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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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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br/>1.질문내용의 일반적인 의미<br><br>질문하신 내용은, 한번 들었던 내용인데 그냥 궁금해서 문의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질문하신 분을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대구공회에 교역자로 계시거나 아니면 주도 교인으로 계신 분들은 질문하신 내용을 사실로 알았고 그래서 부산공회가 곁길을 가는 단정적인 근거로 삼았던 내용입니다. 대구공회가 옳은 길을 가기 위해 투쟁하는 것으로 믿게 했던 몇 가지 내용 중 하나입니다. <br><br>질문하신 분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구공회 교역자 및 주도 교인들이 오늘 걷고 있는 걸음은 아무리 옳은 길이라고 설명을 하려고 해도 하면 할수록 더욱 곁길이었다고 밝혀지지 않을 수가 없는 내용을 담고 있는 질문입니다. 마치 질문하신 분이 그런 분 중에 하나라고 오해가 될까봐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입니다. <br><br><br>2.대구공회가 노선적으로, 출발 근거부터 곁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br><br><br>①대구공회는 백목사님 생전부터 '수정'을 주장하던 분들이 주도한 곳입니다.<br><br>백목사님 생전부터 총공회 교리와 행정노선의 수정을 요구하며 백목사님 면전에서 인간 도의적으로도 그렇게 해서 안되는 발언과 행동을 거침없이 했던 분들이 주도한 것이 '대구공회'의 시작입니다. 여기서는 '수정'노선 자체를 논하지 않습니다. 대구공회 자체를 논하고 있습니다.<br><br>백목사님 생전에 간판을 바꾸고 찬송가를 바꾸고 행정을 바꾸고 교리를 바꾸자고 했던 분들이, 백목사님이 사망하자 그 순간부터는 부산공회가 간판을 바꾸었다 백목사님 행정과 신앙노선 교리를 다 바꾸려고 한다며 '거짓말'로 정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총공회와 보수공회(부산)의 신앙노선 비교'라는 크다란 인쇄물을 정식으로 배포한 것은 물론 수없이 발언하고 문서로 주장했기 때문에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대구공회는 '거짓말'로 태생된 공회가 되었고 이를 부인할래야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br/><br/>수정이 옳으냐 보수가 옳으냐는 문제로 처음부터 주장을 했더라면 '수정노선'을 주장한 것이 틀린 것으로 판명이 되었다 하더라도 돌이킬 수 있는 가능성은 있고 또 그 때는 어리고 몰라서 그랬다고 하여 새출발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구공회는 '수정노선'이 옳으냐 틀렸느냐를 떠나서, 이전부터 내려오던 총공회 내부에 수정노선을 형성하기 위해 거짓말을 그 기본 설계도로 삼고 대구공회를 건설했습니다. 따라서 현재 시행하고 있는 수정노선의 모습이 옳다고 해도 그 수정노선의 모습을 시행하는 주체인 '대구공회'자체가 거짓말로 형성한 공회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곁길이 되는 것입니다. <br/><br/>질문자는 그렇지 않으나, 질문 내용을 답변하게 되면 대구공회를 형성하는데 사용했던 기둥이 통째로 내려앉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미리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는 대목입니다. 신사참배 했던 것을 덮고 가루려다가 출생된 것이 오늘 합동측과 통합측과 기장측입니다. 따라서 고신은 교만한지 어떤지 따져볼 이유라도 있지만 총회측인 합동 통합 기장은 오늘의 모습이 어떠하더라도 그 노선은 탈선한 이스라엘 안에서 발견되는 '선행'은 될지라도 그 노선의 출발이 이미 저주받은 노선이기 때문에 장래 소망은 전혀 바랄 수 없는 죽은 집단들인 것과 같습니다.<br/><br/>부산공회는 어떤 투쟁과 과정을 겪었을지라도, 그들은 총공회 신앙노선을 백목사님 생전에도 옳다고 주장했고 사후 투쟁 때에도 그렇게 주장을 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행동에는 틀린 것이 있다해도 회개하면 되는 것이 있으나, 대구공회는 목사님 생전과 사후의 행동은 정반대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양 공회의 투쟁이 끝나자 이전 했던 주장은 전부 취소되고 그 후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총공회 이름으로 들리는 이단 소리가 잦아들자 총공회 간판을 다시 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노선적으로는 거짓말 공회라고 단정하는 이유입니다. <br/><br/><br/>②대구공회를 형성할 때 내세웠던 가장 큰 주제인 재독정죄도, 범죄행위였습니다.