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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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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br/>1. 장 영목 목사님<br><br>- 성장<br><br>1954년 생으로 기억하며 거창 군 마리 면 출신이나 어려서부터 대신동에서 자랐습니다.<br>부산 최고 명문인 경남 중학교를 졸업한 우수한 학생이었으나<br>홀 어머니에 가정 경제가 어렵고 건강이 좋지 않아 고교 진학은 하지 못했습니다. <br><br><br>- 신앙 <br><br>좌절 중에 70년 대 중반 서부 교회로 출석하고 추 순덕 집사님 지도로 신앙 출발을 하면서<br>주일 학교 반사를 시작하였는데 충성 진실이 특별했고 단순간에 최고의 반사가 되었으며 <br>이 과정에서 추 집사님의 지도와 지원은 신앙과 실력에 있어 큰 인물 하나를 만들었습니다.<br><br/><br/>- 반사<br/><br/>세상으로 출세하고 훌륭하게 나갈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그 앞의 세상 길을 다 막아 놓았고<br/>원래 목표를 향해 거침 없이 달리는 성격인데 신앙 세계에 다 쏟을 기회가 주어졌으며<br/>1970년 중반이라는 시점은 달리면 달리는 대로 학생이 한도 없이 쏟아 질 때였습니다.<br/>수 많은 반사들 중에서도 여반에는 이 경애 강 혜리로 이어지는 유명 반사가 있었고<br/>남반에서는 장 영목의 이름이 단연 앞서고 있었습니다. 전설로 들을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br/><br/>장 목사님은 10여 명 이상의 보조 반사를 거느리고 한 반 1 회 출석 340 명을 기록했고<br/>이 기록은 서부 교회 주일 학교의 부흥사에서 최고의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br/><br/><br/>- 총무<br/><br/>1 주간 내내 오토바이를 타고 소매 가게에 잡화를 배달하는 작은 도매 배달업을 하면서<br/>반사 생활을 위해 하루, 이틀 심방일을 늘려 나갔고 나중에는 주간 내내 심방 전도를 했고<br/>자기가 벌어 자기가 살면서 그 어느 목회자도 비교하기 어려울 충성을 하였으며<br/>이 과정에서 보조 반사 지원 등 필요한 면이 있으면 구역장님은 최대한 지도 지원을 했고<br/>처음 믿고 교회를 출발한 순간부터 순수하게 현장의 반사로 자라 올라 간 그 실력을 보고<br/>1982년 백 목사님은 배 종일 목사님 후임으로 장 영목 반사를 총무에 배치 시켰습니다. <br/><br/>6백 개 반과 1천 명의 반사와 보조 반사를 단 1 명이 전권을 가지고 총괄하는 직책으로서<br/>안으로는 주일 학교 공책 1 권을 사는 것도 백 목사님께 지도 받고 지시 받는 자리이며<br/>외부로는 장로님 대부분과 교회에 움직이는 모든 분들을 반사가 되어 지시를 받는 자리이니<br/>서부 교회 목회의 가장 중추였던 구역 체제 외에는 가장 중요한 자리였습니다. <br/><br/>전임자가 절정에 올려 놓았고 장 목사님은 그 절정의 주일 학교를 지속시켰으며<br/>전국에서 서부 교회의 목회와 주일 학교를 배우려고 방문하는 수 많은 교계 인사를 상대로<br/>총공회, 백 목사님, 서부 교회, 그리고 주일 학교를 가르치는 거의 유일한 선생이었습니다.<br/><br/><br/>- 노선<br/><br/>백 목사님은 주일 학생이나 일반 교인들을 일일이 길러 평생에 많은 목회자를 배출했는데<br/>1980년 마지막으로 갈수록 백 목사님은 사후의 공회를 염두에 두고 노선을 중시했었는데<br/>생존 마지막까지 백 목사님 5층 숙소에서 교회 모든 면을 가장 깊게 의논하는 자리에는<br/>행정 실장, 주교 총무, 연구 소장, 연구 부장, 중간 부장이 다 30대 조사들이었습니다.