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고신 내부의 진리운동 - 총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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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24
4. 고신 내부의 진리운동 - 총공회
① 고신 내부의 진정한 고신은 총공회
총공회는 고신에서 배제된 지 40년이 지나고 있지만 현재까지도 한국교계는 고신계열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고신과 총공회의 깊은 내면을 알지 못하는 교계로서는 오히려 그렇게 아는 것이 객관적일 것입니다.
고신은, 고신 지도부의 교권화를 비판한 총공회 신앙노선을 교권으로 제거했지만, 고신이 ‘고신’으로 한국교회에 존재하는 것은 고신의 교권과 교세 때문이 아니라 고신의 정통성입니다. 그 정통성은 교권에 굴하지 않고 진리노선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만일 총공회 노선이 고신 내부에서 제거된 것은 무엇이 원인이며 그 내면이 무엇이냐는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 앞부분 ‘총공회역사’에서 잠깐 살펴본 대로 고신은 교권으로 공회노선을 배제했고, 공회노선은 고신 내부에서 진리노선을 외치다가 교권에 의하여 제거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고신이 진리노선 때문에 한국교회에서 ‘고신’으로 존재한다면, 총공회를 처리한 문제를 두고 고신지도부는 총공회노선에게 고신의 진리노선을 쥐어주고 내쫓은 것이 되었습니다.
고신 내부에서 고신이 원래 추구하던 진리노선 때문에 총공회 노선이 제거된 1959년의 백영희 제명건은, 고신 지도부가 고신의 교권을 확보하고 그대신 고신 내의 총공회는 고신 울타리 밖으로 버려지면서 고신의 ‘진리노선’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외부에서 보면 고신으로부터 총공회는 제명당한 교단이고, 내부에서 보면 고신은 교권을 위해 고신의 진리운동을 총공회에 넘겨주었다고 하겠습니다.
② 고신의 양대 세력 - 한상동의 교권파와 주남선의 진리중심파
현재 고신역사는 한결같이 고신의 설립자로 주남선과 한상동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반론이나 이론이 제기된 적은 없습니다. 고신역사를 두고 고신 내부에서 이론이나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은 사실 총공회노선 밖에 없습니다. 총공회노선은 자기 갈 길에 바쁜 곳이지 외부를 비판하고 토론하는 데에는 시간을 아끼는 곳입니다. 이 책은 50년이 넘어 이제 한번쯤 정리해 봐야 할 시점으로 판단하여 이 면을 간략하게 평가합니다.
고신의 지도부는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투쟁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자세와 어떤 신앙으로 반대를 했느냐는 문제를 두고는 뚜렷하게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쪽은 한상동 송상석목사님으로 대표되는 교회정치파인데 이들은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것도 또 그 사후처리도 교회정치면에서 접근한 분입니다. 다른 한쪽은 주남선 손양원목사님으로 대표되는 진리중심파입니다. 이들은 신사참배도 하나님을 상대로 접근하고 반대했으며 또 사후문제도 그러했습니다. 조직으로 나뉜 것이 아니고 성향으로 분류한 것입니다.
진리운동파 중 손목사님은 지역 문제를 핑계로 스스로 일찍 고신을 떠났고, 주남선목사님도 1951년에 일찍 사망하게 되자, 고신 내부의 진리운동 전념파는 급격하게 위축됩니다. 그리고 고신은 외부교계를 상대로 장로교 전체 교권을 차지하기 위해 성경적 투쟁방법과 세상적 투쟁방법 중 하나를 택해야 할 시점에 이르자, 급격하게 세상방법을 취하며 교권투쟁에 나서게 됩니다.
주목사님 계열이 없는 고신은 한목사님 계열 일색이었고, 고신은 교권확보를 향해 거침없이 나가게 됩니다. 바로 이때 주목사님 대신 그 진리운동을 잇고 나온 분이 백목사님입니다. 당시 전도사였고 소장측이었기 때문에 교단 지도부에 의하여 결국 제거되지만, 고신 내에 주목사님으로 대표되는 순수한 진리운동파의 핵심이었습니다.
총공회의 출발은 백목사님이 고신에서 제명되는 사건에서 비롯되지만 실은 고신 내부 깊은 곳에 있었던 두 흐름 중에서 백목사님은 주목사님과 손목사님으로 대표되는 진리운동측이었습니다. 백목사님의 제거는 고신의 교권파가 진리운동측을 고신 조직 외부로 완전 제거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세계교회의 정통선상에서 개척된 한국교회 내에서 총공회가 진리 정통을 잇는 계기가 됩니다.
