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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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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br/>1. 공회 집회<br><br>- 본질과 부차<br><br>없으면 안 되는 것이 본질이고, 있으면 좋고 없어도 별 상관이 없는 것은 부차라고 합니다.<br>집회를 두고 사소하게 보여도 본질에 대한 것이 있고 엄청나게 크게 보여도 부차가 있으니<br>건축물로 예를 들면 일반인은 그 모습과 사용 편리만 보나 전문가들은 무조건 안전입니다.<br>그리고 안전을 위해 토지의 위치와 견고성, 건물의 기초와 기둥을 가장 중요하게 봅니다.<br><br><br>- 집회의 부차<br><br>그 불편한 과거 교통편으로 한반도의 남부 제일 시골 도로변에 전국 소속 교인들이 모였고<br>차에서 내려 짐을 지고 이고 냇물을 건너 들판을 따라 작은 골짜기로 줄 이어 들어 갔으니<br>그 골짝이 운동장 3-4개 넓이인데도 15,000 명이 천막을 세워 숙식을 자체 해결하였습니다.<br/>남녀노소와 첫 신앙과 목회자가 한 자리에 모여 가마니 위에 자기 방석을 깔고 예배 드렸고<br/>매일 3회 예배마다 30 분 준비 찬송과 주해 설교 시간만 3-4시간, 후에는 2-3시간 정도였고<br/>예배당은 무릎이 잇 닿아 옆줄이 되고 앞 사람 등에 뒤 사람 노트가 닿아 줄이 되었습니다.<br/><br/>15,000 명이 5일 간 고대 사회의 자족 도심을 이루었다가 사라 진 모습은 장관이었습니다.<br/>당시 여의도에 1백만 대회로 모였다 해도 서울 도심에서 오가다 1시간 들러 가는 정도였고<br/>순복음 기도원 어디가 몇만 명이 모였다 해도 좋은 시설에 돌아 가면서 오가는 모임이었고<br/>CCC 바닷가 수련회 등은 청년이라는 또래의 행사식 프로그램으로 진행하고 있었습니다만<br/>공회 집회는 가족 단위를 기본으로 하고 주일 학생까지 포함한 교인들 전체가 참석을 하되<br/>세상 편의 시설은 최대한 없애고 전체가 고대 사회 생활을 하며 전적 말씀 중심이었습니다.<br/><br/>5일이 지나면 골짝을 원 상태로 돌려 놓고 전국으로 흩어 져 갔으니 정말 장관이었습니다.<br/>거창군의 불신자와 시청 경찰 등 관공서에서도 지금도 그 엄청난 모습을 기억하고 있으며<br/>그 어떤 다른 종교 정치 사회적 대규모 행사와 비교할 수 없는 장관 중의 장관이었습니다.<br/>오늘 총공회 통합을 말할 때마다 교단의 존재 의미와 함께 집회가 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br/>신앙과 집회의 본질을 말하기에 앞서 우리는 집회의 현장 증인이고 자신의 역사였습니다.<br/>스스로 봐도 타 교단이 봐도 또 불신자가 봐도 집회 모습 그 자체가 거대한 기적이었으니<br/>집회에 대한 향수는 실로 지대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공회를 대표할 모습이기도 했습니다.<br/><br/>그러나 이 모든 것은 집회의 부차 문제들이지 이 것이 집회의 본질이 될 수는 없습니다. <br/>우리 공회의 집회 본질은 무엇이었는가? 그렇게 대단한 모습 외에 또 무엇이 있었는가?<br/>전국 모든 교회가 전부 참석했고 굉장한 모습으로 한 주간을 함께 했다는 것이 중요한가?<br/><br/><br/><br/>2. 공회 집회의 본질<br/><br/>(1) 광역 목회 - 목회자로서<br/><br/>좁은 의미에서 백 목사님의 목회지는 서부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실은 전국 교회였습니다. <br/>전국의 공회 교회들이 한 교회 내의 한 구역과 같았고 백 목사님은 광역 목회자였습니다. <br/>조직도에서 서열이 앞이므로 조직상 그렇게 말하거나 인사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br/>전국 공회 교회의 교훈이 그 분의 교훈을 따랐고 행정 관리 지도의 모든 면이 그랬습니다. <br/>행정이나 지도 관리 등의 문제는 다른 시기에 논하고 지금 집회를 두고는 교훈 면입니다. <br/>전국 교역자는 물론 주일 학생으로부터 전체 교인이 백 목사님께 1년에 40시간을 배우는데<br/>지금 지명도 높은 교계 지도자 급의 목회자들이 자기 교회 설교를 1년에 40시간씩 하는가?