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KIST
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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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br/>중간반 4층의 남부장 김춘도목사님이 2층 앞자리에서 예배를 보고 <br>만덕으로 개척을 해서 나갔다는 것이 사실이라면<br><br><br>1.그 의미는<br><br>탈북이든 월북이든 극에서 극으로 전향한 것입니다. <br>그분이 지난날 4층 중간반의 행동총책임자로 어떻게 걸어왔는지는<br>서부교회와 공회 안에서 모를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입니다. <br><br>북한의 인민무력부장의 월남이든, 남한의 국방부장관의 월북이든<br>보는 관점에 따라 표현은 달리 하겠지만 극단적인 전향임은 틀림없습니다.<br>그분은 늘 생명을 바쳐 이 길을 가겠다고 표현할 때<br>눈에 힘이 들어갔고 두 주먹을 쥐로 떨고 있었으며 그분의 행동은<br>공회의 사건 현장에서 늘 반서파 최일선 중심에 있었습니다.<br/><br/><br/>2.그 사연은<br/><br/>중간반, 남중간반, 김목사님<br/><br/>1989년 백목사님의 생존 마지막 순간에 서부교회 앞날을 위해 목사님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충성으로 중간반 제도의 재편 조처가 있었습니다. 목사님의 사후 서부교회를 원래 노선으로 유지할 수 있는 중심인물들을 중간반사라는 이름으로 임명했고, 그들이 맡을 중간반 학생들로는 서부교회의 미래를 이어갈 수 있게 여지를 남겨두었습니다. <br/><br/>권사님 4명의 구조가 서부교회의 백목사님 생전 노선과 반대쪽으로 흐를 수 있음을 보고 이를 견제할 수 있도록 서부교회 반사들 중 가장 신앙노선에 확실한 분들에게 자신들이 충성하면 노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서부교회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서부교회 평생 직원으로 임명이 되었습니다. 후임이 노선을 바꿀 때는 이들을 제거할 것이므로, 후임에 의하여 제거할 수 없도록 서부교회 자체가 책임지는 서약서를 마련한 것입니다.<br/><br/>이런 점에서 1992년 11월 서목사님 시무투표의 의미는 시사하는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여기 홈에서 2층 측 교인들이 서목사님께 맹충을 다하여 수단 방법 한계를 두지 않고 발언을 하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앞뒤를 생각해 보는 교인이라면 입이 천개 만개라도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중간반사 전원을 서목사님이 자신을 반대했다고 제명한 것은 평양식 숙청입니다. 2층 강단에 목회자 머리채를 잡고 무릎으로 찍었던 행동이 과도한 행동의 죄라면 서목사님의 중간반사 제명조처와 2층 교인들의 추인 행동은 공회 노선에서 본다면 신사참배 찬성을 선포하는 정도의 죄이니 이는 극형으로 다스릴 죄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br/><br/>김춘도목사님이 1989년 당시 학장교회에서 목회를 잘 하고 있다가 서부교회 남중간반 부장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은 바로 이런 목사님 사후 서부교회 내부의 중간반이 맡게 될 역할 때문이었습니다. 신앙은 여중간반이 중심을 잡겠지만 남녀구별이 필수인 서부교회 노선상 남중간반은 외부적으로 남반 부장이 따로 필요했고 여반의 신앙지도에 따라 남반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게 되려면 김목사님과 같은 인물이 필요했습니다.<br/><br/>김목사님은 목사님 사후 남정교회와의 분리과정에서부터 서목사님 시무투표 관련 반대를 위해 10여년 외부적으로 가장 맹렬한 행동대장으로 늘 알려져 왔습니다. 여중간반들은 교역자 회 등 여러 모임이나 활동에서 행동의 제약이 많았기 때문에 김목사님의 활약상은 중간반의 투쟁사 전부로 보일 만큼 되었습니다. 재독을 반대한다고 총공회 강단을 뒤업고 나선 행동, 서목사님 반대를 위한 시무투표 동원문제, 이후 양측의 모든 충돌 현장에서 그분은 늘 지휘자였습니다. 