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KIST
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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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br/>(*/연구실/문답방/에 올린 글이나 이곳으로 이동 - 관리자)<br>------------------------------------------------------------------------<br>2000/03/25 Article Number : 62 yilee Lines : 46 <br>======================================================================== <br><br>문답방은 외부의 지적, 비판을 받아 본인이 볼 수 없는 들보를 치료하고 싶은 곳입니다. 물론 지적하시는 분들이 감정을 빼고 논리적 제시를 해 준다면 좀 더 좋겠다는 정도는 있을 것입니다. 하물며 본인부터 그렇게 답변해야 할 것인데 노력하겠습니다. 말꼬리를 잡는 허송이 아니고 지적에 대한 자기 정체성의 확인 기회라고 보신다면,<br><br>1.<br>누구든지 자신이 속한 신앙의 노선은 자신이 현재까지 알기로는 확실히 걸어갈 이유와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본인 생각입니다. 노선은 틀렸어도 인정 사정 이권에 매여 마음 따로, 소속 따로라면 안된다고 보는 것입니다.<br>본인이 소속한 총공회가 원래의 총공회 신앙노선에 유일하게 바로 가는 교단이라는 생각이 없는 상태에서 대충 가다보니까 소속을 한다든지, 이권이나 인정 사정 등에 영향 받아 소속되는 경우라는 것은 교역자의 걸음이 아니라는 것이 본인 생각입니다. 교인도 그래야 할 것이지만 하물며 교역자라면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이 길을 걸어가야 할 진리노선, 성령인도의 확신이 있어야 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br><br>저뿐이 아니고 어떤 교단 어떤 총공회 노선을 걸어가는 분들이라도 본인 스스로는 연구할 대로 연구하고 기도할 대로 기도하여 '내 생명을 바쳐서라도 가야 하는 신앙의 길, 노선'을 찾고 찾은 다음 확신으로 걷는 분들이 된다면 합니다. 그 결과 여러 길이 나올 것인데 그런 최선을 다한 분들이 찾은 길이 다르다면 비로소 보다 나은 신앙걸음을 서로 비교해가며 연구할 수 있고 그렇다면 단일의 해답을 구할 수 있다고 봅니다. <br><br>믿다 보니 믿고, 속하다 보니 가게 되는 정도의 분들이라면 신앙의 세계라는 관점에서는 곤란하다는 제 생각입니다.<br><br/><br/>단, 실수가 많은 사람이고, 특히 선생이 된 우리까지도 실수가 많으니...하신 말씀을 기억하여 본인은 그렇게 연구했고 확신했고 걸어가고 있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잘못된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이 또한 본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외부 심지어 비판을 위한 비판의 분들에게까지라도 지적을 받아 제 눈의 들보가 있다면 빼고 싶은 중심이기 때문에 홈페이지를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br/><br/>제가 받은 은혜, 제가 확신한 신앙 노선. 마음껏 올려서 전해보면 각양의 각도에서 각양의 지적이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 모든 지적은 전부 저에게는 하나님 앞에 서기 전에 고칠 수 있는 '가능성'이 될 것이며 이것이 이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형식 속에 제 본인이 본인 단점을 고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 입니다.<br/><br/><br/>2.<br/>총공회적'이라는 말을 굳이 피하고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 그대로'라는 표현을 수차하시는 의미에 대한 입장입니다. 백영희목사님의 사후 총공회 교회들은 그분 생전의 총공회적 신앙을 견지하느냐 일정한 수정이 필요하겠느냐는 논제로 정도 차이는 있으나 심각한 논란과 결정을 두고 고심들을 했었습니다.<br/><br/>어느 한 분의 표현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수정쪽으로 방향을 가지신 분들의 한결같은 표현이 '백영희목사님'이 아니라 '예수님'이라야 하고 '총공회'보다는 '하나님의 교회'라야 한다는 강조가 유난히 많았습니다. 지금 '교회명단'을 삭제해 달라시는 분의 표현을 본인은 그때 이후 이런 표현과 주장을 가진 분들의 흐름과 같은 범위라고 생각하고 그런 분들 전체의 흐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가집니다.<br/><br/>백영희목사님을 좋아하고 그분이 앞서 갔던 총공회 신앙을 좋아하는 본인과 관련 교회들은 하나님이 이 시대에 특별한 소임을 주고 사용했던 하나님의 종으로서 백목사님을 좋아하고 그가 걸어간 걸음이 이 시대 믿는 사람들이 가장 하나님을 따르는데 참고해야 할 노선이었다는 인식입니다.<br/><br/>즉, 백목사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고 그를 통해 역사했던 하나님이 이 시대 우리에게 어떤 면을 요구하시느냐는 것을 찾아보았으며, 예를들면 백목사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말씀유일'로 살아라는 요구를 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목사님을 알고 난 뒤부터는 이전보다 더욱 성경 자체를 더 읽게 되고 그래서 성경 100독 정독 정도라야 최소한 목회자 기본 자질이 아니겠는가 라는 등의 사명감을 갖게 된 것입니다. <br/>'그리스도예수의 가르침'을 추구할 교회가 '축재'와 '교권'의 화신이 된 오늘이니 여기 대한 '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침'은 어떠했는가? 