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KIST
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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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br/>1.남을 상대할 때 조심할 일을 간단하게 정리해 본다면<br><br>⑴다른 사람이나 다른 교회를 연구하는 이유는<br><br>①히12:1에서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br><br>성경은 한번 살다간 인물이나 교회들을 역사 기록에만 가두어놓지 않고 각 시대마다 지난 과거를 참고하여 각자 자기 현실에서 신앙에 증거를 삼고 그로 인하여 죄를 이기고 의를 건설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을 주님이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는 우리 앞서 걸어간 신앙걸음들을 구원과 멸망의 증거로 삼아야 합니다.<br><br><br>②고전10:11에서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 우리의 경계로 기록'했습니다. <br><br>광야 40년을 걸어간 구약 출애굽 이스라엘의 교회 생활은 그 한 걸음 한 사건 전부가 말세를 당한 우리에게 경계하시는 거울로 주셨다고 했습니다. 거울을 보면 내 얼굴이 보이듯이 광야 이스라엘을 보면 오늘 교회가 보입니다. 과거에 대한 단순한 추억과 기념 때문이 아니고 오늘 당장 우리 구원에 현재 진행되는 문제로 그 사건을 참고하라고 주셨습니다. <br><br><br>③계20:2에서 에덴동산 타락부터 말세 마지막까지 활동할 원수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br/><br/>옛뱀으로 마귀로 사단으로 이런 저런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결국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 존재는 에덴동산에서부터 말세 마지막까지 내나 동일한 악령입니다. 또한 성령도 그때부터 교회시대 끝까지 늘 동일한 그 성령입니다. 겉보기에는 등장인물과 배경과 사건 전개가 다 다른 것 같으나 내적으로는 동일하기 때문에 성령을 바로 알고 악령을 바로 알고 과거 전투와 실패와 승리를 바로 파악하면 어떤 종류의 신앙전투도 다 승리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이미 지나간 과거 전투의 승패를 살피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닥쳐지는 전투를 승리하는 첩경입니다. <br/><br/><br/>④성경은 다른 사람의 앞선 걸음을 살펴봐야 할 일을 너무 많이 말씀했습니다.<br/><br/>일일이 성구를 다 나열하지 않겠습니다. 출애굽 한 사건만을 두고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대로 내려가며 당시 사건 하나하나를 되새겨 늘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신앙은 과거 공로나 경력에 있지 않고 현재 현황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과거를 살피고 다른 사람을 살피는 것이 현재 현황에 필요하다면 과거 때문에 과거를 살피는 것이 아니고 현재 때문에 과거를 살피게 됩니다. 성경이 가르친 바이고 우리 현실 걸음에서도 남을 살피고 과거를 살피는 것은 너무 필요한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br/><br/><br/>⑵다른 사람을 살필 때 주의할 점은<br/><br/>①꼭같은 입장임을 알아야 합니다.<br/><br/>어떤 성자도 어떤 악인도 우리 인간은 누구나 원래 출신이 같습니다. 만든 하나님도 한 분이고 재료도 동일한 진흙밭의 동일한 천출입니다. 오늘 우리로서는 부럽게 쳐다만 봐야 할 그런 성자도 실은 우리와 모든 것이 동일하므로 우리도 그런 성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해야 하고, 어떤 악인과 죄인이라도 우리는 그 이상으로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겠습니다. <br/><br/><br/>②성자를 볼 때, 우리의 당면 목표가 바로 그 성자라야 합니다. <br/><br/>우리의 최종 목표는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그 최종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가 참고해야 하고 또 우리가 지나가야 하는 모습이 바로 그 성자들입니다. 성경에서 읽고 접한 성경의 성자들과 다른 역사 기록을 통해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성자들은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고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시는 샘플입니다. 만일 그 성자는 너무 우수해서 우리가 범접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바로 그를 지나치게 미화했고 우상화한 결과입니다. <br/><br/>성경과 역사에 전해지는 성자들은 내나 우리처럼 자신들 앞서 살던 성자들을 한없이 높게만 바라보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선 성자들이 쫓았던 주님을 그들이 쫓을 때 그들도 그리 되었고 또한 우리는 그런 분들을 보며 우리 역시 그들처럼 그들이 쫓은 주님을 쫓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과 우리는 출신이 같고 재료도 같고 못난 점도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못난 우리를 잘난 성자로 만드실 분은 오직 한 분 주님입니다. 순종 하나만으로 가는 길이고 순종 하나로 이루어질 일입니다. <br/><br/>다른 조건이 붙는다면 될 사람도 있고 안 될 사람도 있는데 오직 순종 하나만으로 된다 했으니 우리도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성자들만 못한 존재로 생을 마친다면 이는 조상탓이나 환경 탓이나 다른 것을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순종할 수도 있고 아니할 수도 있는데 그 두 가지 길에서 우리는 거역을 택했기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순종'을 성경은 주로 믿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br/><br/><br/>③앞선 성자들과 같아질 수는 있지만, 태도와 자세와 말 표현은 조심해야 합니다. <br/><br/>애비보다 나은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실제 일어난다 해도 어디까지나 아들은 아들이고 아버지는 아버지입니다. 앞선 성자보다 우리가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은 이론이면서도 실현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보다 앞선 선배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앞선 고난 걸음을 통해 우리는 쉽게 그들이 걸어간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감사해야 5계명입니다. 마땅한 일입니다. 그들이 또한 뒷서 걸어가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있으니 그 기도의 힘을 우리가 누리고 받고 있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br/><br/>결과적으로 우리가 그들보다 못한 신앙으로 끝날 수 있으니 그리 된다면 우리가 불충하고 순종을 즐겨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앞선 성자들과 같아진다면 또는 더 앞서 나간다면 이는 전적 주님의 은혜이지만 이 땅 위에 맺어주신 관계에서는 부모에 이은 자녀처럼, 뿌리와 둥치에 이어져 뻗어나간 가지처럼 감사해야 하고 그렇게 표현해야 하며 그렇게 조심해야 합니다. <br/><br/><br/>④탈선한 신앙실패자들을 볼 때, 우리가 바로 그리 될 수 있음을 실감해야 합니다. <br/><br/>우리에게 신앙에서 탈선하여 실패한 이들을 보여주시는 것은 우리 자신이 현재 한 발자욱만 잘못 딛으면 바로 그렇게 된다는 실황을 보여주고 있다고 깨달아야 합니다. 