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KIST
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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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br/>(*삐라 관련 문서 바로 가기와 목록을 첨부했습니다.)<br>---------------------------------------------------<br><br><br>1.그때 그 삐라는 총공회 밭에 뿌려졌던 씨앗들이었습니다. <br><br>①마13:3과 13:31은 총공회에서 가장 잘 배운 성구들 중 하나입니다.<br><br>'마13:3'의 씨 뿌리는 비유에서 농부가 밭에다 씨를 흩뿌렸고 또 '마13:31'의 겨자씨비유에서는 그렇게 뿌려진 씨가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고 했습니다. <br><br><br>②그때 겨자씨라는 삐라를 뿌린 농부들의 숨은 노고가 있었습니다. <br><br>당시 숨어서 뿌린 것은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까 두려워 해서가 아니고 마6:3-4 말씀에 따라 복받을 일을 은밀하게 하여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가 갚을 것을 소망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설마 목회자들과 또 이 복음을 위해 순교하겠다던 겨자씨 회원들이 처벌이 두려워 익명으로 씨앗을 뿌렸겠습니까?<br><br/>그때 공회 내부 목회자들만 아는 일들이 삐라 내용에 계속 포함되고 있었기 때문에 교역자회가 열릴 때마다 교역자회 내부에 그 삐라 배후가 있다고 몇몇 김목사님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자수하라고 난리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김목사님들은 '물증이 있냐'면서 빙긋빙긋 웃고 범인을 잡아보려면 잡아보라고 그렇게 느긋했으며, 그 파문이 확산될수록 행복해마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 둥근 얼굴의 온화한 미소들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들 중에는 숨어 씨뿌리는 수고 때문에 햇빛에 그을린 농부같은 인격을 가지고 큰 공로를 세우고 있는 분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br/><br/>----------------------<br/>'겨자씨 삐라' 바로가기<br/>----------------------<br/><a href="javascript:onClick=openWindow('http://pcouncil.net/member/wblue/CrazyWWWBoard.cgi?db=gongjaryo&mode=read&num=44&page=7&ftype=6&fval=&backdepth=1 ','scrollbars=yes, resizable=yes, width=800, height=700,top=0,left=0')" leftmargin="0" marginheight="0" marginwidth="0" topmargin="0"><font color="blue"> 44번, 부산공회(2)의 - 옥토 - 충청.경기.인천지역 집사모임 (제1-4신) 02/01/19 <br/></font></a><br/><br/>당시 삐라들 자료 목록 /초기화면/총공회/공회내부 자료/일반자료/<br/>----------------------------------------------------------------<br/>42번, 1990년대 말기의 부산공회(2)의 문서운동 02/01/19 <br/>43번, 95-98년의 '겨자씨'와 '옥토' 문서운동 02/01/19 <br/>44번, - 옥토 - 충청.경기.인천지역 집사모임 (제1-4신) 02/01/19 <br/>45번, - 옥토 - 대구지역 집사모임: 겨자씨보 (제5신) 02/01/24 <br/>46번, - 옥토 - 충청.경기.인천지역 집사모임 (제6-9신) 02/01/24 <br/>47번, - 옥토 - 충청.경기.인천지역 집사모임 (제10신) 02/01/24 <br/>55번, - 만화 그림 자료 첨부 [사진] 02/02/02 <br/>48번, - 옥토 - 충청.경기.인천지역 집사모임 (제11,12신) 02/01/24 <br/>----------------------------------------------------------------<br/><br/><br/>③당시 뿌린 겨자씨는 잘 자라서, 오늘의 부산공회(2)라는 거목이 되었습니다. <br/><br/>겨자씨라는 삐라가 전국 교회에 뿌려지면서, 전세 예배당으로 있는 교회들은 안 믿는 건물 관리인이나 건물 입주자들이 그 삐라를 볼 수 있게 되어 우체부가 올 때마다 건물의 우편 진열함을 살펴야 했고, 자체 예배당을 가진 교회들은 어린 교인들이 그 삐라를 볼까 전전긍긍했었습니다. 