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공회 교인의 타 교회 인식 (답변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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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회 교인의 타 교회 인식 (답변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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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 문제를 제대로 대화하려면 분량이 너무 많아 질 것이니 일단 질문 중에 나타 난 사안을 중심으로 간단히 안내를 해 보겠습니다. 시간이 있으면 '3번'의 글에서 종합적 체계적 안내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요즘 일정이 많아서 자신이 없습니다.



1. >> 학생 님이 쓰신 내용 <<
어린 사람이 어른이 되는 과정에 '청소년'이라는 변동기를 거칩니다. 이 변동기를 요즘은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나쁘게 자라다가 청소년기에 좋은 말 하나를 듣고 값진 인생으로 바꾸는 사람도 있고, 굉장한 인재가 될 것으로 기대 받던 사람이 청소년기의 말 한 마디나 어느 한 생각이 잘못 들어 가서 인생을 아주 끝장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혹시 질문하신 분이 20대 대학생이라 해도 '청소년'에 대한 표현을 오해하지 않기 바랍니다. 세상에 일찍 노출 되던 예전의 10대는 요즘 20대보다 훨씬 빠르게 성인화가 진행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법적 분류에 24세 이하를 청소년이라고 합니다.

인생 전체를 통해 아주 방향을 전환하게 되는 시기, 그렇게 될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청'년이며 '청소'년입니다. 나이가 다르다 해도 현재 대화하는 그 말과 생각이 바로 우리의 신앙 면에서 보면 그런 시기입니다. 지금의 생각 하나는 어릴 때와 다르고 장년이 된 후와도 아주 다릅니다. 어릴 때는 뛰어 봐야 벼룩이고 장년이 되면 아무리 생각이 많아도 얽히고 섥힌 것이 많아서 막상 자기 인생을 뒤집어 바꾸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마음 속에 제대로 생각하고 결정을 하게 되면 진학과 진로와 여러 변화 많은 앞날의 일정을 밟아 나가다가 웬만하면 속으로 생각한 것을 반영해 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2.':요즘들어 공회 노선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 질문하신 분은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 가고 있습니다. 시간이라는 것이 순간도 기다리지 않고 지나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제 본 것과 오늘 보는 것은 달라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 멀리 보이는 동네는 내가 언제 어떻게 어디서 보든 달라 지지 않지만, 그 동네를 보는 내게는 그 동네가 멀리 있을 때와 다가 갈 때와 그 동네를 가로 지를 때와 그 동네를 벗어 나서 돌아 볼 때의 모습이 다 다릅니다.

공회는 타 교단과 달리 법과 제도로 존재하지 않고 '신앙 노선'으로 존재합니다. 따라서 공회라는 것은 세월이 지난다고 달라 지지 않습니다. 달라 진 것은 공회가 아니라 공회 위에 얹혀 있던 먼지와 같고 지푸라기와 같은 것입니다. 달라 지지 않는 것, 달라 져서 아니 되는 것만 공회라고 합니다. 공회는 '백영희신앙노선'입니다. '총공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교회들과 신앙의 모습니다. 말하자면 예배당 벽은 재건축을 할 수 있으니 공회가 아닙니다. 그러나 예배당 벽을 단단하게 검소하게 내실 있게 짓는 그 사상은 공회니 이 사상이 바뀌었다면 공회가 아닙니다. 바뀌지 않아야 할 것, 바뀌지 않고 지켜 져야 하는 것을 모으면 그 것이 공회입니다.

현재 답변자 생각에 목회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공회 교인들 거의 전부가 생각하는 공회는 '5월과 8월의 집회' '3월의 총공회' '총공회 소속 자신의 출석 교회' '백 목사님 설교를 내용으로 하는 강단' 등 이런 보이는 면을 공회라고 생각할 듯합니다. 이 것이 공회라면 공회는 지켜 질 것도 없고 지켜 지기도 어렵고 또 세월이 더 많이 지나 간다면 그 대부분은 지켜 져서 안 될 것도 많을 것입니다. 실제 1989년 백 목사님 장례 이전과 이후의 공회는 천지 개벽처럼 바뀌어 있습니다. 바꾸지 않았다고 하는 교회나 목회자 그런 공회가 있다면, 그리고 누구라고 꼭 짚어 준다면 답변자는 그 곳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끝 없이 설명 해 드릴 수 있습니다. 북한으로 말하자면 1945년 해방 되던 시기의 북한과 1950년 전쟁을 일으킨 북한은 달라도 그렇게 다를 수 없었고, 전쟁을 일으킬 때 북한과 1960년대의 북한은 더욱 더 달랐고, 그 때의 북한과 1980년대의 북한은 아예 서로 철천지 원수가 될 만큼 달랐습니다. 그런데 말 몇 마디로 꾸며 대며 슬쩍 넘어 가다 보니까 오늘의 북한이 마치 1945년의 북한 그대로 지켜 진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공회 역시 그렇습니다. 생각을 하지 않고, 생각을 하되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을 제대로 하되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질문하신 학생 한 분이 많으면서 제대로 된 생각을 하시면 질문하신 학생 한 분으로 인해 그 교회 전체가 공회 교회로 존재하려면 제대로 된 공회 교회로 유지 될 것이고, 한 교회가 제대로 그렇게 되면 주변 여러 공회 교회들에게 영향이 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흐름과 모임이 잘못 된 공회적 교회들을 바로 된 공회적 교회로 만들 것입니다. 만일 제대로 생각해 볼 때 공회 자체가 잘못 되었다면 하면 더 낫고 좋은 곳으로 얼른 가야 양심일 것이며 그 것이 구원 운동일 것입니다.