그가 바쁘게 움직이면 서목사님측은 바짝 긴장을 했기 때문에 때로는 아무 일이 없는데도 심리전 차원에서 무엇이 있는 것처럼 슬쩍 비추니까 온 교회가 비상에 돌입하더라며 답변자에게 자랑삼아 말한 것만 몇 번인지 모르겠습니다.<br/><br/><br/>중간반의 내부 분열<br/><br/>서목사님 측에도 내부를 정통한 분들은 잘 알겠지만 소리없는 권력의 이동과 이합집산이 많았습니다. 초기 주도세력과 방관측, 그리고 이후 여러 형태로 내부 주도가 복잡하게 형성되어 왔습니다. 서목사님측 핵심 인물들이 가장 막바지 고통스러울 때는 답변자에게 상담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대충 파악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史實)로 기록할 가치를 느끼지 못해 간단하게 메모한 것만 있으며 혹시 서부교회 내부인으로 교회의 중요성과 역사의 필요성을 아는 분이 계신다면 한번 서목사님 측을 비롯 내부 사건이나 흐름을 기록해서 이곳에 올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br/><br/>중간반 측은 어려운 가운데 투쟁을 해야 했고 그 조직이 중도 입장이나 타협적 자세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이탈하는 경우가 서목사님 측보다 더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장례식과 남정교회 분리 후 이말출구역 계통의 장년반 주요 지지 교인들이 조용하게 입장을 달리하고 서부교회 대세에 편입이 되었고, 이숙희집사님 구역은 구역의 안전 유지 제일주의라는 원칙이 있어 더 일찍 중간반과 선을 그어버렸습니다. 중간반의 가장 핵심 전력이 되어야 하는데 구역식구들을 중간반 지휘에 그냥 넘겨버리면 구역구심력을 잃게 되고 또 투쟁으로 구역의 입장이 독보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는 점 등이 고려된 것입니다. 서목사님 측으로서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대립 구도가 짜여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서목사님 측은 구구절절이 하나님의 인도가 있었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br/><br/>이숙희집사님 구역의 조기 독자행보, 이말출구역 계통의 유력한 주도 교인들의 조용한 이탈에 이어 서목사님 불신임 운동 때까지 강력하게 단결되었던 중간반에는 중간반 핵심직원과 몇몇 여중간반사들의 이탈이 있었습니다. 남중간반 뿐 아니라 여중간반 내부의 이탈은 비록 일부라 해도 그 파장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목사님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서부교회 중간반으로서 가장 어려운 분야가 공회적 협조인데, 이 공회적 협조를 책임맡은 책임자와 서부교회 내부 중간반 주력은 신앙과 생활 등 모든 면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많습니다. 공회측에서 중간반을 지원하는 핵심 지도부는 원래 중간반보다는 서목사님 신앙에 더 가깝고 심지어 서목사님보다 더 수정노선에 있었던 분입니다. 중간반과 인간적 관계 때문에 동지가 되었지 신앙적으로는 상반된다 표현할 수 있습니다.<br/><br/>중간반과 공회적 책임자의 서목사님 반대 활동은 공동 목표와 특별한 인간관계에 의하여 오랫동안 계속 되었고 특히 중간반측의 물심양면의 지원은 적지 않았는데 투쟁이 지속되면서 내부적으로 경제 활용 문제 등 여러 상황을 놓고 점차 본질적인 의견 차이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소하지만 민감한 사건이 하나 발생되면서 양측은 근본적인 신앙성향 차이로 원래 자신들의 길로 걸어가게 됩니다. 중간반은 그동안 받았던 공회 협조가 끊어지는 대신 원래 자신들의 성향에 보다 더 주력하게 되었고 그대신 서목사님측을 압박할 수 있는 큰 수단을 잃었습니다. 또한 공회측에서는 서부교회 내부를 들여다 보고 연결을 가졌던 것이 전면 끊어져버렸습니다.<br/><br/>당시 공회에서 중간반을 대표하던 책임자가 서부교회를 김효순권사님을 방문하여 공회적으로 자신들이 화끈하게 밀어줄 터이니까 서부교회 내부 중간반을 밀어내자고 대타협을 제시합니다. 