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KIST
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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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br/>(참고 자료 소개)<br><br>공회의 찬송에 대한 기본 인식을 살펴볼 기회를 가져 보셨으면 합니다.<br>84년 5월 집회의 5번째와 6번째 시간 설교 초반에 '찬송' '기도' '말씀'에 대한 <br>요약 비교가 있었습니다. 이 노선의 근본 신앙방향에 대한 안내입니다. <br>답변자도 찬송에 대하여 외부 교계의 정상급 활동가들을 개인적으로 접촉할 기회가 많았는데<br>찬송에 대하여 이렇게 깊고 중요하게 대하는 경우는 볼 수 없었습니다.<br><br>찬송에 대한 부정이나 경시가 아니라 진정한 찬송을 안내하는 내용입니다. <br>말씀에 대한 일방적 편식이 아니라 말씀 중심 신앙의 치명적 단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br>기도와 찬송과 말씀에 대한 참 신앙적 접근을 한번 면밀하게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br><br><br><br><br/>1.찬송 생활의 두 시각<br/><br/>지적하신 대로<br/>현 교계의 일반 분위기를 기준으로 '찬송'을 설명해야 한다면 <br/>공회는 찬송이 없다 할 정도입니다. <br/>말씀하신 대로 설교는 '귀'와 '중'이며, 찬송은 '경'과 '천'이라 보심이 맞고<br/>말씀은 대학수준이라면 찬송은 유치원 수준이라 할 정도입니다.<br/><br/>그런데<br/>믿는 사람의 평생은 '신앙생활'로 요약되어야 하고<br/>신앙생활은 '예배생활'로 요약이 되어야 하며<br/>예배생활이란 '찬송 기도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그 중에 어느 하나가 소홀하게 되면<br/>영양 불균형 아이처럼 신체 기형인처럼 되는 것은 필연이므로 <br/>지적하신 분처럼 찬송의 일반 모습에서 이 노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로 보셨다면<br/>윗글로 마땅히 지적하는 것이 사랑이요 믿는 사람의 바른 자세이기도 합니다. <br/><br/>다만<br/>공회 신앙노선은<br/>몰라서 못 고치거나 또 고쳐야 할 것을 힘이 없어 늦어진다면 몰라도<br/>마음 먹으면 바로 고칠 수 있는 이런 찬송 불균형 문제를 두고 이렇게 방치할 리는 없으니<br/>찬송에 대하여 질문자께서 깨닫는 바와 전혀 다른 고려가 있어 현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br/><br/>일단 질문자의 윗글 지적이 있었으므로 <br/>이 노선이 안내하는 찬송 생활의 기본 자세를 이 글에서 소개하겠습니다. <br/>그리고 다시 의견을 주신다면 <br/>아마 윗글 적은 분이 새롭게 생각할 부분도 있을 것 같고<br/>이 노선의 입장을 다시 들어봐도 역시 한번 더 지적할 부분이 있을 것 같으며<br/>다시 지적을 하실 때는 이 노선의 핵심 약점이 잘 드러날 것 같습니다. <br/><br/>전체적으로 설명하는 전개 방향은<br/>공회 찬송 생활의 원칙과 기본 방향을 설명하는 것이 됩니다.<br/>읽어보고 이해가 된다면 그 다음 순서로는 과연 공회가 그렇게 실제 걸어가느냐는 면을 두고 다시 지적을 해야 할 것 같고, 만일 공회의 찬송 노선에 약점이나 고칠 점이 있다고 생각되면 일단 그 면을 두고 다시 대화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br/><br/><br/><br/>2.찬송이란 무엇인가?<br/><br/>곡에 따라 음을 맞추고 <br/>거기다가 가사까지 더하게 될 때 <br/>인간이 느끼는 노래의 세계는 특이하여 평생 그 속에서만 살아도 행복을 느낄 정도인데<br/>만일 이런 노래라는 세계가 하나님을 향한 찬양을 담게 되면 '찬송'이 되고<br/>찬송이란 예배의 세 가지 요소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니<br/>신앙생활을 형성하는 3개의 기둥 중 하나라는 차원이 됩니다. <br/><br/>찬송을 하는 방법은 질문자 설명처럼<br/>각자에게 주신 자기 형편 자기 현실에 따라 다 달라질 수 있습니다. <br/>박수일 수도 있고 어깨 춤일 수도 있으며 대단한 예술성을 가진 경우도 있을 것이니<br/>세상 음악은 예술성으로 그 수준의 높낮이를 헤아리게 비교하게 되나<br/>우리는 그 어떤 모습 형식 방법이라 해도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분량으로 평가할 것입니다. <br/><br/>여기까지는 지적하신 분이나 이 노선의 찬송관이 같다고 생각합니다.