<br/><br/>대구공회가 출발해야 하는 이유를 앞에서 말한 대로 부산공회가 총공회에서 이탈하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간단하게 또 핵심을 말하자면 부산공회가 몇몇 젊은 조사와 목사님 딸들이 합해서 총공회에서 이름을 바꾸고 또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을 변질시켜 서부교회 교권만을 행사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는데, 실은 그 반대측이 총공회 신앙노선을 이탈하는 측이고 이것을 감추고 오히려 뒤집어 씌우는 거짓말로 그 출발을 삼았기 때문에 대구공회는 출발부터 틀렸다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br/><br/>그다음 중요한 것은, 대구공회는 부산공회가 재독예배는 신사참배 우상행위와 같은 죄인데 이것을 계속하기 때문에 정죄했고 그 정죄 치리를 거부하고 맞섰기 때문에 대구공회는 부산공회를 제외하고 모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br/><br/>재독을 정죄한 것은, 그날 이후 지금까지 대구공회의 그날 결정 그 배경 그 정치적 이용 전부가 잘못되었다고 이곳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대구공회는 유구무언입니다. 토론에도 응할 수 없는 것이 대구공회이고 이 문제를 두고 그날의 입장을 또 다시 주장해 보라고 하면 서로들 다 빠져버리고 말아버립니다. 그리고 익명의 몇몇 소신있는 분들만 가끔 발언하실 뿐입니다. 지금 대구공회는 공회적으로 그때 주장을 다시 주장할 리가 없습니다. 이렇게 수도 없이 이곳에서 공개적으로 대구공회의 수준을 평가해도 이를 반론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구공회 집행 지도부 교역자들이 더 잘 알 것입니다. <br/><br/>그리고 대구공회의 전투는 거짓말을 통해 교인들을 오도하고 선동하고 오늘에까지 그때 일을 바로 잡지 않고 버려두어 그 말들이 교인들 머리속에 과거 사실로 자리잡도록 방치하고 있습니다. <br/><br/><br/>③대구공회로 교인들을 모으고 또 그들을 자극하도록 거짓말로 힘을 삼았습니다.<br/><br/>질문하신 재산 갈취문제<br/><br/>제일 먼저 내놓았던 말이 '이영인조사가 큰딸에게 목회연구소 부동산을, 막내딸에게는 백목사님 사택 부동산을 등기해서 재산을 빼돌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그 말을 다시 한번 더 입밖에 낼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이곳은 어떤 욕을 하던지 감사하게 받는 노선이지만 다른 분들은 현행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면 바로 법적 처리를 해버리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이 주도하는 공회는 대구공회와 서부공회(2)에 속한 분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을 전과자로 만들었고 더러는 교도소까지 갔던 것을 기억할 것이기 때문에 당시 대구공회가 옳고 부산공회는 아주 재산갈취하는 도둑들만 모인 곳이라고 교인들을 선동했던 대구공회의 입장은 다시는 입밖에 담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br/><br/>이곳에서 이 정도로 공개발언할 정도면 질문 내용에 대하여는 자동적으로 답변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발언은 일반 교인들 수준에서 떠돌기 시작하는 유언비어가 아니었고 대구공회 최고 지도부에서 일부러 밑에 흘려 대구공회 세확장의 단초로 삼았기 때문에 그 밑에 일반 교역자들은 무조건 그 지도부의 신앙과 위치를 믿고 맹신했으며 따라서 동료들에게 또 일반 교인들에게 알려주기를 전혀 주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대구공회가 초기에 결집하고 투쟁할 수 있었던 방편이었습니다. 당시 수도 없는 부산공회의 패륜을 듣고 격분하여 분연히 들고 일어났던 것이 대구공회 교인들입니다. 틀렸습니까? 지금 다시 그때 일을 생각하면 코메디 한편에 동원된 우중들이었습니다. <br/><br/>당시 천목사님 서목사님 강목사님 김조사님 등이 지도부에서 흘려 들었던 이 말을 듣고 호남교역자 모임에서 이 내용을 가지고 얼마나 좋아서 떠들고 힘을 삼고 호남교회 교인들을 자극했던 것은 지금 생각하면 고개도 들지 못할 일이 되었습니다. 목회자 사택에 토요일 저녁에 3교회 청년 집사들을 동원 살림살이를 들어내려고 습격했던 일 등등을 일일이 다 공개하기는 그렇고 그 정도로 교인들에게 힘을 실어 주었던 내용이라는 점은 참고하실 일입니다. <br/><br/>지금은 부산공회에 있는 김정웅목사님이 부산 거일교회에 있을 때 본 답변자에게 직접 이 문제를 거론하며 회개하고 당장 엎어지라고 호통을 쳤던 정도였습니다. 그 나머지는 현 대구공회 교인들이 자기 목회자들에게 직접 들었던 내용이었으니 더 이상 증명도 필요 없을 것입니다.