상주하는 사찰이 없는 교회들은 목회자가 항상 우편물이 예배당에 던져져 있을까 해서 수시로 예배당을 살펴야 했습니다. 목회자가 부지런한 교회에서는 교인들이 그 삐라를 보지 못했으나, 고약하게도 그 삐라는 우편엽서에 프린트한 종이를 붙인 형태이므로 우체부는 낄낄대고 그 엽서를 보면서 예배당에 보란듯이 던져 놓고 갔습니다. 그 우체부들은 그 교회 인근 집집을 돌아다니며 배꼽잡을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br/><br/>부산공회(2)는 오늘 그 훌륭한 모습에 도취되어 홈을 전개할 것이 아니고 자신들의 성장과정을 오랜 세월 항상 되새김질 해 보셔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부산공회(2)의 핵심 주도 김목사님들 일부는 그 삐라의 핵심 지도부였고 일부는 신중론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결국 강경파에 밀려서 죄인의 회중에 들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훗날입니다. 성공을 하고 나면 모든 것이 묻히는 법인데 지금 부산공회(2)는 부산공회 안방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늘 공회 내에서 가장 극적으로 성공을 거둔 곳이 부산공회(2)지만, 부산공회(2)는 항상 그 족보 첫 머리에 '겨자씨 삐라' 위에 건축된 곳임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br/><br/><br/>④당시 삐라 살포는 대단히 주도면밀했고 또 해를 넘기며 계속된 노선투쟁이었습니다.<br/><br/>옳고 그른 것은 어린 교인들도 전부 다 알아야 한다고 그 삐라 내용을 봉함으로 우송하지 않고 일부로 우편엽서 인쇄물을 붙여 눈에 띄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부산공회 지도부가 그 발신 우체국 소인을 탐문하며 형사처벌을 추진하자 경기도 광명 인천 남인천 충청도 제천 등으로 발신 우체국을 옮겨가며 전국을 무대로 활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발신 주소를 반대측 지도부 교회 부근 우체국으로 찍히도록 하여 그 지도부 목회자 교인 중에 반대자가 있다고 오판토록 해서 내부 분열을 추진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br/><br/>혹 그때 일이 범죄였다면 죄질이 극히 불량하여 그 개선의 여지가 없다보고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시키라는 판결문이 예상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일이 의로운 일이었으면 다윗이 환란 중에 지혜롭게 일을 처리했던 사례에 견줄 수 있을 것입니다. <br/><br/>장차 부산공회(2)의 중심 인물들이 될 김목사님들과 그 휘하의 기드온 300명 같은 용사들은 집회 기간 중 예배시간이나 야간에 삐라를 천막들 사이에 흩뿌리거나 아니면 페인트로 벽같은데 구호를 적어놓았고, 또 당시 그들을 색출하려는 부산공회 지도부는 빨치산 토벌대를 조직하여 휘하 젊은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집회기간 예배시간과 밤시간까지 샅샅이 그들의 행적을 쫓고 있었습니다. <br/><br/>처음에는 집회 기간에 기습적으로 뿌려진 삐라 때문에 농부들은 대거 수입을 올렸고 부산공회 당시 지도부는 큰 혼란에 휩싸였지만 후에는 대규모 토벌대를 편성하여 삐라 살포는 극히 위축됩니다. 바로 이때쯤 집회를 마치고 교회로 돌아온 부산공회 최고 지도부 목사님 중 한 분이 목회 하는 교회에서는 집회를 가지 않던 서목사님 측 교인들이 이제 막 신축한 4층 예배당 내부를 집회 기간 중에 모든 커텐을 가위로 가로질러 잘라 내버리고 차량 스프레이로 예배당 의자에 별별 구호와 욕설을 적어놓고 심지어 강대상에 칼로 새겨서까지 삐라에 적을 내용들로 가득채운 상황을 목도하게 됩니다. <br/><br/>오늘 부산공회(2)는 서목사님 한분을 모시고 일제 치하의 고통처럼 고생하며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몇몇 종들의 이런 피눈물 나는 고난의 역사 위에 건설된 것입니다. 따라서 그 신앙노선을 지지하는 분들에게는 하늘나라 갔을 때 그때 수고한 상을 자기들 평생에 제일 큰 상으로 기대하고 있을 것이고 그 반대 노선에 있는 사람들은 그 반대라고 평가할 것입니다. <br/><br/><br/>⑤당시 삐라를 뿌리는 분들 내부에는 크게 2가지 부류가 있었습니다.<br/><br/>강경파들은 생명을 걸고 적극적으로 이런 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온건파들은 어린 교인들도 고려해야 하지 않느냐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소선은 대선의 적이라는 백목사님의 평소 가르침까지 잘 기억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결국 몇몇 어린 교인들이 이런 삐라 때문에 상처를 입는 것은 공회 전체를 살리는 복음 역사를 위해 희생되는 것이 옳고, 또 그 시험을 받는 이들도 자기들 스스로 이런 삐라를 보고 오히려 옳은 데로 돌아서야 할 자기 구원의 자기 책임이 있기 때문에 삐라를 뿌리는 측의 잘못만은 아니며, 또 이런 초창기 시험은 오히려 그 어린 교인들을 어릴 때부터 강하게 기르는 좋은 훈련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br/><br/>바로 이런 점들이 일반 교계와 총공회가 다른 점입니다. 