이것이 이루어지는 개인이나 단체나 민족이나 국가나 높이 들어 세상에 빛이 되게 하시고 이것을 무시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세상에 보여 주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이스라엘이 이 세가지를 어겼을때 아수로는 이스라엘을 치는 몽둥이가 되었고 되찾았을 때 18만 5천명은 순전히 하나님의 능력으로 시체되게 하여 승리의 증거가 되었다고 전한다.
총공회장 백목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와 민족에게 시기시기마다 말씀하시고자 하는 말씀의 사명자로서 전하고자 하는 안타까움에 복음의 사역자로서 헌신봉사하는 겸손한 충성과 장유간의 서부교회 위에 영원무궁토록 하나님의 은총이 항상 역사할 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제목 : 韓國의 敎會씨리즈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의 신앙적 노선
(어린이 1만 3천명이 모인 가운데 여름성경학교가 개최되고 있는 부산서부교회)
통원 219호(8월)-1986년 8월 1일 발행.
1972년 8월 17일 제 3 종우편물 (나)급인가 (우편번호 140)
절대 福音, 절대 聖潔 겸허하며 청빈한 生活사는 백영희牧師
6.25직후부터 본교회에 부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당회장 백영희목사. 목회생활 50년, 온화한 표정에 백발이 외길 성직자의 인품을 더욱 짙게 풍긴다.
언제부터 저렇게 많은 어린이들이 모이게 되었습니까, 하는 질문에 백목사는 ‘6.25직후 서부교회에 부임하면서 부터 주일학교에 관심을 쏟은 것이 해마다 증가하게 됐다’고 말한다.
저들이 무었때문에 저렇게 모이나 참으로 신기하다는 말씀을 드리자 백목사는 ‘어린이들에게 하나님 말씀만 가르치기 때문이며 이것은 곧 성령의 인도하심일 뿐’이라고 말한다.
사실 서부교회 주일학교운영은 주경설교로 장로교 신조와 교리를 골자로한 장년반과 똑같은 설교, 똑같은 찬송과 예배순서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뜻을 위주로 하지 학생들이 기뻐하는 아동심리 위주로 하지 않는다. 이 교회주일학교 순서에는 동화나 연극, 영화, 미술, 오락, 시청각교육등은 없다. 장년예배와 같이 주보도 없다. 그러나 서부교회 주일학교는 재적 25,563명 매주일예배 평균출석 8,500명 내외에 반사(교사) 915명으로 규모면에서는 과히 세계최대의 어린이 주일학교라 할 수 있겠다.
韓國敎會元老탐방②=釜山西部敎會 백영희목사
거창에서 주남선목사의 신앙적 감화와 남다른 사랑을 받으며 목회 생활을 시작한 백목사는 목회에 있어 절대 복음, 절대 성결주의이며 겸허하며 청빈한 생활을 하는 목회자로 알려져 있다.
순교자 주기철목사와 주남선목사의 신앙, 그분들의 성별된 생활, 나아가서는 그 당시의 예배까지도 그대로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주기철목사가 쓰시던 성경책을 백목사는 지금도 쓰고 있다.
현재의 교세가 주일예배 참석자 기준 장년 3,500명, 청년학생 2,000명, 주일학교 8,500명으로 지하를 포함한 5층 건물과 인접한 4~5개 부속건물을 모두 예배처로 개방 예배를 드리고 있다.
福音으로만 자라고 있는 1만 3천 어린이가 소망중의 소망
그러나 서부교회는 우선 분위기에서 부터 타교회와 일신한다. 우선 주보가 없고 성가대도 없고 찬송가는 여전히 합동, 개편, 새찬송가를 쓰고 있으며 더욱 히안한 것은 대예배실의 모습이 흡사 피난교회 같다. 넓디 넓은 공간에 미장되지않은 기둥들, 세멘계단 그대로의 강대상에 6.25직후에 만들었다는 낡은 강대상과 의자가 있고 사회자는 마루바닥에 앉은 채 순서때마다 일어서 예배를 인도하고 있다.
