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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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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br/>백 목사님 생존 마지막 시기였던 1980년대 말쯤 제대 마지막이었던 군인 모습으로 서부 교회를 찾아 와서 백 목사님께 이 노선이 좋아서 배우겠다고 인사를 했고, 이후 대구에서 개척하며 양성원을 다녔고 교역자 회의에 참석하며 약간 배운 적이 있었습니다. 일반 군복 대신에 예복을 입었던 기억이 좀 달랐고 장교 같지는 않았는데 군종 사병과 같은 인상의 총신 출신이라는 자기 소개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br><br>누구에게나 싹싹하게 인사하고 잘 따르는 사교적 성품이었고 한 눈에 볼 때도 매사 적극적이라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당시 서부 교회를 찾아 백 목사님께 배우고 목회를 꿈 꾸던 수백 명의 청년 중 한 분이었습니다. 1989년 백 목사님 돌아 가시기 직전의 교역자 회의에 매달 격론이 있었는데 수정 노선 쪽으로 행동하는 것이 많이 보였고, 백 목사님 사후에는 갑자기 이 노선의 파수꾼이 되겠다면서 전국을 다니며 대구 공회 소장파 목회자들 중에 앞장을 섰습니다. <br><br>특히 서 영호 목사님을 그렇게 존경해 마지 않았는데 서 목사님이 부산 공회에 그 대로 있는 모습이 보이자 '제자'의 이름으로 서 목사님을 비판했던 글이 어디 남아 있을 것인데 곧 찾아서 이 곳에 공개할 생각입니다. 답변자와 관계는 멀리서 얼굴 보고 인사하는 정도였는데, 백 목사님 사후 노선 분립의 과정에 답변자 시골 교회 교인들을 집집마다 찾아 다니면서 총공회를 깨뜨리며 이 노선을 곁길로 이끌고 있다고 심방을 한 다음, 그 날 금 요일 저녁 예배가 끝날 때 쯤 예배당 안으로 몇몇 대구 공회 동료 목회자들을 대동하고 들어 온 다음 교회 강단에 허락도 없이 올라 가서 마이크를 잡고 교인들에게 공회 입장을 안내하겠다고 소동을 일으켜, 당시 답변자가 공회 노선은 그 누구의 발언도 다 허용하면서 옳은 것을 찾는 곳이므로 질서와 순서를 지켜 그렇게 하자고 제의했습니다.<br><br>당시 답변자가, 이렇게 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 된 일이지만 옳은 것을 찾으려는 중심 때문이라면 마땅히 발언을 하되, 오늘 여기서 발언할 때는 순서를 지켜 문답이 고루 이어지게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타 교회 일반 교인들에게 자기 말만 쏟고 가는 식이 될 것이고 그 것은 예배당에 욕설하며 횡패 부리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문답을 고루하겠다고 약속했고, 답변자가 또 하나 제시한 것은 오늘 여기 나와서 무슨 발언이든 원하시면 다 하도록 기회를 드리는 대신, 답변자도 다음에 답변자가 원하는 날에 예고 없이 오늘 발언하시는 목회자의 교회 예배 시간에 참석하고 발언권을 받아 같은 식으로 발언할 수 있도록 목회자로서 공개적으로 약속을 먼저 하라고 요청했습니다.<br><br>그러자 기성 교회를 목회하던 목회자들은 뒤 자리로 가서 전부 앉아 버렸고, 당시 조 수환 조사님은 개척은 했으나 교인이 거의 없던 상태였으므로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현재까지 답변자는 조 수환 목사님 목회하시는 교회에 당시 약속 기록에 의하여 답변자가 원하는 시간에 들어 가서 발언할 수 있는 조 목사님의 요청을 받아 둔 상태입니다. <br><br><br>당시 조 수환 목사님이 답변자를 상대로 교인들 앞에서 밝히고자 한 것은 답변자가 과연 목회 연구소에서 설교록 출간을 책임 진 직원이냐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나 가고 있습니다. 당시 조 목사님과 또 함께 오신 분들은 공회나 연구소를 전혀 모르는 분들입니다. 사실은 대구 공회 지도부의 파견이었습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고 세월은 지나 갔고, 오늘은 당시를 두고 그 분들에게서 어떤 행동이나 발언도 재론 되지 않고 있습니다. 답변자가 말하고 행동하려는 한도 없지만 바빠서 숙제로 두고 20 년을 내려 오고 있습니다. <br><br>당시 부딪힌 일은 소위 종교 전쟁이었습니다. 진리 투쟁이었습니다. 공회 노선을 지키기 위해 서로가 생명을 걸고 싸워야 했던 일입니다. 그런데 그 분들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은 것이 없고, 답변자는 찾아 온 분들에게 안내 몇 말씀 드린 것이 전부였습니다. 즉, 그들은 답변자와 치열하게 싸웠다고 기억할지 모르나 답변자는 그 분들이 원하는 대로 칠 때 방어 없이 그 대로 맞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답변자는 어떤 싸움이든 사실상 시작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br><br/><br/><br/>질문 때문에 몇 가지 기억 나는 일을 소개했습니다. 무슨 내용이든 소개하기 시작하려면 분량이 너무 많고 사연이 너무 많습니다. 훗날이 오늘을 설명한다는 것 하나만 제대로 생각해도 교회는 그렇게 소리 내고 싸울 일이 거의 없을 듯 합니다. 당시 조 목사님은 백 영희 목사님을 통해 남겨 주신 이 노선 이 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교회 어느 예배 어느 강단이라도 어떻게라도 다 할 수 있다 하셨습니다. 지금은 어떤 입장이실까?</br></br></br></br></br></br></br></br></br></br></br></br></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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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03.10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03.10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03.10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03.10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03.10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03.10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 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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