설마 그처럼 나쁜 사람이 되고 그처럼 신앙을 세상 무엇에 팔아먹는 일이야 하겠느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앞서 탈선한 그 사람도 내나 우리처럼 자기 앞선 선배의 탈선을 그렇게 생각했던 이입니다. <br/><br/>아담이 타락한 것이 우리에게 없는 악습과 악성이 더 많아서가 아니었으며 노아 때 죽은 모든 신앙실패자들이 오늘 우리보다 더 음란해서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자들 속에 악령이 오늘 우리를 노리고 있는 악령보다 한 수 위였기 때문이 아니라 내나 그 악령이 오늘 우리 속에도 들어와 노리고 있는 그 악령입니다. 우리는 역사에 살다간 모든 성자들을 뒤쫓아 그들보다 앞설 수 있는 동시에, 우리는 역사에 기록된 모든 죄악의 성도들보다 훨씬 능가하는 악인이 될 수 있는 말세지 말에 살고 있는 성도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br/><br/><br/>⑤앞선 신앙의 실패자들을 보며, 우리는 심판자가 되거나 남의 일보듯 즐기지 말아야 합니다. <br/><br/>앞선 신앙의 실패자를 심판하실 분은 주님 한 분입니다. 주님만이 심판하실 그 자리에 우리가 올라 앉으면 범성죄가 됩니다. 우리는 그들의 실패와 처벌과 그 훗날 후회를 잘 살펴서 내 차례가 될 때 나는 그렇게 되지 않겠다고 결심해야 하고 그들이 걸어가며 우리에게 흩뿌려 놓은 지뢰와 덪에 빠지지 않기 위해 실무적으로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한 그들에게 대한 동정과 긍휼을 가지는 것이 바른 자세일 것입니다. <br/><br/>물론, 그들 중에 우리가 신앙으로 투쟁하는 길에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의 방해가 현재 계속될 때는 우리는 그들과 마치 남이 보면 원수를 만나 투쟁하듯 그들을 비판해야 하고 그들의 주장이 잘못된 것을 지적해야 하며 그들의 결말이 비참하게 되었음을 공개하여 나를 따라 이 길을 가야 할 다른 이들에게 경계로 알려야 합니다. 이렇게 정면으로 비판하고 맞서 싸우는 이유는 그들이 돌아올 가능성이 없는 타고난 죄인이어서가 아니라 현재 그들의 행동이 구원의 길을 훼방하고 있기 때문에 그 훼방을 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행동에 대하여는 마치 전쟁에 맞붙은 적을 상대하는 그 이상으로 상대하되 다만 그들이 지옥을 가거나 저주를 받거나 돌아와서는 안 될 존재로 결정하거나 그런 결정을 즐기듯 하는 것은 심판주 하나님만 가질 수 있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일단 쳐들어온 적을 막되 우리도 삐뚤어지면 그리 될 수 있고 그들도 돌이키면 즉시 우리보다 앞설 수 있음을 동시에 알고 있어야 합니다. <br/><br/>신앙투쟁에서는 상대방 자체는 귀신이 아닌데도 그를 귀신으로 표현하고 그가 사탄이 아닌데도 사탄으로 지칭하여 온갖 표현을 다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바른 신앙을 반대하는 그 사람 자체가 귀신이 아니라 그가 귀신에게 붙들려 귀신의 도구가 되어 있는 그 면에 대하여 투쟁한다는 것은 구별해야 하며 이 면을 잊어버리면 긍휼없는 심판이 우리에게 임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br/><br/><br/>⑶현재 나의 신앙과 맞서 있는 곳을 살필 때는<br/><br/>①신사들 학자들 유교식 도덕주의자들을 삼가해야 합니다.<br/><br/>우리의 신앙투쟁은 세상에서 내가 죽고 양보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영원 후까지 계속될 문제입니다. 말씀 때문에 나를 탈선시키려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고 또 말씀 때문에 그들 인간 자체를 미워하지 않으려는 것인데, 세상식 신사들 학자들 유교식 도덕주의자들은 무작정 용서만이 능사인 줄 알고 큰 소리를 내거나 주먹을 휘두르면 무조건 죄인 줄 알지만, 구약에서는 창을 들어야 할 때도 많았고 신약에서는 육체 방법은 사용하지 못하지만 부모의 원수보다 더 원수로 삼아 그들과 죄와 의를 놓고 싸워야 할 일은 아주 산적해 있습니다. <br/><br/>예를 들면 오늘 교회를 통째로 삼키려고 인간적 사랑에 바탕을 두고 시작한 교회 사랑 교회 통합 운동으로 출발한 에큐메니칼 운동은 겉으로는 양의 탈이고 속에는 양을 삼키는 이리입니다. 이런 운동을 상대할 때도 우리는 그런 운동을 하는 교회나 지도자들을 향해서 그들이 믿는 하나님과 성경은 비판하지 않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잘못 팔아먹는 그 행동에 대하여는 독사를 때려 잡는 것보다 더 큰 힘과 용기와 사명감을 가지고 맞서야 합니다. 외부를 상대할 때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이 홈이 견지하는 백영희신앙노선 내에도 이 노선을 곁길로 가도록 했던 과거사가 있었기 때문에 17년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까지 당시 기록을 되살펴 다시는 그런 유혹과 강압이 이 신앙노선에 통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속에서 나를 과거 죄짓게 했던 나의 옛사람과 더불어 싸우는 일은 이 모든 원수들보다 더 큰 원수로 싸워야 할 우리의 적입니다. <br/><br/>이곳은 이곳이 옳다고 생각하고 노력하는 신앙노선을 반대하고 훼방하는 곳을 향해서 거침없이 표현하고 맞서 왔습니다. 이곳이 그렇게 노력하는 것을 보고 세상의 신사와 숙녀들, 세상에게 칭찬을 받을 분들, 그리고 유교식 공맹사상가들은 이곳의 언행이 너무 비복음적이고 호전적이며 파괴적이라고 비판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곳은 그런 분들을 상대할 때마다 이 노선을 곁길로 돌리던 그 당시 좀더 크게 외치지 못하고 좀더 피흘려 싸우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는 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양심은 지식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공맹의 지식을 가진 분들은 덮어놓고 목소리가 크면 쌍놈이라고 하겠지만 이곳의 지식은 큰소리를 내야 할 때가 있고 내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고 알기 때문에 큰소리 자체만을 가지고는 비복음적이라는 생각을 아예 하지를 않습니다. <br/><br/><br/>②성령으로 시작했으나 육체로 마치는 경우를 삼가 경계하고 꾸준히 살펴야 합니다. <br/><br/>복음을 위해 투쟁하다 보면 고성방가를 해야 할 때도 있고 회의장 사회석을 끌어 엎어버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주일 예배보고 나오는 이들에게 일일이 사건의 전개 상황을 알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신약 시대는 그렇게 할 일이 전혀 없다고 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그런 분들은 이곳과 걸어가는 신앙노선이 달라서 그렇습니다. 같은 성경을 가지고도 읽는 시각이 달라서 그렇습니다. 이곳은 과연 그렇게 해야 했느냐는 문제로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하되 훗날 미래 세월이 지난 뒤에도 오늘의 그 행동은 과연 주님의 뜻이었기 때문에 주님 앞에 그 일로 인하여 상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그때는 깜빡 그만 실수를 했다고 뒷머리를 긁으며 끝내버릴 일이지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br/><br/>보통 옳은 노선에 있는 이들은 처음에 꼭 행동해야 할 일 때문에 행동을 하게 되는데 이 초기의 행동 때문에 그후 주님을 잊어버리고 자기들의 폭행과 횡패는 늘 주님이 충성으로 보시는 진압행위라고 착각하여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고신은 고신의 진리운동 내내 과격한 언행심사가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초창기 과격한 행동들은 너무 은혜롭고 성령의 능력이었다고 되새겨지는 부분이 많은데 1950년대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이것은 고집이고 아집이며 막가는 행동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사례가 너무 많이 발생하게 됩니다. <br/><br/><br/>③할 만큼 하고, 나머지는 맡겨야만 신앙입니다. 인간이 끝까지 나가면 곤란합니다.