<br/><br/>당시 답변자에게 직접 이 말을 확인한 분들에게는 조용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빼돌려 두 가족들에게 넘긴 재산들은 서부교회에서 50m 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부교회 300m 안에는 법원 등기소가 있습니다. 100원짜리 몇개만 들고 가면 누구 재산으로 어떻게 등기가 되어 있는지 당장에 나옵니다. 그리고 백목사님 생전 1988년 1월달에 훗날 5공청문회처럼 죄지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니 교회의 재산문제를 5천명 출석교인 전부가 직접 손을 들고 찬성하는 조건으로 처리한다며 처리한 내용이 비디오로 현장 녹화되어 있습니다. 그대로 되어 있는지 아닌지는 불과 100짜리 동전 몇개면 됩니다. 그런데 그 확인도 안 해보고 서부교회 부동산 2개를 빼돌린 도둑놈이라고 고함부터 질러대면, 저는 아니라고 또 고함을 질러대야겠습니까? 아니면 그렇게까지 죄를 짓고 싶으면 실컷 지으라고 그냥 두어야겠습니까? 그래서 아무 소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br/><br/>따라서 당시 저와 직접 통화했던 5명 안팎의 대구공회측 사람들은 다시는 이 말을 반복하지 않았고, 나머지는 목청껏 외쳐서 그 진리가 오늘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질문 내용에 관련된 한 가지만 가지고도 대구공회는 그 수준이 거짓말을 아주 입에 달고 다니고도 양심에 가책이 없는 수준이라고 이곳은 예를 들어 말할 때 자주 사용하는 편입니다. <br/><br/><br/>백목사님 살해범의 배후<br/><br/>이곳이 백목사님 살해범을 고용하여 목사님을 살해했다고 여수경찰서에 고소한 분들, 또 전국 교회를 돌며 지방 교역자들에게 이 사실을 일일이 교육시켰던 김목사님 최목사님 또 한분 목사님은 성씨가 특별해서 그냥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br/><br/>심지어 서부교회 권찰회 때 대구공회를 출발시킨 주도 인물이 직접 일어나서 우리가 아무리 싸우더라도 그런 말을 한 것만은 더 이상 해서 안된다고 했던 것을 남정교회 서정교회 주도 교인들은 지금도 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br/><br/><br/>현재 대구공회가 성립되도록 당시 대구공회 교인들에게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다 할 수 있도록 자극했던 내용들은 한결같이 일상적이고 평범했던 내용은 없습니다. 기상천외한 내용이기 때문에 격분하지 않을 수 없는 거짓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을 백목사님 이목사님 등 공회 최고 지도부가 그들의 신앙경력과 권위를 담보로 하여 밑으로 내려 보냈기 때문에 밑에서는 더 이상 확인할 필요도 없는 사실로 알고 그렇게까지 모든 일을 다 했던 것입니다. <br/><br/>따라서 대구공회는 그 출발에 대한 면을 연구하자면, 지금 어떻게 다시 수습하지도 또 복구시킬 수도 없는 거짓말과 모략 중상 유언비어 갖은 폭력으로 모든 일을 저질렀던 공회입니다. 그래서 대구공회이 현재 보이는 '수정노선의 모습'이 과연 옳으냐는 것은 일단 제외하고, 대구공회는 틀렸습니다. <br/><br/><br/><br/>3.이번 질문 내용도, 자세히 살펴보면, 질문자는 그렇지 않으나 그 내용은 심각한 정도입니다. <br/><br/>그냥 부동산 2채를 빼돌려 해먹었단다고 말하는 정도라면 누구라도 반신반의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거짓말이 아주 스토리를 전개하고 법적 용어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br/><br/>부동산 처리에 대한 사실 확인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br/><br/>'누구의 발상인지?' '총유재산인 비법인 사단 명의로 등기가 되어야 하는데' '명의신탁제도' '개인명의'라는 여러가지 내용이 다 나오고 있습니다. 질문하시는 분은 얼른 흘려듣고 기억하시는지 몰라도, 당시 대구공회 교역자들과 교인들은 이런 주장들이 아주 이구동성으로 나왔었습니다. 대부분 법적으로 문맹자에 가까운 분들의 입에서 꼭같은 말이 나올 때는 단체 교육이 되었다는 뜻이겠지요?<br/><br/>더구나 지금 객관적 입장에서 지적하시는 분의 표현에서도 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br/><br/>' >이런 조그마한 오해들이 구설수를 낳게 되고 <br/> 신앙에 덕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br/><br/>라고 하셨는데, 지금은 덕이 되지 않을 정도지만 당시로서는 대구공회 교인들로 하여금 광분에 휩싸여 그 어떤 폭력과 난동을 부려도 의를 위해 거쳐야 할 하나의 시련이라고 생각하도록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br/><br/><br/>'>오해의 소지가 있어 조심스럽습니다만 사실이 <br/> 그렇다면 분명히 서부교인들(남정교회 서정교회 <br/> 서광교회 성광교회등 이탈해 나간 서부교회 교인 <br/> 전부)에게는 이해할수 없는 처사라고 봅니다.'<br/><br/>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지금 남정 서정 서광 성광교회로 나간 분들이 그렇게까지 모든 과격한 행동들을 하셨던 것입니다. 