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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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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br/>하나를 미리 안다는 것, 하나를 바로 안다는 것이 어떤 때는 정말 말할 수 없이 중요합니다.<br><br>남정교회로 나간 1천여 명의 1990년 서부교인들께서는 그 때 나가지 말고 기다려야 했습니다.<br><br><br>백 목사님의 가치를 어느 정도로 평가하느냐는 것은 공회 내에서도 조금씩 다릅니다. 이 홈은 그 분의 예언치고 아직 그대로 되지 않은 것을 본 기억이 없어 그 생전에도 지금도 늘 조심하는 편입니다. 백 목사님이 생전에 서부교회 강단에서 수도 없이 백 목사님이 가시고 나면 서부교회 강단은 원래대로 지켜 지지 않는다 했습니다. 설교록 출간조차도 전면 거부하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서부교회 건물 밖에 옮겨 놓고 재산도 연보 처리를 통해 아주 독립을 시켜 버렸습니다. <br><br>핵심 1천여 교인들이 나간 상태에서도 서부교회는 지금 공식적으로 설교록을 구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개인 몇 명만 구입하는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남정교회로 나간 1천여 명이 나가지 않고 조금만 기다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4층은 애초부터 버티지 못하고 나갔을 것입니다. 실제 1989년 11월인가 12월에 진지하게 개척 논의가 있었습니다. 백 목사님 생전부터 4 권사님 중에 김현찬 김효순 두 권사님은 남정교회와 같은 입장을 너무 선호하는 분이었고 이말출 권사님은 좋은 것이 좋은 분이니 처음은 이 쪽이라도 결국 이 쪽을 오래 지키지 못합니다. 권사님 4 분 중에 3 분이 그 쪽에 서면 나 권사님은 비록 좀 강한 편이지만 권사님 3 분에 맞서 혼자 서지는 못하는 분입니다. 남정교회로 나가는 분들은 공연히 나간 것입니다. 고생만 했고, 싸우지 않아도 될 싸움만 싸웠던 것입니다. 그 투쟁의 방법이 잘못 되어 권사님들을 모두 적으로 돌려 세우고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것입니다. 1천여 명이나 모여 나간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80 % 이상을 확실하게 남정교회 식 교인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을 젊은 청년 몇 명의 지나 친 투쟁 방법으로 스스로 잃었습니다. <br><br><br>답변자는 현재 이 곳에서 보여 드리는 이 길이 원래 서부교회와 공회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길을 생각한 몇 사람은 백 목사님 장례가 끝나면 불과 몇 달이면, 늦어도 그 다음 해면 보따리를 싼다고 생각했습니다. 백 목사님이 미리 말씀해 주신 내용입니다. 지금 남정교회 계열 4 교회는 교인 몇 명을 전도할 수 있다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해 보고 있습니다. 서부교회 내에 그 수 많은 사람들을 스스로 떼 낸 것을 오늘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생각 없이 환경에 따라 대응한 것은 계속해서 상황을 악화 시킵니다. <br><br>지금이라도 서부교회와 남정교회와 서정교회와 성광교회는 하나로 합해야 한다고 봅니다. 목회자들께는 죄송하나 4 개의 담임 목회자 자리가 1 개로 줄어 드는 문제로 극구 반대하겠지만 교인들로서는 넓디 넓은 서부교회 2층에 앉게 되시면 여러 가지 상승효과가 많을 것입니다. 이미 서부교회서 영어유치원도 하고 오케스트라도 하고 칼갈이 전도처럼 대사회 복지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br><br><br/><br/><br/><br/><br/><br/>>> 서부인 님이 쓰신 내용 <<<br/>:<br/>: 25년의 역사를 돌아볼 때 남정교회와 서정교회와 성광교회와 서광교회가 분리한 것은 실수였다고 봅니다. 이 4개 교회가 나간 것은 그분들의 주장에 따르면 '비디오재독'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25년 역사를 통해 볼 때 초기 1989년 9월부터 1990년 12월까지 15개월만 재독을 했고 1991년부터 2013년까지 무려 23년간 재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할 일은 없습니다. 꼭 하고 싶은 분들은 넓은 예배당 안에 많은 장소 중에 한 곳에 모여 조용히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습니다.<br/>: <br/>: 당시에 조금만 면밀히 살펴서 그대로 있었다면 지금처럼 중소교회 4개로 유지하지 않고 서부교회 2층에 그분들이 다 앉아계신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지금 4개 교회의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만 나갈 때보다 다 어렵지 나아진 곳은 없습니다. 모닥불은 모여지면 더 세게 타오릅니다. 시너지효과라고도 하고 상승효과라고도 합니다. 모닥불을 섣불리 흩었습니다. <br/>: <br/>: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하는 후회는 없습니까? 지금도 확고하게 그 때 분리해서 나간 것을 하나님의 인도라고 보십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만사 물 흐르듯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인데 너무 성급하게 감정에 휩싸여 공연한 분열과 약화를 자초하였다고 봅니다.<br/>: <br/>: 답변자 대신에 4개 교회 출신 교인 중에서 답변해 주실 분이 있으면 입장을 좀 듣고 싶습니다. 지탄하는 것이 아닙니다. 2층에서 예배드리는 저희들도 그때 나가는 분들의 입장을 좀 적극적으로 살펴 드리고 행동에 나섰다면 서부교회의 교세가 약화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이시간에 좀 신중하게 기다려봤더라면 하는 바램 때문에 글을 적습니다. 언젠가 역사평가가 가혹하게 떨어지기 전에 미리 양심토론을 원합니다. 수도없는 주장과 말들이 있었습니다. 25년째 되는 해입니다. 4반세기를 돌아보면서.</br></br></br></br></br></br></br></br></br></br></br></br></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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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03.10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03.10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03.10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03.10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03.10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03.10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 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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