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KIST
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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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br/>1.제도나 절차의 단순화<br><br>이 노선은 형식의 최소화 원칙을 하나의 신앙 노선으로 늘 견지해 왔습니다.<br>구약에서 신약으로 바뀔 때의 원칙이 그러했고 초대교회가 그러했으며<br>실제 신앙의 내면에 집중하려면 외부 형식에 대한 최소화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br><br>공회의 예배 순서가 단순한 것도 그런 이유이고<br>공회의 결혼 장례 세례 성찬 안수 등 모든 면에서 <br>형식이나 외부 절차에 관하여서는 최소화의 원칙이 늘 이 노선의 상식입니다.<br><br><br><br><br>2.표현의 단순화 <br><br/>'말'과 '표현'의 간결 단순 최소화도 있습니다. <br/>일반 교회의 축도는 그 문장이 화려하고 길고 장엄하며<br/>목소리도 거룩하고 장엄하게 들리도록 하기 위해 가성을 내는 것이 보통이지만<br/>공회는 내용을 최소화시켜 간단 명료하게 그리고 평상 대화체로 이어갑니다.<br/><br/>지적하신 '준비 찬송'이란 표현은<br/>원래 예배 시작 전 교인들의 마음을 미리 모두어 예배 드릴 준비를 하는데<br/>이런 경우 기도나 다른 방법보다 보통 찬송가를 부르게 됩니다. <br/><br/>원래 표현은 '이제 예배 준비하겠습니다. 찬송가 000장입니다.' 이렇게 했는데<br/>이 표현을 최대한 줄인 것이 '준비 찬송 000장'이라는 표현입니다. <br/><br/><br/><br/>특히 '표현'을 두고 최소화의 원칙을 적용하는 이유 하나는<br/><br/>남 앞에 서면 괜히 말을 길게 하는 분들이 있고<br/>그런 경우 말하는 사람은 좋아도 듣는 사람은 고통스러워하기 때문입니다. <br/>목회자는 말할 것도 없고 광고나 다른 순서를 위해 교인이 강단 앞으로 나가면<br/>역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br/><br/>이런 눈쌀 지푸릴 일이 종종 생기기 때문에<br/>예배 진행 표현만큼은 간소화시키는 성향이 있습니다. <br/><br/>지적하신 '준비찬송'의 경우<br/>예배를 준비하기 위해 찬송을 인도하러 앞에 나갔으면 '찬송가 000장'이라고 하면 되는데<br/>앞뒤에 자꾸 말을 붙이는 분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br/>'준비 찬송 000장'이라고 최소화한 것입니다. <br/><br/><br/><br/>3.문제는 '집회 예배'입니다.<br/><br/>(1)공회 집회와 찬송<br/><br/>아마 지적하신 분은 출석하는 교회에서 드리는 일반 예배 시간 문제가 아니고<br/>집회 때를 주로 지적하신 것 같습니다.<br/>집회 때는 준비 찬송을 30분 정도하고 예배가 시작되면 바로 설교를 하기 때문입니다.<br/><br/>정식 예배가 시작되었는데 찬송 없이 바로 말씀으로 시작하게 된다면<br/>처음부터 공회 교회에서 집회 때는 늘 그렇게 했던 것만 봤던 분들은 아무 생각이 없을 것 같으나<br/>일반 교회에서 집회를 참석해 본 분들이라면 너무 의아하게 느꼈을 것 같습니다.<br/>지금까지 이런 지적을 받아본 적이 없어 답변자 역시 이런 지적은 예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br/><br/><br/>(2)공회의 집회 성격<br/><br/>일단 집회의 원래 성격을 이해하셨으면 합니다.<br/>집회는 원래 '부흥회'라는 이름과 '사경회'라는 이름의 중립적 표현입니다.<br/><br/>평소 예배 생활을 통해 모든 교인들은 힘있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데<br/>세상생활에 휘말려 신앙의 힘을 잃게 되면 한번 보약을 먹어 원기를 돋우듯<br/>개교회 집회를 하거나 아니면 교회들이 함께 모여 연합집회를 하게 됩니다.<br/><br/>'집회'라는 단어는 지극히 담담한 객관적 관찰식 표현이고 <br/>집회의 내용이 가라앉은 교인들의 마음에 불을 붙이겠다는 면을 강조하면 '부흥회'라 하고<br/>집회의 내용이 말씀을 더 깊이 잘 배워 양식을 삼아야 한다는 면이 강조되면 '사경회'라고 합니다. <br/><br/><br/><br/>'부흥회'라는 이름의 집회는<br/><br/>온 교인이 찬송과 기도를 통해 가라앉은 심령이 번쩍 깨어날 수 있도록 모이기 때문에<br/>설교 내용도 교인들이 뜨겁게 회개하고 기쁘게 찬송을 부를 수 있도록 방향을 잡게 되어<br/>부흥회의 전체 분위기는 뜨겁고 격정적으로 진행됩니다.<br/>부흥회라는 단어는 '방언' '철야' '간증' '찬송' '체험' '신유' 등과 주로 통합니다.