③ 고신을 잇는 총공회의 위상
총공회는 백영희신앙노선에서 그 실체를 확인한다는 점을 앞에서 설명했습니다. 백목사님은 신사참배 환란 중에서 집사로서 교회를 개척했고, 본인은 물론 지도하던 교인 전부가 다 신사참배에 굴하지 않도록 지도했던 분입니다. 고신교단 내에서 서열이 낮았고 또 본인이 시골에 묻혀 하나님만 상대를 했기 때문에 교회사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오히려 그 경력은 고신 내에서도 최고의 승리로 평가 됩니다.
해방 후 주남선목사님이 출옥하고 거창 지방으로 돌아오자 그는 백목사님을 고신 내 진리운동파의 대표로 힘껏 밀어올리게 됩니다. 이후 짧은 시간에 백목사님은 고신 내 최고의 부흥강사로 또 고신 목회 현장의 가장 중심에 선 목회자로 위상을 가지게 됩니다. 전적 하나님만 상대하고 인간 교류와 교회 정치에 전혀 상관치 않는 목회자였기 때문에 이 모든 결과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능력과 주목사님의 지원 결과였습니다.
원래 교권파는 교회 정치 문제를 두고 제도와 법을 이용하여 교권을 휘두르는 것이고, 또 진리중심파는 어떻게 당한다 해도 인간적으로 상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장로교 헌법과 제도 선상에 있던 고신 내에서 백목사님은 교권파에 의하여 제거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바로 이 때 겪었던 모든 경험과 깨달음은, 이후 고신에서 제명 된 후 백목사님으로 하여금 총공회라는 신앙노선을 걷게 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됩니다.
즉, 한국교회 정통성은 1959년 고신에서 제명되는 조처 때문에 백목사님이 받아가지게 되었고, 한국교회의 진리운동을 한 손에 받아가지게 된 백목사님은 ‘개교회주의’라는 노선으로 이후 한국교회의 진리운동을 지속하게 됩니다.
다시는 교권에 의하여 단체가 탈선하지 않고도 진리운동을 하도록 개혁된 제도가 바로 ‘총공회 신앙노선’입니다. 이 노선은 장로교 체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인 교권화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제시되었고, 그 배경은 바로 고신 내에서 겪었던 교권투쟁이었습니다.
① 고신 내부의 진정한 고신은 총공회
총공회는 고신에서 배제된 지 40년이 지나고 있지만 현재까지도 한국교계는 고신계열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고신과 총공회의 깊은 내면을 알지 못하는 교계로서는 오히려 그렇게 아는 것이 객관적일 것입니다.
고신은, 고신 지도부의 교권화를 비판한 총공회 신앙노선을 교권으로 제거했지만, 고신이 ‘고신’으로 한국교회에 존재하는 것은 고신의 교권과 교세 때문이 아니라 고신의 정통성입니다. 그 정통성은 교권에 굴하지 않고 진리노선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만일 총공회 노선이 고신 내부에서 제거된 것은 무엇이 원인이며 그 내면이 무엇이냐는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 앞부분 ‘총공회역사’에서 잠깐 살펴본 대로 고신은 교권으로 공회노선을 배제했고, 공회노선은 고신 내부에서 진리노선을 외치다가 교권에 의하여 제거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고신이 진리노선 때문에 한국교회에서 ‘고신’으로 존재한다면, 총공회를 처리한 문제를 두고 고신지도부는 총공회노선에게 고신의 진리노선을 쥐어주고 내쫓은 것이 되었습니다.
고신 내부에서 고신이 원래 추구하던 진리노선 때문에 총공회 노선이 제거된 1959년의 백영희 제명건은, 고신 지도부가 고신의 교권을 확보하고 그대신 고신 내의 총공회는 고신 울타리 밖으로 버려지면서 고신의 ‘진리노선’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외부에서 보면 고신으로부터 총공회는 제명당한 교단이고, 내부에서 보면 고신은 교권을 위해 고신의 진리운동을 총공회에 넘겨주었다고 하겠습니다.
② 고신의 양대 세력 - 한상동의 교권파와 주남선의 진리중심파
현재 고신역사는 한결같이 고신의 설립자로 주남선과 한상동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반론이나 이론이 제기된 적은 없습니다. 고신역사를 두고 고신 내부에서 이론이나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은 사실 총공회노선 밖에 없습니다. 총공회노선은 자기 갈 길에 바쁜 곳이지 외부를 비판하고 토론하는 데에는 시간을 아끼는 곳입니다. 이 책은 50년이 넘어 이제 한번쯤 정리해 봐야 할 시점으로 판단하여 이 면을 간략하게 평가합니다.
