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KIST
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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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br/>(회의 내용 공개)<br><br>원래 조용하게 믿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교역자들만 앉아서 지적을 받고 내부적으로 고치는 방향으로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지적하는 분 중에 교역자들이 부끄러운 부분이 공개되면 목회가 곤란해지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수 차 반복하였는데 이런 생각이 그 분만 아니라 다른 교인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노선의 기본 방향과 반대되는 것이므로 지적 받은 내용들을 전면 공개했습니다. <br><br>부공3 교역자회는 교역자 기득권을 위해 공회나 교회를 맡는 그런 차원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사직을 해야 할 문제가 있으면 공회와 교회를 위해 주저없이 그렇게 할 것이며 고쳐야 할 점이 있다면 고치면 된다는 것이 공회 노선이므로 이런 문제를 두고는 아주 간단하고 확고한 입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틀렸지만 모른 척 하고 눌러앉는 기득권은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br><br>다만 교인의 생각도 틀릴 가능성이 있으므로 교인이 말한다고 무조건 고치거나 자복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서로 양심껏 하기를 노력하되 의견이 다르면 잠깐 과제로 두고 살펴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br><br><br><br>(내용의 구체적 설명)<br><br>07.9.24.과 10.4.에 지적된 내용 중에서<br><br>첫째는 하나님과 목회자 관계의 순수한 신앙 차원을 지적한 것이 있고<br/>둘째는 목회자 처리 내용 중 실무적으로 잘못했다고 지적한 것이 있는데<br/><br/><br/><br/>첫째, 지적한 순수 신앙 내면에 대하여서는<br/><br/>목회자로서 하나님 앞에 늘 죄송하고 부족했던 부분을 지적 받았습니다. <br/>이런 점에서 지적하신 분들은 깨어 사는 분이므로 당연히 지적했습니다. <br/>목회자들이 스스로 고치고 자라갔다면 교인이 지적하는 일이 없었을 것인데<br/>앞서 자기를 고치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종들을 붙들고 야단하신 것입니다.<br/><br/>책망 받은 부분들에 대하여<br/>전체 목회자들은 심각하게 차분하게 개선하도록 노력하여 시간이 지나면 <br/>말 대신에 행동으로 개선이 되었다고 교인들에게 평가되도록 하겠습니다.<br/>그렇게 의견 일치를 보았습니다. <br/><br/><br/><br/>둘째, 지적 내용은 사건 개별적 대처와 전체 흐름으로 나누어 볼 때<br/><br/>사건 개별적 대처는 공회 신앙 노선을 벗어난 것이 없었습니다. <br/>다만 전체 흐름으로 볼 때 은혜스러웠느냐고 한다면? 부족했습니다. <br/><br/>지적한 내용들 중에 '관서'나 '교육당국' 등을 상대로 있었던 문제들과<br/>사업주의가 되었다고 지적 받은 구체적 문제들의 경우 <br/>어떤 일도 공회노선에서 수없이 생각하고 철저하게 계산한 다음 처리했고<br/>교인 몰래 하다가 들키면 덮어야 할 그런 사안으로 한 것이 없으며<br/>어떤 사안이든지 과거 사실 전체가 공개되면 교역자의 자랑처럼 될 수 있거나<br/>혜택 보는 교인이 그들 신앙에서 손해가 될까 해서 공개치 않은 것은 있습니다.