<br/><br/>외칠 때가 있고 쪼갤 때도 있으며, 육두문자로 욕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행동은 세상 도덕주의가 볼 때는 성경이 금한 욕설로 보이고 그리스도의 몸을 쪼갠 죄로 보겠지만, 신앙인들의 눈에는 주님의 몸을 마저 다 쪼개 내는 일을 막고자 몸부림치는 충성이며 절규로 보일 것입니다. <br/><br/>문제는 거의 모든 사건과 상황에서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이 다 하도록 하나님께서 완전히 숨어버리는 경우는 드뭅니다. 우리를 가르치고 기르기 위해 우리에게 다 맡긴 듯 시작하시지만 곳곳에서 또 어느 단계가 지나가면 하나님께서 이제 잠잠하라고 조처하시고 직접 마무리를 지으며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로 난 일임을 알리시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br/><br/>말씀 때문에 신앙양심 때문에 할 만큼 하고 그 이상은 할 수가 없는 선이 나타날 때, 신본의 신앙은 나머지를 맡기고 그 자리에서 멈추어 서지만 인본의 신앙은 인간적 예견과 판단으로 그 마무리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다가 실패하는 것을 너무 자주 보게 됩니다. 평양총회에서 신사참배가 가결될 때 사회보던 총회장을 향해 모두들 신사가 되어 입을 다물고 소리를 내지 못할 때 한부선선교사는 고성으로 항의를 하다가 장내소란죄로 일본경찰에게 붙들려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고성방가를 할 때가 있을 때는 그렇게 했으나 더 이상 그렇게 한다고 되지 않고 그런 기회를 하나님께서 주지 않았다고 판단할 때는 묵묵히 남은 때를 감옥에서 그리고 고국에서 보냈고 해방 된 후 다시 이 나라로 돌아왔을 때는 그는 또 다시 외칠 때가 있었습니다. <br/><br/><br/><br/>2.자기가 직접 상대하는 사람을 대할 때 <br/><br/>⑴자기 신앙에 맞서고 훼방하는 사람을 상대할 때<br/><br/>①원수를 사랑하는 말씀을 기억하여, 끝까지 옳고 그른 것을 따져야 합니다.<br/><br/>원수가 나를 때리는 죄를 지을 때 이 뺨 저 뺨을 내대주어 더욱 죄를 많이 짓도록 하는 것은 사랑의 의미를 잘못 깨달은 경우입니다. 이런 점에서 현재 손양원목사님의 원수 사랑이라는 예화는 아주 반대로 사용되는 경우가 거의 전부입니다. 그로 하여금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게 하려고 하니까 그를 믿게 만드는 길 밖에 없었고 그가 죽으면 그가 죄와 싸울 기회가 없기 때문에 그를 구명했던 것입니다. <br/><br/>성경의 사랑은 예수님의 구원입니다. 안 믿는 사람을 믿게 하고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 잘 믿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한 마디로 죄를 줄이게 하고 의를 늘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거지에게 동냥을 줘서 그가 더 게을러졌다면 동냥 준 그 행위가 사랑일지 미움일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대개 세상은 사회사업 구제사업 교육사업을 사랑이라고 하는데 이 노선은 그런 사상을 이단적 발상이라며 반대하고 있습니다.<br/><br/>우리가 믿고 나갈 때 혹 신앙노선이 맞서고 서로 투쟁해야 하는 문제가 생길 때 조심할 것은, 나든 상대방이든 누가 돈을 챙기고 누가 세상 이권을 확보하게 되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어느 길이 옳은 의의 길이며 어느 길이 가서는 안 될 죄의 길인지를 따지고 연구하여 내가 돌이키든 상대방이 돌이키든 옳고 틀린 것을 구별한 다음 잘못된 쪽에서 옳은 곳으로 서게 하는 것만이 사랑입니다. 따라서 교회 싸움에서 누가 큰소리를 냈느냐는 것은 불신자들이나 어린 신앙이 볼 때 멋모르고 오해할까 해서 조심할 정도의 일반 사항이고 어느 쪽의 길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냐는 문제를 놓고 말씀에 비추어 정확성을 찾는 것이 가장 본질적인 사안입니다.<br/><br/>그렇다면 옳은 길을 찾는 노력이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고 옳은 길을 찾았다면 상대방에게 그렇게 전하고 설득하는 것이 사랑이며 마침내 원수가 그 길을 함께 걸어가게 되었다면 최고의 사랑입니다. 아무리 전해도 그가 거절하면 나머지 문제는 주님께 맡겨놓을 일입니다. 대개 이런 문제가 생기면 옳고 그른 것을 계속해서 따지면 목소리가 높아지고 상대방이 화를 낼 것인데 그리 되면 그것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에 틀린 행동인 줄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만일 옳고 그른 것을 따지지 않고 덮어놓고 상대방 비위만 맞추려고 옳은 것을 찾는 노력을 포기한다면 이는 원수를 더욱 미워하는 일이요 자신까지 미워하는 큰 범죄가 됩니다. <br/><br/><br/>②옳고 그른 것은 따지되, 말과 행동은 최대한 조심하고 배려해야 할 것입니다. <br/><br/>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것이 너무 중요하고 이것이 생사를 갈리게 만드는 것이므로 이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본질적인 문제 외에 다른 사소한 것으로는 서로 다른 오해가 없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말소리도 낮은 것이 좋고 말투도 겸손한 것이 좋으며 인사도 먼저 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이런 행동을 통해 상대방의 틀린 주장이 옳은 것으로 인정한다는 오해는 없도록 하고 오직 옳고 그른 것을 따지고 그것만 집중하기 위해 다른 모든 이권과 문제는 뒤로 미룬다는 자세로 보여져야 옳습니다. <br/><br/><br/><br/>③한 가지 기억할 것은, 어떤 상대방에게서도 그에게 주신 장점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br/><br/>도둑에게도 부지런한 것은 배워야 하고, 여호와의 증인에게서도 전도의 열심은 존경해야 하며, 산속에 파묻혀 있는 중들에게도 그들이 차지 하고 있는 절터가 기도원이나 집회장소를 하면 좋겠다며 그들이 우리 앞서 차지한 자연경관과 지형 선택에 대하여는 부러움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꽃 하나를 보고도 배울 것이 있고, 태풍을 보면서도 우리는 크게 배울 것이 많습니다. <br/><br/>롬12:10-12에서 서로 먼저 존경하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비록 신앙노선이 달라서 가는 방향은 다르지만 우리는 접촉하는 상대방과 더불어 어느 길이 더 옳으냐는 것을 따지면서 동시에 그가 비록 틀린 길을 갈지라도 그이 속에 가지고 있는 그이의 장점을 발견하고 그 장점에 대하여는 존경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 장점은 주님이 주신 은혜이니 그 면을 부러워하는 것은 주님의 은혜를 부러워하는 것이니 곧 주님을 향한 소망 때문에 그리 해야 합니다. 천국에서 한 몸으로 영원히 살아가도록 이 땅에서 우리를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한 존재에게 필요한 것을 그에게 바로 다 주지 않으시고 주변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 맡겨놓고 그들을 통해 배우고 찾아가게 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상대방으로 인하여 내가 신세질 것이 있음을 알게 하고 나 역시 내가 가진 것으로 상대방에게 전달해야 할 것이 있음을 알게 해서 얽히고 섥히도록 했습니다. 이 얽고 섥은 것이 도저히 분리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우리는 유기적인 연결이라고 표현하게 됩니다. 오늘 세상에서 그렇게 되어진 것만 우리가 죽을 때 천국에 가져가고 그렇게 연결되어 한 몸이 되는 일에 불편하거나 이색된 것이 있다면 죽을 때 다 제거되어 지옥으로 분리 수거 소각됩니다. <br/><br/><br/>⑵자기가 신앙으로 존경하고 배우는 사람을 상대할 때<br/><br/>①존경하는 사람을 우상으로 섬기는 극단적인 경우 때문에 존경하기를 주저하면 안 됩니다.<br/><br/>천주교가 교황을 우상으로 섬기다 망했다는 것은 역사의 상식입니다. 미개하던 시절에는 이런 일이 너무 크게 교회를 휩쓸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사가들은 어느 개인에 대한 존경의 표시가 몇 번 계속되면 천주교가 될까 해서 역사를 거론하며 말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역사신학자들은 책 속에 박제가 된 경우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과거 역사를 통해 현재 조심할 것을 찾되 오늘은 천주교 교황우상주의가 그 모습으로 그대로 나타나지 않고 과학우상주의 돈우상주의 기술우상주의로 모양을 바꾸어 나타나고 있습니다.