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질문)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면 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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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45
51. (질문)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면 6000
목사님 안녕하세요.
저희 나라도 전쟁에서 자유로운 나라라고 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저희는 전쟁터에서 싸워야 할 것이고
국가의 명령에 따라 어쩌면 사람을 죽여야 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전쟁을 지휘하시는 것을 보고 어쩌면
이러한 살인은 죄라고 보기 어렵지 않나 생각하였습니다.
지인에게 여쭈어 보니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의
신성한 전쟁이었고, 하나님께서 지휘하신 전쟁이었으므로
죄값을 물을 수 없었으나, 이외의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면
죄가 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이 아실 것이라고 하시더군요.
하나님께서는 전쟁에서 일어난 살인을 어떻게 심판하실까요?
목사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답변) 세상생활을 할 때 공격과 방어의 원리
1.한번 오간 문답이 있었습니다.
전쟁 중 군인의 사격, 교도소 사형집행관의 집행 등에 대하여 설명한 기억이 있습니다.
이 게시판 윗쪽 검색창은 검색에 탁월한 기능이 있으므로
'전쟁' '군인' '사형' 등의 단어를 차례로 적고 검색해 보셨으면 합니다.
2.구약과 신약의 일반론
①구약의 살인
'살인하지 말찌니라'고 하신 제 6계명은 출애굽 때 주신 명령입니다.
구약에도 살인은 일반적으로 금지사항이었습니다.
다만
출21:15 등에서 금한 죄처럼 어떤 죄를 지으면 죽이라 한 경우는 죽일 수 있고
출17장의 아말렉과 전쟁처럼 전쟁에서 적들을 죽일 수 있었고
신20장에서 가나안에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읍들은 전부 죽이라 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살인을 금했으나
몇 가지 경우는 살인을 명령했고 또 어떤 경우는 살인을 허용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②구약과 신약의 비교
구약은 육체 이스라엘이라 하고
신약은 신령한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구약을 육체 이스라엘이라고 표시할 때는
아브라함의 육적 자녀들을 육적으로 복을 주시고 인도하신 역사라는 뜻이고
신약은 신령한 이스라엘이니
아브라함의 육적 자녀 대신 그 믿음을 이어가는 신앙의 모든 사람에 대한 구원역사라는 뜻입니다.
구약이 육체 이스라엘의 육체 구원 역사였다고 하지만
그 중심은 어디까지나 신령한 신앙의 구원 역사였습니다.
다만 구약교회가 어리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으로 먼저 복과 구원을 주셨고
그런 보이는 육적 복과 구원을 통해 볼 수 없는 신령한 면에 나가게 했습니다.
신약은 장성한 교회이므로 육체 구원의 단계를 초월하여 바로 신령한 면으로 인도합니다.
③신약의 살인
구약은 육체 이스라엘의 육적 구원에 대한 면을 먼저 가르쳤기 때문에
순종도 육체적 순종을 우선했고 구원도 육체 구원을 중심으로 했으며
승리도 보이는 육적 원수의 육체 생명을 죽이고 이기는 것이 승리였습니다.
신약은 신령한 이스라엘의 신앙 건설과 신령한 구원 면을 바로 가르치기 때문에
육체 원수가 우리의 원수가 아니고
육체 원수의 육체 생명을 죽인다고 해서 우리의 참 원수인 악령과 그 역사를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신약은 구약에서 지켜져 오던 것 중에서 외부 육체적인 것을 그대로 지키도록 명령한 몇 가지 외에는 전부 신령한 명령으로 높여서 지켜야 합니다. 신약에서도 구약 외형 육체적인 명령을 그대로 지켜야 하는 것은 '십계명' '십일조' 정도밖에 없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하신 제6계명은 신약에서 예수님이 다시 그대로 지키라고 했기 때문에 살인을 할 수 없습니다.
그대신 구약에서 가나안 이방민족을 다 죽이라고 명령한 명령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내려오는 이스라엘 백성 아닌 사람들을 말하는데, 오늘 신령한 이스라엘 우리 신약교인들은 아브라함의 육체의 자손이라서 교인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그 자손이며, 우리가 죽여야 우리의 원수도 아브라함의 육체 자손이 아닌 가나안 이방민족을 죽여야 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오늘의 이방민족은 아브라함의 육체 자손 이외의 자손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믿지 않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이방인인데 그 사람이 앞으로 믿게 될지 안 믿게 될지를 알 수 없고, 또 잘 믿던 신령한 이스라엘이 타락하여 10년을 교회 다니지 않을 수가 있는데 그럴 때는 이방인이라 해서 죽인다면 그가 그 훗날 다시 회개하고 돌아올 탕자일 것이니 이방인을 죽이라는 명령도 구약과 신약은 그 차원이 다릅니다.
