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교리의 필요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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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5 11:36
(2023년본)
⑤ 교리의 필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는 것과(딤후2:15)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라는(롬15:4) 말씀 때문에 성경을 요약하고 체계화한 교리는 피할 수 없다.
* 성경 해석에 필요하다
성경은 성경으로만 해석한다. 성경 전체를 요약해 보면 성경 전체를 해석할 수 있는 사전이 된다. 성경을 인간 언어로 기록한 것은 언어가 정확하거나 충분해서가 아니다. 성경의 언어는 그 속에 들어 있는 알 수 없는 진리를 향해 출발하라는 표시일 뿐이다.
성경의 모든 단어와 표현은 성경 안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살펴 성경이 사전이 된 언어로 사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의 사회적 언어는 그 뜻의 최소한과 사회의 가장 일반적인 뜻만 참고해야 한다. 성경에 사용한 언어를 가지고 성경 밖의 세상 속으로 나가면 나갈수록 성경의 원 뜻과는 멀어진다.
한 성구는 나머지 성경 전체를 해석해 주고, 모든 성경은 모든 성구 하나씩을 해석해 준다. 교리는 이 과정에 성경 전체를 요약하여 그렇게 되게 한다.
* 신앙의 하나에
교리는 교회의 정체성이다. 오늘은 교회도 많고 복잡하지만 역사의 모든 교회와 교인은 주님 한 분을 머리로 삼은 한 몸이다. 여기에 벗어난 것은 영원히 불태워진다. 그 날에는 어떤 기회도 없다. 오늘도 그 몸이 될 일부의 기회는 그 현실이 지나가면 다시 기회는 없다. 주님을 머리로 삼은 주님의 몸된 교인, 교회, 교파가 되려면 그런 신앙을 만들려면 성경이 기준이다. 성경의 이 부분에는 맞고 저 부분에 맞지 않으면 안 된다. 교리는 교회의 정체성을 파악하게 한다. 어느 시대의 어느 교인, 어느 교회이라도 교리에는 둘이 없다. 바른 교리를 찾고 세우고 그 교리에 따라 개인도 교회도 맞춰야 한다. 교리가 신앙을 하나로 만든다.
개인과 교회의 실행은 천차만별이나 교리는 성경에서 요약한 것이고 교리에 맞추면 신앙은 하나가 된다. 주님을 머리로 삼은 한 몸이 된다. 한 몸을 만들어 가는 것이 교리다. 잘못된 것을 고치게도 하고, 노력해야 할 방향을 가리킨다. 교회는 교리로 존재하고, 교리가 교회를 하나로 확인 시키고 또 만든다. 교리는 교회의 정체성이다.
교리는 교훈을 통일한다. 교회로 모였으나 성경에서 벗어나면 교회가 아니다. 교인이 성경에서 벗어나면 신앙이 아니다. 교회와 교인을 신앙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교훈이다. 지난 날 함께 해 온 교회와 신앙이라 해도 교훈이 달라지면 서로 다른 몸이 된다. 순간도 쉬지 않고 바뀌는 세상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야 하는 매일은 말씀으로 실행해야 하니 전쟁터다. 이 치열한 상황에 교회와 개인의 신앙이 가야 할 방향은 교리가 있어야 큰 방향을 잡는다.
교리는 교회의 정체성이며 교회와 신앙의 교훈을 하나로 붙들어 준다. 그렇다면 교리란 성경으로 살펴 옳고 그른 것만 살피는 세계지, 교리에 다수결이나 배려나 협상이 개입되면 교리가 아니다. 교회는 하나라는 옳은 주장, 그러기 위해 교훈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옳은 주장, 이 주장을 앞에 세워 타협으로 하나를 만드는 운동은 역사 이후 있어 왔고 오늘은 그 대세에 모두 함몰 된 듯하다. 잘 알지 못해 늦어질 수는 있다. 연구의 과제로 넘길 수는 있다. 타협이나 이해 관계로 해결하는 것은 안 된다.
* 이단에 대항
교회는 성경의 진리 한 길에서만 존재한다. 옳은 것은 하나지만 틀린 길은 무수하다. 그래서 옳은 것을 지키기도 쉽고, 이탈되는 것도 쉽다. 옳은 것을 지키기 위해 흔히들 오해하는 것은 틀린 길을 파악하고 대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리란, 틀린 것을 대처할 때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옳은 것은 하나요 성경에 있으니 교회는 옳은 것을 세우는데 주력하고 그 외의 것은 틀렸다고 단정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며 옳다. 틀린 것을 대처하려고 틀린 것을 파악하고 나서는 순간 옳은 것을 연구할 시간에 손해가 많고, 틀린 것을 파악하는 과정에 미혹이 많고, 파악이 끝난 다음에는 틀린 것의 잔재가 자기 속에 남게 된다.
다른 종교나 이단을 대항하려고 상대를 파악하려 나서면 평생을 기울여도 시간이 없다. 우리가 진리 연구에 쏟을 시간을 허비한다. 믿어지지 않으면 믿게 할 도리가 없고, 성경으로 살피면 확인 되는 교리를 거부하고 억지를 부리면, 세월 속에 두고 볼 일이다.
⑤ 교리의 필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는 것과(딤후2:15)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라는(롬15:4) 말씀 때문에 성경을 요약하고 체계화한 교리는 피할 수 없다.
* 성경 해석에 필요하다
성경은 성경으로만 해석한다. 성경 전체를 요약해 보면 성경 전체를 해석할 수 있는 사전이 된다. 성경을 인간 언어로 기록한 것은 언어가 정확하거나 충분해서가 아니다. 성경의 언어는 그 속에 들어 있는 알 수 없는 진리를 향해 출발하라는 표시일 뿐이다.