<br/>조금 더 범위를 넓혀 말하면 공회나 일반 교회의 찬송관이 같습니다. <br/><br/><br/><br/>3.공회의 찬송모습이 일반교회와 나뉘는 분기점<br/><br/>'사랑'으로 예를 들면<br/><br/>하나님은 사랑이다. 우리에게 사랑하라 하셨다. - 이것은 공회와 일반 교회가 같습니다.<br/>사랑하라 하셨기 때문에 나는 형제를 사랑했다. - 바로 여기가 갈래길입니다. <br/><br/>그래서 나는 고아원에 봉사하러 갔다. - 왼쪽 길이라고 하고 싶은 일반 노선입니다.<br/>그래서 나는 주일학생 전도하러 갔다. - 오른쪽이라고 하고 싶은 이 노선입니다. <br/><br/>갈래길에서 <br/>왼편으로 가면 기독교 사회운동으로 결말 짓게 됩니다. 현 교계입니다.<br/>오른쪽으로 가면 순수한 기독교 신앙운동이 됩니다. 이 노선입니다. <br/><br/><br/><br/>'찬송'으로 예를 들면<br/><br/>찬송은 신앙의 3대 요소 중 하나다. - 이것은 공회와 일반 교회가 같습니다.<br/>그러므로 모든 찬송은 존중되어야 한다. - 일반 노선으로 가는 길입니다.<br/>그러므로 찬송이 무엇인지 먼저 살펴야 한다. - 이것이 이 노선입니다. <br/><br/>찬송이 무엇이며 얼마나 중요한가 이런 문제가 달라서 다른 것이 아니고<br/>어떤 식으로 찬송을 해야 찬송이며 <br/>어떤 식으로 찬송을 해야 찬송 생활이 점점 발전하는 것인가<br/>어떤 면이 잘못되면 찬송이 찬송의 모양만 남고 찬송의 알맹이는 빠져버리는가<br/><br/>일반 교회와 이 노선의 차이는<br/>찬송 뿐 아니라, 거의 모든 면에서 이런 근본 자세 본질에 대한 연구와 분석 문제로 비롯됩니다. <br/><br/><br/><br/>4.예를 들면<br/><br/>일반교회가 그렇게 은혜롭게 부르는 복음성가를 공회는 철저히 배척하는 이유는<br/>찬송을 덜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외부 것을 체질적으로 기피해서가 아니라<br/>현재 일반교회의 복음성가가 과연 찬송의 본질과 근본 방향을 생각할 때<br/>좋은 찬송인가, 신앙에 유익을 주는 찬송인가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br/><br/>'책을 읽자. 많이 읽자, 지식이 힘이다.....' - 이것이 세상 지성인들의 외침입니다.<br/>'책에도 유익한 책이 있고 해로운 책이 있다' - 이것이 이 노선입니다. <br/><br/>찬송은 중요하다. 교인들이 좋아하는 찬송은 얼마든지 불러야 한다. - 이것이 일반 노선입니다.<br/>찬송은 중요하다. 어떤 찬송을 어떻게 부르면 손해가 될 수 있다. - 이것이 공회노선입니다. <br/><br/>북한동포가 굶는다. 인도적 차원에서 일단 도와야 한다. - 이런 사상이 있고<br/>북한동포가 굶는다. 그러나 도와줄 실력과 방법과 결과를 따져야 한다. - 이런 사상도 있습니다. <br/><br/>일반교회는 찬송시간도 많고 찬송 모임도 활발하고 새로운 곡들도 계속 배우고<br/>공회는 예배 때 1-2곡 정도이고 별도 찬송 모임이 없고 새곡은 거의 배우지 않습니다. <br/><br/>이런 면을 두고<br/>만일 밥상에서 밥과 국과 반찬이 필요하다고 비유를 한다면 질문자 지적이 맞습니다.<br/>만일 조기 요리에 조기와 양념과 양파라는 3가지 재료가 필요하다고 한다면<br/>양념은 그 반찬에 없어서 안 될 3대 요소이겠지만 <br/>그 분량까지 3분의 1이 된다면 심각한 불균형으로 그 반찬은 먹기 어려울 것입니다.<br/><br/>찬송가를 가지고 찬송을 부르든 여러 방법으로 찬송하든 찬송의 방법론은 다시 논하고<br/>일단 찬송이라고 보통 우리가 말하는 그 찬송이 예배 시간에 시간과 순서에서 얼마를 차지하면 좋겠는가? 일반교회로 말하면 3분의 1까지 가는 교회가 적지 않습니다. 이 노선의 경험으로는 그 찬송이 문제가 아니고 그 찬송의 시간이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라 말씀과 찬송의 시간이나 순서상 분량이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br/><br/><br/><br/>5.이 노선의 찬송가에 대한 근본 시각이<br/><br/>이 노선이 찬송을 대할 때<br/>곡에 음을 붙이는 것은 단순히 찬송의 그릇이라고 생각하고<br/>찬송의 가사의 뜻이 찬송 안에 담긴 밥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br/>가사의 뜻을 새기도록 그 뜻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회개하고 찬양하는 것이 찬송의 내면이라고 생각합니다. <br/><br/>공회가 극히 기피하는 곡들은<br/>그 찬송이 가사의 뜻은 얕아지고 그 곡의 예술성이나 그 곡의 대중성이나 그 곡의 감성적 호응도는 높아지는 경우, 아주 어린 신앙이 잠깐 거쳐 자라나갈 때 필요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단히 염려스럽게 상대하게 됩니다. 