<br/>교육당국과 관서와 사업 관련 그 어떤 내용도 이해 교인만 양해 할 수 있다면<br/>어떤 자리에서 어떤 내용이라도 전면 공개를 다 할 수 있습니다. <br/><br/>지적하신 분은 개별 상황의 사실 관계를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br/>지적하신 분이 정확하게 사실 관계를 아신 사안은 지적하신 분과 교역자가<br/>주와 복음의 유익을 위해 우리가 희생하고 대처해야 한다는원칙은 동일한데 <br/>개별 사안을 두고 어느 방법과 어느 정도로 대처할 수 있는지를 두고는<br/>그 동안 듣고 배우고 느낀 것도 너무 다르고 또 후천적 체질도 너무 달라서<br/><br/>교역자 기준으로 보면 지적하신 분은 공회와 신앙현장을 전혀 모르는 분이 되고<br/>지적하신 분 기준에서는 교역자가 깡패이며 공갈범이며 부랑자가 됩니다.<br/><br/>분명한 것은<br/>지적하신 분이 사랑으로 지적했고 공회를 아끼는 마음이었고 <br/>평소 그 신앙은 부공3 교역자 중에서도 가장 앞세울 분이었으므로 <br/>지적하신 분의 진정성이나 비판하는 중심에 대하여서는 전혀 의심이 없습니다.<br/><br/>더 중요한 것은 지적하신 분은 늘 깨어 기도하는 분이므로 <br/>비록 목회자가 현장 목회와 심방 차원에서 교회와 교인을 위해 중심이 좋았다 해도<br/>목회자를 넓게 보고 길게 볼 때 '틀렸다'고 한 면을 두고는 이의가 없습니다. <br/>목회 현장에서 교회와 교인을 사랑하고 아끼고 신앙유익을 위해 뛰었는데<br/>결과적으로 인간과 세상에 가까워졌고 하나님과 천국과 멀어졌다는 지적 앞에는<br/>평소 목회자로서 스스로도 불만스러웠고 죄송했고 죄책감을 떨쳐 본 적이 없습니다. <br/><br/><br/><br/>(가장 안타까운 것)<br/><br/>백목사님 생전에는 전화로 질문하면 명쾌하게 설명을 받고 그대로 순종했는데<br/>이제 애매한 문제를 두고 지도 받을 데가 없으므로 소경이 더듬는 꼴입니다. <br/>그래서 과거 배운 것을 생각하여 매사 최대한 조심을 하고 신중하게 대하나<br/>그 판단이나 결과가 다 옳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br/>최소한 공회 신앙노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 할 때 그 다음 처리한 일들이고<br/>공회노선이 명백히 금하는데 알면서 무슨 이익을 위해 몰래 하지는 않았습니다.<br/><br/>가장 안타까운 것은 바로 이 대목입니다. <br/>한 가지씩 살피고 조심했지만 그것으로 전부가 아니며 전부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br/>한 가지씩 바로 한다고 했는데 전체로 볼 때 방향이 통째 잘못 될 수 있습니다.<br/>또 한 가지씩도 바로 하고 전체 방향도 바로 잡았다 해도 <br/>그 걸어가는 순간이 하나님 동행과 하나님 기뻐하는 순간이었느냐는 면으로 본다면<br/>우리는 처음부터 그럴 자신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 하는 데까지 하는 것이지<br/>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 기뻐하는 일이라고 자신하고 단정한 일은 없습니다.<br/>상황을 볼 때 적어도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만 판단하고 나온 것입니다. <br/><br/><br/><br/>(몇 가지만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br/><br/>- 교육 당국과의 마찰<br/><br/>학교 교사가 목사에게 공갈 협박을 당해서 벌벌 떨며 교인에게 전화를 했다는데<br/>그 교사가 그렇게 떨고 그렇게 말을 했다면 충분히 그랬을 것으로 생각합니다.<br/><br/>만일 평범한 교사의 평범한 일로 그를 벌벌 떨게 했다면 목회자 언행이 잘못일 것이고<br/>만일 교사가 있을 수 없는 일을 했다면 앞뒤 상황을 살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br/><br/>교역자의 당시 판단으로는<br/>현재 사회 상황에 교사가 그렇게까지 학생에게 제사지내도록 강요할 수 있을까<br/>현재 우리 사회에서 학부형이 그토록 학생이 당하는데도 입을 닫고 참았을까<br/>교사가 다른 학급까지 교회를 그렇게 욕을 하도록 시끄럽게 할 수 있었을까<br/>이런 상황으로 봤습니다. <br/><br/>더구나<br/>해당 학교 학생의 최소 3분의 1 이상은 항상 공회 교회를 출석하고 있으며<br/>학생 중에는 불신가정도 있으며 동네는 거의 전부 집안으로 얽혀져 있습니다.