이미 10여년 별별 싸움을 다해보았고 또 서부교회 수십 년 역사를 통해서 상대방을 잘 파악하고 있던 서목사님측에서 볼 때는 재미있게 구경할 중간반 내분의 극치일 뿐이지 그 어느 한편과 손을 잡았다가 뒷날 어떻게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냉정하게 손을 뿌리칩니다. 바로 이 순간이 서파로서는 상대측과의 싸움은 완전히 고비를 넘겼다고 안심하게 된 결정적인 때입니다. <br/><br/>일지를 봐야 정확한 시점을 알 수 있지만, 1990년대 후반기 이 사건을 계기로 서목사님은 반대측과의 싸움에서 사실상 승리했습니다. 내면을 읽고 아는 사람들의 눈에는 이때가 서파와 반서파의 투쟁은 사실상 승패가 확정나고 이후 교회 내의 중간반과 공회적으로 부공(1)의 활동은 소탕 대상이라고 표현할 정도가 됩니다. 2층 강단을 타격한 것이나 집회 강단에 철책을 두르는 등의 행동은 여전히 반대세력이 엄존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서목사님 측의 눈에는 남북의 경쟁은 이미 끝이 난 상태에서 이제 어떻게 마무리를 하느냐는 순서만 남은 상태라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노선의 저력이 일반 교계나 교회와 달라서 여전히 만만하지 않은 저항들이 있으나 이를 최후 저항으로 파악하고 있는 듯합니다. <br/><br/><br/>중간반 분열과 김목사님<br/><br/>김목사님은 중간반 제도가 시작된 첫해부터 목사님 생전 최후 조처로 재개된 중간반 현 체제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이 한번도 빠져본 적이 없고 그의 역할이 한번도 2선으로 물러나 본 적이 없는 그야말로 중간반 남반사의 제일 대표인물입니다. 이런 점에서 중간반 지도부는 이 홈의 답변자는 변해도 김목사님은 끝까지 변치 않을 것으로 판단했고, 목사님 사후 각종의 사안 처리에 있어 중간반과 연구소의 의견이 다를 때는 김목사님의 연구소 비판과 허위보고가 끊이지를 않았으며 연구소와 중간반의 최후 단절에 대하여 연구소 측은 중간반 지도부 자체의 잘못이 아니고 김목사님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기억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아쉬워도 사람이 하는 데까지 하는 것이지 그 이상은 지켜볼 뿐입니다. <br/><br/>아주 초기부터 이런 저런 이탈의 조짐들은 많았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연구소 측이 중간반과 협조 체제를 완전히 청산한 1990년 초반부터 김목사님의 역할은 중간반 측 전체에 있어 그 의미가 막중해 짐을 말합니다. 연구소를 통해 제공되는 의견이나 협의 등이 완전 단절 된 상태에서 중간반 내부의 남반측 발언은 김목사님 한 분 밖에 없다 할 정도인데, 그분의 행동은 여러 사안을 통해 진행되면서 중간반 지도부의 부담으로 작용하는 정도가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br/><br/>신앙중심의 중간반 지도부와 공회측 지원을 맡은 지도부 사이에서 김목사님은 급격하게 공회측 지도부 측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중간반은 행동을 할 때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신앙공동체입니다. 반대로 공회 지원 지도부는 사건과 행동 처리만 있지 근본적으로 신앙을 가진 분들이 없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활동과 사건만 상대하는 김목사님은 공회적으로 또 중간반 내에서 일반인들의 눈에는 중간반을 대표하는 가장 힘있는 분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중간반의 신앙수준을 맞추지 못하고 자꾸 엉뚱한 행동을 하는 요주의 인물로 취급이 되고 그대신 공회 지도부에서는 서부교회 내의 세력 확보와 연락망 구축에 중요하며 또한 정서적으로도 잘 맞기 때문에 더욱 중용하게 됩니다.<br/><br/>1990년 연구소측이 중간반과 연결을 끊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김목사님은 중간반 내부에서 신임을 잃었다고 김목사님 본인에게 직접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됩니다. 1990년대 초반의 일입니다. 