외부에 알리기를 꺼리는 뭔가 폐쇄적인 교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왜 주보를 않하며 성전이 남루할 정도로 장식을 않은것 일반 교회들과의 교류관계 등을 물었다. 이에 백목사는 주보를 않는 것은”교훈(설교)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어떤 때는 예배임박해서 주시기도 하기 때문에 주보를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설교는 내 마음대로 하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란 것이다. 교회 치장을 않는것은 교인 대부분이 가난한데 그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예배드릴 수 있는 정도면 될 일이고 요즘은 커텐도 하고 선풍기도 달았으며 함께 보기위해 V.T.R 시설도 했지만 교회의 헌금은 전도, 사람구원에만 써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교회재정이 집행되다 보니 그런 문제가 생길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타 교회와의 관계는 근래에 와서 많은 교회들이 시찰을 오고 있는데 그 숫자만도 600여 교회에 이르고 있고 어느 교회든지 상호 청빙하면 갈수도 있고 올수도 있다고 말한다.
고신 1회에 들어갔다가 일시중단, 8회에 다시 들어가 졸업해 목사안수는 다소 늦었지만 70을 넘어선 고령으로 한국교회의 원로급에 속하는 백영희 목사. 백목사는 죽는 날까지 이 사명을 다하겠다는 신념으로 지금도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으며 새벽기도가 끝나면 곧바로 천막으로 된 기도원에 들어가 성경보고 기도하고 묵상하는 것으로 일과를 보낸다. 수만에 이르는 성도들을 목회하는 교회행정은 일주일 중 화요일 하루 그것도 잠시 행정책임자의 보고를 받는것이 전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 방만한 교회살림과 교인심방 기관운영 등만 해도 24시간이 모자라겠지만 백목사는 기도로, 말씀으로 주의 종이 맡은 사명만 완수하면 성령께서 만사는 형통하게 이루워 주신다는 것을 믿고 있다.
현실의 한국교회가 인적인 노쇄화 현상을 보이고 있는 중에 서부교회만은 정반대로 장년보다 젊은 층이 젊은 층보다 어린이가 배나 더 많은 현상을 들어 백목사는 “서부교회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 “어린이들이 성경으로 중무장되어 있어 환난이 닥치면 제일먼저 순교할 사람이 저 어린이들 일 것”이라고 백목사는 서슴없이 말한다.
백목사는 서부교회의 가장 강한 바탕은 1천명에 이르는 주일학교 반사(교사)에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주일 오전 오후예배는 물론 삼일예배, 5일예배(금요예배)에 필수적으로 참석해야 하며 백목사로 부터 하나의 본문 말씀에 의한 다각적인 주경설교를 4~5차례 반복들으므로 말씀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한 다음 어린이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모두가 복음에 중무장된 교사들이 되며 이들 교사는 1개반을 중심으로 원반사, 보조반사, 심방원 등 조직적인 분반관리를 하는데 이들의 사명감이 그 누구 보다도 투철하다는 것이 관계자의 말이다.
주기철, 주남선목사 생전의 목회상을 실천에 옮겨 놓은것 같은 백영희목사의 목회가 부산서부교회에서 기반이 굳혀지자 교회를 수없이 개척하여 20년이 지난 지금에는 그 숫자가 105개 교회, 따라서 조직된것이 “예수교 한국총공회” 산하에 신학교를 두어 경건한 목회자를 양성하고 있으며 특히 1년에 한차례 여름이면 거창 장생골에서 은혜넘치는 집회를 가지는데 이번집회에는 25,000명이 모여 산야가 온통 복음의 물결로 덮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한국교회에 대해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없으실까 물으니,
“하나님 말씀만 가르칠 뿐 재주라고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노종일 뿐입니다. 내가 한국교회에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라는 말로 말을 맺는 백영희목사.