<br/>교회와 목회자와 신앙있는 교인이 희생할 문제면 애당초 문제가 되지 않겠으나<br/>학생들은 자발 신앙 정도가 아니고 불신 가정들이 많은 상태에서 <br/>학교에서 계속 이 문제를 떠들어 온 동네에 일방 이야기가 나가게 하는 것을 두고<br/>당시 교역자는 최대한 정중하게 교사 스스로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br/>교사나 학교나, 온 동네 불신자나, 우리 교인이나 학생에게 유익되겠다고 판단했습니다.<br/><br/>앞으로도 그렇고 오늘도 누가 홈에서 이런 문제로 상담한다면<br/>신앙수준에 따라 대응이 달라질 일이지 무조건 참으라 안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br/>교사가 어떻게 무슨 일을 했는지 일체 확인하지 않고 <br/>교사 입에서 무서워 벌벌 떨린다고만 했으면 교회의 대응은 무조건 다 틀렸는가?<br/>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br/><br/>교인 중 한 학부형에게 그런 표현을 한 것을 두고도 많은 면을 생각하고 있습니다.<br/>왜 하필 그 교인에게, 그런 표현을, 그렇게 했겠는가?<br/>그것이 그 교사가 자기 스스로 뒷감당하지 못할 일을 했다고 뒷늦게 인식하자<br/>자기 방어와 자기 해결을 위해 가장 적절한 표현이며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br/><br/>어쨌든 교회와 목회자 이름을 말하고 교사에게 전화를 해야 했으므로 신중했고<br/>알릴 교인들에게 다 알렸고 이후 교회에서도 소상하게 당시 일을 설명했습니다. <br/>전혀 감춘 것이 없고 전체 교인들이 소상하게 전말을 다 알도록 처리했습니다. <br/>교장 교사 멱살을 잡겠다는 교인<br/>교육부나 법원에 책임을 묻겠다는 교인<br/>불신 가정 학생과 이웃 불신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끝까지 두고 볼 것이냐는 교인<br/>그리고 지적하신 분의 경우는 끝까지 어떤 대응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엇갈린다면<br/>교역자로서 이 문제는 무조건 개입금지 사항이냐 무조건 맞대응 할 일이냐?<br/><br/>당시 처리 내용 자체를 두고는 지금도 무엇을 잘못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br/>그만큼 신중하게 처리했고 최대한 존중과 예의와 최선을 다했습니다. <br/>처음에는 학부형으로서 간곡하게 사정만 했습니다. 막무가내였습니다. <br/>다음에는 이 문제가 만일 사회 문제가 될 때 뒷감당을 하겠느냐고 했습니다.<br/>만일 이 문제를 두고 교육부에서 과연 잘했다고 할지 상부에 물어보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하자 그때서야 그 동안 모든 태도를 돌변하고 사과를 했습니다. 이후 과정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br/><br/>오늘까지 이런 문제가 있으면 늘 그렇게 처리를 했습니다.<br/>처음에는 최대한 참고 양보하고 당합니다. 복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참아야 하는가? <br/>당하는 사람의 신앙과 수준과 실력과 전체 구원의 유익 문제를 두고 심각히 판단한 다음<br/>만일 필요하다 하면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할 수 있는가를 두고 살폈습니다. <br/><br/>그런데도 불구하고 당시 신앙없이 처리했다고 총론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면<br/>교역자는 무조건 자신을 돌아볼 문제이지 달리 설명하고 변명할 일이 아닐 것입니다.