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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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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br/>1. 첫 번째 지적<br><br>백 목사님이 후계자로 정식 지명한 서 목사님, 그리고 비록 지명은 없었다 해도 실력과 신앙 면에서 목사님 사후까지 생존했더라면 후계자가 되었을 것으로 보는 홍 목사님과 추 집사님, 이 분들이 목사님 사후에 후계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신앙은 수정주의 노선에 설 가능성이 있지 않았겠는가? <br><br>위 글의 첫 번째 지적에 대하여 답변자로서는 아니라는 의견을 드리고 싶습니다. 답변자는 비록 실력은 없으나 최소한 이 노선의 이전 모습을 지금도 걷고 있습니다. 위의 3 명은 답변자가 아직 신앙도 정립하지 못하던 시기에 이 노선에 굳게 섰던 분들입니다. 그 분들은 생존 시기에 주변 다른 분들과 달리 외롭게 이 노선 제일 중심을 걸어 갔던 분입니다. 그리고 답변자와 다른 차원의 실력과 신앙을 가졌던 분입니다. <br><br>물론 백 목사님 사후에 수정 노선을 걸었던 분들 중에는 공회 일반인들이 볼 때 위의 3 명과 비슷하거나 더 탁월해 보였던 분들도 줄줄이 수정 노선으로 돌아 섰다는 점에서 위의 3 명도 안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이해합니다. <br><br>공회로 예를 들면 백태영 백영침 이재순 목사님과 같은 최고 지도부가 수정 노선으로 방향을 잡았고 또 의지와 인내로 말하면 전혀 움직이지 않을 듯 했던 김응도 목사님도 지금 부공2에 속하며 김삼암 목사님도 1989년 10월에 백태영 목사님 노선으로 서겠다며 크게 흔들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일 대표적인 인물이 백태영 목사님인데 아는 사람들은 이미 백 목사님 생전에 나갈 데까지 나갔던 거을 알고 있었고 다른 분들도 목사님 사후에 나타 난 행동들이 예측 가능했던 그대로였습니다. <br><br>서부교회로 예를 들면 4 명의 권사님들은 백 목사님 생전에 백 목사님 배척 운동에 앞장 서서 오랜 시기를 보낸 적이 있었고 회개하고 난 다음에도 일반 교인들이 알기 어려운 흐름이 있었습니다. <br><br>이런 면에서 보면 홍순철 서영준 목사님이나 추 집사님의 경우 일단 그 충성과 이 노선에 대한 걸음이 흔들려 본 적이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홍 목사님이 건방 지고 매사 막 가는 불량자라고 평하며, 서 목사님은 본인의 실력은 없으나 특혜를 받았다고 평하며, 추 집사님은 백 목사님께 개인 책망도 많이 받았다는 등의 혹평이 있습니다만 답변자가 이 3 명을 남 다르게 보는 것은 그 분들의 신앙과 실력과 이 노선에 대한 견집이 틀림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분들의 실력은 누구와 비교해도 탁월했던 실력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신임은 일반 교인들이 알 수 없는 수준에서 특별했습니다. <br><br><br/><br/>2. 총공회 정체성<br/><br/>지적하신 분의 말씀과 같이 만일 총공회 신앙 노선이 백 목사님 1 인에 의하여 정립 되는 것이 아니라 공회 전체 교역자들 중에서 전문가들의 연구에 의하여 도출 되는 것이라면, 사실 이 노선은 노선을 정립해 나가는 도중이므로 마지막 결론에 따라서 현재 우리가 수정 노선이라고 말하는 공회가 총공회의 중앙이 되고 그 것을 기준으로 볼 때 이 홈과 위에서 설명한 3 명이 지나 치게 치우 친 걸음이 되어 오히려 공회 노선에서 이탈이 되었다고 평을 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br/><br/>현재까지 11 년 이상 이 홈을 운영하며 헤아릴 수 없는 글들이 올려 졌지만 이렇게 공회의 정체성 자체를 다른 시각에서 제시해 보신 분은 없었습니다. 지적하신 분의 말씀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발언할 수 있는 사안입니다. 그런데 사실 일반 사회나 교계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적하신 분의 말씀이 지극히 당연하고 이 홈의 입장은 너무 편협 되며 처음부터 왜곡이 되었다고 비판을 받아야 할 입장입니다. 이 문제는 공회의 정체성 문제입니다. 공회가 하나의 독립 교단으로 하나의 독립 된 신앙 노선을 가진 단체라고 봤을 때 이 단체의 본질에 대한 문제는 이 홈의 모든 노선 관련 표현과 대화에 앞서 먼저 규정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br/><br/>- 공회의 정체성<br/>만일 초기부터 질문자 말씀이 계셨다면 그리고 그런 의식과 발언이 조금이라도 더 있었다면 공회 역사를 통해 공회의 정체성 규정이 제일 먼저 의논 되어야 했을 것입니다. <br/><br/>- 백영희 신앙 노선과 공회의 정체성<br/>이 홈이야 처음부터 총공회와 서부교회와 이 홈의 신앙 정체성을 백영희 신앙 노선이라고 밝히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홈뿐 아니라 백 목사님 생전의 공회 모든 이들도 그리고 백 목사님 생전에 공회를 떠난 분들도 또 목사님 사후에 과거 모습을 유지하는 쪽이나 수정 노선을 걷는 쪽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공회 외부에서 공회를 지켜 보거나 비판하는 분들까지도 '총공회란 백영희 신앙 노선'이라는 정체성을 다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br/>이 홈이나 보수 노선의 공회인들에게는 타 교단 인물처럼 취급 되는 서 목사님, 그런데 이 노선의 수정 노선에 있는 분들에게는 공회의 최고 인물이라고 모셔 지는 서 목사님, 심지어 그 분도 백 목사님 생전에 유일하게 그 면전에서 기독교는 민주주의라고 끝까지 자기 발언을 고수했는데 그 분까지도 서부교회에 부임하면서 그 입장을 철회를 해서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습니다. 