아쉬운 것은 당시 인터넷 홈이 있었더라면 아주 간단하게 사실관계를 증명할 수 있고 또 문답을 주고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스캔으로 부동산등기부 등본을 공개하고, 1988년 1월 남정교인 서정교인 성광교인 서광교인들 자신들이 손을 들고 확인한 바로 그 장면을 비디오로 이곳에서 공개해 드리고 그때 그 상태로 등기부가 유지되고 있음을 순식간에 확인시켜 줄 수가 있었습니다.<br/><br/>자기들이 손들고 자기들이 그렇게 처리해야 한다고 일치 책임을 졌던 일입니다. 백목사님 사후 누구 한 사람이 재주를 부린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14년이 지난 뒤에까지 이렇게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분에게 남아 있는 당시의 문제점이 이 정도이니....<br/><br/>오히려 질문자가 객관적으로 보시고 이곳에 말씀하신 바로 위에 있는 내용, 즉 남정 서정 서광 성광교인들이 이런 사실들에 전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느꼈기 때문에 그 모든 일들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따라서 이곳은 누가 무어라고 해도 밑에 있는 교인들일수록, 순진해서 당했다는 마음이 항상 앞서고 있습니다. 반대로 그 위에 지도부의 악의는 완전히 이성을 상실했다고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도 단 한번 전화 통화로 확인이 가능했던 것을 덮어놓고 따라 간 것은 결국 예수님 십자가 못 박을 때 유대인의 군중심리에 비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br/><br/>대구공회로 초기 나뉠 때 공회적으로 가장 핵심 직책에 있었던 이목사님이 이 문제에 대하여는 남달리 밑으로 확인을 많이 시켰던 분입니다. 부동산 2채를 명의 이전시켜 빼돌리고, 7계명을 범해서 쫓겨났고, 백목사님 배후 살인범이고.... 그 사람이 백목사님 가족을 앞세워 서부교회를 장악하고 부산공회를 전국적으로 어떻게 하고..... <br/><br/>그 이목사님을 이런 일이 지난 5년 정도 뒤에 그분 사택에서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무엇에 씌였던고... 합해야지.....' 그러나 당시나 이런 발언을 할 그때나 본인은 변한 것이 없는데 합해서 될 일입니까? 또 다른 이목사님 한분은 서부교회 내에서 당시 대구공회의 그런 말씀들을 교인들에게 하다가 ..... 이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br/><br/><br/>질문하신 분께는 상관없는 말씀을 몇 가지 추가해서 드린 것 같아 번잡게 되었습니다만, 무슨 조직 체계화 할 일이 아니라 여러 다른 분들의 오해를 겸사해서 풀어시라는 뜻으로 내용을 많이 덧붙였습니다. 대구공회와 부산공회가 나뉘던 1989-1990년의 모든 사건은 현재 제 일지에 빼곡하게 관련 모든 사안이 적혀 있습니다. 또한 양측에서 주장한 문서와 삐라와 모든 관련서류들이 있습니다. 또한 제 기억 속에서 이번처럼 설명하지 못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br/><br/>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백목사님 사후 1989-1990년 초기까지 부산공회의 가장 중심부에서 모든 노선 방향과 입안, 대응에 관련된 결정 일체를 담당했던 것은 여기서 답변하는 사람입니다. 대구공회는 노선의 중심도 동기도 방편도 다 틀렸습니다. 부산공회는 혹 현장에서 몇몇 분들의 실수가 없지는 않았지만 모든 면에서 옳았습니다. 현 대구공회로 소속한 교역자 거의 대부분과 교인 대부분은 현 북한 체제의 인민들처럼 그렇게 된 경우입니다. 대구공회의 주요 지도부는 그 잘못이 이루 말할 수도 없습니다.<br/><br/>이곳에만 가끔 당시 일 중에서 부산공회의 약점이라고 느껴지는 문제들이 질문으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좋기는 이제 14년이 지나는 지금, 정말로 당시 문제가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대구공회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나 대표를 내세워 양측의 주장을 차분하게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어떤 사건이라도 그 어떤 사안이라도 한 가지를 주제로 설정하고, 어느 홈에서라도 공개하기로 하고 또 발언을 삭제하거나 제재하지 않기로 하고 그리고 생중계를 시켜 보면 아주 간단하게 알 수 있는 일입니다.<br/><br/>이번 부동산 일도 단언하고 말씀드리지만, 이곳과 반대 반론자로 나설 사람은 대구공회에서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있다면 이곳은 환영하고 그 반론의 잘못을 일일이 지적해 드리겠습니다. </br></br></br></br></br></br></br></br></br></br></br></br></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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