<br/>그러나 그때 무슨 이야기가 어떻게 되었는지 구체적 사실관계가 나온다면 그것은 별개 문제입니다. <br/><br/><br/><br/>- 관서 문제<br/><br/>교인들이 사회생활이나 사업에서 관서로부터 너무 불법행위로 큰 손해를 보면<br/>경제 손실도 크고 신앙생활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고통을 겪는 수가 있습니다.<br/>사업 적격 건물인데 담당자들이 없는 법으로 못하게 하여 고초를 겪는 교인들<br/>전혀 돈 들 필요가 없는데 큰 돈을 주고 필요 없는 서류를 해오라 시키는 경우<br/>치료비를 1천만원 받아야 하는데 50만원 밖에 못 준다고 거짓말 하는 직원들<br/><br/>이런 문제들이 도시의 똑똑한 교인들이면 아무 문제가 될 리도 없는데<br/>무조건 당하는 교인이 그 문제 때문에 가정과 경제에 영향을 받고 <br/>결국 신앙까지 손해를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면 목회자는 어떻게 해야겠는가?<br/><br/>기도로만 해결하고 담당자의 어떤 처분이든 무조건 따르라고 지도해야 하는가?<br/>기도와 함께 우리 사회의 법과 사리를 따져 지혜롭게 대처하라는 지도도 있고<br/>때로는 지적 책망해서 담당자 잘못을 바로 잡아 주도록 지도해 줄 수도 있는가?<br/>해당 교인이 너무 억울한 문제를 당하는데 교역자 외에 도와 줄 사람이 없다면<br/>교인 사랑과 심방 차원에서 그 교인 대신에 담당자에게 시정을 요구하여 도울 수 있는가?<br/><br/>어떤 문제든지 교인이면 무조건 돕는다고 도와 준 기억은 없고<br/>어떤 문제든지 관서 담당자들을 혼부터 내고 야단치고 공갈 협박한 적은 없고<br/>매사 도울 문제인가, 신앙 유익이 어떤가, 교회 손해가 없는가를 생각했고<br/>도울 때는 만일 도운 사람이 공회 목사였다는 것이 알려질 때 덕이 되겠는가?<br/>이 면을 살펴 도운 것도 가려서 했고 도울 때는 모든 선을 조심했기 때문에<br/>지금까지 교역자가 도운 문제를 두고 양쪽 내용을 공평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br/>교역자가 도운 내용과 상황은 극찬을 받을 정도가 대부분이었다고 생각하며<br/>간혹 애매한 경우가 있었으나 교인을 사랑한다면 마땅히 그랬어야 했다는 일입니다. <br/><br/>적어도 오늘까지 이 나라 관서 담당자들의 구조적이며 체질적인 문제점은<br/>너무 모순이고 잘못된 점이 한도 없이 많은데 그것은 누가 그 자리에 앉아도<br/>우리 사회 전체 수준이 그 정도이기 때문에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br/>다만 그들의 처리 때문에 교인이 너무 억울한데 신앙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라면<br/>목회자로서 아는 범위에서 또 도울 정도는 도왔습니다. <br/><br/><br/><br/>(이번 지적의 결과)<br/><br/>그러나 여기까지 설명은 교역자의 중심과 취지만 해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br/>과연 하나님의 뜻에 명중이냐고 묻는다면 답변자는 눈이 어두워 단정하지는 못하겠고<br/>다른 사람보다는 이 노선 사례를 많이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는 많이 살폈으나<br/>단정하라면 자신있게 단정하지는 못하겠습니다. <br/>백목사님 사후 답변자 스스로 걸어온 길은 더듬어 겨우 겨우 한 걸음씩 걷는다고 걸었지<br/>과연 하나님 뜻에 명중이냐 묻는다면 이 홈의 설교록 자료 전면공개에 이르기까지 <br/>솔직히 단정적으로 하나님 뜻에 명중이란 표현은 하지 못하겠습니다. <br/><br/>다만 매 판단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래도 이것이 낫지 않겠는가, 이래야 하지 않겠는가!<br/>이 정도 수준에서만 판단했고 그 판단에 따라 실행해 왔을 뿐입니다. <br/><br/>물론 약하여 넘어진 것도 많고 부족하여 알면서도 실행 못한 것도 적지 않으나<br/>교인들을 돕는다고 관서 등과 마주친 일들의 거의 전부는 이러했습니다. <br/><br/><br/><br/>그런데 이번에 지적하신 분은<br/>몇 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가지고 듣고 본 것을 예로 들었습니다.