<br/>부목에게 맡기는 예배가 많고 주일 대 예배조차 연중 계속 되는 국내외 출장으로 빠지고<br/>실제 예배를 인도해도 한 주간 주일 대 예배 설교가 30분 안팎일 것인데 백 목사님의 경우<br/>1 년에 40 시간이란 40 회가 아니라 60 분 기준으로 40 시간이니 설교 80 회 분량입니다. <br/><br/>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집회 한 번 참석하면 1 년 필요한 양식이 된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니<br/>은혜 정도와 지속과 실제 시간으로 볼 때 백 목사님은 집회를 통해 광역 목회를 했습니다.<br/>집회란, 백 목사님의 전국 모든 교인들을 상대로 목회한 목회의 핵심이며 절정이었습니다. <br/>이 집회 말씀 은혜와 지도를 통해 공회 교인들은 전국 어디에 있어도 속이 같았었습니다.<br/>따라서 공회 집회는 타 교단이나 타 교회의 잡다한 모임 집회 수련회와 그 성격이 다르고<br/>공회 집회는 백 목사님이 전체 공회 교인을 향한 '백 영희 광역 목회 현장'이 의미입니다.<br/><br/><br/>(2) 교계 증거 - 교계적으로<br/><br/>백 목사님은 해방 후 손 양원 이 성봉과 함께 초교파적으로 유명한 대표적 부흥사였습니다.<br/>단순히 은혜 면으로 본다면 손 양원 이 성봉 목사님 외에도 박 영기 김 창인 등도 있었으나<br/>백 영희는 한국 교회의 현황과 나아가야 할 길을 안내했고 성경 해석의 차원이 달랐습니다.<br/>원래 그의 집회는 일반 교인뿐 아니라 목회자들이 별도로 배우는 고정 모임이 많았습니다. <br/>1964년까지 초교파적으로 다니며 한국 교회를 가르쳤으나 이후 일체 외부 활동을 그칩니다.<br/>이유는, 너무 유명해 지고 한국 교회의 병폐가 낱낱이 드러 나자 견제가 시작 된 것입니다.<br/><br/>더 깊이 깨달아야 할 시간에 교계의 시비를 상대하다 보면 시간 허비가 많게 되어 손해이고<br/>많이 가르쳤으나 집회 후 반대 측이 지속적으로 교훈을 배척하고 훼방하면 그 손해도 크고<br/>이미 20 년 교계를 향해 증거했으니 대외 충성은 되었고 이제 각자 받은 대로 살면 되는데<br/>무엇보다 말씀을 집중적으로 배운 교역자들이 말씀만 배우고 갈 길은 달리하고 있었습니다.<br/>당시 서울 최대 교회인 아현 교회를 염두에 둔 분이 백 목사님을 직접 모함한 일이 생기자<br/>백 목사님은 대외 활동을 중단하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 일체 대외 집회를 끊어 버리고<br/>부산 금정산 서울 삼각산 대구 주암산 거창 삼봉산 집회를 1 년 2 회 내부 집회로 고정하되<br/>찾아 와서라도 배워야 할 사람들이 있다면 금하지 않음으로서 교계 의무를 대신하게 됩니다.<br/><br/>처음에는 거창의 삼봉산 집회와 부산 금정산으로 고정이 되다가 거리와 시설 불편 때문에 <br/>5월 대구 8월 거창으로 자리 잡고 생존 마지막까지 교계를 향해 외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br/>이런 이유로 교계에 의미 있는 각 교단 지도자들이 이 집회에 참석하거나 귀를 기울였으며<br/>집회 때마다 백 목사님은 한국 교회를 향해 외친다는 언급이 많았던 이유도 이 배경입니다.