그리고 현저하게 공회 지도부의 서부교회 내부인으로 활용되고 있었으나 서파투쟁에 요긴한 인물이어서 그냥 붙여두고 있었다가 1990년대 후반 공회측과 중간반측의 분열 때에 이르러서는 김목사님은 4층 내에서 완전히 별도 세력이 되어버렸습니다. 이후 예배도 따로 보게 되고 그후 송종섭 송종관 이진헌 이만기 김응도목사님 등 부공(1)의 핵심 목사님들이 전부 서목사님께 투항하고 전향을 해버리자 공회 지도부는 이름만 남게 됩니다. 더이상 공회적으로 할 일도 없고 교회 내에서는 설 자리를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가 지속되자 목사님은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게 된 것입니다. <br/><br/><br/>3.김목사님의 처신<br/><br/>그동안 그렇게 싸우지를 말든지<br/>싸우더라도 내 파를 위해 싸운다고 했으면 좋을 것인데 <br/>주님을 위한다든지 이 노선을 위한다든지 하는 그런 철학적인 말은 <br/>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 했습니다. <br/>물론 이 말은 김목사님 뿐 아니라 양측의 거의 모든 분들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br/>지금 이 게시판에서 2층이 주님의 종이며 진리 노선이라고 펄펄 뛰는 분들도<br/>어느 한 순간에 김목사님처럼 입장을 바꾸어야 할지 모릅니다.<br/><br/>그토록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했던<br/>김삼암목사님도 1989년 10월에 백태영목사님을 생전 백목사님처럼 받들겠다 하셔서 이재순 이진헌 최재현목사님 3분이 타이르고 타일러도 말을 듣지 않는다면서 답변자를 예배당 5층 식당으로 불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br/>김응도 송종섭 이진헌 이만기목사님 등이 서목사님을 향해 쏟아냈던 1992년 이후의 발언과 행동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분들이 지금 서목사님 부공(2)에 소속하고 있는 현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br/>모두들 당시에 하나님, 진리, 이 노선, 신앙양심 ... 이런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좋을 뻔 했습니다. 그냥 이권 때문에, 또는 입에 들어오는 떡 때문에, 또는 후임 가능성 때문에, 또는 안팎의 분위기나 협박 청탁 때문에.... 라고 했더라면 그후에 입장을 바꿀 때에 얼마나 쉽고 편했겠습니까?<br/><br/>김목사님은 스스로 전향을 할 수 없도록 말과 행동을 해 왔던 인물입니다. <br/>이 홈 답변자 역시 김목사님을 보며 큰 걱정입니다. 답변자도 아주 급하면<br/>저렇게 해야 하겠는데 이 홈에서 벌려 놓은 언행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여지를<br/>너무 없애버렸습니다. <br/><br/>이렇게 입장이 곤란할 때 가장 마지막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세는 <br/>'무언의 용사로' 제일 앞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백목사님 순교하신 그 강단 제일 앞에 앉아서 속으로는 '내가 백목사님 순교 강단 앞이라 그 강단 그리워 왔지 니 때문에 왔는가?' 하면 되고 겉으로는 '나는 무언의 용사'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하면 과거를 해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남들에게 훗날 무슨 문제가 나오면 그때 2층 제일 앞에 앉은 것이 과거에 대한 회개를 행동으로 보여준 것인데 무슨 또 회개 고백서를 제출하라는 말이냐고 호통을 칠 수 있는 제일 묘한 방법입니다.<br/><br/>답변자는 김목사님께서 1987년과 1988년 경찰서 검찰청 등에 구속되지 않으려면 빨리 공회지도부에 백기 항복하라고 수없는 통고와 재촉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공회지도부를 대신하여 답변자 등 연구회 직원들을 10여 건으로 고발한 명의자는 연구소장이었고 그 현장 심부름은 자신이 했다고 직접 들었습니다. 