백목사님을 참고해 보니 그는 '축재'와 '교권'에 아득히 초월했던 이 시대 최고의 종이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침'에 그렇게 철저할 수 있었던가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고 그가 '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침'을 소개했던 바를 이 시대 다른 교단과 뚜렷이 대비할 수 있으니, 그를 통해 알게된 '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침'에 우리도 함께 하고 싶은 것이 '총공회'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된 이유입니다. <br/>사마리아 여인의 말을 전해 듣고 달려왔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난 뒤에는 이제는 여인 때문이 아니라 직접 만난 예수님을 통해 이제는 예수님을 직접 따르는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 때문에 예수님을 알게 된 것은 분명 소개한 수고였고 그러나 그를 통해 예수님을 만난 다음부터는 예수님을 직접 알고 가게 되는 것입니다. <br/><br/>백목사님을 통해 타락치 않을 수 있는 교회 행정, 성경만으로 살 수 있는 교훈을 소개받은 이들이 그의 소개를 통해 처음 그런 총공회적 행정이나 교훈을 접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백목사님과 상관없이 본인들이 스스로 말세 교회의 타락과 교훈의 혼잡을 주님과 성경만으로 바로 이어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되고 그래서 본인이 좋아서 자기 신앙걸음을 걸어간다면 이는 성경적인 일일 것입니다. <br/><br/>그런데 그런 교회들과 그런 교역자들이 서로 협력할 일이 있어 교회의 연락망을 가지는 것은 또한 통상적 명칭을 가지는 것은 하등 그리스도 예수에 분리된 종교집단화로 볼 수 없다는 것은 기독교 교단의 역사와 현재가 보여주고 있는 상식이라고 생각합니다.<br/><br/><br/>3.참고로<br/>칼빈을 한국의 장로교가 그렇게 좋아하고 한국의 모든 장로교 신학교가 칼빈을 그렇게 인용하는 것은 '칼빈을 통해 중세기 마지막을 개혁하려는 하나님의 역사는 어떻게 나타났던가?'라는 면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붙들린 이마다 천주교를 개혁했어야 했으나 천주교의 칼이 더 무서워 전부 머리를 숙일 때, 하나님께 붙들려 생사를 초월하고 한 길을 걸어간 그 칼빈의 걸음은 오늘 우리 시대 우리가 따를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의 예로 보여 주시는 바라고 생각하고 그런 관점이라면 '칼빈'의 인용이 아무리 많아도 그들의 중심을 우리는 환영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단 한번 칼빈을 인용한다해도 칼빈 속에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뺀 칼빈이라면 이는 우리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br/>Covenant 신학교에 1986년 겨울 특강을 맡은 분이 프랑스에서 온 교수였습니다. 그는 칼빈의 '문자적 운용' '어학적 표현'의 '아름다움'을 전공하는 분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나라 장로교 많은 신학자들에게서 이런 유형을 봅니다. 그러나 저와 같은 입장의 분들도 있다고 봅니다. 함께 매도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br/><br/>타 교단에서 비난하는 칼빈주의라는 신학일파가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칼빈을 하나님을 대신하고 칼빈의 기독교강요가 성경을 대신하기까지 합니다. 흔히 우리 총공회가 이단으로 정죄될 때 거의 빠짐없이 나온 표현이 '칼빈주의에 의하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의하면...'으로 정죄했던 것입니다. 칼빈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런 흐름이 바로 천주교였고 그것을 개혁한 이가 칼빈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칼빈주의는 따르는 이들 중에 상당수가 칼빈을 칼 빈 이상의 지위로 격상시켰고, 칼빈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준 우상'수준에 까지 이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보수 장로교에서 심한 편일 것입니다. <br/><br/><br/>교회가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유일로 하지 않는 곳이 있습니까? 총공회는 이러하고 '예수교 장로회'는 그러하기 때문에 이름을 바꾼 것이겠습니까?<br/>우리 모두 중심이 같다고 봅니다. '예수교장로회'로 이름을 바뀐 귀하에게 '예수교장로회'를 하지말고 '그리스도 예수'를 하라는 말은 귀하측이 '예수그리스도'보다 '예수교장로회'를 하고 있다며 본인이 몰아세우는 듯한 말이 될 것 같습니다. '예수교장로회'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귀하측에게 '그리스도 예수'를 갈음하는 구체적 행위가 보인다면 그 행위를 두고 서로 말해볼 수가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br/>같은 이치로 '총공회 신앙노선'을 주장하고, 또 '백영희목사님'을 극히 존경하는 본인에게 외부에서 보실 때는 '그리스도 예수'를 대신할 '총공회'라고 볼 정도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구체적 사안이 있다면, 대단히 심각하게 스스로 살펴볼 일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할 '백영희목사님'이라면 본인이 먼저 나서서 지적하고 말리겠습니다. 그러나 본인에게 그런 면이 보였다면 구체적 사안을 들어 지적해 주신다면 참으로 고맙게 또 깊이 살펴보겠습니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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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03.10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03.10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03.10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03.10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03.10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03.10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 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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