총공회 신앙노선은 그 행동이 어떻게 극단적으로 나갈지라도 그 행동을 지원할 수 있는 이론과 이유를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는 설교록이 있습니다. 또 교역자들의 평소 실력이 이 정도 논리는 쉽게 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밀고 나간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므로 사실 아는 사람은 사실을 확인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그 일로 시험받을 필요도 없는 것이 또한 공회의 특수한 배경입니다. <br/><br/><br/>⑥겨자씨 삐라는 그후 놀랄 만큼 자랐고, 오늘 부산공회(2)라는 일가를 이루고 있습니다. <br/><br/>불과 몇몇 사람이 모여 서목사님을 중심으로 시작했던 일인데, 서목사님이 불신임 받던 1992년 당시를 본다면, 적어도 공회적으로는 극단적으로 몰려서 아주 도말이 될 정도였습니다. 교수직 양성원장직 집회사회직 등 평소 서목사님이 당연직으로 가졌던 대형 간판들을 당시 공회 지도부는 휴지 하나 버리듯 쉽게 떼버릴 수 있었고 그럴 때마다 서목사님께 일편단심을 바치던 몇몇 목회자의 항의는 광화문 네거리에 고함지르는 미친 사람 하나처럼 취급을 받았습니다. <br/><br/>그러나 이 삐라는 씨앗이 되어 처음에는 허무한 것 같았고 또 그 내용도 철없는 사람의 화풀이로 알았는데, 자라서 나물이 되고 더 자라서 나무가 됩니다. 처음 몇명에서 출발했으나 10명이 넘었고 해를 거듭하자 15명이 넘었고 또 해를 거듭하자 20여명이 넘게 됩니다. 지금은 그 삐라범을 잡으라고 분노했던 최고 지도부 거의 전부가 그 삐라범(?)들이 중심이 된 부산공회(2)로 소속을 옮겨 그 밑에 지도를 받고 있습니다. <br/><br/>겨자씨 삐라는 그후 자라서 나무가 되매 씨앗 시절에 그 씨앗을 먹어치우던 새들이 이제 나무로 자란 그 나무의 그늘에 깃들이고 말년을 신세지면서 과거 그들의 그토록 고생했던 것을 탄압한 시절을 회고하며 미안한 표정으로 상대하고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그 삐라팀들을 부산공회(2)로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지만, 그 부산공회(2)는 자신들만이 유일한 총공회이고 백목사님 생전의 전통과 정통을 그대로 보유했으며 이곳과 다른 공회들은 총공회도 아니라고 하여 부산공회(2)가 제작한 총공회 주소록에서 이름까지 빼버리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까지 부산공회(2)에 가입은 하지 않았으나 그 삐라팀을 색출하던 사람들 중에서는 유독 부산공회(2)로 넘어오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삐라팀을 색출하던 분들 중에 남은 분들로 이루어진 부산공회(1)은 부산공회(2)에서 총공회 주소록에 포함을 시키고 있습니다. <br/><br/><br/>2.질문 내용과 직접 관련된 것에 몇 가지 답변을 드린다면<br/><br/>①삐라 사건 때문에 시험들었던 것은, 이곳에서 동정하지 않습니다.<br/><br/>옳고 그른 것이 문제입니다. 물론 옳은 것이 그 방편까지도 좋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이 땅 위에 있는 한 옳은 길을 붙잡을 수는 있지만 그 시행과정에서 나타나는 방편상 문제점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잘해 보려고 해도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심지어 이스라엘의 국권 회복을 위해서 예수님이 사용하는 방편은 너무 유약하다 해서 가룟유다가 시험에 들었다고 초대교회사가 전하는 정도입니다. 예수님의 행동을 두고도 시험에 들 수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br/><br/>궁극적인 해결책은, 나 자체가 시험에 들지 않는 신앙이 되면 시험을 이기게 되고, 이렇게 이겨야만 그 시험 때문에 더 좋은 신앙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 때문에 시험 들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그 사람 원하는 대로 다 해 준다 해도 그 사람 마음 자체가 이리 저리 변동을 하기 때문에 결국은 또 다른 종류의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br/><br/>물론 