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KIST
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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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br/>1.최대한 공개로 진행하지만, 때로는 그럴 수 없는 경우도 있어 죄송합니다.<br><br>①최대한 공개로 진행하여, 자료의 신뢰성을 높이면서 해당 본인들에게는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br><br>예를 들어 교역자라든지 공회적 인물로 활동하는 교인들의 경우는 본인들이 제단 위에 바쳐지기를 원하여 앞장 서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면이든 부정적인 면이든 거의 실명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공회와 교계에 대하여 벗을 수 없는 '직책 상 책임'이 있고 또 자신들도 공회 내에서 가진 직책 때문에 자신들의 활동이 마땅히 공개될 것을 전제로 행한 것입니다. 이곳은 그런 뜻을 알고 있으며, 더하여 그분들에게 하늘의 복을 많이 받으라는 뜻으로 근실하게 실명 공개를 하고 있습니다. <br><br>②만일 자료 제공에 조건이 달려 있는 경우, 이를 지키고 있습니다.<br><br>이미 공개된 행동과 자료는 해당 본인들이 먼저 떳떳하게 공개를 했기 때문에 이곳은 해당 본인의 이름으로 서슴없이 설명하고 또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알아야 하는 자료나 확인 사항이 공개가 되지 않았을 때에는, 이곳에서 해당 본인들에게 자료를 요청하게 되는데, 이때 그 분들이 자신들의 실명을 거론치 말아달라고 부탁을 하게 되면, 조건이 붙어있는 자료이기 때문에 그분들의 자유와 양심을 우선 지켜드리게 됩니다. 어떤 경우는 비록 말로 조건을 붙이지 않아도 그분들의 의사를 이곳에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미리 조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br><br>③이곳은 원하는 자료를 거의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끔 추가할 경우도 있습니다.<br><br>이곳은 '백영희신앙노선'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백목사님 생전에 이미 거의 다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 사후에 필요한 자료는 몇몇 실무진이나 해당 사건 관련분들의 증언 또는 확인 정도입니다. 또한 이런 자료는 이곳이 필요하면 거의 원하는 대로 확보할 수 있습니다만, 이미 공회 노선을 달리하는 분들에게 '신앙노선의 연구'에 필수불가결한 사안이 아니면 연락이나 사적 연결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각 공회의 최고 중심부나 지도부에 계신 분들과는 개인적 인간관계로만 마주 앉으면, 못할 말이 없을 만큼 한 식구같은 관계입니다. 또한 총공회 내에서는 신앙생활을 동지적으로 함께 했던 분들이 각 공회에 광범위하게 있습니다. <br><br>이런 분들과 개인적인 모든 관계를, 신앙노선이 다르므로 끊고 있으면서도 꼭 확인이 필요할 때는 한번씩 원하는 내용을 질문하고 있기 때문에, 그분들에게 필요한 내용을 확인할 때는 그분들이 이곳에서 알아서 조심해 주리라고 생각한 기대에 속임이나 불일치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br/><br/>이런 점을 두루 감안하여, 이곳에서 자료를 요청하게 될 때에는 자료 자체에 중점을 두며, 상대방에게 이곳처럼 공개주의를 수납하라고 강요를 하거나 그렇게 하라고 가르칠 입장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br/><br/><br/>2.이번 찬송가 관계로 확인을 부탁한 분은, 제가 가장 극진하게 대하는 분입니다.<br/><br/>신앙성향이, 이런 곳에 이름이 오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이곳에 본인의 이름이 오간다고 나서서 막을 분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그 이름을 표시하지 않는 것이 분명 뜻일 것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알아서 이름을 말씀드리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문제 때문에 다른 곳에서 실명으로 설명한 곳도 있습니다만, 나타내거나 무슨 연구 논란에 당사자로 임하는 것을 대단히 싫어하실 것이라 미리 알아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94장 찬송의 내용에 대하여 백목사님의 진심이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하는 것까지만 목적에 두었습니다.<br/><br/><br/>3.이왕 찬송가 가사 문제가 나왔으니 몇 가지 더 말씀 드리겠습니다.<br/><br/>①찬송가 6장 1절의 '영광과 권능의', 찬송가 3장 3절의 '보지 못하네'의 경우가 있습니다.<br/><br/>공회 찬송가를 만들 때, 가사에 대하여 광범위한 비교 검토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한번 만들어지면, 다음에는 혹 문제점이 있어도 '정확성'만큼이나 소중하게 지키는 '보수적 사용'의 원칙 때문에 가사 개정이 어려울 것 같아서 답변자는 찬송가 가사 내용 중 많은 곳을 목사님께 질문하였습니다. <br/><br/>찬송가 6장은 성부를 1절에서, 성자를 2절에서, 성령을 3절에서, 4절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는데, 그 중 1절이 새찬송가 시절에는 '마귀를 이기신'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이 내용은 성자 예수님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성부 하나님께는 전혀 해당이 되지 않는 차원이라는 것이 백목사님 평생의 교훈이요 우리가 배운 바였기 때문에 이를 질문하였습니다. 