3. ':과연 공회 노선의 방향이 옳은 방향이고 다른 교단은 저희 교단보다 문제가 많은 것인지'
북한의 제일 잘 사는 사람들이 남한에 대표단이 되어 오는 것을 보면 남한의 시골 사람보다 못합니다. 지금 답변자가 사는 시골은 강아지도 다이어트를 하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남한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있고 온갖 소식을 들어 보면 원망 불평 죽겠다는 소리만 나옵니다.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북한을 지지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우리 나라에서는 대개 50:50이고 선거에 말 한 마디만 잘못하면 바뀔 수도 있는 정도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잊었습니다. 북한 안에 살면 불만이 없을까? 남한의 이런 자유와 풍요 속에서 더 먹겠다고 악을 쓰는 이들을 만일 북한에 갖다 놓으면 그 날 바로 고통스러워 죽을 것입니다. 남한 안에 사는 사람이 남한의 뒷골목을 현미경으로 조사하면 온갖 병원균과 노숙자와 우범 지역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우리가 가끔 뉴스에서나 한두 마디 듣고 지나갑니다. 분명한 것은 연봉 1억원을 받는 직장인들이 노조를 만들어서 자기들이 못살겠다고 좌파 데모를 하는데 이들에게 북한으로 가서 살라 하면 그럴 리는 절대 없을 것입니다. 지금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귀순하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항상 가능합니다. 미친 사람 외에는 그렇게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문제는 무엇인가? 자기가 사는 자기 사회에서 자기 사회 내부만 보기 때문에 자기 사회의 모든 부조리 잘못 더러운 것이 훤히 보이는 것입니다.

앞으로 결혼을 하시겠지만 꿈에 그리던 분과 결혼을 해서 살게 되면 몇 달만 살면 그 사람의 온갖 것을 다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람보다 훨씬 더럽고 못한 사람이라도 건너 동네에 살면서 출근 길에 살짝 보는 것이 전부라면 그 사람은 청순해 보입니다. 이 것이 바로 어떤 좋은 상대를 만나서 결혼을 한다 해도 그 결혼이 조금만 지나 가면 '상대가 좋아서 좋은 결혼 생활이 유지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아이들도 그렇습니다. 세상에 자기를 위해 가장 수고하고 자기를 가장 아껴 주는 사람이 제 부모인데 제 부모에게는 제대로 인사하는 아이들이 없습니다. 그러나 고등학생에게 방학 한 달간 삼성전자가 서비스 안내부에서 일을 시키고 한 달에 2백만원을 준다면 그 서버스 센타 책임자나 윗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예절 바르게 정성을 다할 것입니다.

공회 안에서 공회를 보고 자란 사람, 공회의 문제점 어두운 점 모순이 가득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교회를 바꾸어 다른 교단의 좋아 보이는 교회로 갔다면 그 곳에서는 공회에서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모습이 보일까? 물론 100:0이라는 것은 없으니 공회 교회가 아주 훌륭하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그 속에서 봤을 때 3~40점이라면, 공회에서 비판하던 친구들이 다니는 좋은 교회가 현재 질문자 눈에 8~90점으로 보인다면 이런 질문은 당연히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질문을 하고 말고를 떠나서 공회 내에서 자란 사람의 거의 전부는 질문하신 분처럼 이런 생각을 심각하게 하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중고등학교 또는 대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공회 교회가 아닌 교회를 다니는 좋은 친구들을 알게 되거나 다른 교회를 겪어 볼 기회를 가지면서 그렇습니다. 만일 공회 교회가 50점 이하고 타 교단의 교회가 50점만 넘을 수 있다면, 답변자는 지금까지 살아 오면 했던 모든 주장을 전부 회개하고 답변자가 제일 먼저 그런 교회로 달려 가겠습니다. 답변자는 다른 면은 다 부족해도 확실하게 더 나은 것이 있으면 체면 차리리 않고 바꿀 수 있는 용기는 있습니다.

대화가 이렇게 된다면 비판적인 분들은 '공회는 모든 교단들보다 낫다?' '공회 이상의 교회는 없다?' 어떻게 그렇게 단정을 할 수 있느냐고 단호하게 말할 것 같습니다. 공회 교회들의 문제점은 사실 이 홈이 개설 된 1998년 이래로 이 홈이 처음부터 각 공회 내부 목회자들도 모르고 교인들도 몰랐던, 그래서 타 교단 사람들은 알 리가 없었던 별별 소식을 다 공개 해 왔습니다. 그 내용을 접한 공회에 거의 대부분 목회자들과 공회를 사랑하는 분들은 공회 교인들이 시험에 든다며 만류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까지 그렇게 공개하며 나온 이유는, 사실 타 교회들은 공회보다 더한데 그런 내용을 덮고 가루기만 하니까 고칠 기회에 고치지 않고 곪아서 터지게 되며, 남들이 알게 될 때쯤에는 아주 포기를 해야 할 지경에 이르기 때문에 공회를 사랑함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 홈에서 공회의 어지러운 소식들을 접해 보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홈에 이미 공개한 구체적인 자료들을 아신다면 질문하신 분이 자라 나오면서 직접 알아 왔던 공회의 문제점보다는 10배나 수십 배 더한 내용들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지금 질문자께서 공회 못지 않다고 생각 되는 교회를 보셨다면 또는 공회보다 좀 낫다 싶어서 마음이 끌리는 교회나 교단이 있다면 비록 100%라고 말하지는 못하나 단언코 그 교회와 교단의 내부는 이 홈에서 공회의 잘못 된 것을 말한 것보다 비교도 못할 정도입니다. 남한 사회를 비판하는 좌파들이 남한에는 자유가 없다면서 안기부의 불법 조작을 말하거나 대통령의 독재를 말하는데, 사실 그들의 말이 대부분 맞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들이 비판하는 그 기준을 가지고 평양에 가서 들이 댄다면 평양의 안기부는 불법 조작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3족을 멸하는 정도고 평양의 독재는 독재가 아니라 아예 한 사람의 개인 나라입니다.