찬송이란 설교와 달라서 그 은혜의 깊이는 뒷문제이고 일단 입에 얼른 익혀지고 반복되어지며 한번 좋아진 곡들은 마치 간식에 입맛을 버린 아이들이 하루 3끼 영양식단을 멀리하게 되는 것과 같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br/><br/><br/>이제 찬송의 은혜 깊이 문제가 나오게 되면 더 복잡해집니다.<br/>어느 찬송이 과연 얼마나 은혜 있느냐는 것을 객관적으로 따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br/><br/>믿는 사람이면 누구든 그 사람이 은혜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은혜의 기준인가?<br/>그 찬송을 좋아하는 사람의 숫자를 가지고 은혜 있는 찬송을 분류할 수 있겠는가?<br/>찬송을 부를 때 교인들의 집중도를 보면 짐작할 수 있겠는가?<br/>아니면 선배 목회자가 그렇다고 하는 찬송가가 은혜 있는 찬송가의 기준이겠는가?<br/>어른들이 좋아하면 좋은 찬송이고 젊은이들이 좋아하면 좋지 않은 찬송인가?<br/>공회교회들이 좋아하는 200곡은 좋은 찬송이고 나머지는 은혜가 없는 찬송인가?<br/><br/>공회 교회가 좋아하는 찬송이 더 은혜가 있다고 치고<br/>그렇다면 그 외 찬송은 부르지 말아야 할 것인가? <br/>고단백 소고기국만 먹고 보리밥은 먹지 말아야 할 것인가? 별미도 있지 않는가?<br/>보리밥만 가지는 독특한 영양기능은 전혀 무시되어야 하는가?<br/><br/><br/>결론적으로<br/>이런 문제를 가지고 서로 차분하게 생각해 볼 소지가 있습니다.<br/>맞다 해도 무조건 맞다 하는 것보다 심각하게 많은 면으로 폭넓은 사고를 해봐야하고<br/>틀렸다고 단정이 된다 해도, 단정하는 것은 좀 늦어도 상관없으나 섣불리 단정했다가 만일 잘못 판정하게 된 것이 후에 드러난다면 그 책임은 보통 큰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 깊이 생각하고 따져서 그 어떤 면으로도 훗날 예상을 하지 못해서 실수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br/><br/><br/><br/><br/>6.질문자께서 걱정하시는 부분 중에<br/><br/>당대 훌륭했던 종이 그 후시대 이어지는 역사까지 열어놓은 분도 있고<br/>당대 훌륭했던 종이 자기 이후 이어지는 역사가 없는 경우도 있으니 <br/>이 노선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마땅히 이 노선의 이어지는 훗날을 감당해야 하는데<br/>오직 이미 받아가진 것에 만족하여 더 이상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면<br/>신앙의 난쟁이가 될 것이니 지금도 대도시 시내에 보면 30층 60층으로 올라가는 빌딩 사이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2층짜리 작은 건물 하나를 지키는 왜소한 재산가들이 있는데 이들은 변화되는 사업 환경을 전혀 외면하고 오직 수십 년 전에 물려받는 그 부동산 그 모습만 그대로 지켜온 결과입니다. 팔아먹고 불효한 자식과 비교하면 훌륭하지만 부모가 피땀흘려 2층을 마련해 준 60년대 건물을 그후 수십 년이 지나면서 조금만 노력하고 눈을 떴다면 옆 건물소유주들처럼 엄청난 건축물로 발전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생각하면 이런 자녀들은 너무 무능하다고 판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br/><br/>질문자의 우려와 탄식은 바로 이런 면이라고 생각합니다. <br/>이 자세 이 탄식에 대하여서는 한 치의 오해나 어긋남이 없습니다. <br/>이 노선을 앞서 개척해 놓은 분의 평생에 뒤 따르는 후배들을 향한 절규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br/><br/>좋은 노선과 귀한 교훈을 물려 받았다는 것은<br/>가장 유리한 위치를 받았다는 것이지 그 자체로 앞날이 보장되는 것이 아닌데<br/>장남들이 가장 유리한 위치를 받아놓고도 차남들에게 그 자리를 다 내어준 이유는<br/>더 나은 것을 받아놓고 그곳에 안주한 방심과 교만이 원인이며 이 원인 때문에 그들이 무능하게 되었으니 비록 뒤에 출발해도 뒤떨어졌다는 위기감과 불리하다는 무의식이 모든 차이를 다 넘어서게 했습니다. <br/><br/><br/>이 점에서도 질문자는 이 노선의 가장 큰 고민과 노력해야 할 바를 바로 이해하셨습니다. 