성경의 모든 단어와 표현은 성경 안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살펴 성경이 사전이 된 언어로 사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의 사회적 언어는 그 뜻의 최소한과 사회의 가장 일반적인 뜻만 참고해야 한다. 성경에 사용한 언어를 가지고 성경 밖의 세상 속으로 나가면 나갈수록 성경의 원 뜻과는 멀어진다.
한 성구는 나머지 성경 전체를 해석해 주고, 모든 성경은 모든 성구 하나씩을 해석해 준다. 교리는 이 과정에 성경 전체를 요약하여 그렇게 되게 한다.
* 신앙의 하나에
교리는 교회의 정체성이다. 오늘은 교회도 많고 복잡하지만 역사의 모든 교회와 교인은 주님 한 분을 머리로 삼은 한 몸이다. 여기에 벗어난 것은 영원히 불태워진다. 그 날에는 어떤 기회도 없다. 오늘도 그 몸이 될 일부의 기회는 그 현실이 지나가면 다시 기회는 없다. 주님을 머리로 삼은 주님의 몸된 교인, 교회, 교파가 되려면 그런 신앙을 만들려면 성경이 기준이다. 성경의 이 부분에는 맞고 저 부분에 맞지 않으면 안 된다. 교리는 교회의 정체성을 파악하게 한다. 어느 시대의 어느 교인, 어느 교회이라도 교리에는 둘이 없다. 바른 교리를 찾고 세우고 그 교리에 따라 개인도 교회도 맞춰야 한다. 교리가 신앙을 하나로 만든다.
개인과 교회의 실행은 천차만별이나 교리는 성경에서 요약한 것이고 교리에 맞추면 신앙은 하나가 된다. 주님을 머리로 삼은 한 몸이 된다. 한 몸을 만들어 가는 것이 교리다. 잘못된 것을 고치게도 하고, 노력해야 할 방향을 가리킨다. 교회는 교리로 존재하고, 교리가 교회를 하나로 확인 시키고 또 만든다. 교리는 교회의 정체성이다.
교리는 교훈을 통일한다. 교회로 모였으나 성경에서 벗어나면 교회가 아니다. 교인이 성경에서 벗어나면 신앙이 아니다. 교회와 교인을 신앙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교훈이다. 지난 날 함께 해 온 교회와 신앙이라 해도 교훈이 달라지면 서로 다른 몸이 된다. 순간도 쉬지 않고 바뀌는 세상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야 하는 매일은 말씀으로 실행해야 하니 전쟁터다. 이 치열한 상황에 교회와 개인의 신앙이 가야 할 방향은 교리가 있어야 큰 방향을 잡는다.
교리는 교회의 정체성이며 교회와 신앙의 교훈을 하나로 붙들어 준다. 그렇다면 교리란 성경으로 살펴 옳고 그른 것만 살피는 세계지, 교리에 다수결이나 배려나 협상이 개입되면 교리가 아니다. 교회는 하나라는 옳은 주장, 그러기 위해 교훈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옳은 주장, 이 주장을 앞에 세워 타협으로 하나를 만드는 운동은 역사 이후 있어 왔고 오늘은 그 대세에 모두 함몰 된 듯하다. 잘 알지 못해 늦어질 수는 있다. 연구의 과제로 넘길 수는 있다. 타협이나 이해 관계로 해결하는 것은 안 된다.
* 이단에 대항
교회는 성경의 진리 한 길에서만 존재한다. 옳은 것은 하나지만 틀린 길은 무수하다. 그래서 옳은 것을 지키기도 쉽고, 이탈되는 것도 쉽다. 옳은 것을 지키기 위해 흔히들 오해하는 것은 틀린 길을 파악하고 대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리란, 틀린 것을 대처할 때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옳은 것은 하나요 성경에 있으니 교회는 옳은 것을 세우는데 주력하고 그 외의 것은 틀렸다고 단정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며 옳다. 틀린 것을 대처하려고 틀린 것을 파악하고 나서는 순간 옳은 것을 연구할 시간에 손해가 많고, 틀린 것을 파악하는 과정에 미혹이 많고, 파악이 끝난 다음에는 틀린 것의 잔재가 자기 속에 남게 된다.
다른 종교나 이단을 대항하려고 상대를 파악하려 나서면 평생을 기울여도 시간이 없다. 우리가 진리 연구에 쏟을 시간을 허비한다. 믿어지지 않으면 믿게 할 도리가 없고, 성경으로 살피면 확인 되는 교리를 거부하고 억지를 부리면, 세월 속에 두고 볼 일이다.
해롤드 브라운의 "교회사 안에 나타난 이단과 정통"이라는 저서는 국내외 신학생들의 필독서 중 하나로 분류될 정도로 교회사와 교리사에 대한 정리가 탁월하다. 그 책에서는 교리의 필요 혹은 그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장 작은 책 중에 하나인 신약성경은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유3절)에 대하여 말한다. 전통적으로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이미지를 수용했고 최초의 기독교인들에게 한꺼번에 전해진 교리의 총체로써 믿음을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매우 신중하게 그리고 변함없이 전했는데 이런 사람들은 정통파가 되었다. 그 외의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변화시켰는데 이런 사람들은 이단자로 주목받았다."
"가장 작은 책 중에 하나인 신약성경은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유3절)에 대하여 말한다. 전통적으로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이미지를 수용했고 최초의 기독교인들에게 한꺼번에 전해진 교리의 총체로써 믿음을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매우 신중하게 그리고 변함없이 전했는데 이런 사람들은 정통파가 되었다. 그 외의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변화시켰는데 이런 사람들은 이단자로 주목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