고신의 지도부는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투쟁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자세와 어떤 신앙으로 반대를 했느냐는 문제를 두고는 뚜렷하게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쪽은 한상동 송상석목사님으로 대표되는 교회정치파인데 이들은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것도 또 그 사후처리도 교회정치면에서 접근한 분입니다. 다른 한쪽은 주남선 손양원목사님으로 대표되는 진리중심파입니다. 이들은 신사참배도 하나님을 상대로 접근하고 반대했으며 또 사후문제도 그러했습니다. 조직으로 나뉜 것이 아니고 성향으로 분류한 것입니다.
진리운동파 중 손목사님은 지역 문제를 핑계로 스스로 일찍 고신을 떠났고, 주남선목사님도 1951년에 일찍 사망하게 되자, 고신 내부의 진리운동 전념파는 급격하게 위축됩니다. 그리고 고신은 외부교계를 상대로 장로교 전체 교권을 차지하기 위해 성경적 투쟁방법과 세상적 투쟁방법 중 하나를 택해야 할 시점에 이르자, 급격하게 세상방법을 취하며 교권투쟁에 나서게 됩니다.
주목사님 계열이 없는 고신은 한목사님 계열 일색이었고, 고신은 교권확보를 향해 거침없이 나가게 됩니다. 바로 이때 주목사님 대신 그 진리운동을 잇고 나온 분이 백목사님입니다. 당시 전도사였고 소장측이었기 때문에 교단 지도부에 의하여 결국 제거되지만, 고신 내에 주목사님으로 대표되는 순수한 진리운동파의 핵심이었습니다.
총공회의 출발은 백목사님이 고신에서 제명되는 사건에서 비롯되지만 실은 고신 내부 깊은 곳에 있었던 두 흐름 중에서 백목사님은 주목사님과 손목사님으로 대표되는 진리운동측이었습니다. 백목사님의 제거는 고신의 교권파가 진리운동측을 고신 조직 외부로 완전 제거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세계교회의 정통선상에서 개척된 한국교회 내에서 총공회가 진리 정통을 잇는 계기가 됩니다.
③ 고신을 잇는 총공회의 위상
총공회는 백영희신앙노선에서 그 실체를 확인한다는 점을 앞에서 설명했습니다. 백목사님은 신사참배 환란 중에서 집사로서 교회를 개척했고, 본인은 물론 지도하던 교인 전부가 다 신사참배에 굴하지 않도록 지도했던 분입니다. 고신교단 내에서 서열이 낮았고 또 본인이 시골에 묻혀 하나님만 상대를 했기 때문에 교회사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오히려 그 경력은 고신 내에서도 최고의 승리로 평가 됩니다.
해방 후 주남선목사님이 출옥하고 거창 지방으로 돌아오자 그는 백목사님을 고신 내 진리운동파의 대표로 힘껏 밀어올리게 됩니다. 이후 짧은 시간에 백목사님은 고신 내 최고의 부흥강사로 또 고신 목회 현장의 가장 중심에 선 목회자로 위상을 가지게 됩니다. 전적 하나님만 상대하고 인간 교류와 교회 정치에 전혀 상관치 않는 목회자였기 때문에 이 모든 결과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능력과 주목사님의 지원 결과였습니다.
원래 교권파는 교회 정치 문제를 두고 제도와 법을 이용하여 교권을 휘두르는 것이고, 또 진리중심파는 어떻게 당한다 해도 인간적으로 상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장로교 헌법과 제도 선상에 있던 고신 내에서 백목사님은 교권파에 의하여 제거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바로 이 때 겪었던 모든 경험과 깨달음은, 이후 고신에서 제명 된 후 백목사님으로 하여금 총공회라는 신앙노선을 걷게 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됩니다.
즉, 한국교회 정통성은 1959년 고신에서 제명되는 조처 때문에 백목사님이 받아가지게 되었고, 한국교회의 진리운동을 한 손에 받아가지게 된 백목사님은 ‘개교회주의’라는 노선으로 이후 한국교회의 진리운동을 지속하게 됩니다.
다시는 교권에 의하여 단체가 탈선하지 않고도 진리운동을 하도록 개혁된 제도가 바로 ‘총공회 신앙노선’입니다. 이 노선은 장로교 체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인 교권화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제시되었고, 그 배경은 바로 고신 내에서 겪었던 교권투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