<br/><br/>오히려 현 교계에는 존경할 사람이 없고 또 존경할 사람이 있다 해도 5계명의 의미를 아지 못하는 시대가 되어 과거 천주교는 5계명을 지나치게 발전시켜 우상화를 통해 교회를 죽였다면 오늘은 5계명을 완전히 파묻어버려서 감사라는 단어를 없애버렸고 과거 수고한 선배에 대한 고마움도 다 잊어버려 이제는 가지가 자기 둥치나 뿌리를 캐낸다고 온 나라가 난리고 온 교계가 그런 일에 혈안이 되어 있으며 가정에서는 현대판 고려장이 횡행하여 제 부모를 요양시설이나 병원으로 보내버리고 있는 5계명적 말세지 말입니다. 5계명을 바로 지켜 복을 받아야 하는 우리에게 5계명의 복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을 정도로 만들었습니다. 미개하던 시절은 존경할 만큼 존경하고 말아야 하는데 우상이 되도록 지나쳤고, 오늘은 존경할 만큼은 존경해야 하는데 은혜를 모르고 감사를 모르는 시대여서 우상이 될까 한다는 명목으로 오히려 존경을 뿌리채 없애는 면으로 치우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좌로 치우쳐도 죄지만 우로 치우쳐도 죄가 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따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오직 진리만 따라 갑니다. <br/><br/>마땅히 공경할 자에게는 딤전6:1에서 심지어 종이 자기 주인에게도 그렇게 해야 하는데 하물며 신앙으로 신세를 지고 배우면서도 육으로 고맙게 한 사람에게 감사하는 것보다 더 감사하지 못한다면 이는 패역이요 망령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육체를 만든 것도 하나님이지만 부모를 사용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우리는 부모에게 생명을 다해서 극진하게 감사를 표하고 언행도 조심하게 됩니다. 신앙으로 우리를 기른 것은 하나님이시나 사람을 통해 사람을 기르시면서 기르는 일에 수고한 사람에게 신앙의 선배로 부모로 표현을 했으니 육의 관계로 표현한 것은 육의 관계를 가지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많은 자세와 행동을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br/><br/>단 10년만에 설교 5천개가 이 정도 내용과 완성도로 우리에게 전해졌다면 이는 역사에 거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 정도의 수고에 합당한 존경은 마땅히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칼빈 이후 5백여 년간 교리가 앞으로 나가지를 못했는데 다시 진일보 시켰다면 이는 5백여 년만의 쾌거라는 차원에서 기념하고 감사하고 알아주고 그렇게 소개해야 옳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br/><br/>오늘 극소수 일부 우상화로 나가는 사이비교주들 때문에, 주님 앞에 마땅히 감사하고 존경할 지도자나 신앙선배에게 천하없이 못할 일을 하는 일들이 교계 안팎에 너무 많이 팽배해 있습니다. 물론 답변자도 목회자 된 입장이므로 우선 우리 목회자들 스스로를 살핀다면 목회자가 없다고 할 만큼 목회자의 탈선이 교회 탈선에 앞서 극에 이른 시대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숨겨놓은 종들이 있어 그래도 더러 존경할 만한 이들이 있는데도 천주교 우상이라는 표현을 써먹으면서 배은하기를 밥먹듯이 하는 것이 오늘 교인된 분들의 크나큰 부패상입니다. <br/><br/>비록 부모가 먹여주지 못하고 공부시켜 주지 못했을지라도 자식이 부모를 칠 수는 없는 것인데, 요즘처럼 집집마다 왕자요 공주처럼 자식을 길러놓는데도 효도는 전멸을 한 정도이고 고생한 부모가 자식 눈치를 보는 참으로 묘한 세상입니다. 이것이 세상만의 현상에 그치는 것인지 아니면 교회의 은혜기관과 교인 사이에도 그런 것인지 살펴볼 일입니다. 오늘 세상은 기본적으로 은혜라는 단어와 은혜에 대한 감사라는 개념이 거의 실종 된 시대라고 하겠습니다. <br/><br/><br/>②비록 천주교 우상을 만들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존경할 이들을 향해 조심할 것이 있다면<br/><br/>앞에서 설명한 대로 천하없는 성자라도 우리는 그 성자를 성자로 만든 전능자를 우리 속에 그대로 모시고 있기 때문에 나도 그리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성자라도 우리가 본받을 수 없는 성자는 없고 우리가 그의 행동과 같은 차원에 올라서지 못할 선행은 없으며 우리가 그 성자보다 더 주님을 따르게 되면 우리가 그 성자보다 더 낫게 되지 않을 성자는 없습니다. <br/><br/>현실적으로 우리 신앙 전면적으로 그렇게 된다는 것은 어려울지 몰라도 어느 한 면으로는 각자에게 특별히 주신 장점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성자라 해도 그 성자에게서 배우고 참고하여 그 성자가 뒤쫓아간 주님을 따라 그 성자처럼 또는 그 성자보다 더 앞선 신앙이 되도록 소망을 가졌으면 합니다. 다만 그런 표현을 밖으로 하는 것은 마치 잘난 자식이 못난 부모를 능가해서 출세를 했다 해도 제 부모를 상대로 자꾸 비교하는 것은 그 비교가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틀린 것이 아니라 뻔히 아는 일을 자꾸 반복하여 결과적으로 그 부모를 바보로 무능한 존재로 각인시키는 그 결과가 틀린 것이니 이는 비판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br/><br/>마땅히 존경할 점을 존경하면서도 그 존경할 분과 그 분의 장점은 바로 주님이 그를 붙들고 역사하셔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겉으로는 남들이 오해를 하거나 말거나 극진하게 존경하고 부러워하고 소망을 가지되 속으로는 두말할 필요 없이 그를 성자로 만든 주님을 응시하는 시각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런 말은 쓸 필요도 없는 상식인데 이런 내용을 적지 않으면 이곳을 반대하는 분들이 백목사님에 대한 존경이 지나치다고 이곳을 훼방하여 그들의 목적이 달성될까 해서 참으로 반복하기 싫은 설명을 또 하게 됩니다. 질문자와 같이 이 홈을 아끼는 분들에게는 이런 설명을 드리는 것 자체가 송구스럽습니다.<br/><br/><br/>③참으로 조심할 것 중에 조심할 것은 창세기 9장의 노아 세 아들의 경우입니다. <br/><br/>노아가 벌거벗고 잠을 자는 실수를 했습니다.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실수였습니다. 문제는 그 노아의 단점을 두고 둘째 아들 함은 사실을 사실대로 지적했는데 흑인의 조상으로 오늘까지 그 멸망과 저주의 차원이 비교할 대상이 없는 정도입니다. 내나 그 실수한 장면을 두고 옷을 어깨에 걸쳐 메고 뒷걸음 쳐서 노아의 단점을 덮은 셈과 야벳은 그 자리에서 축복을 받아 셈은 신앙의 복을 그리고 야벳은 세상 복을 받았습니다. 오늘까지 백인들이 받아가지는 세상적 실력이 부럽다면 야벳처럼 조심하면 되고, 오늘까지 황인종들이 받아가지는 신앙의 중심 위치가 부러우면 야벳보다는 셈과 같은 사람이 되면 됩니다. <br/><br/>이곳이 백목사님을 상대하는 자세와 표현을 두고, 공회 내에서는 이곳이 백목사님을 너무 무시하고 제 잘난 점만 부각한다며 이곳 답변자가 너무 일찍 변절한 사람이고 백목사님의 이름을 악용하여 제 이름을 높인다고 비판한 경우가 엄청나게 많았음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지금은 그분들과 10여 년 이상 접촉하지 않고 살기 때문에 그런 말들을 직접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시 그분들에게 직접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답변자 속으로는 그때나 지금이나 세월이 10년씩 몇 번 흘러가고 나면 열매가 뚜렷하게 드러날 터라고 생각해왔습니다. <br/><br/>또 공회 내에서 이곳을 그렇게 비판하는 분들과 반대쪽으로 나가는 분들은 이곳에서 백목사님을 지나치게 미화한다며 천주교라는 표현과 우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의 표현은 너무도 억지 소리라는 것을 자료를 통해서라도 이곳은 증명할 수가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손양원목사님 주기철목사님이 완전자는 아니었을 터인데 왜 그분들의 단점 연구에 대한 발표는 단 한번도 들을 수가 없는 것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있다면 그것은 기독교 반대주의자들이거나 아니면 자유주의신앙가들일 것입니다. 