<br/><br/><br/>(3) 신앙 정화 - 교인들에게<br/><br/>공회 집회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1 년에 1 - 2 회씩 세상 모든 것을 완전히 다 끊어 버리고<br/>말씀만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 모든 공회원들이 각자의 신앙을 완전히 새롭게 하는 기회이니<br/>평소 현실 속에서 주일과 평일의 예배 시간을 중심으로 이어 가는 생활은 기본 생활이 되고<br/>집회에는 세월 속에 자기도 모르게 찌들었던 것을 털고 1 년을 살아 갈 양식을 받았습니다.<br/><br/>평소에는 말씀을 받아도 바로 현실에서 또 세상과 부딪혀야 했으니 깊이 들어 가기 어렵고<br/>집회에는 세상을 눈과 귀와 입으로 접할 일이 없어 마음까지도 아주 멀어 질 수 있습니다.<br/>한 편 말씀은 시간시간 이어 지면서 얼마든지 깊게 자세하게 넓게 짜여 질 수 있었습니다.<br/>말씀으로 계속 이어 지는 누적의 시간은 환경에 의하여 끊어 지며 누적 된 시간과 다르니<br/>집회 참석 교인들은 몸과 행위와 생활의 변화까지 만드는 참 신앙의 새 경지를 겪었습니다.<br/><br/><br/>(4) 공회 동력 - 공회적으로<br/><br/>공회 교인이 공회인임을 느끼는 첫 일체감이 바로 집회 참석이라는 공동 경험일 것입니다.<br/>집회 경험이 없으면 이름만 공회 교인이라 할 정도이고 집회 경험이 있으면 실감을 합니다.<br/>집회 경험이 공회인을 확인하는 외증이라면 백 목사님에 대한 존재감이란 내증일 것입니다.<br/>그리고 주일과 제사를 원칙대로 철저히 지켜 보았다면 이 노선을 실제 걸어 본 사람이 되고<br/>반사 생활을 해 보았다면 이 노선의 핵심이 알고 가질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할 것입니다.<br/><br/>타 교단은 헌법과 전국 조직과 시각적 활동과 잦은 연대 모임이 한 교단을 유지하게 한다면<br/>공회는 집회가 전국 공회 교인들을 공회라는 한 이름에 묶어 교단이 되는 동력이었습니다.<br/>따라서 본질을 모르는 어린 교인이면 공회의 전국적 의미는 집회뿐인 줄 아는 정도입니다.<br/>이 말은 본질과 부차를 따질 것 없이 공회가 공회였던 것은 외관적으로 바로 집회였습니다.<br/><br/><br/><br/>3. 현재 공회 집회를 돌아 보면<br/><br/>(1) 분리 문제<br/><br/>공회는 개교회 자유 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교훈과 신앙 노선을 최우선하고 있으므로<br/>이런 원칙을 해치며 단일 집회를 원한다면 집회의 부차는 알고 본질은 모른다 할 것입니다.<br/>따라서 신앙 노선이 같은 대구 공회와 부공2 집회가 합하고 부공1과 3이 합해야 정상입니다.<br/>대구가 재독 때문에 부공2와 합하지 못한다면 이는 백 태영의 악의 시도를 계승하는 일이고<br/>부공2가 대구와 합하지 못한다면 이는 자존심과 공회 주도권 문제라는 교권 문제 때문이며<br/>부공1이 부공3과 합하지 못하는 이유는 소송 반대를 이유로 제명한 것이니 이는 잘못이며<br/>부공3이 부공1에 합하지 않는 것은 현재 노선 이탈이며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br/><br/>분명한 것은 교권과 다른 이해나 인간 감정 같은 것들이 개입 되었으면 분리는 죄일 것이고<br/>신앙 노선이 다른데도 하나로 합한다면 이는 합하는 것 자체가 신앙의 탈선이 될 것입니다.<br/>현재 공회의 집회 분리는 나타 난 결과가 그렇습니다. 해석에 따라 달라 질 문제가 아닙니다.<br/><br/><br/>(2) 개최 모습<br/><br/>장소와 일자는 부차이지 본질 문제가 아니므로 지나치게 고집하면 오히려 이탈이 됩니다.<br/><br/>일자 문제를 두고 집회 초기인 50년 대 60년 대에는 3월 4월 8월 9월을 오가고 있었습니다.<br/>그러다 연중 2 회 집회로 고착 되면서 5월과 8월이 먼저 자리를 잡았으나 월말이었습니다.<br/>5월 말은 70년대 들어서 농촌의 농번기 불편이 지적 되어 현재와 같이 5월 초로 당겨 졌고<br/>8월은 방학 중의 보충 수업 학생들의 편리를 위해 83년부터 현 8월 초로 자리를 잡습니다.