남북 관계를 두고 비교를 하는 것은 이 홈이 정치적으로 우파거나 보수적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가장 쉽게 드러 나는 예를 들고 있습니다. 좋기는 더 가까운 예를 들면 좋겠으나 기분 나쁘게 생각할까 싶어 좀 먼 곳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타 교단에서 자라 나오는 이들이 질문자처럼 그런 나이가 되면 흔히들 '천주교가 그래도 질서도 있고 사회 봉사도 많이 하고 양심적인 언행으로 인정을 받는데, 한국의 기독교는 개독교니 하여 엉망 진창이라. 무조건 천주교를 비판하고 기독교만 무조건 구원이 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원리는 같습니다. 천주교는 AD592년에 출발하여 AD1517까지 1천년을 독주했습니다. 그 시기에 천주교는 몇 명을 불에 태워 죽였는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불신 세상의 역사 교과서에서도 천주교 1천년을 서양의 중세사라 하며 이 시기를 '암흑시대'라고 합니다. 그냥 어두운 정도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과 권리가 1천년동안 이렇게 혹독하게 짓밟힌 사례는 역사에 없습니다. 그런 천주교가 이제는 세상이 밝아 져서 그렇게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자 그 때 모아 놓은 천문학적 돈을 바탕으로 이제는 거지를 위해 동냥을 주면서 의인 노릇을 하고 마치 천주교는 인권을 존중하는 집단처럼 나서고 있습니다. 지금 독재정권이 학생 1명을 고문하여 죽인 것이 그렇게 나쁜 일이라면 교회가 중세 1천년간 사람을 태워 죽인 것은 몇 명이었을까? 조금 냉정하게 넓게 멀리 눈을 뜨고 살펴 본다면 천주교는 자폭을 해야 할 집단이지 회개라는 단어조차 입에 올리는 것이 사치스런 곳입니다.

공회와 타 교회를 비교하면서 남북을 예로 들고 역사의 천주교를 예를 든 것은 좀 지나 친 것일까? 당연히 지나 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원리적으로 보면 같습니다. 공회의 출발과 과거 정신과 내면에 흐르는 상황을 바로만 안다면 아직까지는 역사 세계에 공회와 같은 운동이 일어 난 적은 없었습니다. 물론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하나의 계속 되는 흐름으로는 이렇게 체계적으로 좋고 바르게 된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체제 속에 좋은 것을 배운 답변자와 질문자 그리고 우리 주변의 공회 교인이라고 하는 우리의 수준이 워낙 낮아서 우리의 눈에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서울대 공대 학생 하나가 절도를 했다고 서울대학이 도적을 가르치고 그렇게 양성을 했다고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교육의 역량과 책임은 따져야 하겠지요? 조폭 조직원이 지나 가는 노인의 팔을 한 번 부축해 줬다고 해서 이 나라의 조폭들은 전부 자선가들이며 인권 복지의 선량한 모범생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조폭은 그 조직의 출발과 내면이 처음부터 범죄조직입니다. 범죄조직이 범죄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것입니다. 서울대 학생이라면 우리 사회의 모든 면에서 모범생이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학생이 있다면 교육을 받아야 하고 사회로부터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와 서울대는 고민을 해 봐야 합니다.


4. ':이에대한 판단 자체를 할 수 없었던 저의 생활들이였습니다.'
공회든 그 어느 교회든 별 일 없이 자라 나오는 이들은 자기 소속에 대해 따로 생각할 여유를 가지지 못합니다. 문제는 어느 날 자라 있고, 어느 날 아주 다른 분위기를 접하거나 듣게 될 때 충격입니다. 그 충격을 견디면 자생력 있는 회원이 되는 것이고 그 충격을 잘못 접하면 뿌리까지 뽑히게 되어 그 곳에 있지 못하게 됩니다.
공회는 타 교단과 달라서 내부에 문제가 있어도 단체를 위해 희생해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더 옳은 곳, 더 나은 것을 끊임 없이 찾아 가는 곳입니다. 다만 한 번 듣고 한 번 생각하고 바로 결정하는 일은 섣부른 일이며 후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소속'을 두고는 신중하라는 것입니다.


5. ':타 노선에서 각자의 현실 속에 충성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 부분은 늘 문제가 됩니다. 그 것은 답변자도 그렇게 겪었고 그래서 답변자는 목회하는 교인들이 그런 오해를 갖지 않도록 하려고 노력을 하는데도 어렵습니다. 말하자면 각자 내재적으로 가지는 불가항력 비슷한 그런 것입니다.
남북을 비교한다면 삼성전자 하나가 벌어 들이는 돈이 북한 전체가 벌어 들이는 돈의 수십 배가 넘을 것입니다. 삼성전자 수위 한 사람이 평양의 어느 고위직보다 편하게 잘 살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fact'입니다. 사실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가지고 자꾸 반복하다 보면 사람들은 삼성전자 수위 1명이 평양의 고위직보다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살며 눈치 보지 않고 인생을 마음껏 즐기니 더 낫다라는 표현을 하다 보면 삼성전자에는 상사의 눈치가 없는가? 삼성전자에는 직업병이 없는가? 삼성전자의 사무직원들은 수위를 존경하는가? 이런 것은 없는 사회가 없고 말을 할 필요가 없이 다 있는 것인데, 삼성전자 수위가 평양 고위직보다 낫다는 것은 '월급'과 '생활의 편리'와 '여행과 생활의 자유'까지만 말하는 것이고 그 외에 다른 것은 평양이 더 나을 수도 있고 삼성직원이 훨씬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경제와 정치적 자유와 생활의 편의만 가지고 삼성이 낫다고 말한 말을 가지고 삼성의 직원은 정확무오하며 절대 세계에 산다고 생각하고 평양에는 어떤 것도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한 그 생각이 착각입니다. 북한은 경제가 저토록 낙후가 되었으나 가 보지 않아도 공기가 맑을 것이고 아직도 산골짝에는 1급수 시냇물이 있어 그대로 마셔도 오염이 되지 않았을 것이며, 저렇게 배가 고프니 형제 우애는 틀림 없이 굉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의 2인자를 무자비하게 죽여 버리는 것으로 보아 평양의 밤길에는 귀신 때문에 나가지 못하는 일은 있어도 인신매매범이나 강도를 만날까 싶어 못 나가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과거 평양을 방문했던 남한 인사들이 평양은 생지옥일 줄 알았는데 거리가 깨끗하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걸어 다는 것을 보고 북한도 사람이 살 만하더라고 광고를 했었습니다. 그렇게 보이는 내부를 그들이 보여 주지 않았고, 남한에서 우리들은 너무 한 쪽으로만 생각했던것입니다.