그들과 같은 신앙노선을 걷는 이들이 그들을 비판하는 소리는 들어보지를 못했습니다.<br/><br/>어느 홈이든 어느 교단이든 어느 교회든 존경할 사람이 없어 사실 전시할 인물이 없는 것이 현 우리가 살고 있는 교계의 현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신앙으로 본받아야 할 어느 인물이 있다면 어느 교회 어느 교단 홈에서든지 남보다 조금이라도 뛰어난 점이 있다면 그들을 기리고 그들의 장점과 이력을 나열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하다 못해 그런 과거 인물이 없다면 현 담임목사나 총회장에 대하여 지나온 과거를 소개하고 있는데 어느 홈에서도 현 담임목회자나 교단임원의 약력에 그들의 약점과 단점 또는 오해받아서 비판받았던 사항을 나열하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표현했다 해서 그것이 지나친 미화라고 지적받는 것도 보지를 못했습니다. <br/><br/>어느 교회의 홈에서 그 교회 초대 설립자나 중간의 공로자나 또는 현 담임 목회자를 소개하는 자리에 그의 장점만 나열한다 해도 읽는 사람으로서 그 장점 나열이 그에게 단점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하는 이도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이 홈에서는 현재 백목사님의 장점을 소개해서 우리가 본받고 참고할 점도 많은데 왜 단점을 함께 연구하지 않느냐고 말한다면 너무 심한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장점이라고 소개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이 바로 단점이라는 것은 누구든 상식적으로 다 알고 있지 않은지요?<br/><br/><br/>3.질문하신 '백목사님 단점'에 대한 발표나 연구에 대하여 답변을 집중하겠습니다. <br/><br/>①지금 백목사님 관련 단점은 이곳 홈의 5천개 설교 어디를 봐도 환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br/><br/>그런데 굳이 그것을 요약해서 알기 쉽게 알려야 한다면, 그것은 너무 지나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 홈에 적대적인 분이 이 홈을 훼방할 목적으로만 말했다면 한 마디로 반론하여 마무리를 하겠지만, 현재 질문하신 분은 답변자도 과거에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던 것처럼 이 홈을 이용하는 분들 중에 자연스럽게 생각해 본 것을 그냥 적었기 때문에 열심히 이해가 되도록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br/><br/>백목사님 설교 어느 한 편을 읽어봐도 백목사님의 무식과 무지는 단번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 문장에 주어가 없이 그냥 말을 마무리하거나 A 로 시작해서 B 로 끝나는 서술 때문에 몇 번을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다는 불평들이 적지를 않습니다. 요즘 기준으로 말한다면 신학교 입학 자격에서도 탈락시킬 목회자입니다. 실제 백목사님은 고려신학교 입학시험 때 글을 너무 적지 못한다 해서 탈락을 당했는데 아는 분의 빽으로 들어갔습니다. 설교록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현재 부산공회(2)에서 작성하고 공시한 백목사님 이력에 보면 25세에 믿었다며 그 연대를 1934년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공회 정식 홈에 백목사님 이력을 연대까지 명확하게 밝힌 이유는 설교록에 25세 때 믿었다는 표현이 너무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br/><br/>물론 이런 면을 이 홈에서는 자신의 과거도 돌보지 않고 앞으로만 달려갔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 표현은 양심적이고 사실이라고 생각하나 그것은 답변자 기준이고, 답변자와 반대 입장에 있는 분들이 볼 때는 제 나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수학과 과학보다 더 정확한 영의 세계를 논하느냐며 비판을 할 것입니다. 설교록에서 백목사님이 그토록 훌륭한 신앙가라고 칭찬했던 백태영목사님과 수많은 신앙가들이 훗날 말할 수 없는 탈선에 이른 것을 보면 백목사님의 영안은 분명히 잘못 된 것 아닌가요?<br/><br/>바로 이런 면 때문에 공회 내부의 3분지 2 이상 되는 사람들이 탈퇴를 했으니 질문자께서 지적하신 대로 이런 면은 전부 백목사님이 목회자로서 교계지도자로서 반타작도 하지 못한 실패자라는 증거이고 그런 것을 설교록에 스스로 그렇게 많이 적어놓고 발표하게 했으니 그런 것을 따로 연구하거나 정리를 해야 할 필요가 과연 있겠느냐는 생각입니다. 특히 이 홈의 /초기화면/총공회/내부자료/내부문답/내부발언/내부총공회기록/ 등에는 총공회의 못난 점들과 백목사님에 대한 공격이 아무 제한도 없이 그대로 다 공개되고 있습니다. 답변자가 알기로 이 정도라면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다 할 만큼 백목사님 비하 행위입니다. 그런데도 굳이 그것을 또 한 곳에 모아서 요약하고 소개한다면 그것은 함이 할 일이지 셈이나 야벳이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br/><br/><br/>②그래도 단점을 종합적으로 요약 정리해야 후배들에게 참고가 되지 않겠느냐 하시겠지만<br/><br/>문제는 지금까지 답변자가 들어온 백목사님의 단점은 적어도 답변자에게는 단점이 아니라 너무 존경할 장점입니다. 따라서 그 장점을 장점이라고 표현하면 미화가 지나친다고 또 비판할 것이고 이미 시험에 든 분들이 더 깊은 시험에 들 것이니 그들이 점점 더 그렇게 되시라고 굳이 그분들이 단점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때마다 구체적으로 표현한 그 부분만 해명하지 그들이 말하지도 않은 전체면을 다 정리해서 그렇게 설명하는 것은 망설이고 있습니다. <br/><br/>혹시, 그들이 잘못 알고 있는 단점 외에 백목사님에게 있는 진짜 단점이 있다면 그 단점을 요약 소개하라는 뜻이라는 것이라면? 그것은 답변자가 함과 같은 길을 걷지 않고 셈과 같은 길을 걸어 복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 단점이 남들에게 표시가 나지 않고 발견되기 전에 답변자가 먼저 옷을 어깨에 메고 뒷걸음 쳐서 얼른 덮어버려야 그것이 성경이 아니겠는지요?<br/><br/>단정하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없지는 않습니다. <br/>그런데 거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가까이 모시면서 단점이 수도 없이 많은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답변자가 생각했던 백목사님의 단점이나 실수 또 목회자들 사이에 수없이 입으로 전해지던 그런 단점들은 알고 보니까 완전히 거꾸로 되었습니다. 그래서 1982년 답변자가 서부교회 직원으로 들어간 뒤로부터는 백목사님을 가까이 모신 직원들이나 측근들의 입에서 백목사님에게서 발견했다는 백목사님의 비리 단점 흑막 실수 등에 대한 뒷말들이 황급하게 꼬리를 감추었고 아직까지 답변자가 알기로는 백목사님에 대하여 비판한 것이 답변자 선을 넘어서지는 못했습니다. 백목사님을 아주 개인적으로 잘 알고 심지어 답변자보다 더 잘 아는 이들까지도 백목사님에 대한 비판이 있을 때 답변자가 듣고 아는 대로는 대화해 보지 않은 경우가 없었는데 그때마다 너무 상대방의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에 그들이 말문을 다 닫고 말았습니다. <br/><br/>자꾸 설명을 하다보면, 이 설명 자체가 또 하나의 시비가 될까 해서 대충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질문자의 지적이 질문자 한 분의 지적이면 개인적으로 만나 뵐 기회를 마련하여 따로 설명하거나 아니면 질문자께는 죄송해도 좀 심한 말 한 두 마디로 마무리를 했으면 합니다. 그러나 질문자와 같이 듣고 아는 분들이 부산공회(2)와 대구공회 그리고 서울공회의 전부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분들이 최근 이곳을 많이 방문하고 있고 그분들 중에서 답변자와 백목사님이 잘못 한 일을 두고 답변자가 듣고 직접 따졌든 분들 뿐이면 재론할 필요도 없는데 일반 교인들이나 일반 교역자들의 경우는 거의 다 답변자와 이런 문제로 직접 대화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질문자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문답을 통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수정노선 대부분의 분들을 향해 한번 총평을 하는 것과 같은 생각으로 설명을 드리고 있습니다.