<br/>공회의 역사를 알거나 좀 넓은 의미를 기억하는 분들은 봄 집회 여름 집회로 기억합니다. <br/>즉 5월과 8월이란 부차이지 본질이 아니며 1 년 2 회 정도를 본질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br/><br/>장소 문제는 삼각산 주암산 삼봉산 금정산이던 것을 금정산과 삼봉산 두 곳으로 줄였었고<br/>금정산은 현 대구 노곡동으로, 삼봉산은 현 도평으로 옮긴 것은 장소 문제 때문이었습니다.<br/>금정산은 집회 시설을 할 수가 없었고 삼봉산은 좁고 교통편이 불편하여 다 변경했습니다.<br/>원래 공회 집회는 산 집회입니다. 세상과 떨어 져 자연 상태의 산중 생활을 지향했습니다.<br/>그렇다면 현재 대구는 시내 중심이고 거창은 시외곽 교통 분기점이 되어 있다는 점에서<br/>집회의 장소적 취지를 안다면 세상과 떨어 진 자연 속 장소를 찾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br/>비록 과도기지만 부공2와 대구 공회가 편의 시설이 잘 된 수련원에서 집회를 하는 문제는<br/>앞으로 집회를 확고하게 계속할 의지가 있다면 장소적 지향점을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br/><br/><br/>(3) 참석 문제<br/><br/>참석 문제를 두고 외부 교단에 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늘 이질감을 느끼는 것 중에 하나는<br/>예배에 따라 각 직책에 따라 참석하는 교역자와 교인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br/>마치 총공회 예배는 초등 학교 담임제 같아서 교사와 학생 전체가 종일 함께 하게 되는데<br/>다른 교회들은 대학교 강의 같아서 학생도 강사도 다 제각각 따로 놀고 있다는 것입니다. <br/><br/>집회는 목회자가 사택 식구를 다 데리고 가면서 교인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한 것입니다.<br/>은혜를 받는 자리에 목사는 가고 교인이 가지 않는다면 그 것은 공회 집회를 모른 연고요<br/>은혜 받는 자리에 목사는 제 가족을 데려 가지 않고 교인들만 가자 한다면 공회가 아니고<br/>목사와 장로와 교회 직원들만 주로 참석하고 일반 교인은 일부 가고 대부분 가지 않는다면<br/>그 것은 교역자회나 총공회 회의처럼 대표를 통해 결정하고 결과는 전해 들을 경우입니다.<br/>그러나 집회는 예배이니 이 것은 대표를 보내어 대신 들을 수가 없는 식사 시간과 같습니다.<br/><br/>80 개가 넘는 대구 공회 교회는 목회자 백 명, 장로님 백 명, 권사나 핵심 구역장 5백 명,<br/>그러면 공회의 핵심 중직자 부부만 참석해도 1천 명이고, 그 직계 가족만 참석해도 4천 명,<br/>만일 여기에 주일 학교 반사 선생님처럼 교회 주요 모임에 참석할 사람까지 합하게 된다면<br/>대구 공회 집회가 공회 집회이기 위해서는 5-6천 명 이상은 수월하게 모여야 할 것입니다.<br/>그렇게 모인다면 굳이 집회 통합을 말할 것도 없이 자체적으로 과거 집회를 떠 올릴 것이나<br/>분리 후 대구 공회는 집회의 원래 의미는 생각하지 않고 옛날만 회상하고 그리워 할 뿐이니<br/>대구 공회 집회는 목사님 사후 공회 분리 직후 불과 수 년을 지나지 않고 사멸했습니다.<br/><br/>중요한 이유는, 재독을 죄라고 하여 그 집회가 유지 될 교훈과 힘의 중심을 스스로 막았고<br/>그 대신 백 목사님이 권위 있게 외치던 강사직만 한껏 부러워서 설교를 해야 한다 했는데<br/>실력은 되지 않고 자리만 오르려 했고 그래서 그 자리에 오르게 된 분들이 비록 실력 있고<br/>굉장히 준비하여 설교하므로 일반 목회자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은혜를 끼치고 있지만<br/>문제는 그들이 외치는 그 자리에 참석할 이들이 백 목사님께 설교를 들었던 귀 교인들이니<br/>그들에게 가끔 한 번 들어 보러 오거나 인사차 눈 도장을 찍으러 올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br/>그들의 생활을 다 접고 온 가족과 교인을 데리고 오게 할 정도에는 너무 못 미치기 때문에<br/>대구 공회 집회는 초기부터 강사가 되었거나 강사 될 분들의 교회는 제법 참석율이 높으나<br/>그렇지 않으면 데려 올 마음도 없고 또 데려 오면 자기 위상 문제도 있어 소극적인 것입니다.