목사님께서 오랫동안 그 대목을 대체할 내용을 생각도 하시고 5층에 올라가는 직원들에게도 한번씩 좋은 가사를 말하라고 했는데, 어느날 '영광과 권능의'라는 가사로 정했습니다. <br/><br/>찬송가 3장 3절은 새찬송가 시절에 '죄인들은 어두워서 볼수 없겠네'였으나 이 대목도 찬송하는 우리들이 자신들은 빼놓고 다른 죄인들에게 말하듯 하는 느낌이 있다고 질문을 하였으며, '죄인들은 어두워서 보지못하네'로 변경되었습니다. <br/><br/>이 두 가사의 변경은 답변자가 목사님께 문제점만 말씀드렸고 이후 결정된 내용만 알고 있으나 주변에 여러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셨고 후에 결정된 결과만 답변자가 알고 있으나 짐작으로는 94장 찬송을 확인하신 분이 올린 내용이 채택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br/><br/>②36장 '주님고대가'의 경우는 더 명백하게 잘못된 경우이지만, 수정치 않았습니다.<br/><br/>벧후3:8,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이라는 성구를 설교할 때마다 백목사님은 '사랑하는 성도가 세월을 허송하고 있을 때는 천년이 하루같이 지나가는 안타까움을 가지시며, 반대로 사랑하는 성도가 말씀대로 사느라고 고난을 당할 때는 하루가 천년같은 마음을 가지신다'고 늘 가르친 내용입니다. <br/><br/>그렇다면 36장 6절에 '천년을 하루같이 기다린 주님, 내 영혼 당하는 것 볼 수 없어서'라는 가사는 그 뜻이 명백하게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 찬송 가사에 대한 질문은 목사님께서 뜻은 분명히 그러하지만 그냥 그대로 부르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아주 의견 자체를 묻어버렸습니다. <br/><br/>③공회 찬송가 편찬은,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백목사님식 신앙노선의 모습이었습니다.<br/><br/>200곡 선별을 직접 다 했고 또 찬송을 정확히 잘 부를 수 있는 분에게 부르게 하여 곡과 가사의 은혜면을 동시에 참고 했으며, 심지어 아주 신앙이 넓은 사람이어서 공회성을 인정하지 않는 분에게도 추천토록 하거나 하여 몇 곡을 넣었습니다. 161장 '주님께 귀한 것 드려', 123장 '내일 일은 난 몰라요' 등은 백목사님께서 부르지도 않을 뿐더러 그 작사자를 아주 싫어하는 등 공회찬송가에 선별된 200곡에 들어가리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들어갔으며, 42장 '나의 사랑하는 책'도 그러한 경우입니다. <br/><br/>찬송가는 공회 신앙과 흐름을 기준으로 거의 다 선별하면서도, 이렇게 어린 사람 넓은 사람 또는 특수한 경우에 사용될 경우를 고려하여 몇몇 곡은 배려되어 있습니다. 찬송가가 예배용으로 사용되도록 몇 곡만 선별한 것이라고 그 서문에 적었으나 그 예배도 신앙 어린 사람들이 자기들 수준에서 자기들 좋아하는 찬송으로 예배드릴 경우도 생각한 것입니다. 그럴 경우를 생각해서 신앙이 넓거나 어린 사람들에게 일부러 권하여 몇 곡을 넣은 그 배려도 영감에 의한 결정이라는 것을 아셨으면 합니다.<br/><br/>그렇다면, 찬송가는 어떤 경우는 가사의 정확성이 적용되어야 할 때가 있고 그런 경우는 그리하였으며, 어떤 때는 가사의 정확성보다 작사자의 의도를 더 살린 경우도 있고 그런 경우는 틀린 가사를 작사자의 성경 깨달음이 그 면에서는 좀 어리거나 못 미친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전체적 은혜면을 보고 그 찬송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번역된 가사는 비교적 쉽게 수정한 것은 원작시 내용을 손대는 것이 아니라 번역 내용에 대한 수정이라는 점이 있어 보다 쉬웠을 것이고, 주님고대가와 같이 한글 찬송은 작시자의 뜻이 의심없이 또 달리 말할 수 없이 명확했기 때문에 그리 했던 것입니다. <br/><br/><br/>4.이런 점을 고루 생각한다면, 94장 찬송가의 가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라는 문제가 쉬워집니다.<br/><br/>①원뜻과 현재 가사가 다른 상태에서, 그리 알면서 불러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br/><br/>94장이 '주님께 가리다'로 확인되었으니 그 뜻이 원 뜻임은 확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이 마지막에 '주님께 가리라'라는 찬송을 사용하여, 서부교회와 공회가 '주님께 가리라'라는 찬송으로 백목사님 마지막 시기와 장례 때와 이후 오늘까지 사용하게 되었으니 일단 원뜻이 그렇다는 것은 알지만 사용은 계속 '주님께 가리라'라는 가사로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br/><br/>백목사님의 직접 지시가 있으면 하나님이 세운 스승에게 순종하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변경을 순간적으로 해버릴 수 있지만, 지금은 누가 누구를 스승의 위치에서 즉각 지도하고 즉각 순종할 정도가 아닙니다. 따라서 가사 내용에 확실하게 잘못된 부분이 있음을 확인하였으니 어떻게 하여 원뜻이 아닌 가사가 사용되어왔는지를 좀더 살펴보아야 하고, 만일 찬송가 제작과정의 단순 실수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순식간에 가사를 변경하여 사용하던 찬송가는 볼펜으로 새로 정정하여 사용하겠고 이후 출간되는 찬송가는 바로 정정하겠습니다.