<br/><br/><br/>③백번 양보해서 꼭 그 단점을 살펴야 된다고 해도 순서가 있습니다.<br/><br/>원수에게서도 먼저 그 사람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먼저 찾고 배우는 것이 옳습니다. 지금 당장 자기 신앙을 훼방한다면 그 훼방에 넘어가지 않도록 버텨야 하고 싸워야 하지만 그렇게 급박한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는 나를 훼방할 반대측에게서도 그의 단점과 그에게서 존경할 점을 먼저 찾는 것이 옳은데, 하물며 자기가 부모처럼 따르고 배우고 그로 인하여 양육을 받는 사이라고 한다면 우선 그에게서 본받아야 할 점들을 먼저 연구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br/><br/>혹 이 홈에서는 백목사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지극한 분들이 적지 않게 방문하고 있으므로 그분들만 모인 자리라고 한다면 이곳은 백목사님에 대한 단점 연구도 해 볼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나 방문하는 이곳에서 이미 5천여 개 기초자료를 통해 그분의 단점과 잘못된 점이 생생하게 공개 된 상태에서 그분의 단점을 따로 모아 정리했을 때, 혹 이 홈 중에서도 하필 그 자료를 먼저 관찰하게 되는 어린 신앙의 사람이 있다면 이 홈은 조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br/><br/>더구나 이번 질문자께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이미 공회 내부에서는 백목사님에 대하여 그가 잘한 것은 전부 매도해서 매장해버렸고 그대신 그에게 그런 단점이 없는 것을 만들어서까지 대규모 세뇌교육을 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는 따로 토론할 기회나 질문이 있다면 얼마든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사실 1989년 백목사님 사후 대구공회에서 '백영희'라는 이름에다 대고 직접 욕을 한 것은 남한에서 현재 김일성을 욕하는 것보다 몇 배나 더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br/><br/>백목사님에 대한 장점은 거의 알지를 못하고 백목사님에 대한 단점은 없는 것까지도 만들어서 유포하고 그것이 상식이 되고 자기들만이 아는 무슨 특별한 비밀처럼 되어 있는 이런 상황에서 이 홈이 백목사님을 객관적이고 냉정한 자세로 평가하여 점수를 매긴 것이 그들에게는 너무 후하게 보이게 되자 지나친 미화라거나 우상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 /초기화면/총공회/남단에서2/에서 어느 외부인이 그런 지적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분께는 여러 면으로 양해를 구한 적이 있으나 적어도 총공회 내부인들끼리만 이야기를 한다면 백목사님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분을 답변자는 거의 보지를 못했고, 그대신 백목사님에게 덮어씌운 죄와 조작해서 누명을 씌운 단점들은 산더미와 같습니다. <br/><br/>따라서 총공회 내부에서 수정노선에 계신 분들은 이 홈을 통해 백목사님에 관하여 너무 잘못 듣고 잘못 기억하고 있는 점을 일부 해소할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외부인들의 경우 현재 이 홈은 너무 황감할 정도로 백목사님에 대한 극진한 표현과 이 홈의 수고에 대한 인사를 받고 있어 전반적으로 이곳이 지나치게 미화하여 외부인들에게 역작용이 되는 면은 아직까지 그렇게 큰 문제로 부각되는 정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br/><br/><br/>④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br/><br/>백목사님의 자녀들이 미국으로 가게 된 것은 백목사님 자녀들의 결혼을 서부교회 핵심 권사님들이 막고 나섰던 역사를 설명해야 하는데 그렇게 된다면 부산공회(2)의 핵심교인들이 1960년대 초반에 백목사님 자녀들의 혼사까지 훼방하고 나섰던 행동을 설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정도에서 그 설명은 그쳤으면 합니다. 더 이상 그 문제를 설명하게 되면 적어도 그 문제에 관하여서는 백목사님과 그 가정은 당시 너무 견딜 수 없는 고난을 겪었으므로 그 고통사가 알려져야 합니다. 그대신 오늘 서부교회와 총공회 전체의 어른으로 평가되는 분들은 당시 백목사님 사례까지 끊고 사택식구들이 약 1년간 서부교회에서 생활비를 받지 못하도록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활하도록 만들었던 과거사가 다 나오게 됩니다. <br/><br/>현재 1960년대 초반까지 서부교회의 핵심 교인으로 있었던 분들은 이 문제만 나오면 갑자기 얼굴 인상이 돌변해 버리는 정도인데, 굳이 더 이상 설명하는 것은 이 자리에서 할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대신 곧 출간 될 백목사님 전기에서 알 만한 분은 짐작할 수 있는 정도로 조금은 언급할 계획입니다. 이 홈을 부산공회(2)나 타 공회에서 링크조차도 걸지 않고 이 홈의 존재 자체를 확인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홈에서 이런 발언을 서슴치 않기 때문입니다. <br/><br/>목회자들이 목회지 이동 등에서 백목사님에게 섭섭했던 문제도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백목사님이 친인척 비리를 저질렀다고 난리들이지만 어쩐 일인지 답변자와 마주하고 그 문제를 끄집어 내면 왜 그분들이 황급하게 자기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고 펄쩍 뛰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이 문제에 관하여서는 공회 내에서 가장 많은 뒷말을 남겼던 분들이 몇 분 계신데 적어도 답변자를 만난 자리에서는 백목사님의 인사는 공정했고 자기는 당시 조금 섭섭했지만 백목사님은 그런 면에서는 너무 위대한 분이며 자신이 잠깐 오해했을 뿐이라고 말하면서 답변자보다 백목사님을 더 존경한다며 표현하는데 더 이상 어찌 할 말이 없었습니다. <br/><br/><br/>4.질문하신 분께 개인적으로 요청드립니다.<br/><br/>백목사님에 대한 이곳의 적극적인 호평은 사실 백목사님의 객관적 수준과 비교할 때 너무 아쉽다는 느낌을 많이 가집니다. 다만 이 홈을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보실 일반 방문인들을 고려해서 어느 홈페이지에 들어가도 그 홈이 좋아서 소개하는 인물들에 대하여 설명하는 정도를 기준으로 볼 때 '객관적'이며 '냉정한 사실적 묘사'가 되도록 노력했습니다.<br/><br/>말하자면 손양원 주기철 김현봉목사님 등 한국교회사가 기릴 정도의 인물들과 백목사님을 비교하면 백목사님의 수준은 그분들과는 비교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너무 아득하게 높은 분인데 이 홈은 손목사님 등 다른 분들을 소개하는 홈에서 그분들을 표현하는 것과 비교한다면 백목사님에 대한 호평을 너무 인색하게 했다고 자책을 느낍니다. 그래도 스스로 자제하는 것은 사실을 사실로만 소개하면 호평이라는 것은 그 사실을 보고 접한 사람들이 알아서 저절로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br/><br/>우리는 정말 대단한 분을 모셨고 그 분의 직접 지도를 받았던 정말 대단한 시대를 살았던 생존인들입니다. 다만 객관적으로 자신의 것을 자랑하는 모습이 되지 않고 단순히 소개하는 정도의 표현이 되려면 어느 정도라야 할지, 많은 교단에서 수없는 종류의 신앙노선을 가진 분들이 이 홈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홈의 운영자인 답변자에게는 현재 문답방 등에서 오가는 것보다 훨씬 많은 분들과 이 홈의 자료 때문에 개인 메일과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목회와 개인 인생의 기로에서 결정해야 할 중요한 내용들은 개인연락에서 주로 오가고 있습니다. <br/><br/>목회자들도 많고 신학에 관련된 분들도 많습니다. 