<br/><br/>심지어 교회 차량으로 매일 아침 출발하고 저녁에 돌아 오는 식의 집회로 진행 되고 있으니<br/>이 상태라면 대구 공회 집회는 공회 집회의 흔적만 남았으며 일반 교회 집회식일 것입니다.<br/>대구 공회가 재독을 정죄한 것이 그 자체도 죄지만 그 보다는 완전히 놀아 난 것이 컸고<br/>집회로 말한다면 공회 집회가 향후 불가능하도록 대구 공회 초창기 기초가 잘못되었습니다.<br/>재독 집회를 통해 교역자도 새로 배우고 교인들은 교역자들에게 배울 이상의 은혜를 받고<br/>그 세월이 지나 감에 따라 새 말씀이 필요하든지 새 인물이 직접 설교하는 것이 낫게 되면<br/>자연스럽게 지도자가 부상하면 될 것을 초상 친 다음 해에 바로 강사 자리에 앉아서 고함만<br/>지르면 백 목사님 밑에 은혜 받던 집회로 이어 질 줄 알았던 백 태영 목사님이 한심스럽고<br/>그 고령을 기대하며 몇 년 후에는 자기들 차례로 내려 온다고 기대한 분들이 안스럽습니다.<br/><br/>우리 한국인이 수천 년 찌들어 내려 오는 악습 중에 번개처럼 뚝딱해 치우는 성격이 있는데<br/>비록 그 분이 돌아 가셨다 해도 공회에서 비중이 너무 컸으므로 세월을 좀 기다려야 했는데<br/>교리를 전혀 알지도 못하는 분들이 교리를 앞 세워 재독을 정죄하되 하루 밤에 결정했습니다.<br/>심지어 평양의 저런 정권도 아버지 자리를 수 년째 비워 두고 연극을 해서 그래도 버텼는데<br/>공회 목회자들, 소위 원로라는 이름을 스스로 붙인 그들은 하루 밤을 채 참지 못했습니다.<br/>우리가 머리도 나쁘고 성격도 별로고 우리가 다 천출들이니 함께 좀 기다리며 생각했더라면<br/>이렇게까지 내부 자멸로 끝난다는 자탄이 나오지는 않았을 터인데 아무리 말해도 안 되고<br/>하루 저녁만 더 기도해 보자고 해도 오늘 밤에 천지가 뒤집어 져도 결단을 낸다고 설쳤으니<br/>그렇게 했는데도 이 공회와 집회가 깨어 지지 않는다면 그 것이 더 이상할 일이었습니다.<br/><br/><br/>비록 부공 집회는 재독으로 양식을 삼았으므로 최선은 아니나 훌륭한 차선은 잡았는데도<br/>부공1은 오로지 교권욕만 가진 지도부와 그 지도부에게는 백 목사님께 보다 더 충성한 하부<br/>부공2는 서 목사님의 노련한 물 타기와 그를 향해 백 목사님 이상의 충성을 보인 김 목사님들<br/>이런 요인들이 얼키고 설켜 과거 집회를 유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많이 놓쳤습니다.<br/>그래도 재독의 힘이 크기 때문에 대구 공회보다 집회 유지가 어려울 요소가 훨신 많았으나<br/>대구 공회보다는 조금 나은 형편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br/><br/>질문자께서 과거 모습이 어느 정도 유지 되고 있다고 말씀하시나 부공2 사진에서 보듯이<br/>좌석의 집중도 자체가 비교 될 수 없습니다. 서부 교회 중직자들의 집회 불참이 뚜렷하나<br/>다만 서부 교회의 덩치가 워낙 크고 부공1이 그들 소수의 힘으로 다수를 통제한다는 기분<br/>그리고 그 분들의 원래 체질상 그 시기에 그 장소에 앉아야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으로<br/>현재 어느 정도 집회는 유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본질은 이미 집회일 수가 없습니다.<br/>동상이몽, 이 것이 부공1의 두 편과 부공2의 참석하는 핵심 지도부들의 집회 이유입니다. <br/><br/><br/><br/>4. 