공회가 타 교단을 말할 때 흔히들 '한국교회는 전부 타락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타 교단은 주일을 지키지 않습니다. 급하면 출근하고, 놀고 싶으면 주일을 끼고 갑니다. 가끔 한 번씩 빠지는 것은 양심 가책조차 없습니다. 주일 1시에 결혼식이 있으면 오전 일찍 1부 예배를 드리고 갔다 옵니다. 그들은 이 것을 주일을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공회로서는 오전 예배는 오전에 한 번뿐이며 이 예배를 빠지거나 주일에 출근을 하는 일이 있다면 직장을 포기하고 인생의 기회를 다 버립니다. 이 것을 기준으로 삼아 평가를 한다면 공회는 살았고 타 교회는 모두 죽은 것이 사실입니다. 주일만큼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공회 목사님들이 설교를 하거나 공회 지도급의 교인들이 탄식을 할 때 이런 표현들이 나오는데 이런 표현들을 한 번씩 듣다 보면 듣는 학생들 생각에는 공회는 천사들만 살기 때문에 화장실도 가지 않을 것이며 타 교단 사람들은 소돔과 고모라만큼 되리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넘치게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지혜로운 목회자들은 공회의 장점을 설명하면서 우리의 약점과 고칠 점을 분명히 안내를 하고, 또 타 교단의 장점과 우리가 본 받을 점을 설명을 하는데, 그렇게 설명을 한다 해도 자라 나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들을 때 골라서 듣는 면이 있습니다. 폭죽을 팔 때 주인이 화상의 위험과 실명의 위험까지 설명을 하지만 사 가는 아이들은 지금 돈을 줬으니 저 물건을 받아 쥐고 골목에서 펑펑 터트리는 생각에 취하여 무슨 소리를 해도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소리는 들렸는데 알아 듣거나 심각하게 생각하여 조심하는 일은 있을 리가 없습니다. 수학여행을 가면서 기차 문을 조심하라거나 해외 여행을 가는 청년들에게 강도를 조심하라고 아무리 일러도 들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공회는 이 홈에서 여러 면으로 타 교단과 비교를 했습니다. 중요하고 핵심적이며 근간에 속한 것은 확실하게 공회의 가치관은 대단합니다. 국내에 공회와 비교 될 만한 곳은 없습니다. 답변자 생각에 공회가 서울대학교라면 아주 우수하다고 유명한 타 교단은 지방 전문대 수준 이하입니다. 문제는 서울대 교수와 학생들은 모든 면에서 다 훌륭한가? 학생은 배워야 하고 학교는 가르쳐야 한다는 면으로만 보면 분명히 초일류지만 그 외에 가정 생활에 충실한가? 교우 관계가 좋은가? 운동을 잘하는가? 이런 중요한 다른 면에서는 오히려 단점이 많고 못난 점이 많을 것입니다. 대학별 운동경기에서 서울대가 우승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서울대가 꼴찌 하지 않는 경기가 있습니까? 그렇다고 사람의 건강이 머리만 못하며, 운동이 책만 못합니까?


6. 타 교단의 장점들
타 교단들이 선교를 가고 봉사를 하고 사회적으로 다양하게 활동하는 것은 분명히 공회 교회와 비교할 때 아득히 앞 서 있습니다. 공회는 백 목사님 생전에 정식으로 선교사를 파견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애매하지만 이왕 갔으니 그런 정신으로 노력해 봐라는 뜻으로 선교사라는 말을 붙인 적은 있습니다. 타 교단 선교사들은 수만 명을 헤아립니다.

그런데 선교를 한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타 교단은 우리보다 나은가? 봉사나 여러 활동 면을 볼 때 우리보다 낫다고 나은가? 다시 질문을 되돌려 질문 학생이 중1이라고 생각하고 전교 1등하는 수석 학생이 되는 것과 전교생 중에 시내에 재미 있는 곳을 제일 잘 알고 소개할 수 있는 인기 제일의 학생이 되는 것을 두고 선택을 하라면 어느 것을 하시겠습니까? 일단 학생이면 공부가 먼저입니다. 공부가 다는 아닙니다.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공회가 타 교단을 대부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 '선교'의 경우
선교라는 것이 진정한 선교라면 공회가 부러워 하고 배워야 할 항목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선교는 그 내막을 알고 나면 현실 도피인지 해외 체험인지 모를 만큼 심각합니다. 소위 국내에서 특별히 할 일이 없는 사람이 해외로 나가면 그 뭔가 꿈 같은 일이 있을 줄 알고 낭만적으로 감상적으로 자기 성취의 방법으로 나가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국내에서 이런 소리를 하면 돌 맞을 소리인데, 실제 선교 현지에서 선교사의 생활 일정과 경제 내막을 뒤져 보면 사명감에 발버둥 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선교사가 들어 그 지역의 선교를 막는다는 소리가 예사로 나옵니다. 어느 특정 국가의 선교 상황을 거의 파악할 수 있는 분께 아주 최근에 직접 들은 고백입니다. 그 나라에 와 있는 선교사 중에 선교를 위해 사명감으로 나온 사람은 없아 할 만큼 된다고 합니다. 답변자가 1986년 미국의 세인트루이스 시의 카브난트에서 마지막 공부를 할 때 '선교학'을 들었는데 수강생이 약 4~50여 명이었습니다. 종강할 때 훗날 선교를 지원한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적도록 했는데 일본과 프랑스가 제일 많았습니다. 무엇을 말할까요? '선교'라는 단어가 좋아 보인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고생하기는 싫다는 것입니다. 당시 수강생 거의 전부가 백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솔직하기 때문에 솔직하게 말하고 그대신에 큰 일은 내지 않습니다. 우리는 큰 소리를 쳐 놓고 뒤에 가서는 아주 상상 못할 무책임한 일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 '봉사' 활동에 대하여
이 분야는 답변자가 소리 없이 그 쪽의 내면을 전문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뇌졸증, 중풍이라고 하는데, 반신마비나 전신마비가 와서 드러 누워 있는 환자에게 요즘 우리 나라는 무료로 4백 만 원짜리 전동차를 줍니다. 또 국가가 파견하는 각종 봉사자들이 있습니다. 이 어려운 이웃의 활동을 돕고 목욕을 시켜주고 밥을 떠먹여 주는 봉사는 물론 그들에게 필요한 요양사를 보내 주거나 전동차를 제공하려고 기업이나 돈 많은 분들이 돈을 후원합니다.