질문자께서 시험에 들었던 것은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또 다른 사람을 시험에 들게 한 사람이 만일 자기 잘못 때문에 상대방이 시험에 들었다면 질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 책임이 정말로 큽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본다면, 시험에 관한 것은 본인이 시험에 들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점을 잘 살펴주셨으면 합니다. <br/><br/>한 말씀 더 드리자면 아마 하늘나라에 가서 결산을 하게 되면, 시험에 들게 했던 그 삐라팀과 그 삐라팀 때문에 시험에 들었던 분의 죄가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br/><br/><br/>②이곳이 그 삐라와 그 팀을 향해 가지는 태도는, 인본 인간놀음입니다. <br/><br/>지금 이 글을 적는 답변자의 답변 방향을 두고 혹 그 삐라 자체가 잘못 되었다고 읽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실은 그 삐라 자체가 잘못된 것이 중심되는 죄였고, 그 삐라를 뿌리는 방법은 그 인본주의 인간놀음의 결과이기 때문에 비판하고 있습니다. 복음 운동을 하다 보면 자기의 전할 바를 교권이 막을 때 삐라로 전해야 할 때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삐라팀이 사용했던 방편은 철없는 애들이 온 산에 불을 질러놓고 박수치는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br/><br/>이곳의 시각으로는 그 삐라팀에게 제일 크게 잘못된 점이 있다며 이는 그 삐라 활동으로 이루고자 했던 목표였습니다. 그분들의 당시 발언과 활동방향은 오로지 서목사님의 교권 확보였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서목사님이 서부교회 교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하고 나아가서는 공회도 서목사님이 장악을 해야 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시각이었습니다. 물론 서목사님의 발언과 행동과 처신은 흠도 없고 점도 없으며 그분은 마치 예수님과 같이 경배받을 분이었다는 자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행동을 두고 서목사님의 내면 자세는 알 길이 없으나, 일단 자신을 지지하고 살려내기 위해 뿌려졌던 그 삐라나 삐라범들을 비판한 이야기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br/><br/><br/>③겨자씨 삐라에 대한 서목사님의 태도<br/><br/>겨자씨 삐라는 평소 서목사님의 인품을 보아 삐라팀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키거나 동조할 리가 없다는 분들이 계십니다. 서목사님은 마치 이삭처럼 무언 중에 주님을 바라보는 분이며 매사 기도로만 해결하고 인간적으로 가볍게 움직이는 분이 결코 아니며 또한 기본에 충실한 양반 출신이라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자기가 잘한 것이나 자기가 잘난 것도 결코 내세우는 일이 없는 겸손한 분이며 동시에 또 남들 하는 일에 잘못된 것이 있다고 해도 일일이 따라 다니면서 지적하거나 말리거나 비판하는 성격도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진정한 의인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그 주변분들의 일반적인 설명입니다.<br/><br/>그러나 서목사님 반대측에서는, 그렇게 말이 없는 사람이면 왜 강단에 부정투표용지를 넣고 다니면 그 투표용지를 교인들에게 흔들어 보이면서 이렇게 죄를 짓고 투표한 것이 어떻게 무효가 아니냐며 자신을 변호했겠느냐고 반론을 하고 있습니다. 또 서목사님은 서목사님 부임 초기에 그분을 반대한 장집사님과 민사소송을 벌이기도 했고 또 자신을 불신임한 사람들을 끊임없이 비난했지 않느냐는 논리를 폅니다. 따라서 서목사님이 자신의 이름이 거론된 겨자씨에 대하여 침묵한 것은 자기 팀 조직원에 대한 보호요 그 행위에 대한 무언의 격려라고 그 반대측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br/><br/>또 시무투표 결과를 서목사님이 무효라고 거부한 이유는 아간 한 사람이 여리고성에서 몰래 숨긴 물건이 있었는데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체에 진노했으니 장집사님 한분의 부정선거는 한 사람의 행동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번 시무투표 자체가 무효라는 논리를 교역자회에서도 수없이 주장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 논리에 의하면 겨자씨 삐라를 