<br/>그 구체적 사례는 지금도 분명히 답변자가 잘못 한 일이 아니라고 단정합니다.<br/>다만 그 한 가지 일과 일을 10여 년 세월 속에 펼쳐놓고 전체를 가지고 말할 때<br/>답변자는 맡고 있는 교회의 목회자냐 아니면 교인들의 사업을 돕는 사업가냐?<br/>이렇게 말한다면 답변자는 교인들의 뒤치닥거리를 하는 브로커 노릇을 했다고<br/>인정할 만합니다.<br/>이런 점에서 답변자는 이번 지적을 보통 지적으로 받지 않고 답변자 앞으로 목회 방향 자체를 바꿀 정도의 중요한 경고로 받고 있습니다. <br/><br/>교인 사랑 때문에 시작했다 하지만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는 만큼 그렇게 했느냐?<br/>너무 넘쳐서 탈이었다고 인정이 됩니다. <br/>그 시간들만큼 성경도 읽지 못했고 또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세상 법리와 물정은 그 방면에 최고 전문가 수준까지 되었지만 그 대신 이 홈에서 약속한 '성경개론' 교재 편찬도 늦어졌고 백영희전기작업도 수 년 늦어졌습니다. 또 답변자 스스로 읽어야 할 설교록도 손해를 봤습니다. 또 직접 손발로 교인들을 돕는다고 설쳤던 그 시간과 노력을 가지고 교인들을 위해서 그만큼 분량의 기도를 했더라면 하늘에서 능력으로 우리 교인들을 아듬어 초월의 삶을 살도록 했을 것인데 그렇게도 하지 못했습니다. <br/><br/>이런 면을 생각한다면 다른 노선에서는 답변자가 걸어온 지난 10여 년 세월은 큰 자랑거리가 되어야 하겠지만 이 노선에서는 아주 엉뚱한 짓을 했다고 큰 책망을 받아야 할 사안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성경 읽고 기도하고 심방하는 일만 주력해야겠습니다. 답변자를 이렇게 결심하고 걸어가는 방향 자체를 바꾸도록 한 이번 모임의 지적자께는 한없이 감사할 뿐입니다. 그래서 어떤 지적을 해도 잠깐씩 설명은 드렸으나 전체적으로 지적에 대하여 거부하거 반대하거나 달리 이의하지 않았습니다. 답변자는 그 지적의 원 뜻에 충실하도록 실제 바꿀 것입니다.<br/><br/><br/>현재 이 홈 운영조차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br/>지적하신 분은 교인인데도 인터넷을 전혀 보지 않는 분이고 이 홈도 보지 않습니다.<br/>교인이 이렇게 하나님만 가까이 하려고 세상 기술과 소식을 끊고 살고 있는데<br/>이 노선 목회자라는 사람이 인터넷에서 타이핑을 치고 있는 것도 부끄러웠습니다. <br/>하나님께서 알리시고자 한다면 누구를 통해 어떻게라도 알리실 것인데<br/>공연히 인터넷에 피동이 되어 사람 기술과 노력으로 설치고 소란스럽게 했는가?<br/><br/>한편으로 설교록 출간도 <br/>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듣고 알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실 것인데<br/>왜 한 교회 목회자가 총공회 전체를 대표하고 서부교회 할 일을 가져와서 난리였는가?<br/>심지어 번역도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하실 것인데 시골 교회 교인들이 자기들 낸 연보의 사용 의미와 효력과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는데 지나친 것이 아닌가? 방언의 역사가 오늘도 있으며 하나님의 복음 역사는 한 사람의 사람 노력이나 기획이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닌데? <br/><br/>사실 총공회 기본으로 돌아와서 살핀다면 <br/>가장 신앙적이고 가장 성경적이며 가장 이상적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져가게 됩니다. <br/>무리 할 것 없고 유유하며 넉넉하며 만사를 다 내어주고도 넘치는 세계에 살게 됩니다.<br/>답변자의 경우는 1983년 4월까지 그런 세계를 살았던 기억이 뚜렷합니다.<br/>그러나 그 이후부터 오늘까지 너무 막 살았고 너무 주님과 거리가 멀어졌습니다.