그런데 마비 환자의 밥 한 술을 떠넣어 주는 수고를 분석해 보면 그 수고가 남들에게는 봉사로 보일지 몰라도 '재활의학' 측면에서 보면 마비 환자는 스스로 운동을 해야 자활이 되는데 남이 떠먹여 주면 더 게으르게 되고 더 움직이지 않으면 몸이 더 굳어 집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사람을 악화 시키는 것입니다. 물론 밥이 없어 굶을 정도면 먹여야 하고, 먹을 수 없어 죽을 지경이면 떠먹여야 하지만, 현재 우리 주변의 봉사라는 것의 내면과 그 결과를 자세히 살펴 보면 봉사하러 가는 사람들의 자기 성취, 자기 자랑, 자기 체험, 자기 경력, 자기 기분에 따라 가는 것이 대부분이고 그들이 잘하든 못하든 그들의 봉사 결과가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가?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더 많습니다. 재활치료라는 것은 눈물을 흘리며 이를 갈아 붙이고 걷고 뛰고 넘어 지면 다시 일어 서야 자기 건강이 되는 법인데 국가가 먹여 주지 입혀 주지 씻겨 주지 전동차가 조이스틱에 의해 마비환자를 수퍼마켓 매장을 돌아 다니게 하지 생계비를 줘서 더 잘 먹게 하지... 현재 이 나라의 비만자는 부자보다 극빈자 층으로 갈수록 심각합니다. 이 것도 역시 fact입니다. 주변에서 보면 바로 보일 것입니다. 이들을 위해 교회까지 돈으로 돕고 그들을 씻겨 줘야 하는가? 탕 안에서 자기 몸을 씻으려 해야 그들의 팔 다리가 경직이나 강직에서 풀리며 좋아 지는데.

공회는 이런 내면을 보는 눈이 특별하기 때문에 남을 돕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남을 제대로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피고 제대로 돕자는 곳입니다. 그리고 돕되 세상에 잘 먹고 잘 살며 세상만 행복하게 생각하고 살게 하는 것보다 세상 너머 천국을 소개하는 이런 일에 더 노력하자는 곳입니다. 만일 교회가 이런 노력을 줄인다면 그 것은 교회가 아니라 사회사업소일 것이며 사회사업만 두고 말하면 한 해에 100조를 투자하는 대한민국 복지부와 한국 교회 전부가 복지를 위해 내놓을 수 있는 돈을 고려한다면, 교회는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또 하나 더한다면, 노인시설에 찾아가서 무의탁 전신마비 환자를 씻겨 주는 그 교회의 40대 잘 먹고 잘 사는 여전도회 회원들, 그들이 자기 시부모는 모시지 않으려고 싸우거나 피하면서 제 부모를 씻기는 일은 하지 않으면서 저 멀리 남을 도우러 간다고 하니 다른 교회는 몰라도 공회는 그 자세를 비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남을 돕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돕는 여전도회 회원들의 신앙과 생각과 행동의 순서가 너무 잘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봉사 써클을 만들어 양로원에 가서 방 청소를 하는 학생들이 그 날 아침 집에서 일어 난 이불은 집에 있는 어머니가 정리해 준다면, 이 봉사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7. ':그들의 믿음이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설교 중간 세상 따라 간다)'
어릴 때는 시야가 좁습니다. 근시입니다. 나이가 들어 가면 원시로 바뀝니다. 눈의 노화 현상으로만 보지 마시고 인생을 보는 근본 시각도 그렇습니다.
선교 활동이나 봉사 활동을 두고 교회가 얼마나 큰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지는 공회 내의 학생들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로서는 당연히 총론적으로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듣는 사람으로서는 '단 하나도 빠짐 없이 다 틀렸다'고 말했다는 인식을 갖기 쉬운데 그 것은 듣는 사람이 알아서 들어야 합니다. 또한 타 교단의 봉사와 선교가 너무 문제가 많다고 말하는 공회 교회와 목사님들은 문제가 없는가? 그 말은 분명히 아닌데 듣는 사람이 그렇다고 듣는 것이 문제입니다.

말을 하면서 상대방이 오해하지 않도록 앞 뒤를 다 설명하고 설교를 하려면 그 어느 말 하나를 할 때마다 몇 페이지에 이를 양해를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전체를 보며 총괄적으로 설명을 할 때는 듣는 사람이 알아서 들어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데도 불구하고 순복음교인들은 그 성경 안에서 큰 소리로 찬송하고 기도하고 병이 낫고 세상 복을 받는 성구만 골라 내고, 기장측이라고 하는 진보 좌파 교단 사람들은 항거하고 대들고 뒤집어 엎어 버린 말씀들만 기억하고 사용합니다. 누가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하나님께서 성경을 적어 주셔도 인간은 제 좋은 것만 골라 먹고 제대로 자라게 됩니다. 하물며 공회 목사님들이 교인 전체를 다 알아 듣도록 설교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듣는 사람의 책임이 있습니다. 현재 질문자께서 적은 글 정도라면 이제 질문하신 학생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하면서 듣게 되면 어려울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현재 한국 교회에 희망이 있는가? 희망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비판하기 전에 그들 스스로 말하는 내용만 가지고 봐도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 교회에 알려 진 것으로 가장 정통이며 잘 믿는다는 교회가 '고신교단'입니다. 부산의 복음병원이라는 고신대 대학병원을 가지고 있고 영도에 고신대학 캠퍼스가 있습니다. 또 천안의 경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가 나뉘는 분기점에 신학교에 해당하는 고려신대학원이 있습니다. 이 3 개 기관은 전부 고신 교단의 중심이며 본부입니다. 이 기관을 운영하는 주체가 고신 교단에서 선출을 하는데 이 기관이 10여 년 전에 교육부의 조사에 걸려서 이사장이 불신자로 선정 되었습니다. 교회의 책임자가 불신자로 임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들을 가르치고 기르는 신학교 주인이 불신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횡령이 너무 많고 크고, 부정 부패가 너무 극심하여 불신 교육부가 볼 때 전국 수백 개 학교들 중에서 4년제 종합대학으로서는 거의 사례가 없는 지경에 이르런 것입니다.