또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br/><br/>앞서거니 뒷서거니 백목사님 생전 최후 순간까지 서부교회의 5개 부서를 책임맡았던 핵심 책임자들, 그들은 신앙은 말할 것도 없고 세상 성질이나 인질 자체가 중간에 변치 않는다고 자타가 그렇게 인정하던 이들입니다. 주일학교총무 장영목목사님은 감리교로 교회를 넘기고 필리핀으로 선교 이주를 하면서 공회와는 연결을 완전히 끊었고, 그 교인들은 공회 노선을 유지한다며 부산공회(3)을 찾아와서 동천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연구소장 이민영목사님은 부산공회(1) 지도부를 지지하여 이곳을 고발했다가 지금 부산공회(2)에 소속하여 대구공회측과 폭넓은 교류를 하며 목사님 생전과는 전혀 달라진 열린 목회를 하고 있고, 중간반책임자로 대외활동을 맡았던 김춘도목사님은 서목사님 강단 밑 제일 앞자리에 머리를 숙였다면, 이제 백목사님 생전 자유롭게 5층 목사님 방을 출입하며 교회와 공회 전반 문제를 자유롭게 듣고 배우고 건의를 드렸던 5명 중에 남은 것은 부산공회(3)의 특수반 책임자 출신 이치영목사님과 답변자 뿐입니다. 둘도 언제 다시 나뉘어 다른 걸읆을 걸을지, 내면으로는 항상 마음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br/><br/>이 노선은 인정과 사정과 동지애와 의리와 이권 등으로 걸어가려면 끝까지 걸어가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노선의 첫 길을 연 백목사님이 성경이 아니고는 그 어떤 것으로도 이 길을 걸어갈 수 없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라 해서 폼잡고 늘 자기는 옳은 척 하고 무게를 잡아봐야 이 노선은 그 폼을 오래가도록 놔두지 않는 형태입니다. 틀렸으면 바로 회개하고, 옳으면 누구든 발언하고, 오로지 옳은 것만 찾아 움직이면 바로 권위자가 되고 잘못된 것을 붙들고 있으면 어떤 것으로도 계속이 될 수 없도록 된 묘한 노선, 이 노선의 가치성과 묘미는 여기 있기 때문에 옳은 것 하나만을 위해 가릴 것이 없는 사람은 나중 출발해도 단번에 먼저 되고, 어떤 먼저 된 자라도 이 면을 잊으면 바로 나중 된다는 것을 기억할 사건입니다.<br/><br/><br/>4.어쨌든 2층 교회의 승리는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br/><br/>성경 하나만을 외치며 총공회 회의록에 그것을 기록해 달라고 백목사님의 경기노회 발언 기억을 흉내내던 성경박사 김목사님도 어느날 슬며시 서목사님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행정실장으로 서목사님 탄압에 공회적으로 가장 앞서 무참했던 이목사님도 양성원 인사조처 딱 한번에 자극받아 하루만에 서목사님 밑으로 들어가서 지금 그곳에서 행정실장을 하고 있습니다. 서목사님 공격에 공회측 검사를 맡았던 송목사님도, 동양의 의인으로 미국 카브난트 신학교의 흠모를 불러일으킨 성자 송목사님도, 한국 전교계적 인물로 선발되어 공회 외부에서 더 귀하게 알려진 소신파 이목사님도 <br/><br/>1992년 시무투표 직후부터 10여 년간을 서목사님 비판에 앞장서서 총력을 다 기울였는데 그 모든 분들이 서목사님 휘하에 들어갔습니다. 서목사님이 들어오시라고 말 한 마디 한 적 없고 초청장 보낸 적도 없고 들어오면 대우하겠다고 이권 제시한 것도 없습니다. 서목사님은 기도만 했습니다. <br/><br/>원수가 끊어져 영영히 멸망하였사오니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시9:6)<br/>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시10:30)<br/><br/>이 약속들이 다 이루어졌다고 지금 2층은 기뻐하고 즐거워할 때입니다.<br/>특히 김목사님의 처신은 특히 계3:9에 대한 설교록의 내용이 바로 적용됩니다.<br/><br/>'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br/><br/><br/>서목사님측 교인들이 답변자와 대화할 때 흔히 하는 표현들이 있습니다.<br/><br/>'우리는 때리면 맞고, 밀면 밀려서 이 구석에서 기도했고 저 구석에서 떨며 주님께 기도했을 뿐이다. 그런데 주님이 모든 것을 다 해주셨다. 우리 서목사님의 신앙과 인품은 인본을 사용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하나님이 해주기를 기다린다. 신앙과 인품 모든 면에서 흠잡을 데가 없다. 