<br/><br/>그 중에 2 명은 교회의 직무상 참석하는 분들이었으며 신앙 성향도 온건한 분들이었으나<br/>주교 총무, 중간 부장, 연구 부장 3 명은 신앙 노선이 가장 강했고 타협이 전혀 없었으므로<br/>서부 교회 내의 제일 강경파들로 분류할 수 있었습니다. <br/>주교 총무와 중간 부장은 현장을 발로 뛰는 현장 중심의 관리 직원들이었고<br/>연구 부장은 설교록 출간과 공회 노선 연구를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br/><br/>특히 장 영목 목사님은 일반 교회의 제도나 운영 방법을 비판하는 것에 가장 단호하여<br/>서부 교회를 찾는 손님인 외부 교계 지도자들에게 그 발언이 너무 강하여 아찔할 정도였고<br/>안으로도 교회의 노선과 교훈에 조금이라도 다른 틈이 보이면 가장 앞서 분쇄하였습니다.<br/><br/><br/>- 사후<br/><br/>백 목사님 사후 장 목사님은 이 노선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제일 선에 서서 투쟁했고<br/>1989년 12월에 남정 교회로 나가게 될 서부 교회 장로님들에 의하여 제명을 당했습니다. <br/>그래도 가능한 전체 반사를 동원하여 서부 교회 원래 노선을 위해 있는 힘을 다했으며<br/>그 과정에서 이 홈의 답변자와 가졌던 전우애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br/><br/><br/>- 목회<br/><br/>1991년 1월 서부 교회를 지키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부 교회에는 서 목사님이 부임하고<br/>장 목사님은 서부 교회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걸고 서 목사님을 반대하겠다고 나섰으며<br/>서 목사님은 상강단에서 서부 교회 변화를 위해 기존 젊은 지도부를 공격하고 나섰고<br/>장 목사님은 하강단에서 1천 명 반사들을 상대로 사정 없이 서 목사님을 맞 받아 쳤습니다.<br/><br/>다른 목회자와 달리 서 목사님은 오랜 세월 서서히 서부 교회를 바꾸어 나갈 분이었고<br/>장 목사님은 성격상 장기전에 취약하고 목회자를 상대로 교인 입장에서 싸우는 것도 문제며<br/>무엇보다 서부 교회를 원래 노선으로 지키려는 중심 교인들이 분열이 되어 있다는 점에서<br/>답변자는 장 목사님께 서부 교회는 자체 해결하도록 맡기고 개척하도록 권했습니다. <br/><br/>계속 집착을 가지고 투쟁하던 장 목사님은 8월 집회 후에 입장을 바꾸었고 개척을 합니다.<br/>서부 교회의 동쪽으로 개척을 하여 과거 서부 교회의 모습을 바로 이어 가겠다고 나섰으나<br/>막상 개척을 시작하자 주일 학교조차 부흥이 어려웠습니다. <br/><br/>부흥이 어렵게 되자 부흥을 위해 가능한 방법들을 찾게 되었는데<br/>이 과정에서 과거 서부 교회를 찾아서 서부 교회 목회를 배워 간 외부 교회들을 찾아 가서<br/>그 교회들이 어떻게 발전하게 되었는지를 살피고 다니기 시작했고 그 교회들의 부흥을 보며<br/>장 목사님은 그 동안 걸어 온 신앙 노선의 선회를 결심하게 됩니다.<br/><br/><br/>일단 부흥을 시켜 놓고 봐야 한다.<br/>부흥만 시켜 놓으면 총공회 모든 교회들은 입을 다물게 된다.<br/>부흥을 위해서라면 죄가 되지 않는 모든 방법을 다 사용해 보겠다.<br/><br/>이런 말은 장 목사님이 10 년을 총무로 지내며 외부 모든 교계를 향해 비판했던 내용이며 <br/>내부적으로 이런 주장을 하는 공회와 서부 교회 내부 주장을 가장 무참히 비판한 내용인데<br/>장 목사님은 목회를 실제로 해 보니까 일단 부흥을 위해서는 공회 식은 안 된다는 것이었고<br/>이후에 공회가 금지했고 타 교단이 사용한 모든 방법들을 거의 다 사용하게 됩니다. <br/><br/>이 모습을 보며 장 목사님의 개척 때 중심이 된 두 가정이 원래 노선을 잇겠다고 분리했고<br/>지금 동천 교회에서 장 목사님의 원래 개척 첫 신앙 노선은 이어 지고 있습니다.<br/>교회 내 노선 변경을 반대한 두 가정이 분리되자 장 목사님은 거침 없이 할 일을 다 했고<br/>몇 년을 더 버티지 못하고 공회 내 다른 교회와 합하여 감리 교회를 인수하였다가<br/>재 분리한 뒤 아예 교회를 감리 교회로 넘겨 주고 과거 인연이 있던 외부 목회자들과 함께<br/>필리핀 선교에 나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br/><br/><br/><br/>2. 