뿌리는 사람도 역시 서목사님측 목회자와 교인들인데 그들의 죄는 비록 서목사님이 지시하지 않았다 해도 그들의 죄가 아간의 죄가 되어 서목사님과 그 쪽 전체가 범죄한 것이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br/><br/>그런데 장집사님의 부정선거는 서목사님 반대측에서도 정죄했고 비판을 했지만, 서목사님은 서목사님 지지세력들의 지지 삐라에 대하여 비판하고 정죄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행동이라고 비판합니다. <br/><br/>양측의 주장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떤 의도에서 나왔다 하는 것은 자세하게 알 수 없으나 짐작하는 일에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짐작은 지금 모두 밝혀지고 있습니다. <br/><br/>----------------------<br/>'겨자씨 삐라' 바로가기<br/>----------------------<br/><a href="javascript:onClick=openWindow('http://pcouncil.net/member/wblue/CrazyWWWBoard.cgi?db=gongjaryo&mode=read&num=55&page=8&ftype=6&fval=&backdepth=1 ','scrollbars=yes, resizable=yes, width=800, height=700,top=0,left=0')" leftmargin="0" marginheight="0" marginwidth="0" topmargin="0"><font color="blue">55번, -만화 그림 자료 첨부[사진] 02/02/02 <br/></font></a><br/><br/><br/>④오랜만에 참석한 집회에서 별 소요를 발견하지 못했는가요? 휴전선 철책을 보지 못한 모양입니다.<br/><br/>강단을 유심하게 본 사람들은 왜 저렇게 강단을 철책으로 두르고 철옹성으로 만들어 놓았는지 의아해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위에 소개한 겨자씨 삐라에서도 만화를 그려서 요새화된 강단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었습니다. <br/><br/>서목사님 반대측에서 강단을 완전 장악하게 되자 겨자씨팀들이 집회 강단을 습격할 것이라는 말이 있었고 그것을 막기 위해 각종 구조물로 강단 접근을 막아놓았습니다. 당시 거창 유지 한 분에게서 들은 이야기로 거창경찰서장이 집회장소에 양측의 대규모 폭행사건이 일어날 조짐이 있다 하여 현장을 방문하고 불상사가 없도록 특별히 주의조처를 했다는 것인데 그 경찰서장이 경비책임자를 보내어 말을 전했는지 자기가 직접 현장을 방문했는지는 확인치 못했습니다. <br/><br/>그러나 집회 강단의 그 철 구조물이 설치되고 나서는 더 이상 소요가 없었다고 이곳도 듣고 있습니다. 더 이상 소요가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당시는 삐라팀이 부산공회에서 극소수 야당이었고 재야 비슷한 입장이었기 때문에 극렬하게 화염병을 던지듯 삐라를 던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철 구조물을 설치하던 시점 이후로는 급격하게 세를 불려서 이제는 부산공회 전체를 통해 그 삐라팀이 주축이 된 부산공회(2)는 집권 여당이 된 정도입니다. <br/><br/>그 이후 지금까지는 부산공회(2)는 부산공회 전체를 주도할 수 있는 집권당이 되었다고 느끼게 되어 매사에 어른스러워진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부산공회의 대세를 잡은 이후부터는 반대측에 대하여 충돌보다는 설득을, 공격보다는 방어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부산공회 전체가 부산공회(2)를 중심으로 따를 것으로 보기 때문에 특별히 어린 사람의 신앙에 상처가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을 행정의 제일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br/><br/><br/>⑤마자막으로 겨자씨삐라에 치가 떨린다는 질문자의 자세는 꼭 바꾸셨으면 합니다.<br/><br/>성전을 둘러 엎었던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세례요한의 입은 거칠기 이루 말도 못했습니다. 과거 고신에서 예배당소송 때 활동한 백목사님 예화 하나를 밑에 첨부할 글에서 소개하겠습니다.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br/><br/>삐라를 뿌린 것이 문제가 아니라 부산공회(2)의 겨자씨팀 같이 그렇게 뿌리는 것은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그 속에 내용이 더 큰 문제입니다. 그것보다는 그 삐라에 관련된 분들의 평소 사상이 더 큰 문제입니다. 