<br/><br/>말하자면 <br/>신앙인들의 신령한 단합대회 성격이 있어 <br/>부흥회를 통해 소속감 사명감을 새롭게 하고 뜨거운 충성을 다짐하여<br/>주저앉은 자기를 채찍질 하여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게 하는 면이 장점입니다. <br/><br/><br/>'사경회'라는 집회는<br/><br/>평소 예배생활에서는 매일 현실 속에서 신앙으로 사는데 필요한 말씀을 배우게 되는데<br/>말씀을 배운 다음 바로 현실 속에서 살아야 하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까<br/>말씀을 깊이 새기고 많이 배우는 면에 아쉬움이 있어<br/>1년 1-2회 세상을 등지고 깊은 산속으로 가서 한 주간 내내 말씀만 배우는 성격의 집회입니다.<br/>살필 '사査'에 성경 '경經'이니 말씀을 조사하고 살피는 집회라는 뜻입니다. <br/><br/>말하자면 <br/>사경회는 성경이 뭐라고 하는지 믿는 이치가 무엇인지 믿으려 하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br/>말씀을 가지고 살펴보고 따져보고 비교해보는 치열한 성경공부 집회입니다. <br/>부흥회가 감정 위주라면 사경회는 지성과 이성을 위주로 하는 집회이며<br/>부흥회가 찬송 통성 기도 위주라면 사경회는 말씀과 묵상기도 중심입니다. <br/>부흥회는 시각적 효과가 즉시 있어야 하고 사경회는 조용한 혁명이 시작되어야 정상입니다.<br/><br/>더 이상적으로 설명한다면<br/>진정한 부흥회는 사경회의 말씀 연구를 통해 불을 받고 그 불이 부흥회로 나타나야 하니<br/>이 두 집회는 별도의 이름으로 별도로 진행할 일은 아닌데<br/>순복음교회 감리교 성결교 계통은 부흥회 일변도라 할 정도이고<br/>정통 장로교는 사경회 일변도라는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br/><br/><br/>(3)지적과 과제<br/><br/>이론과 실행이 잘 조화되고<br/>회개와 감사가 함께 손잡고 나가며<br/>개인과 전체가 함께 필요한 것이며<br/>경건과 도덕이 한 쪽으로 치우치면 안 되는 것인데<br/><br/>유능한 목회자라면<br/>부흥회로 교인을 이끌어야 할 때는 힘있게 찬송하고 강하게 기도하게 하고<br/>사경회로 교인들이 알고 믿어야 할 때는 가르치는 것도 잘해야 하니<br/>아이를 기르는 부모가 어떤 때는 엄함으로 어떤 때는 사랑으로<br/>어떤때는 아이의 자율을 기르고 어떤 때는 순종을 기르면서 <br/>경우에 맞게 잘 해야 하는데<br/><br/>부모가 자기 아이 하나를 길러도 말이 쉽지 실제 어려운 것처럼<br/>교회도 앞서고 뒤서는 정도는 있다 해도 완벽하게 조절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br/>답변자의 경우 백목사님 생전의 서부교회와 공회는 참 그러했다고 느끼고 있으나<br/>앞서 지도하는 스승이 없게 된 이 시점에서 지난 20여 년 답변자 걸어온 걸음을 되짚으면<br/>어떤 때는 이 면이 치우쳐 탈이고 어떤 때는 저 면에 치우쳐 탈이니<br/>배운 것이 있어 마음은 뻔한데 실제 걸음은 잰걸음이 되지 않고 좌우 요동이 많습니다. <br/><br/>답변자는 혼자 체험은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런 뜨거움을 전할 정도는 아니고<br/>다른 공회집회들도 현재까지는 다 비슷한 경우입니다. <br/>사경회로 시작하여 부흥회의 폭발로 이어지는 경우는 과거 백목사님 생전에 계속 되었으나<br/>지금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이상이 없고 끊어진 지 오래 되었던 시대와 같다고 탄식합니다. <br/><br/><br/>현재 공회 집회는<br/>찬송이 예배 중의 설교나 기도에 포함이 되어 있다고 말할 정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br/>일반 교회에서 드리는 일반 예배가 아니라 산집회의 특별한 면이 있어 그렇게 설명할 수 있으나 <br/>외부를 겪은 분의 지적을 받고 보니 이 역시 들을수록 답변자도 부자연스럽습니다. <br/>앞으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지 과제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br/><br/>앞서 지적한 것은 답변자 혼자 자연스럽게 '예배를 드린다'고 고치고 계속하게 되면<br/>주변과 공회 내에서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수정되어 나갈 것 같은데<br/>집회 찬송은 그 다음 예배시간이 빡빡하게 이어지기 때문에 정시 예배 시간 안에 또 다시 찬송을 넣게 되면 마치는 시간이 늦어져서 집회 전체 일정에 문제가 생길 것 같습니다. 이제 글을 막 배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많은 학생들이 예배를 참석하고 있으니 이들의 실력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입니다. <br/><br/>어쨌든 과제를 받았으니 잘 풀어서 <br/>하나님 기쁘하시도록 또 누가 봐도 옳다 할 수 있도록 해봐야겠습니다. <br/><br/><br/>2시간 예배에 찬송 1장을 부르지도 않을 정도냐? <br/>이렇게 말한다면 누가 지적을 해도 '너무 심했다.'