서부교회와 공회의 정체성은 바로 백영희 신앙노선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br/>백 목사님 사후에 극단적으로 나왔던 모든 논쟁에서 유일하게 양 측이 동일하게 말한 부분은 서로 우리가 백영희 신앙 노선이라고 말했다는 점입니다. 수정 노선에 있는 대구공회가 재독을 정죄할 때 백 목사님이 이렇게 가르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는데 이뿐 아니라 분쟁 된 모든 사안에서 그러했습니다. <br/>이런 세월이 1960년대로부터 1990년까지 이어 졌으니 이 노선에서 공회의 정체성이 백영희 신앙노선이라는 면을 부인한 사람은 없었으며 이 정도라면 해야 할 의논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의제로 올릴 필요도 없이 당연한 사안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백 목사님에 대한 개인 비판이 소개 되었다 해서 가족들께서 요구하여 고신이 사과 정정문을 발표한 사안을 두고 그 원래의 비판은 공회나 서부교회가 아니라 백 목사님 개인에 대한 것인데도 대구공회까지도 총공회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 들였지 공회 교역자 중에 1 명을 비판했다고 듣지 않았습니다. 과거 모든 이단 비판이 거의 전부 백 목사님 1 인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관련 논거는 너무 많은데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글을 그칩니다. <br/><br/><br/><br/><br/><br/><br/><br/><br/><br/><br/><br/><br/><br/> 공회사람 님이 쓰신 내용 <<<br/>:<br/>: 순번 1985번 추순덕전도사님의 신앙노선에 대한 저의 견해입니다.<br/>: 추집사님이 백목사님이 생존하실때 결과를 보고 말씀 하신다면 목사님 견해가 맞는 것같은데<br/>: 백목사님 사후의 추집사님이 생존하고 계신다는 가정하에 추집사님의 영향을 누구보다도 많이 받은 구역식구들의 결과를 놓고 본다면 아닐수도 있다고 봅니다.<br/>: 그렇게 가정하여 백목사님의 제 1제자라고 까지 인정하신 추집사님이 노선방향이 부산공회 수정노선이나 대구공회 노선일수도 있다고 보면<br/>: 백목사님 사후의 백목사님 노선을 이어갈 사람으로 서영준목사님 홍순철목사님을 말씀하셨지만 그분들도 어쩌면 수정주의 노선으로 설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고 봅니다.<br/>: <br/>: 제가 이렇게 단정하고 싶은 것은 백목사님이 생전에 계실때 공회노선이 완전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 말이 틀린다면 아마 교역자들이 공회노선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표현에 어울릴수도 있다고 봅니다<br/>: <br/>: 노선정립은 공회창시자인 백목사님 1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공회교역자들중 전문가들이 이를 연구하고 발전시켜서 노선이 정립된다고 봅니다.<br/>: <br/>: 사실 공회노선의 정립은 현재 목사님 단 한분께서 지금 이 홈을 통해서 사역을 하고 계셨지 공회교인이나 공회교역자들 마저 그 공회노선이 장로교 노선과 무엇이 다른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br/>: 저는 수정주의 노선에 있습니다.<br/>: 제가 본바로는 수정주의자들이 공회노선을 잘 모릅니다. 아신다고 해도 목사님 처럼 그렇게 잘 알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아는바 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았나 보고 싶습니다.<br/>: 저의 말이 어떻게 보면 공회노선을 잘 몰라서 수정주의노선에 섰다는 표현으로 들릴지 모르나 좀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 이것이 공회노선이다 하는 정답--이 목사님 생전부터 현재까지 없다는 뜻입니다. <br/>: 목사님은 이것이 공회노선이고 정답이다라고 하시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답이 아니라 하나의 견해가 아닐런지요. <br/>: 그런데 이곳에서 목사님의 사역을 통해서 ---- 아! 공회노선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조금씩 교인들이 눈을 떠간다는 것은 정말 다행이라고 봅니다. <br/>: 문제는 공회교인들은 인정하지만 교역자들이 아니라고 한다면 총공회노선은 현재까지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br/>: 총공회법인 성경법은 여러가지 해석이 나올수 있는데 그 해석을 하나로 통일하고 그 통일된 것이 지켜질때 공회노선이고 공회법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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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03.10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03.10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03.10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03.10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03.10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03.10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 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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