<br/><br/>②자칫 수정제일주의가 될까 하는 백목사님의 염려는, 쉽지 않은 차원을 고려한 것입니다. <br/><br/>그러나 제작과정의 실수가 아니라, 그냥 원뜻은 그러했고 또 찬송가 가사는 '주님께 가리라'로 사용된 것이 그대로 백목사님 생전에도 불리워지다가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라면, 짐작컨대 백목사님께서 사소한 변경을 하다보면 수정주의노선에 철저한 분들이 '무엇에나 수정'하도록 할까하여 변경이라는 것은 이렇게 쉽게 하는 것이 아님을 가르치는 다른 뜻이 계셨는가 하는 점을 찾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br/><br/>실제로 그런 예는 적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는 백목사님께 백목사님의 틀린 점을 분명히 지적하는데 백목사님은 무시해 버리거나 아니면 도리어 야단을 쳐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그 하나가 수정되어야 하는 것은 옳지만 그것을 지적하는 사람이 그 사람 자체 속에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보고 나가는 사람이 될까 하여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 그러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이것을 '야당기질'을 죽이기 위해서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도 결국은 목사님은 한번 지적받고 알게 된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반드시 확 바꾸어버립니다. <br/><br/>'세례학습문답지'의 경우도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세례학습문답지는 만들어진 세월이 많이 지났고 또 목사님의 깨달음도 점점 깊어져 처음 만들어지던 당시의 내용은 마지막 가실 때를 기준으로 본다면 수정되거나 보충될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냥 사용토록 하고 갔습니다. 이 조처는 그 문답지의 내용이 장차 변경되어서 안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옳은 것으로 고치는 것은 좋다 하여 고치는 면만 주력하다 보면 그 사람 자체가 만사의 잘못된 면만 보는 인질이 되어 정작 본인이 볼 수도 없는 본인 속의 인격 자체가 변덕과 변동주의가 되고 이렇게 굳어진 인격이 언젠가 본색을 드러낼 때 손을 대면 절대 안되는 것을 통째로 뜯어고쳐 한꺼번에 멸망되는 면을 본 것입니다.<br/><br/>③성경의 예를 가지고도 참고할 수 있습니다. <br/><br/>분명한 예를 하나 더한다면, 성경도 틀린 번역이 많이 있어 백목사님이 종종 설교 중에 이를 지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도 성경에 그 해당된 부분을 볼펜으로 정정시킨다든지 아니면 그런 부분을 수정한 성경을 제작한다든지 하지 않고, 그 부분이 틀렸다는 것만 필요할 때마다 확실하게 상기시키고 정작 일반적 사용은 아무 일 없었다듯이 그냥 하여 왔습니다. <br/><br/>성경에 잘못된 글자를 바로 잡는다고 하여 칼을 든 사람이 수술이 아니라 살인으로 나갈 것이기 때문에 아픈 배를 앉고 가자는 것입니다.<br/><br/>④확실하게 수정할 수 있는 그런 순간을 좀더 기다릴 때라고 봅니다. <br/><br/>찬송가 94장을 확인하신 분이, 그 원뜻은 확인을 하였으나 왜 목사님 마지막 때 그 부분에 수정지시가 없이 '주님께 가리라'라는 가사로 유지되었는지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찬송가는 그대로 사용하면서 목사님 생전에 확실하게 제작과정의 단순 착오가 있었는지를 찾아보아야겠는데, 제작에 관련된 주요 담당자들은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이고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을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 설명에서 일단 숨을 돌리시고 좀 생각할 여유를 가지셨으면 합니다. 적지 않은 내용과 쉽지 않은 신앙의 여러 면을 고려하셨으면 합니다. <br/><br/>이곳은 옳다는 것을 찾고 외치고 그 길로 달려가는 데에는 별로 2등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숨가쁜 과격파'라는 욕을 늘 듣고 살고 있습니다. 이런 화급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신중을 기하고 조심을 할 때는 한번 참고해 보시고 연구해 보실 필요가 있지 않나 라고 봐 주셨으면 합니다.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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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03.10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03.10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03.10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03.10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03.10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03.10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 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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