사진촬영을 부탁하자 “생전에 두번 (도민증과 주민등록증사진)밖에 사진을 찍은 일이 없는데”하면서 참으로 귀한 사진을 이때만은 스스럼없이 찍어주었다.
생명의 양식을 공급하는 86, 거창장생골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주최25,000여명 집회
예수교 장로회 한국 총공회(총회장, 백영희목사)가 주최하는 86 거창집회가 86. 8.4 ~ 8.8까지 장생골 기도원에서 개최되어 총공회 산하 105교회와 타교단 목회자와 평신도들 25,000여 명의 산골과 등성이는 우거진 숲과 함께 텐트와 천막의 숲을 이루고 있었으며 산 등성이 너머에까지 텐트의 임시촌락이 형성되었다.
26년전 거창군 고제면 삼봉산에서 시작된 여름집회는 22년전 이곳 장생골로 옮기면서 정착하여 지금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는데 온가족이 모두 함께 참석하는 특색을 지니고 있다.
기도원 본당은 매년 회집인 수가 늘어남으로 매년 증축을 계속하여 지금은 지하 1층 400여평, 3층 본 강당은 1,200여평의 대강당으로서 동시에 2만여명을 수용할 수 있다.
기도원 전체내에 음향시설이 대단히 잘되어 있어 어느 숙소, 어느 위치에서나 본강단의 집회내용을 잘 청취할 수 있었다.
집회는 매일 오전 4시 10시 오후 3시에 있고 강사는 백영희 목사이며 참석한 많은 성도들은 편집실에서 강의내용이 담긴 녹음테프를 구입 쉬는 시간에 재독하며 충분히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
온 가족이 어린아이와 함께 모두 참석하여서 집안걱정이나 세상걱정을 완전히 잊고 오직 집회에만 몰두하므로 은혜를 충만히 받는 귀한 집회 였다.
거창 집회 준비부서는 19개 부서로 조직되어 200여명의 준비위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질서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총 책임자 정재완 목사(위산교회)는 26년간 계속되어온 많은 사람이 참석하는 집회이지만 아직 1건의 불상사도 발생하지 않았다며 모두가 스스로 자진하여 움직인다고 설명하였다.
산 전체 구역을 교회별, 구역별, 가족별, 개인별로 분류하여 본인들이 스스로 천막이나 텐트를 마련하고 식사 준비를 하여서 저녁이 되니 밥짓는 연기가 온 골짜기에 자욱히 번져났다.
집회기간동안 기도원측에서 일반 주민 상인들에게 장소를 제공 영업을 허락하여 100여개의 임시 점포가 세워져 시장을 형성하여 성도들이 필요한 생필품을 구입할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기도원 입구에 있는 주상국민학교 운동장은 완전히 주차장으로 변해있었고 이외에도 전국에서 100여대의 관광 버스가 인원수송에 사용되었다 한다. 지하에 설치된 어마어마한 3개의 물탱크로도 식수가 모자랄 지경이라는 이 특별하고 매머드한 집회는 집회장에서 최고의 절정을 이룬다.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모인 무리는 목사님의 말씀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자세로 1시간 30분의 강의를 흩으러짐 없이 그대로 듣고 응답하여 모두가 말씀가운데 하나로 통일되었다. 집회의 주제라든지 그 흔한 팜플렛 한장도 보이지 않는 이 집회는 철저한 말씀중심 이었고 자기의 문제는 자기 스스로 책임지는 봉사의 자기 중심이었다. 찾아간 기자에게도 1끼의 식사도 제공하지 않는 누구나 스스로 해결하는 집회는 모인 사람들에게 신앙의 재점검, 생활의 수련, 교단의 단합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만나본 대부분의 성도들은 내년에도 또 그다음에도 계속적으로 참석할 것이라며 자부심이 대단하여서 앞으로 이 집회는 계속 발전하여 기도원 본당을 계속 증축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거창에서 박재한 부산지사장 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