배워서 알아도 귀한 것이고 만일 배우지 않고도 그렇게 깨달았다면 성령이 한 성령이므로 성령으로 바로 붙들려 증거한 것입니다.<br/><br/>다만<br/>이미 받은 것은 전부가 변해야 하는가?<br/>이미 받은 것 중에서 변해야 하는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구별할 것은 없는가?<br/><br/>이것이 문제인데<br/>적어도 이 홈 관련 공회는<br/>적어도 이 노선에 핵심을 바로 잡은 사람은 그 소속에 상관없이<br/>이런 면으로 노력하려는 노력은 필사적입니다. <br/>다만 판단이 느려 늦어질 수는 있고 실수할까 하여 현재 고심 중일 수는 있으나<br/>안주나 방심이나 움직이기 싫어하는 면이 있다면 이미 이 노선에서는 죽은 목숨입니다. 붙어 있으나 죽은 가지이므로 조금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이 노선에서 분리될 수 밖에 없습니다. <br/><br/><br/><br/><br/><br/><br/><br/> (답변 진행 중입니다. 내용 중 정리 되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br/><br/><br/><br/><br/>- 어쨌든 해보기는 해보았는가?<br/> 총공회 전체와 모든 교회들의 내부에서 질문자 지적과 같은 문제 제기가 있었습니다.<br/> 대구공회가 가장 대표적인 그런 입장이고 그분들은 원하는 대로 다 해보았고<br/> 부산공회2는 중도적 입장이며<br/> 부산공회1과 3은 과거 입장입니다. <br/> 각 공회별로 교회별로 조금씩 배경과 편차 등의 차이는 있지만<br/> 질문자 지적한 입장의 반영을 두고 지난 20년간 이 노선에서는 실험 실제가 있었고<br/> 현재 대구공회는 처참할 정도가 되었으니 그 주장의 배경과 동기는 좋아도 결과는 신앙의 황폐화를 가져온다 할 정도에 이르고 있습니다. <br/> 현재 부공2는 양쪽 입장을 반반 섞은 편이고<br/> 현재 부공1과 3은 발전에 이르지는 못할 망정 적어도 손해는 없습니다. <br/><br/><br/>- 찬송이 진정 찬송다운 찬송으로 진행되려면<br/><br/><br/>- 일반적으로 말하면 앞에서 끄는 대로 따라오게 되는데<br/> 찬송에 대하여 어린 신앙들을 어떤 방향으로 어떤 면을 강조하며 이끌 것인가?<br/><br/><br/>- 한번 입에 익으면 내가 찬송을 자유하는 것이 아니고 찬송이 나를 자유하니<br/> 은혜가 얕지만 어린 신앙들에게 크게 호응도 높은 찬송을 부르게 되는 경우<br/> 은혜가 깊지만 첫 신앙들에게 너무 심심하고 따분한 찬송을 익히게 되는 경우<br/><br/><br/>- 개인적으로<br/> 현재 교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찬송위주의 교회들보다 20여 년 앞섰던 체험<br/> 오늘 교계의 교파별 교단별 교회별 전체 흐름의 결과적 증명<br/><br/><br/>- 한국교회의 찬송 변천사와 신앙 변질사<br/> 초기 건전했고 사선을 통과한 신앙과 교회들의 찬송 생활의 공통점<br/> 후기 속화된 오늘의 신앙과 교회들의 찬송 생활의 공통점을 비교하면<br/> 찬송이라는 한 가지 사안으로 비교해도 마치 신앙 전반을 비교한 듯한 결과<br/><br/><br/>- 이 노선의 차원 높은 찬송생활<br/> 백목사님의 찬송과 신앙시 그리고 찬송이나 반주에까지 탁월했던 세계<br/> 지금도 찬양대 찬송 한 곡에서 그 날 설교 전체 은혜를 담는 감동<br/> 천차만별의 개별 신앙들을 한 자리에서 함께 지도해야 할 때 교회의 방향과 결정<br/> 찬송은 기도와 설교와 함께 그 접근과 모양은 달라도 알고 보면 내용은 동일<br/> 겉보기는 발전 속도가 다른 것 같아도 하나가 앞서가고 하나가 뒤로 갈 수 없는 것 <br/> 말씀은혜를 앞질러 가는 찬송의 기쁨과 기도의 효력이 있을 수 없고<br/> 찬송이 담은 찬양이 말씀을 담지 않고 실제 찬양이 될 수 없으니<br/> 무엇이 찬양이며 찬송인가? 소리인가, 내 주관의 감동인가<br/> 아니면 말씀에 붙들린 세계가 찬송과 기도로 나타나며 보완 지원 되는 것인가?<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7. 색깔론<br/><br/>공회에서 들은 얘기로는 공회는 진리, 은혜, 말씀 중심이어서 그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좋은 제도와 신앙자세는 받아들여 수정을 할 수 있다고 말들 하십니다.