서부교회 부임한 것도 그렇고, 중간반이 괜히 무리하게 동원해서 자해했고 강단에 올라와서 폭행하므로 서목사님에게 서부교회 목사님으로 부동의 위치를 갖게 했다.'<br/><br/>그 절정의 표현 중의 하나가 <br/>중간반 남부장 김목사님이 2층 강단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봤다는 사실입니다.<br/>비록 한번이든 두번이든 횟수에 상관없이 그 의미는 위에서 살펴본 만큼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하고 많은 것을 의미하는 일입니다. <br/><br/><br/>5.지금도 이 노선을 부르짖는 분들께<br/><br/>지금 이 홈에서 이 노선을 워낙 크게 부르짖다 보니까 <br/>비록 이 홈에서만 그런지는 몰라도 최근 급격하게 이 노선에 대하여 소리를 높이는 분들이 많습니다. 서목사님이 왜 틀렸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과연 알고 비판을 하는지, 아니면 김목사님처럼 그렇게까지 언행을 일삼다가 지난날 했던 행동이 너무 많기 때문에 어떻게 표현을 할 수 없고 그냥 조용히 앞에 와서 앉아 예배를 보고 조용히 서부교회를 떠나듯이 그런 젊은 사람의 한날 혈기로 한 것이지 정말 변치 않는 진리로 비판할 일이어서 비판을 하는지...<br/><br/>노련한 사람들은 생각못한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br/>매사에 신중해서 어떤 일을 봐도 들어도 입장발표를 유보합니다.<br/>이 노선이 정말 세계 제일이라고 판단이 되어도 좀 늦게 발표를 하지<br/>이곳처럼 성급하게 발표를 하지 않습니다. 만의 하나 곤란한 일 당할까봐.<br/><br/>시골 냇가에서 미꾸라지와 메기를 잡아보면 전혀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br/>조금만 부스럭하면 미꾸라지는 단번에 저끝까지 도망을 갑니다. <br/>반대로 메기는 아무리 발로 쑤셔대도 바위 밑에 숨어서 너는 떠들어라 하고<br/>귀찮은 놈 장난 치다 지치면 가겠지 하고 움직이지도 않습니다.<br/>그래서 성질 급한 사람이 고기를 잡으면 미꾸라지를 잘 잡고<br/>메기보다 더 끈질기게 악착같이 끝을 보는 사람이라야 메기를 잡습니다. <br/><br/>이 홈에서 이 노선을 외치는 분들<br/>백영희신앙노선의 장점과 이 노선의 가치성을 반복하는 분들<br/>이 홈의 답변자가 떠드는 소리에 쉽게 부화뇌동하시는 분들은<br/>훗날 김목사님처럼 되는 날까지를 오늘에 미리 염두에 두시고 <br/>삼가 언행에 조심하셨으면 합니다. <br/><br/>반대측이 귀찮아서 말을 하고 있지 않을 뿐이지<br/>만일 자기가 발언한 것을 비판하고 들어올 때 자기가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도<br/>모르면서 요즘은 아무나 떠들어도 되는 세상이라 해서 <br/>말만 자꾸 늘어놓는 분들이 많아져서 이것도 또 하나의 폐단입니다.<br/>이 홈이 그런 폐단을 일으킨 주범이라고 불평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br></br></br></br></br></br></br></br></br></br></br></br></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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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0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03.10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03.10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03.10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03.10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03.10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03.10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 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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