교훈<br/><br/>- 의미<br/><br/>장 목사님은 이 노선에서 그 이름을 개인 이름으로만 가지고 있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br/>이 노선에 앞장을 섰었을 때도 이 후 이 노선의 변형 과정 연구를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br/>개인적으로 오래 동안 가장 가깝게 가장 어려운 시기를 가장 뜨겁게 동역했던 분입니다.<br/>모든 것을 눈 빛으로 다 통했고 서로 보지 않아도 다 알 정도로 지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br/><br/>1980년 대 주일 학교의 숫적 부흥이 한계를 맞고 있다고 느끼고 있을 때에<br/>중국이나 필리핀 등 동남아에 주일 학교 선교의 사례를 이어 가자고 대화를 했었습니다. <br/>그러나 오늘 장 목사님이 일반 교계와 혼합이 되어 이 노선을 떠난 방법은 아니었습니다.<br/>그 분께 누가 그런 말을 했다면 세상 사회에서도 견딜 수 없는 무참한 일을 당했을 것이나<br/>지금은 스스로 그 길을 걸어 가고 있습니다. <br/><br/>장 목사님과의 개인 인연과 사랑이 너무 깊어 지나 온 내막을 일일이 말하기 고통스러우나<br/>장 목사님을 가장 극적인, 대표적인 사례로 두고 오늘 우리는 우리를 살펴야 하기 때문에<br/>자세하게 소개했습니다. <br/><br/>장 목사님보다 더 뜨겁게 이 노선을 사랑했던 분은 거의 없고 완전 바꾼 분도 드뭅니다.<br/>연세 많은 분으로는 잠실동 교회의 백 태영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리고 장 목사님입니다.<br/>잠실동이 곁 길을 간다며 잠실동을 깨서 이 노선으로 개척한다고 나선 분이 그 분입니다.<br/><br/>앞서 나간 잠실동과 뒤 따라 간 장 목사님은<br/>과거 이 노선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나 현재 그 분들은 이 노선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br/>잠실동은 배은망덕한 행동과 흔적이 너무 많으나 장 목사님은 이 노선 사랑이 다릅니다.<br/><br/><br/>- 우리의 고민<br/><br/>이 길을 걷겠다고 큰 소리를 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br/>그러나 이 길을 실제 걸어 가다가 어려움을 겪게 될 때 그 때가 문제입니다. <br/>이미 수 많은 분들이 이 노선을 약간이나 많이 또는 완전히 등진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br/><br/>이 대로 가면 어렵다는 것입니다. <br/>목회자에게는 부흥을 포기해야 하고 교인은 세상 살이에 고통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br/>오늘 이 홈에서 또는 오늘 이 노선 교회에서 이 노선을 강하게 외치는 분들을 볼 때마다<br/>과거 장 목사님만큼 또 그 보다 더 일찍 과거 백 태영 목사님만한 분이 있겠는가!<br/><br/>이제 첫 은혜를 받아 이 노선의 좋은 점만 봤기 때문에 이 노선을 아직 좋아하는 것입니다.<br/>그러나 세월이 지나며 언젠가 이 노선 때문에 재미 없고 결과가 없고 어려움을 겪게 되면<br/>그 때가 문제입니다. 그럴 때도 이 노선의 처음을 기억하며 그 대로 걸어 갈 수 있을까?<br/>물론 남이 변질되었다고 비판할까 해서 마음은 딴 곳에 있으면서 몸만 이 곳에 있기도 하고<br/>아니면 교회가 부흥이 되지 않아서 교인들이 고통을 겪든 말든 나대로 간다는 무대포식인가<br/>교인들로서도 교회에 나 하나만 앉아 있으면 된다는 식으로 전도는 하지 않고<br/>남들에게 전도하지 않은 책임만 묻고 고등 지식으로 주변과 외부를 비판만 하고 있으면서<br/>이 노선 그대로를 주장하는 분들은 여전히 전국 공회 교회 곳곳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br/><br/>무조건 그대로 이 길을 가는 것은, 중들이 우리보다 더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br/>그러나 기독교는 불교처럼 석고화가 아니라 생명을 가지고 살아 움직이는 신앙체입니다.