그 이유를 놓고 고신 교단은 10여 년 이상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누구 하나 억울하게 당했다거나 정권에게 미움을 받아 복수를 당했다는 소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너무 심했다... 그런 식입니다. 그래도 한국 교회 전체적으로 보면 부산과 경남 지역이 가장 건전하고 정통으로 가득 찬 곳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강한 교세와 전통을 가진 곳이 한국교회사적으로 고신 교단입니다. 그 곳이 그 정도인데 그보다 넓고 자유로운 교회를 굳이 봐야 할까요? 요즘 가정 주부들이 술집 여자들이나 입는 옷을 입고 난리들인데 굳이 술집 여자들의 수준을 봐야 할까요? 학교 교실 안에 학생들의 자세와 행동이 이 정도인데 굳이 뒷골목을 배회하는 청소년들의 인품을 조사해 봐야 할까요? 당연히 질문자께서 듣고 계신 설교의 내용은 비록 정확성에서 좀 떨어 질지 몰라도 객관적으로 방향은 맞게 설교를 하고 계시며 실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몇 번째 되뇌입니다만 그렇다면 공회는 어떨까요? 공회 역시 질문하신 학생이 아는 것만 해도 문제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놓고 보면 그래도 아직까지는 한국 교회 내에서 총공회 목사님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나은 곳은 답변자가 알지를 못합니다. 있다고 생각하시면 이 번 질문의 재질문을 통해 구체적으로 한 번 제시를 해 봐 주십시오. 적어도 총공회와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 역사적인 문제와 함께 현재 문제도 많을 것입니다. 공회 내에서 자라면서 공회의 속을 너무 자주 보는 바람에 타 교단의 좋은 점이 많이 보일 따름입니다. 질문하시는 학생들의 경우, 천하에 제일 좋은 자기 부모들이 자기에게는 귀찮고 좀 문제가 있는 부모님으로 보일 수 있고 그 반대로 실제 질문자 부모님보다 훨씬 못한 친구 집 부모님이 더 나아 보일 수 있습니다. 한 번씩 놀러 갈 때 잘 해 주시기 때문일 것이며, 웬만해서는 아들 친구가 왔는데 그 부모님이 부부싸움을 하거나 평소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8. ': 설교말씀에서도 세상적으로 성공보다 하늘의 성공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접할때'
'종교'라는 것은 첫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초월적 존재인 '신'을 믿을 때 종교라 하고
'종교'라는 말을 붙이려면 죽은 뒤에 가는 영원한 세계인 '내세'를 말해야 종교라 합니다.
이 2 가지가 없다면 종교라는 말도 붙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상의 도덕이나 윤리에서 그치지 않고 그래도 '교회'나 '신앙'이라는 단어를 일단 입에 올린 이상, 세상보다 천국이 더 소중하다는 말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어떤 경우라 해도 경찰이라면 범인을 잡아야 하고, 군인이라면 적을 죽일 수 있어야 하는데 만일 경찰이 범인과 술집에 어울려 놀거나 군인이 사람을 죽이지 못해서 안절부절한다면 이 것은 처음부터 경찰과 군인을 하지 말아야 했을 것입니다. 의사와 간호사가 다른 사람의 피를 뽑을 수 없거나 그 사람에게 바늘을 찌르고 칼로 생살을 쨀 수 없어서 운다거나 그런 일을 하면 안 된다고 피켓을 들 정도라면 의대나 간호대를 지원조차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공회 외에 그 어떤 교회가 세상도 좋고 천국도 좋다고 한다거나, 천국이 더 좋다고 말은 하는데 그 속에 말하는 설교자의 중심은 사실 세상을 더 좋아한다거나, 혹시 천국의 성공 따위를 좀 비웃거나 약간 무시하는 태도가 보인다면 이 것은 좋은 교회라고 한다거나 좋은 목사님이라고 말을 하기 이전에 그 교회는 교회라는 간판을 떼고 그 목사님은 종교인이라는 표현도 사용해서 안 될 듯합니다. 교사의 입에서 학교보다 학원이 더 낫다고 말을 한다면 그 교사는 사표를 내야 양심이 아닐까요? 교사 생각에 학교보다 학원이 나은 것은 사실이겠으나 우리가 노력해서 학원보다 낫도록 해 보겠다, 기다려 달라 도와 달리 믿어 달라... 이런 식으로 말을 해야 그 학교를 출근해서 월급을 받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9. ': 하나님이 주시면 받는것이고 안주시면 안받는다 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니'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 게으른 사람이 게으르고 못 나서 빌빌하며 사는데 부지런히 노력을 해 볼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현실에 만족한다 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자기 게으름을 하나님과 말씀으로 가루는 사람일 것입니다. 또한 위안제나 마시는 잘못 된 사람일 것입니다. 천국을 강조하다 보면 분명히 그런 위험은 있습니다. 실제 각 교회에 아주 신앙 있는 분들을 살펴 보면 다 그렇지는 않으나 적지 않은 교인들이 세상이 귀찮고 돈 벌 줄을 모르고 누가 불러 주지도 않으니까 교회만 살면서 기도만 하고 자기는 의인인데 세상이 몰라 준다며 세상을 비판하고 혼자 잘 난 척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세상 복을 받도록 설교하고 열심히 격려해 주는 교회에도 다 마찬 가지로 흔합니다.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문제는 우리가 고쳐 가기 위해서 주신 숙제입니다. 학생이 틀린 문제를 놓고, 왜 틀렸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할 때 발전하는 학생이 됩니다. 어려운 문제지를 던져 버리고 쳐다 보지 않는다면 대단히 곤란합니다.