<br/>그런데 막상 이런 저런 얘길 하다보면, ‘그건 백목사님 계실 때 안 그렇게했다’, ‘백목사님 이 이것 저것 다 시험하여 현재 제도가 확립됬으니 다른 거 다필요없다’ 식입니다.<br/>바른 모습이면 받아들일수 있다는 노선의 기본 자세를 말씀하시면서도 그런 부분이 나오면<br/>공회식이 아니다, 백목사님 목회식이 아니다 하여 색깔을 끼고 보십니다.<br/>안에 계신 분들이야 당연히 그것에 익숙해져 있으니 더 필요성도 못 느끼지고 무슨 색깔론이냐 하시지만, 외부이동교인이나 외부에서보면 보이는 것들을 색깔론으로 보입니다.<br/><br/><br/><br/>8. 고기를 너무 잘 잡는 어부의 문제<br/><br/>우리 백목사님을 어부로 비유하면 천하에 제일 가는 말씀 어부이십니다.<br/>워낙 고기를 잘 잡으셔서 그 방면에서 제일이지만 누구하나 알아주는 사람 많지 않습니다.<br/>고작해서 그 동네 사람들이고 확대 되어봤자 고기잡는 사람들 속에서나 회자되는 얘기입니다. 여하튼 고기는 확실히 잘 잡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분 자식들은 그분이 잡아 놓으신 고기만 잘 저장해 두었다가 먹으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어부 자식들은 어촌에 살지만 고기 잡는 법은 잘 익히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고기 못잡는 어부자손들은 부친이 잡아 놓으신 고기만 먹고 삽니다. 고기를 말씀으로 보았을 때 공회측 교인의 약한 부분은 어느 고기가 좋은지 맛있는지는 알지만 고기를 잡을 줄 모르는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br/>백목사님 설교록을 통해 주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그분의 시야와 시각으로 보게만 됩니다. 우리에게는 다행이 성령이 계셔서 누구나 백목사님과 같은 좋은 훌륭한 어부가 될 수 있는데도 직접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잡아놓은 고기만 먹는 어부가 되는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는 가 되돌아 봐야 할때입니다. <br/><br/><br/><br/>9, 더 많은 생각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제 지능이 부족하여 다 적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유익이되고 또 생각이 나면 다시 더 올릴 것입니다.<br/><br/>결론적으로 말씀드리고 다시 싶은 내용이 위에 것은 기존의 공회 교인들께선 전혀 필요성을 못 느끼실 수 도 있고, 당치 않는 소리라고 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저같은 이동교인의 입장에서는 참 고민입니다. 그리고 공회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공회에 대한 충언이라 생각 해 주십시오.<br/><br/>좋은쌀(말씀과 제도, 신앙의 순수성)을 두고 가자니 아쉽고, 목숨에 직결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먹고 싶은 외부과일과 야채도 있는데 어떻해야 할가요? 외부로 가서 쌀배달 시켜 먹을까요? 아님 남아서 계속 먹고싶은거 참고 있을까요?<br/><br/>그것들에 대한 해답이 필요한 시점의 공회가 아닌가 싶습니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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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03.10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03.10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03.10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03.10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03.10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03.10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 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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