답변자와 연락이 오가는 분들만이 이 홈을 이용하는 분들의 전부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 홈을 방문하는 분들의 전체 분위기를 파악하는데는 그들이 거의 다 외부 교단에 속한 분들이기 때문에 이 홈의 객관적 평가는 평균점은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br/><br/><br/><br/><br/><br/>이 홈을 개설하던 1999년과 그후 초기에는 기초 자료 제공 때문에 거의 개인적인 시간을 갖지 못했고 2001년부터는 문답방에 문답이 급증하여 아무 것도 하지 못할 정도였으며 최근에는 이 홈으로 관련된 분들 등과 개인적으로 오가는 연락 때문에 이제는 숨도 쉬지 못할 만큼 개인적인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해서 최근의 문답은 과거처럼 전체를 차분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설명하는 시작과 마무리의 연결을 일관성 있게 잇지를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br/><br/>질문자께 성의가 없어 그런 것은 아니며 답변자의 건강 수준이 현재 맡고 있는 여러 면을 감당할 정도가 되지 못해서 그렇다고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간단하게 답변을 하려고 시작했다가 그냥 말이 나온 김에 질문자와는 상관도 없는 내용으로 빠지면서 이 말 저 말을 많이 했으나, 이 게시판은 총공회 내부인들 중심으로 운영되는 곳이므로 지난 과거 중에서 한번쯤 짚어야 할 부분을 이 시점에서 한번 말씀 드리고 싶은 부분이 몇 가지 있었고 그래서 말이 옆으로 많이 새나가 버렸습니다. <br/><br/>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본의 아니게 회고록 비슷하게 되었으나, 분명히 우리는 과거 공회 문제를 두고 못한 말이 없었고 못한 행동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냥 세월 속에 잊을 것이 아니고 돌아보아야 할 것이고 그러다 보니 답변을 하면서 질문 내용에 충실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가는 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양해를 구하며, 이 홈의 진심을 살펴주시고, 더불어 모든 이들이 다 같이 느낄 수 있는 보다 넓은 관점에서의 객관성과 차분함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은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지적하신 분의 말씀에 대하여 일단 생각나는 대로 답변자의 변명만 많이 한 꼴이 되었으나 답변자 머리 속에는 이후로 거듭 지적받은 문제가 남아 있을 것이므로 분명히 다른 글을 적을 때는 한번 두번 더 조심할 것 같습니다.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다음 아래 부분은, 윗글의 문답에서 정식 답변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답변자 사택으로 찾아와서 사석에서 못할 말이 없는 사이 정도일 때 할 수 있는 내용이므로 다음 밑의 글을 읽고 참고하실 분은, 비록 이곳에서 글을 읽지만 답변자와 개인적으로 오간 정도의 내용으로만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그 정도의 책임과 인식을 갖지 못하신 분들은 읽지 않았으면 합니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백목사님의 대표적인 실수 하나를 정말 공개한다면 답변자로서 첫째 손꼽을 것은<br/><br/>정00목사님에게 백목사님이 생전 마지막 순간에 했던 발언입니다. '지금 총공회를 백00목사와 이00조사 둘이서 쪼개려고 서로 싸우고 있다. 네가 그렇게 주저앉아 있으면 되겠느냐' 이 발언 내용은 정목사님에게 답변자가 두 차례나 직접 들었던 내용입니다. 답변자가 백목사님 설교노트를 구한다며 정목사님을 찾아 뵈었을 때 그분에게, 왜 부산공회에 계실 분인데 대구공회로 넘어갔느냐고 질문하자 그 연유를 설명하면서 서울에서 수원까지 가는 차 안에서 백목사님께 들었던 발언을 차분하게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정목사님에 대하여는 현재 이 홈에서 그분의 많은 자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정목사님은 1950년대부터 백목사님 바로 밑에서 사찰까지 했던 분이고 답변자보다 더 많은 세월 더 가까이 모셨던 분입니다. 그분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양심에 없는 말을 하지 않는 분입니다. <br/><br/>그렇다면 백목사님은 백00목사님과 답변자가 총공회를 쪼개기 위해 싸운다고 했는데 17년이 지난 오늘의 역사를 통해 1989년 백목사님 생전 마지막과 사망 직후 그리고 그 후 일어났던 모든 일을 통해서 총공회를 깬 사람이 누구며 왜 깼으며 어떤 행동의 어떤 면이 잘못되었는지 그 책임자들이 낱낱이 공개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서로가 발언한 것과 행동한 것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가룰 수가 없고 변조시킬 수가 없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백00목사님은 총공회를 깨려고 백목사님 생전부터 야심을 가졌고 그런 면 때문에 목사님 생전부터 3분의 2가 총공회 노선을 버릴 것이라고 했으며 목사님 사망 즉시 그런 행동은 마치 6.25 전면전처럼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답변자는 현재까지 총공회 전체 흐름에서 가루고 싶어도 가룰 수 없도록 드러나고 있지만 총공회 신앙노선을 백목사님 생전 그대로 지켜지도록 노력했고 현재 그렇게 지켜 내려오고 있는 유일한 공회를 유지하는 일에 중심에 서 있습니다. 부산공회(1)과 부산공회(2) 그리고 대구공회와 서울공회는 예배당 소유권을 놓고 불신 판사에게 간 죄를 지었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다른 공회들은 고려파에서 총공회가 분리 되어 나온 총공회 출발노선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서 광야에서 오히려 홍해바다를 건너 애굽 바로 왕 밑으로 회귀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을 몇 가지 더 설명하다 보면 답변자의 전기책이 될 정도이므로 이 정도에서 그치겠습니다. 현재 어느 공회가 총공회 원 백목사님 신앙노선을 지키고 있는지를 보려면 부산공회(2)와 대구공회가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그들의 홈 내용만 봐도 불신자가 알 수 있을 정도로 환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백목사님이 백00목사님과 답변자가 총공회를 서로 쪼개서 제것으로 나누어 가지려고 싸운다는 발언은 분명히 틀렸습니다. 백목사님의 이런 실수가 답변자 한 사람만에게 있었겠습니까? <br/><br/>총공회 전체가 수정노선에 의하여 다 삼켜질 위기 순간에 비록 외형기준이지만 3분의 1이라도 부산공회로 건져냈고 그후 지금까지 부산공회 이름에서는 아직도 당시 답변자의 활동 때문에, 속으로는 나가고 싶어도 겉으로는 이 노선의 최소한을 지키는 현상이 있습니다. 총공회 신앙노선의 3대 원리라는 표현도, 그 내용도 백목사님 사후 부산공회의 근본노선이 되고 노래가 되었지만 답변자가 부산공회에 설 분들에게 알리고 전해서 모두들 새롭게 알게 되었던 것이 1989년 9월의 일입니다. 현 부산공회 최고 지도부들 안에서도 전원일치와 다수결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해서 수없이 설명을 거듭해야 했던 때가 바로 엊그제같습니다. 김00목사님처럼 대구공회 백태영목사님을 순교하신 백목사님 대신으로 따르겠고 총공회는 다수결이 옳다고 주장하는 분들을 돌려놓아서 오늘까지 그때 나갔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에 들어설 뻔 한 순간을 넘기게 한 일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분이 부산공회 내에서 일파를 이루고 그분만을 무조건 추종하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그분들에게는 이런 소식이 날벼락같이 들리겠지만. 김00목사님은 한번 이빨을 깨물면 죽어도 변치 않기를 총공회에서 제일 유명한 분입니다. 이 대화는 서부교회 5층 백목사님 식사하시던 작은 방에서 20회 임시총공회가 끝난 직후의 대화였습니다. 