10. ':공회방법대로 결혼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습니다.'
선택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콩을 심었다면 그 콩은 자기가 먹어야 합니다. 타 교단들처럼 교회 내에서 자유롭게 연애하고 결혼까지 약속을 하게 되면 약혼을 통해 결혼을 해도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세상이 예배당을 '연애당'이라고 조롱하는 지경에 이를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불신자조차 연애를 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한국 사회에 연애는 교회가 다 가르쳤고 조장을 했습니다.

사귀면 좋고, 사귀다 보면 건전하게 시작했으나 불장난처럼 이성의 사귐은 불이 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불이 나면 태울 수 있는 것은 다 태웁니다. 그런데 불장난처럼 재미 있는 놀이는 없습니다. 불길처럼 구경거리로도 좋고 재미있는 것은 없습니다. 문제는 그 불은 순식간에 끝나고 그 후가 문제입니다. 자기 집에 불을 질러 놓고 구경을 해도 자유고, 그런 충동이 생겨도 뒷감당을 생각해서 자제를 해도 자유입니다. 경험이 있는 공회 목회자들은 자기 교회 학생들에게 진심을 다해 간곡하게 호소합니다. 그 말을 들어도 자유입니다. 또 주변 친구들이 다니는 교회에서 부러울 만큼 또 보기에도 좋을 만큼 건전하게 사귀는 모습을 보다가 그렇게 따라 해도 자유입니다.

그러나 불신 사회든 교회든, 한국이든 서양이든, 현재든 고대 사회든, 이성이라는 것은 불과 같아서 화로 속에 불을 적당하게 관리를 한다면 불처럼 소중한 것이 없으나 그 불을 이불에 마루에 헛간에 예배당에 낮이건 밤이건 예배 시간이건 집회 때건 조금 방치하게 되면, 그리고 바람이 불거나 타이밍이 잘못 되면 그 때는 상상 못할 일이 벌어 집니다. 주변에 사귀는 친구들의 내면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 들을 수 있다면, 또는 정상적인 사람으로서 자기 생각으로 그림을 그려 보면 건전한 친구로서 대화만 하고 신앙에 유익한 상대로 끝까지 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청소년이거나 청년으로서 내 마음으로는 사귀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답변자는 이런 예를 듭니다. 배 고픈다 빵 가게 앞을 지나 가게 되면 어떻게 하지요? 먹고 싶으니 그냥 집어 먹습니까? 그렇다면 짐승입니다. 그럴 때 주머니에 돈을 생각하고 유리창 너머 진열대에 있는 주인과 CCTV를 생각하며 참는다면 그 것은 사람입니다. 공회의 결혼관은 이성에 대한 문제는 결혼할 때까지 생각조차 접고 누르고 있다가 20대 초반이 되면 얼른 결혼을 하라는 것입니다. 연애하다가 결혼이 늦어 지는 것보다, 차라리 대학을 입학하면서 결혼을 해 버리면 더 낫지 않을까요? 결혼은 연애를 해도 죄가 되지 않는 면허증입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캐캐묵은 옛날 불신 사회의 병폐처럼 거창하게 호텔을 빌리고 해외여행을 가고 양가 부모님께 돈을 타서 잔치를 하니까 결혼식을 늦추는 것입니다. 우리 나이로 19세면 고3입니다. 20세면 대학교 1학년입니다. 대학 1학년이면 결혼하면 되지 않을까요? 거창하게 30평 아파트를 마련해야 할까요? 결혼했다고 바로 아이를 낳아야 할까요? 그냥 대학 1학년 두 사람이 원룸 하나 사용하듯 하면 좋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 내신 결혼 제도가 있고, 어른이 되면 결혼을 하도록 세상을 만들어 놓았는데, 거창하게 하려고 또는 자기 꿈에 그리던 왕자나 공주를 만나려고 오랜 세월 여러 사람을 두리번거리다가 TV 드라마에 나오는 무슨 주인공이나 되는 것처럼 그렇게 시선을 모아 가며 잔치를 벌이려니까 문제입니다. 공회 결혼의 요지는 실무적 결혼입니다. 남자가 하나 있고, 여자가 하나 있고, 20세 정도면 무엇이 더 있어야 할까요? 공회식으로 신앙 생활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필요 충분 조건입니다. 그런 상대방을 찾지 못한다면 내 눈이 높은 것이니 눈을 낮추면 됩니다. 어디까지 낮출까요? 앞에서 타 교회의 장애인 봉사를 언급하셨는데 아내나 남편을 장애인을 맞으면 됩니다. 평생 장애인을 위해 결혼을 해 주고 함께 산다면 이 것이야 말로 정말 장애인 봉사가 되겠지요. 봉사를 정말 입에 담으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양심이 아닐까요?


11. ': 이런 생각들이 있으니 말씀을 들을때도 부정적으로 들리고 힘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교회에서 평소 듣는 것보다 질문자 마음에 짐을 더 많이 얹어 놓은 듯합니다. 그래도 이 것이 우리가 살아 가는 근본이며 상식이며 피할 수 없는 길을 안내했습니다. 답변자 역시 질문하신 분의 심정을 다 통과하고 나온 사람입니다. 답변자는 시골의 공회 교회에서 자랐습니다. 답변자 다니던 공회 교회는 공회의 주력 교회이고 초기 교회인데도 답변자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던 1963년까지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장년반 예배는 장년반 예배라 하여 가지 않았고, 주일학교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되어야 다니는데 초등학교 1학년 전에는 유치부라 해서 7세 나이만 갔습니다. 또 중학교 1학년이 되어야 비로소 집회도 가고 장년반 예배도 참석했습니다. 지금 답변자 교회는 젖먹이까지 믿는 가정의 아이들은 장년반 예배를 다 참석합니다. 주교 예배는 기본이고. 5월 집회도 다 갑니다.

