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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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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br/>1.총공회 신학과정의 양성원은 총공회 행정실과 같은 장소에 있었습니다.<br><br>공회는 행정관련 업무는 최소화 시키는 경향이 있으므로 신학과정의 양성원과 총공회의 행정실을 한 직원이 한 장소에서 다 겸하게 합니다. 양성원 기능이 총공회 행정 기능보다 많기 때문에 주로 그 장소를 양성원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질문하신 설교 내용에서 말씀한 '양성원'은 양성원이면서도 공회 행정실이라고 아셨으면 합니다. 양성원 기간에는 양성원 학생들과 교수들이 붐비고, 일반 교역자회 기간에는 공회 모든 목회자들이 그곳에서 먹고 자고 활동하기 때문에 공회의 본부라고 아셔도 좋겠습니다.<br><br><br>2.양성원 기간이나 교역자회 기간 또는 총공회 기간 등에 모든 목회자들이 한 자리에 모입니다.<br><br>목회자는 다양한 출신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그렇고 일반 교회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최근 신학이 일반 세상 공부 체계 중 하나로 완전히 편입이 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은 목회자 대부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단순히 신학과정을 대학교나 대학원으로 밟아 올라간 경우입니다. <br><br>그러나 총공회는 아예 그런 과정으로 목회를 시키지 않고 완전히 일반 교인으로 교회 생활을 하도록 하다가 어느 때라도 목회자로 바로 내보낼 정도의 신앙과 준비가 되면 담임목회를 바로 맡도록 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공회 목회자들은 그 이력과 출신이 천차만별입니다. <br><br>엿장수 출신도 있고, 고물장수 출신도 있고, 노동판에 지게꾼도 있고, 의사나 고시합격생 출신도 있습니다. 학력으로도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사람부터 최고의 학력을 가진 이들도 있습니다. 그 중에는 과거 뒷골목에서 주먹을 쓰다가 나온 이들도 있습니다. <br><br>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다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가운데 두고 자리 다툼을 벌이거나 아니면 자기들 출신만큼이나 천박하게 별별 추태를 벌렸던 처럼, 조금이라도 긴장이 늦추어지고 세상 놀던 버릇이 나오면 금새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1983년이면 공회 전체적으로 백목사님에게 대하여 아주 엄하게 순종하던 때인데도 백목사님 없는 자리에서 목회자들끼리 부딪히다 보면 과거 자기 출신이나 옛사람이 불쑥 튀어 나오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나름대로 한 주먹 한다고 늘 근육자랑하던 목회자 한 사람이 가끔 주먹을 휘둘러 다른 사람을 위협하는 경우가 있어 이를 꾸지람 했던 일입니다.<br><br/>1984년부터는 공회 내의 신앙노선 문제를 두고 본격적으로 갈등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1983년까지 있었던 일은 공회 내부 노선 등에 대한 본질적인 시각차이가 아니고 그냥 별별 출신들이 많다 보니까 그중에 과거 주먹으로 날리던 사람들의 인간적 실수를 단순하게 선생으로 야단치며 다른 이들에게도 믿기 이전, 목회자 이전 과거에 버렸어야 할 세상 힘을 완전히 버리라는 단순한 책망 정도입니다. <br/><br/><br/>3.공회 내에서 노선 자체의 문제로 정식 문제가 된 것은 1984년 1월로 기억합니다.<br/><br/>백목사님의 지도에 대하여 실무적인 내용을 가지고 반론이나 지적이나 다른 의견이 제시된 것은 늘 있었던 일입니다. 비록 조용히 발언을 했을지라도 백목사님 지도 자체를 맞서서 나온 첫번째 행동은 1984년 1월로 기억되는 교역자회의에서 백태영목사님입니다. 물론 1982년 백목사님 중환 때에 공회 지도권을 넘기라는 등의 요구도 나쁘게 보려면 얼마든지 저의있게 볼 수 있으나 그때는 그냥 철없는 한번의 실수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br/><br/>1984년 1월의 행동을 주목하는 이유는, 1982년에 백목사님는 생사 기로에 서는 중환을 앓았고 당시 73세였기 때문에 회복이 된다 해도 인간적 한계로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서야 할 정도라고 모두들 생각할 때입니다. 당시 남자의 평균생존연령은 60대 초반 정도였고 목사님은 자연수명이 다한 때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밑에 있던 유력한 목회자들이 이번 중환으로 백목사님이 죽거나 아니면 일선에서 물러날 줄 알고 기다렸는데 1983년에 다시 회복하면서는 이전보다 더 건강했고 목회의 능력과 설교의 은혜도 그 차원이 더 높아져버렸습니다.<br/><br/>이렇게 되자 일반 교단에서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는 옛말대로 5년 단위면 한 세대가 물러가는데 백목사님의 회복된 건강을 본 그들의 눈에는 자신들이 백목사님보다 먼저 죽겠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됩니다. 그때부터 백목사님이 늙어 죽거나 은퇴할 기회가 없겠다 싶어 행동으로 조직적으로 자신들의 구상을 내놓기 시작합니다. 백영희신앙노선과 다른 일반 노선을 섞거나 일반 노선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이어지게 됩니다.<br/><br/><br/>4.양성원과 기존 목회자들의 갈등<br/><br/>양성원은 그 존재가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총공회 전체의 모임 장소와 같은 곳입니다. 양성원의 실무 목회자를 교학실장 또는 행정실장이라고 하는데, 교학실장이 다른 목회자들에게 좀 박하게 대하거나 편파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면 이런 저런 말들이 있게 됩니다. 특별히 양성원과 일반 목회자들이 구조적으로 갈등을 갖게 되는 문제는 없었습니다. 1987년에 이재순목사님이 교학실장으로 부임했을 때 그 분과 성격이나 체질이 맞지 않는 분들 때문에 혹 그런 말이 나올 소지들이 좀 있었습니다. 설교록에서 종종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br></br></br></br></br></br></br></br></br></br></br></br></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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