구약은 이스라엘과 맞서는 육체 이방인들 그 원수들을 말했고
신약은 내 속에 있든 남 속에 있든 신앙건설을 반대하는 악령의 역사를 죽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신약의 살인은 구약과 달리 하나님께서 상대방의 육체를 죽이라고 따로 명령할 일이 없으므로 살인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3.전쟁의 경우, 사형집행관의 집행의 경우
①공격은 금지, 방어는 허용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각자의 개별 형편과 판단의 자유성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도 각 교회의 개교회자유가 있고 개인도 개인자유가 있습니다.
신앙문제를 두고 신앙의 자유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세상생활에서도 누구든 사람에게는 자유성이 주어져 있습니다.
공격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방해하는 것이므로
살인 뿐 아니라 주먹을 휘두르는 것도 남을 가두는 것도 다 할 수 없습니다.
다만 방어의 경우는 상대방의 자유를 뺏는 것이 아니고
나의 자유를 보호하고 지키는 것이므로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입니다.
즉, 믿는 사람이 도둑을 막기 위해 담을 치고 강도를 막기 위해 몽둥이를 휴대하는 것은 죄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맡긴 자기 자유 자기 책임 자기 의무를 성실하게 하는 충성입니다.
만일 상대방이 나를 죽이려 하는 경우
상대방의 생명을 내가 빼앗아 그에게 주어진 그의 생명과 그의 자유를 뺏는 공격이 아니라
나의 생명을 빼앗으려는 공격자로부터 내가 지켜야 할 내 생명과 내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안되는 방어의 살인은 살인으로 보지 않습니다.
②군인과 교도집행관
먹을 수 있다고 다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먹을 수 있다고 먹으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먹을 수 있다 해도 먹어야 할 때가 있고 참아야 할 때가 있고 조절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방어는 된다는 것은 일반적인 표현입니다.
방어를 할 수 있으나 방어는 좋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할 수 없이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직업군인이나 교도집행관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남을 침략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가해를 하는 사람과는 조금 다르겠지만
크게 본다면 군인과 교도집행관은 본인이 그 직업을 택하는 순간부터
자기 직업을 위해서 필요하면 사형집행을 대행하겠다는 약속이 됩니다.
따라서 믿는 사람으로서는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현 우리나라 체제처럼 강제로 군대를 가야 한다면
공격적 살인의 명령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군입대를 기피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군 자체가 죄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단 입대 거부로 인해 당장 피해를 보는 것보다는 입대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신 군인으로서 앞으로 사살 명령이 있을 때, 그 사살행위가 자기와 소속 부대와 소속 국가 전체를 향해 공격이 있을 때 방어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살인을 위한 살인이 되는 경우는, 살인에 동참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③참고로
1등신앙: 자기 방어를 위해서라도 살인을 해야 하는 경우는 아예 만나지 않는 사람
2등신앙: 자기 방어를 위해서 살인을 할 수 밖에 없는 경우
3등신앙: 명령 때문에 자기가 죽지 않기 위해 살인하는 경우
4등신앙: 자기를 위해 살인하는 사람
5등신앙: 양심가책 없이 살인을 하는 사람
5등은
세상이 흉악범이라고 치를 떨고
4등은
세상이 일반 살인범이라 하고
3등은
국가가 발포명령을 하는데 거부하면 자기가 총살을 당하기 때문에 공격 방어 가리지 않고 살인한 경우이니 세상은 발포 명령자에게 책임을 묻고 명령에 의하여 살인한 사람은 살인이라 하지 않고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2등은
일반 정통교계에서 살인이 되지 않는다고 변호를 하고 있습니다.
1등은
깊은 신앙세계에서 나오는 정말 신앙다운 신앙입니다.
믿는 사람은 남을 치지 않았다고 의인이 아니라
나 때문에 남을 치려든 사람이 남을 치지 않는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야 하고
나 때문에 남을 치려든 사람이 돌이켜 남을 돕고 희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믿는 나 하나 때문에 불신사회와 만물까지 복을 받고 찬송을 해야 하는 그런 수준의 존재가 되도록 자꾸 자라가야 합니다.
4.간단한 주제 같지만
신앙의 수많은 사안들을 두고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제이므로
좀 깊이 살펴볼 마음이었으나 최근 다른 작업 일정 때문에 이 정도로 일단 소개합니다.
필요하면 재질문 또는 보충질문해 주시고
재답변은 최근 일정 때문에 많이 늦어질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당장 안내를 받아야 하는 시급한 주제는 아닙니다.
대신 이 문제는 신앙생활 전반에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평소 미리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므로 실제 상황과 성경 원리를 잘 살펴 신중하게 확정짓는 것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