그분은 양심가이므로 이곳의 이런 설명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궁금하면 직접 문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br/><br/>이곳이 자기 공로와 과거 이력을 설명하자면 아주 몇 마디만 해도 이런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백목사님은 백00목사님과 답변자를 둘다 자기 이익을 위해 총공회를 깰 위험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백목사님의 단점을 굳이 말하라고 한다면 답변자로서는 첫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백목사님의 답변자에 대한 당시 판단입니다. <br/><br/>그러나 이런 점을 하나씩 손꼽아가며 정리한다면 그것은 답변자로 하여금 함의 길을 왜 걷지 않느냐고 밀어대는 것이니 답변자가 힘이 있는 이상으로는 밀릴 수 없는 방향입니다. 더구나 위에서 소개한 바로 이런 대목도, 설교록에서 우리는 종종 어린 사람들을 챙겨서 바른 길로 끌어 올릴 때 그런 표현을 통해 주저앉은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목회법이라고 읽고 들은 기억이 있기 때문에 답변자는 백목사님의 그런 표현을 처음 들었을 때는 답변자 속에 혹 그런 요소가 있었는지 수없이 되새기며 자신의 문제점을 찾아볼 기회가 되었기 때문에 그 백목사님의 발언은 사실 여부를 떠나 답변자에게 엄청나게 큰 힘이 되고 조심할 수 있는 예방주사가 되었습니다. <br/><br/>그리고 오늘처럼 세월이 10년씩 2번이 지나가고 있는 시점에 당시 백목사님의 발언은 백00목사님과 함께 '000'이라는 분인 줄 총공회 내부에서 모를 사람이 없는데 왜 그 두 분에게 해당되는 발언을 가지고 왜 '000' 대신에 답변자 이름을 정목사님에게 말씀했을까, 답변자는 개인적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000'이라는 분은 백목사님의 이런 발언이 전해진다면 너무 크게 또 문제를 일으킬 분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제일 가까운 답변자 이름을 찍어서 말씀했겠다고 생각합니다. 답변자 이름이 올려지면 내나 그분의 이름이 거명된 것과 같기 때문이고 답변자 이름이 전면에 나타나면 백목사님께서 아무리 극한 표현을 해도 시험에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두 사람의 이름을 가지고 그렇게 말한 것 자체도 그 두 사람 때문에 그렇게 되는 문제가 걱정이 되어 정00목사님에게 빨리 일어서라고 촉구한 것이 아니고, 당시 정목사님은 주저앉아 있을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하고 있었고 백목사님으로서 정목사님을 사랑하여 마지막으로 그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그에게 총공회적 사건을 두고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촉구를 하고 그 촉구를 인하여 정목사님이 일어설 수 있는 계기를 주려고 한 '목회행위'였다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br/><br/>아마 대구공회와 서울공회에서 1989년 분열 당시를 아는 분들은 정목사님이 이곳 홈의 답변자를 두고 백목사님이 그렇게 발언하더라고 했던 말을 퍼뜨려서 어떤 형식으로든지 그런 비슷한 내용을 들은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당시 이런 소식은 분열의 혼란 속에서 대구공회인들의 방향 설정에 여러 형태로 영향을 미쳤다는 결과를 볼 수 있게 됩니다. 백목사님 살해 배후범으로 경찰조사까지 받게 하는 일도 있었고 또 백00목사님을 앞세워 열심히 따라가다가 도중에 그분을 추종할 것인지를 놓고 대구공회가 둘로 나뉠 때 정목사님의 이야기가 곁들여지면서 백00목사님과 답변자 두 사람이 총공회 교권을 놓고 극단적으로 투쟁하는 것이니까 백00목사님과 별도로 나가자는 논리의 근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br/><br/>어쨌든 당시 대구공회는 오늘 대구공회와 서울공회의 현 모습이 되었고 그 노선은 총공회 수정이지 그대로 유지 보수는 아닙니다. 적어도 답변자의 걷는 길은 백목사님 생전을 유일하게 이어나오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이 자신의 사후에도 이 노선이 흐려지거나 변경되지 않고 그대로 이어져야 할 것을 생존 마지막 순간이 다가올수록 더욱 강하게 외쳤었는데 그 외침을 가장 충실하게 잇고 있는 것은 바로 답변자가 중심이 되어 있는 이 홈과 부산공회(3)이라고 한다면, 아마 그 누구든 이 논리에 대하여 결과론적으로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백목사님이 정목사님에게 했던 당시 발언은 백목사님의 크나큰 실수였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br/><br/>만일 답변자가 공회 노선투쟁 때 대구공회 주도세력들처럼 이런 저런 방법을 사용했더라면 아마 대구공회의 오늘은 오늘처럼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을 것입니다. 당시 답변자는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들어오는 모든 종류의 대구공회 측 공격에 대하여 방어주의 하나로만 나갔을 뿐입니다. 즉 이쪽에서는 무기를 한번도 써보지도 않았다는 것인데 이쪽도 그쪽처럼 예배 도중에 난동을 일으킬 각오로 이곳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사용했다면 오늘과 같은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그때 일을 다 적으려면 한도 없이 많고 그때 일을 대구공회에 속한 분들은 다 잊고 있어도 이곳은 당시를 재구성하여 전부 재조사하는 일에 불편이 없도록 지극히 작은 발언 하나까지도 자료화 하여 보관하고 있습니다. <br/><br/>답변자가 백목사님의 가장 큰 단점 중에 하나로 지적한다면 두 말할 것 없이 답변자와 관련 된 바로 이런 점인데, 답변자는 그런 발언조차도 사실은 단점인지 아직 단정을 못하겠습니다. 이유는, 평소 정목사님의 발언과 언행은 정말 양심적이고 주저없이 행동하며 거침이 없는 분으로 권위가 있는데, 그분 역시 그 발언 자체를 답변자에게 공격을 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인지 확정을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 백목사님의 발언 중에서 다른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이 나왔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뺀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르게 표현한 것을 '어'해서 다르고 '아'해서 다른데도 대구공회에서 부산공회 제일 배후 핵심으로 미워하고 찍고 있었던 답변자를 잡기 위해 당시 싸움이 막 끝나던 시점에 최후 일격을 가한 것인지.... <br/><br/>정목사님이 1989년 10월 공석에서 행동했던 일을 하나 기억하지 못한다면 일단 백목사님의 발언은 사실이지만 그 내용에 담은 의미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고 하겠는데, 1989년 10월 공석에서 그분은 골목대장 뒤를 따라 씩씩 대는 모습으로 공회 석상에서 크게 실수했던 언행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백목사님도 실수할 수 있고 정목사님도 실수 할 수 있다면 답변자로서는 단정은 하지 않지만 어느 쪽에 무게를 더 두는 것이 자연스러운지는 여러분들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br></br></br></br></br></br></br></br></br></br></br></br></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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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0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03.10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03.10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03.10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03.10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03.10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03.10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 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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