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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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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br/>공회 교회들을 소개하기 위해 /초기화면/총공회/교회/ 게시판을 '문답' 게시판 저 밑 쪽에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곳의 자료를 소개하며 몇 말씀 추가해서 올리겠습니다. <br><br><br><br><br>1. 의미<br><br>현재 우리 공회 교회들은 전국에 흩어 져 있으나 지역적으로는 편중 현상이 있습니다. 공회 교회들이 별로 없는 곳은 우리가 이 노선 교회를 세우고 이 교훈을 전하기 위해 소망을 가져야 할 지역이며, 공회 교회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지역은 이 노선 성장 과정에서 가장 앞 서 수고한 지역이며 다른 곳을 위한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br><br>울산 지역은 원래 지역 연고로 공회와 관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남산교회 때문에 현재 공회의 전국 몇 주요 지역이 되었습니다. <br><br><br><br><br>2. 남산교회의 역사 <br/><br/>1) 개척과정<br/><br/>남산교회의 개척 시작은 이술이 장로님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 분은 개명교회의 정갑용 권사님의 아들인데 정갑용 권사님은 백 목사님의 개명교회 시절 교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교인 몇 중의 한 분이며 그 신령면과 충성면 그리고 성녀적 신앙은 공회 전체를 통해 최고 수준입니다. <br/><br/>이 장로님이 울산 한국비료에 근무하면서 부산 서부교회로 가기를 소원하였으나 백목사님은 울산에 개척교회를 부탁하게 됩니다. 1974년경 목회자는 김철수 조사님이셨고, 울산시 복산동 16(7) 번지 소재의 장로님 가정에서 첫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그 다음 주는 '교동교회'라는 이름으로 사택을 겸한 예배당으로 방 2칸 집을 얻어서 5-6개월 예배를 드리게 되고 당시 공회는 2백만 원을 지원했고 그 후 27-8명으로 교인이 확대 되면서 구 시청 앞 2층 전세 35평으로 이전합니다. 교인이 약 50여 명이 되기까지 6개월 정도 계속 되었고, 그후 현 남산교회 터를 구입하고 가건물로 약 3년 계속하며 김철수 조사님이 계속 시무했습니다. <br/><br/>조사님은 부산에서 월 사례 2만원을 받아 생활했고, 교역자회 등을 위해 부산으로 갈 때에는 시내버스 차비가 없어 기차역에서 교회까지 왕복거리 12km를 걸어서 다녔습니다. 당시 공회 교역자들 대부분은 다 이렇게 충성했고 그 결과 오늘의 공회가 섰습니다. 이런 전통은 1980년대 서부교회라는 초대형 교회에서도 남반을 심방하는 유급 권찰님들이 대신동에서 영도의 청학동까지 8키로의 거리 정도를 매일 걸어서 심방하고 돌아 올 때만 시내버스 차표 1 장을 사용한 정도입니다. <br/><br/>첫 교역자인 김철수 목사님은, 거창 월천 지역의 창북교회 교인으로서 학생 시절부터 공회 교인이었고 부산에서 동아대 법학과를 공부하며 교회의 중심 청년이 되었으며 이후 사명을 가지고 교역 일을 했으며 호남 지역의 공회 교회 첫 시작이 되는 묘도의 묘창 교회 출발에도 큰 역할을 했고 울산 지역에도 공회 교회를 출발 시켰으며 이후 마산의 산창교회를 개척 초기 수준에서 부임하여 대형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1987년에 공회 운영 방법이 너무 폐쇄적이라는 이유로 공회를 탈퇴하게 됩니다. <br/><br/><br/>2) 부흥기 <br/><br/>둘 째 교역자로는 김영웅 조사님이 부임하셨고 현재 사용하는 건물을 건축합니다. 이 시기에 교인이 7-80여 명으로 부흥 되고 목사 안수를 받고 이임하였습니다. 김영웅 목사님은 거창 창동교회 출신으로 거창의 위천 위산교회도 근무했고 또 여기 남산교회로 부임한 후 그 분 밑에서 많은 청년들을 길렀으며 현재 남정교회 신두범 목사님과 대구 비원교회 신길범 목사님 등이 김 목사님이 길러 낸 대표적인 청년 출신입니다. <br/><br/>셋 째 교역자는 손오영 목사님이며 2백 명까지 부흥 되고 이 시기 남산교회는 공회의 주력 교회 중 하나로 서게 됩니다. 교세로서는 이 시기가 제일 전성기였습니다. 이후에는 팽창하는 울산 지역의 발전에 따라 지역 내 여러 공회 교회를 계속해서 개척하고 지원하여 오늘 울산 지역 전체 교회 거의 전부의 중심 교회 역할을 하게 됩니다. <br/><br/>울산교회 목회자들의 충성과 개척 교인들의 수고와 함께 전국 공회 교회 중에서 울산의 급팽창에 따라 직장 문제로 모여 드는 공회 교인들은 자연스럽게 남산교회에 집결하였고 남산교회는 새 전도와 전입하는 공회 교인들을 잘 묶어 튼튼하게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br/><br/>이후 이동화 목사님을 거쳐 백 목사님 장례 직전에 김병춘 목사님이 부임하고 그 후 남산교회는 김 목사님은 부임하자 설교록이 출간 될 때마다 매 번 50 권씩을 구입하여 교인 전체를 말씀으로 기르게 됩니다. 서부교회를 제외하고는 전국 교회 중에 월등한 양이었습니다.<br/><br/><br/>3) 노선 분립<br/><br/>1989년 백 목사님의 임종과 함께 김 목사님은 공회의 내부 분열에서 대구공회의 중심 인물이 되나 백태영 목사님 중심의 진보적 대구공회가 김 목사님이 생각한 방향과 다름을 알게 되자 행동으로 그 방향을 거부하게 되고 이에 따라 백태영 목사님 측의 개입으로 김병춘 목사님과 그를 따르는 교인들은 보수적 대구공회 소속인 서광교회를 개척하게 됩니다. 이후 남산교회는 백태영 목사님과 김병춘 목사님의 두 노선 중에서 그 소속을 두고 여러 차례 선택이 있었고 현재는 다시 김병춘 목사님과 같은 보수적 대구공회에 속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목회자도 여러 차례 변동 끝에 현재 황용극 목사님이 맡고 있습니다. <br/><br/><br/><br/>3. 현재 남산교회는<br/><br/>황용극 목사님이 담임이십니다. 부부가 서부교회 중간반 반사 출신이며 백 목사님의 장 조카인 백재인 장로님의 큰 딸 부부입니다. 1988년 전남 광양에 부임하여 2005년까지 충성하다가 남산교회로 부임했습니다. <br/><br/>거쳐 간 목회자나 교인들의 성향 등을 보아 현재 기준으로 대구공회 일반 교회 중 중간 정도의 노선을 가고 있다고 짐작 됩니다.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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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03.10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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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0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03.10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03.10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03.10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 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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