<br/>동시에 기독교는 본질을 바꾸고 진리의 길을 벗어 나는 것은 타락으로 규정하는 곳입니다.<br/><br/>정말 옳기 때문에<br/>정말 좋은 점이 있기 때문에<br/>정말 이 노선이 모든 면에서 제일의 최고의 길이기 때문에 선택하고 걸어 가고 있는가?<br/>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br/>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는가? <br/>그리고 그 결과는 어떠한가? <br/><br/>그래서 스스로도, 그리고 공회 내부에도, 더하여 외부 누구에게도 <br/>이 노선의 이치를 <br/>이 노선의 가치를 <br/>이 노선의 결과를 가지고 비교 우위적으로 이 노선을 외칠 수 있는가?<br/><br/>미리 살펴 연구하고 <br/>아니면 미리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는 것이 양심일 것으로 생각합니다.<br/><br/>이 홈을 운영하면서 <br/>이 노선에서 보낸 세월이 있기 때문에<br/>서부 교회와 공회에서 여러 중요한 직책을 맡아 많은 면을 많이 볼 수 있었기 때문에<br/>이 홈을 운영하면서 이 모든 숙제를 함께 담아 제시하고 있습니다. <br/><br/>때로는 공회 외부에 보이고 싶지 않은 내부 이야기를 있는 대로 다 공개하는 것도<br/>이 노선을 아끼지 않거나 해당 인물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br/>이 노선이 너무 귀하기 때문에 이 길을 걸어 가려면 각오해야 할 산들을 소개한 것입니다.<br/><br/><br/><br/>3. 선교비로 후원하는 문제는<br/><br/>각 교회의 내부 문제이고 최근 공회 내에서도 교회들의 소식이 거의 끊어져 있으며<br/>선교를 후원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복음 전파의 가장 일선의 가장 큰 수고이므로<br/>원칙적으로는 교파를 가리지 않고 최대한 후원하는 마음을 가지려 합니다.<br/><br/>그러나 최근 수 없이 밝혀 지는 사실에서 보듯이<br/>선교를 두고는 너무 많은 문제점들이 있기 때문에 후원도 반대도 함부로 하기 어렵습니다.<br/>원래 질문한 방향과는 많이 달라졌다 해도 필요한 내용을 소개해 보았습니다. <br/><br/>분명한 것은 현재 장 목사님의 선교 방식은 공회식이 아니고 완전히 일반 교회식입니다. </br></br></br></br></br></br></br></br></br></br></br></br></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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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03.10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03.10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03.10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03.10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03.10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03.10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 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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