몇 가지를 추가하면<br/><br/>(1)부공3의 경우<br/><br/>아다시피 이 홈은 백 목사님 생전부터 지금까지 공회 이론을 연구하고 세워 온 곳입니다. <br/>따라서 집회를 포함하여 공회 노선에 속한 것은 무엇이든 이 홈이 관계 된 사안을 두고는<br/>원칙과 본질은 충실하게 지키고 있습니다만 부공3은 작은 교회 하나 모인 정도의 규모이니<br/>공회 전체를 두고 논할 때에는 그 규모가 너무 작아서 사례로 들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br/>말하자면 전체 향방을 가늠하기 위해 통계 조사를 할 때에 최소 규모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br/>조사 대상이 너무 적으면 전체를 가늠할 기초 자료로 사용할 수가 없는 것이라고 봅니다. <br/><br/><br/>(2) 현재 부공1 집회<br/><br/>어쨌든 외부 모습은 그래도 공회 집회의 전통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어 다행스럽습니다. <br/>재독으로 유지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난투극만 생기지 않는다면 기본 은혜가 클 것이고<br/>외부적으로는 일반인 시야에 대형 집회 모습을 가졌기 때문에 그만하면 충분할 것입니다.<br/><br/>다만 그 내부를 너무 환하게 파악하고 있는 각 공회나 교회의 목회자들과 핵심 교인들은<br/>현재 평양 정권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조금이라도 눈을 뜬 사람은 도망을 나오거나<br/>현재 그 자리에 앉는 것이 누구의 장난에 누구의 욕심을 채우는 행동이 된다는 생각 때문에<br/>내부적으로는 고통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월이 지나가면서 상처는 아물게 되나<br/>문제는 언제 무슨 사건이 돌발하면 과거 우리가 다 본 것처럼 남의 탓으로 돌릴 것입니다. <br/><br/>평양 총회가 신사 참배를 가결할 때 전국 교회가 침묵을 지켜 그들을 지지해 놓고도 훗날<br/>그 지도부만 욕을 하면서 한국 교회사는 오늘까지 그 지도부 몇만 비판하고 끝을 냈습니다.<br/>오늘 부공1 집회가 옳다면 참석자가 옳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참석자는 동참죄가 됩니다.<br/>전혀 모르는 사람은 허물치 않으시나 과거 역사를 통해 아는데도 짐짓 모른 것처럼 했다면<br/>몰랐다고 말한다 해도 끝이 나지 않는 것이 성경 역사이며 교회 역사이며 한국 교회사이며<br/>우리 공회의 지난 20 년 역사이기도 합니다. <br/><br/>현재 유지 되는 대충의 평화가 진정한 평화이며 발전을 위한 좋은 토대였으면 합니다. <br/>만일 현재 유지 되는 대충의 평화가 남북의 휴전선 상황이라면 중대한 책임이 있습니다.<br/>오늘 남한 내에서 북한을 좋은 시각으로 보려고 있는 힘껏 노력하는 이들의 경우입니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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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03.10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03.10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03.10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03.10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03.10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03.10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 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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