<br/>남들은 답변자의 경력에서 나오는 활동만 접하고 과대 평가할 수 있겠지만<br/>답변자는 자기 내면의 하나님과 거리가 과거와 너무 성글어져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br/><br/>그래도 연구소 일이 공회적 일이 또 맡은 교회의 일들이 이 한 몸 바쳐 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여 정신 없이 뛰어 왔는데 어느 날 문득 지적을 받고 나니까 모두들 엉뚱한 짓을 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고 있습니다. 아직 단정까지는 가지 않았습니다. 지금 부공1 교회들은 어느 누구 하나 홈 운영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기도만 하고 성경만 보는 진정한 그리고 순수한 공회적 목회자들의 때묻지 않은 모습니다. 그들보다 더 그렇게 살았던 답변자가 언제 어느 순간부터 이런 홈을 통해 이름을 외부에 알리고 모든 사람들 앞에 공회 문제를 두고 무슨 연예인처럼 살아 왔는가? 한탄스럽습니다. <br/><br/>설교록, 녹음테이프, 홈운영, 조직신학, 백영희전기작업, 시집....<br/>이 모든 것이 신앙 어린 분들과 외부 노선에 가까운 분들은 반가운 일이라 하나<br/>이 노선을 깊이 걷고 분들은 답변자를 백목사님 이름을 팔아 자기 명예주의와 인기주의로 산다고 비판을 하고 있는 줄 압니다. 구체적으로 그런 말들을 들었으나 이번 지적을 받고 지난날을 돌아볼 때 과연 그럴 필요가 있었는가? <br/>이번 지적하신 분이 홈운영을 통해 설교록이 얼마나 더 많이 나갔는가?<br/>이번 영어 번역 설교를 영어홈에 올렸으나 몇 사람이나 반응을 했던가?<br/>이런 지적을 한 적이 있습니다. <br/><br/><br/>사실 이 홈 운영 이전에 이런 문제를 두고 오래 동안 망설였습니다.<br/>그보다 앞서 백목사님 사후 과연 이 노선 자료를 전하고 연구를 해야 하는가<br/>문제로 수 년간 크게 고민하고 혼동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br/><br/>지금 다시 당분간 또는 그 이상 시간을 통해 얼마나 고민을 할지 모르겠습니다.<br/>우선 모든 것이 단정이 될 때까지 하루 일정 시간만 정하여 홈을 대하고 있습니다. <br/>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여 백지 상태에서 살펴볼 기회로 이번 기회를 가졌습니다.<br/>다시 시작하는 부분이 있다 해도 이전과 자세가 크게 달라질 것 같습니다.<br/>혹시 어떤 결정을 내릴지 답변자도 모르겠습니다. <br/>만사 신중하게 그러나 철저하게 살펴보겠다는 것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br/><br/>적어도 기득권에 붙들려 밥그릇과 명예를 차지하는 길만은 아닐 것입니다.<br/>그렇게 하기에는 이 노선에서 받은 바가 너무 골수에 깊이 박혀 있습니다.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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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03.10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03.10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03.10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03.10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03.10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03.10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 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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