차라리 요들방정을 떨면서 난리를 부리는 사람이 끼치는 피해보다는 오히려 점잖은 사람으로 보이면서 '행위를 강조하면 율법주의가 된다'는 말을 흘리거나 아니면 조용하게 한 마디 건네는 말 속에 기독교 정치는 인간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말 한 두 마디는 그 피해가 측량을 못할 정도로 막심합니다. <br/><br/>어쨌든 질문자께서 이제 다시 공회 범위 내로 출입을 하신다니 반갑습니다. 이후로는 어떤 사람의 어떤 행동에도 자신의 신앙을 손해보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이번 질문에 답변을 다소 길게 한 것은 앞으로 출간될 백목사님 사후의 '총공회 신앙노선 역사'를 정리하기 위한 원고를 미리 적는다는 자세로 적었기 때문입니다. 혹 이 답변 내용에 근거가 되는 기초 사실에 착오가 있거나 또는 이 곳 시각에 반론이 계신 분들은 서슴없이 발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br/><br/>당시는 몇 사람 모여 앉아 낄낄거리며 장난삼아 겨자씨로 분풀이도 하고 재라도 뿌리자고 전공 교회를 한번 휘젓어 보았는데, 이것이 이제 세월이 지나면서 하나의 역사로 남게 되었다는 것을 이 글을 통해 새삼스럽게 느낄 분들이 계십니다. 바로, 당시 그 삐라에 관련된 분들입니다. 이제 당시 삐라 사건을 이곳에서 이렇게 소개를 하게 되었으니 당시 삐라를 뿌린 분들은 당시 심정 그대로 오늘도 자랑스러울런지? 오늘도 자랑스러워야 그 당시 투쟁이 진리투쟁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재론되는 이 문제를 두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또 얼굴이 뜨거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면, 자기들 양심이 자기들을 채찍질하고 있을 것입니다.<br/><br/>그래도 당시부터 늘 사용하는 표현을 가지고, '서로가 진리를 주장하는 과정에서 일부 심한 표현이 있었고.......' 또는 '물증을 가지고 와서 말을 해라..... 언제 어느 회의록에 있는지를 밝혀라..... ' 이런 식으로 가루고 지나간다면 예수님을 반대하다 죽이고, 죽였다가 그다음에는 부활할까봐 막아서고, 부활하자 시체 도적이라고 말을 바꾼 그 길에 서는 것입니다.<br/><br/>그때 겨자씨 삐라를 인쇄하고 뿌리느나라고 최일선에 나섰던 분들! 세상에 비밀이 있는가요? 그 활동한 분들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서 이미 그때 그 일에 관련된 조직 구성과 활동상은 환하게 밝혀져 있습니다.<br/><br/>언젠가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생겻 그때 상황이 완전 공개가 되기 전 지금이라도 먼저 회개하면 훨씬 나은 회개가 될 것입니다. 또 이곳의 발언과 자료 제시에 대하여도 지금 반박할 수 없다면, 이는 북쪽 공산당만도 못합니다. 그들은 지금도 할 말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남한 내에서도 그들의 논리를 적극 지원하는 사람들이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때 겨자씨 삐라 내용을 적은 분들이 익명으로라도 이곳에서 당시 그 내용이 어떻게 옳았으며 진실이었는지를 발언해 보셨으면 합니다.<br/><br/>혹 하나님께 맡기고 인간은 매사에 입을 닫는 것이 옳은 법이라는 소신 때문에 이곳 비판에 대응을 하지 않으시겠다면, 최소한 그 당시 입을 닫고 하나님께 맡길 일을 인간이 나서서 삐라로 전국에 뿌렸던 그 행동 자체는 회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br></br></br></br></br></br></br></br></br></br></br></br></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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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0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03.10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03.10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03.10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03.10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03.10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03.10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 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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