그런데 답변자가 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장년반 예배를 참석했을 때, 그 예배 1 시간의 길이는 하루처럼 길었고 설교하는 강단에 돌을 던지고 싶은 충동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수요일 금요일 아침에 학교를 가는 순간부터 저녁 예배에 참석해서 시간 때울 것을 생각하면 한스러웠습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저녁 예배 한 시간의 설교 시간에 놀 거리를 찾아야 했습니다. 예배 시간에 표시 나게 할 수는 없고, 그 때는 휴대폰처럼 좋은 놀거리도 없고, 그래도 무슨 장난거리를 찾으면 저녁 예배 시간을 자신 있게 맞이 하는데 만일 놀거리를 찾지 못하고 예배 시간이 다가오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설교라는 것은 항상 그 모양 그 꼴이었습니다. 총공회의 역사 1936년부터 오늘까지 80여 년이 다 되도록 늘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갑갑하고 이렇게 숨 막히는 곳을 탈출할 생각에 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설교가 귀에 들렸고 그 후부터 오늘까지 공회에 미쳐 이 홈을 운영하며 최근에는 이 홈을 운영하는 것이 백영희 목사님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라는 죄목으로 법원에 불려 가서 혼이 나고 있습니다. 소송을 한 분은 백 목사님의 가족 중 한 분입니다. 세상 다른 일 같았으면 더러워서 네나 해라 하고 화가 나서 치우고 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이 불쌍하고 오히려 그럴수록 이 노선에 대한 가치가 더 귀해서 힘을 더욱 쓰고 있습니다.

혼자만 생각하지 마시고, 우선 혼자 생각을 하시다가 한 번씩 대화를 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주변과 대화는 곤란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이 곳에 오셔서 구체적으로 공회를 비판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질문하신 학생 한 분이 아니라 공회의 수 많은 청소년과 청년들의 공통적인 고민입니다. 첫 글이어서 글을 많이 적었습니다. 다른 분은 다른 면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을 고려했습니다. 이후로 글을 적어 주시면 비교적 짧게 적어 보겠습니다.


한 말씀 더 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 질문하시는 학생은 왕궁에 왕자입니다. 거지와 왕자가 서로 바꾸어 살아 본 이야기가 있습니다. 돌아 올 수만 있다면 왕궁의 왕자는 거지 생활을 해 보지 않고는 자기 복을 알지 못합니다. 문제는 왕자는 거지와 옷을 바꿔 입고 거지 세계를 체험한 다음 돌아 왔으나 신앙의 세계는 다른 세계에 몸을 한 번 담으면 마치 흰 옷에 다른 색깔로 물이 든 것처럼 나중에 빨아서 지우려 해도 조금은 지워 지나 얼룩이 다 빠지지 않습니다. 백영희 목사님 순교 후에 수 많은 공회 교회들과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다른 교회들처럼 좀 해 보겠다고 나섰습니다. 최소 4분의 3 이상입니다. 그 분들이 20여 년을 그렇게 해 본 다음 지금은 거의 전부 이 노선의 가치를 이제는 마음 깊이 느끼고 좋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몸과 행동은 이미 다른 교단의 좋지 않은 물이 배어 속으로 아주 고통스러워 합니다. 질문하신 분의 글을 읽으며 어느 교회 교인인데 이렇게 좋은 교회에 이렇게 좋은 목사님 밑에서 신앙 생활을 하나! 부럽습니다. 한 번 나가는 것은 쉬우나 돌아 오는 것은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돌아 온다 해도 물을 빼기 어렵습니다. 최대한 안에 계시면서 여러 면으로 따져 보고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 어렵지 않게 결론을 낼 수 있다고 봅니다. 진정, 아직까지는, 이 나라 안에서 공회 교회보다는 더 나은 교회는 없다는 것을! 그 것을 연구하고 잘 살펴서 확신이 된다면 그 때는 계신다 해도 지금처럼 계시지 않고 적극적으로 좋아서 계시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과거와 비교 못할 세계를 갖게 될 것입니다.









>> 학생 님이 쓰신 내용 <<
:
: 요즘들어 공회 노선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
: 이 노선의 말씀으로 어릴적 부터 자라온 학생입니다. 하지만 요즘 많은 생각들이 저를 붙잡고 있습니다. 과연 공회 노선의 방향이 옳은 방향이고 비교적 다른 교단은 저희 교단보다 문제가 많은 것인지 이에대한 판단 자체를 할 수 없었던 저의 생활들이였습니다.
:
: 물론 다른 분들은 좋은 환경 속에서 자란 증거라고 말씀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희 노선 말고 타 노선에서 각자의 현실 속에 충성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믿음이 소위 말해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고 도저히 볼 수가 없습니다.(설교 말씀 중간중간 세상 따라 교회들이 간다는 말씀 등) 예를들어 선교 활동이라던지, 장애인 봉사활동 등 다양한 측면으로 봉사하는 것만해도 저희 노선에서 그런 일들을 했다는 이야기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활동들이 세상따라 가는 활동인지도 궁금할 뿐만 아니라 봉사활동에 대해 애초에 부정적으로 보면 봤지 긍정적으로 보시는 분들도 별로 만나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 그리고 평소 설교말씀에서도 느껴지는 것은 세상적으로 성공보다 하늘의 성공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접할때 마치 세상의 성공은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들리게 됩니다.(저만 그렇다면 문제가 안되겠지만 주변 여러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물론 다른 한편으론 열심히 해서 성공해야한다는 식으로 말씀하실 때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 하나님이 주시면 받는것이고 안주시면 안받는다 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니 세상에서 성공하기까지 최선의 노력을 하지 못할때 또 그 결과가 안좋을때 위안을 하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지는 감도 있습니다. 이것이 옳은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 또 결혼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지금은 학생이지만 대학을 가고 졸업하고 취직하고 나서 공회방법대로 결혼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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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많은 생각들이 있으니 말씀을 들을때도 부정적으로 들리고 제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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