할 정도입니다. <br/>신학교의 여름 특강이라고 한다면 공회 집회는 신학강좌 이상이므로 전혀 이상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이상한 느낌을 가질 분들이 있을 것이고 또 그동안 참석한 분들도 이 말을 듣고 난 다음부터는 그렇게 느낄 것 같습니다. <br/><br/><br/>(4)말이 나온 김에<br/><br/>이 노선 예배는 예배조차도 부흥회가 아니고 사경회입니다. <br/>일반 교회 예배는 급격하게 사경회에서 부흥회로 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br/>예배 때의 율동이나 찬양이나 여러 가지 행사가 교인을 깨우고 재미있게 하는 위주이고<br/>이 노선은 모든 예배와 생활이 기본적으로 사경회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br/><br/>신앙의 근본 원칙은<br/>사경회적 자세와 접근으로 출발하여 부흥회적 결과로 나타나야 하는데<br/>그렇다면 <br/>이 노선은 기초만 닦고 그 위에 건설이 없어 단점이고 안타까우며<br/>일반 교회들은 기초는 없이 건설만 하고 있으므로 부실공사일 가능성이 많습니다.<br/><br/>질문자께서 첨부한 '찬송과 예배 그리고 신앙생활의 근본 조화' 문제에도<br/>직결되는 면이 있어 글이 여기까지 왔습니다.<br/>다시 시간이 나면 이곳의 글과 다음 이어질 답변에서 일부 내용은 옮기기도 하고 <br/>재조정도 하여 뒷날 같은 문제를 가진 분들에게 참고자료가 되게 하면서<br/>또 이 노선 내부인들이 항상 깨어 살펴야 할 점을 여기에 상시 전시하고 싶습니다. <br/><br/><br/><br/><br/>찬송으로 시작한 문제를 가지고 <br/>답변자의 탄식은 여기에 이르고 있습니다. <br/><br/>집회의 시작과 중심과 성향이 뚜렷하게 사경회이므로 <br/>공회 집회가 정상적으로 잘 진행된다면 진정한 부흥회다운 부흥회로 나타나야 하는데<br/><br/>집회에 받은 말씀이<br/>참석한 교인의 마음과 사상과 사고방식을 뜯어고치고 <br/>그 결과 뜨거운 회개가 솟구쳐 참을 수가 없는 고성이 터쳐 나와야 하는데 <br/>그리고 찬송을 통해 전체가 한 목소리로 회개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열기에 덕유산이 들썩거려야 공회 집회는 비로소 온전한 집회가 되어지는데<br/><br/><br/>질문자의 지적은 '준비찬송'이지만<br/>이 문제를 따지고 되새기며 살펴보면 결국 이런 자책에 이르게 됩니다. <br/>앞 시간 받은 말씀의 은혜가 그 다음 시간 준비 찬송에 불을 붙여 용광로가 되어야 하고<br/>그런 30분의 찬송 시간이 있은 다음에 시작되는 다음 설교 시간은 <br/>전 시간보다 더욱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된 상태이니 비록 조용하게 설교록을 읽는 모습을 가지지만<br/>말씀 속에 내용은 말씀을 듣는 이의 마음을 뒤흔들어 말씀 하나하나가 전부 간증이요 회개요 찬송이어서 옆사람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미친 사람처럼 울고 웃고 악을 쓰는 기괴한 행동을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br/><br/>앞서 인도하는 사람이 모든 참석한 교인을 월등히 앞서 한 고개를 넘어섰다면<br/>집회 전체 분위기 역시 그렇게 되는 것이니 그렇게 될 날을 소망합니다. <br/>공회 노선의 찬송 생활은 현재 일반 교회의 찬송생활과 비교되지 않을 내면이 있었습니다. </br></br></br></br></br></br></br></br></br></br></br></br></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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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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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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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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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0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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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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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 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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