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오영
내용 | 이 노선을 향한 교계 목회자들의 대표적 사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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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손오영 목사님
일시 : 2011.3.17.13:53
- 신상
1941.3.15. 전남 해남 출신
- 신앙
17세의 고교 1학년 시절 광주에서 고교를 다닐 때 방학 중 해남 고향에 왔다가 믿게 되고 이후 광주와 고향을 오가며 신앙 생활. 당시는 오순절 계통이 아주 미약할 때인데 고향 교회가 오순절. 학교를 졸업하자 고향 교회 교인들이 목회자로 가야 할 사람이라고 추천을 해서 당시 대전에 있던 오순절 중도측의 신학교에서 공부. 교회 수도 적고 교인도 적어서 예를 들면 해남읍교회가 당시 수십 명이며 지금은 5백 명.
- 가정
1962년 8월에 김연자 사모님(43년생)과 결혼
- 신학
신학은 학과 3년에 실습 1년, 학과 3년을 마치고 입대하고 제대 후 1년 실습하고 졸업.
- 통합 목회
신학교를 졸업했으나 교단이 미세하여 지방조차 맡을 교회가 없던 차에 통합 측의 빈 교회가 있어 경기도 가평군 북성교회에 1972년 전도사로 잠깐 부임
- 독립교회 목회
1973년경 전북 익산군 삼기면 기산교회를 시무하게 되었는데 이 교회는 이교부 개척의 장로교로 독립교회였고 교인 중에 서울의 이병규 목사님 교회를 다니는 친척 교인들이 있어 이병규 목사님의 책자도 소개하고 집회 은혜를 소개하여 이병규 목사님의 계약신학을 공부하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배우던 것과는 너무 다른 차원이어서 놀랐고 열심히 추종
- 공회 소속
이병규 목사님의 신학교를 다니다가 먼저 다니고 있던 서원룡 전도사님과 기숙사에서 한 숙소를 사용하게 되었고 그 분을 통해 백영희 목사님을 소개 받게 됨. 이병규 목사님이 참으로 깊다고 생각을 했는데 백 목사님 설교 계2장 노트한 것을 보여 주며 몇 자를 읽어 주는데 너무 깊고 은혜가 되어 감복.
1974년 5월 집회를 서원룡 조사님을 따라 가게 되었고 이 집회에서 공회 소속을 결심하게 되고 뒤에 백 목사님을 만나 뵙고 소속 확정은 지웠는데 막상 갈 곳이 없던 차에 전남 여수의 신풍교회가 공회 소속 문제로 교인들이 별도 예배를 드리며 목회자가 마땅치 않다는 말을 듣고 부임
처음에 공회를 소속하니까 먼저 소속을 했던 김길성 목사님 등의 텃세가 적지 않았으나 박은석 목사님은 호남 출신이어서 좀 잘 대해 주셨고 공회 분위기는 뜨거웠으므로 그런 분위기가 밑에는 좀 있다 해도 아무 문제 되지 않았으며
- 신풍교회
1974년 6-7월 경 부임. 당시 신풍교회 이름은 성광교회 시절이고 원래 신풍교회를 맡았던 박래석 목사님은 순천으로 개척을 가고 곽봉빈 목사님이 후임으로 계신 상태에서 후임 곽 목사님이 이병규 목사님 교회에서 백 목사님의 공회로 소속을 바꾸려고 하자 박래석 목사님이 다시 신풍교회로 오셨고 재부임 후 교회 전체를 수습하려 했으나 공회로 마음을 굳힌 교인들이 공회 소속을 주장하며 손오영 조사님을 목회자로 모심. 손 목사님이 부임했을 때는 이미 곽 목사님은 가셨고 박래석 목사님과 교회 내의 사택 안에서 부엌 하나를 함께 사용하며 방은 2 개니까 따로 사용. 당시 공회 소속을 원하는 교인이 많고 재력도 있고 영향력이 강해서 교회를 갖게 되고 박 목사님은 8백만 원을 드려서 예배당을 짓기로 하고 예배당 내의 비품은 의자나 방석까지 반씩 분할. 예배당 앞 집의 손양례 씨는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사택에 늘 협조적이며 여러 가지 인사가 깎듯했으며 성탄 때와 같은 기회에 가끔 한 번 교회 구경하는 정도. 농민상회 김윤선 집사님 등이 교회 분란 때 큰 수고. 재임 기간 중 서귀덕 집사님은 남편 차종석 장로님이 애양원 총무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어서 성암교회 출석 중
- 정양순 사모님
교회를 부임한 후 손양원 목사님의 사모님이 개척한 교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정양순 사모님은 돌아 가시기 전에 신풍에 들르셨고 정양순 사모님이 직접 서귀덕 집사님과 함께 신풍교회를 개척했다고 직접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으며 사모님은 공회의 8월 집회도 참석하셔서 집회 장소에서 뵈었는데
막내를 걱정하셨고 노년에 어디 자리를 잡지 못하고 유리 방황하는 모습을 보였고 누가 따뜻하게 살피거나 돕거나 모시는 곳도 없다는 것을 느낌.
- 천광교회 개척
1975년 3월, 이동화 목사님과 함께 총공회에서 목사 안수. 당시 목사 장로 5 명이 안수. 신풍교회가 공회 소속을 완전히 해결하고 이재순 목사님께 후임 인계를 하고 광주로 개척, 백 목사님께서 광주 연고를 질문하셔서 광주에서 고교 다녔고 친척이 좀 있다고 말씀 드렸고 한 번 해 봐라 해서 시작. 8년 정도 근무했고 장년 6-70명에 주일학교는 4백 명이 앉을 자리가 없도록 되었는데 백 목사님은 개척 성공을 했으니 울산 남산교회와 남해 도마교회 2 곳 중에 원하는 곳으로 보내 주신다고 하여 남산교회로 부임
- 남산교회
1983년 2-3월 좀 추울 때 부임했고 이동화 목사님과 맞 교대,
- 여산교회
1987년 여산교회로 부임했고 전임은 김병춘 목사님이며 후임은 천석배 목사님
- 서전교회
1989년 부산 서전교회의 이동화 목사님이 돌아 가셔서 후임으로 부임하고
- 신정교회
1990년 서울의 신정교회로 부임하여 8년 근무, 전임자는 이병준 목사님이며
- 천광교회
1999년 천광교회로 다시 돌아 왔고 2000년 3월에 현재 용봉동 예배당으로 이전 근속 중.
현재 천광교회는 장년반 3-40명 선
공회 인물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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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록 이해에 중요하기 때문에 설교록의 설교 배경 또는 설교록의 인용을 보충하는 자료입니다. 설교록에 언급되거나 목사님이 거쳐 온 걸음에 연관 된 분들을 파악하려고 노력한 이유는 설교록의 내용이 너무 엄청난 것이 많아서 자칫 지나친 자기 자랑이나 과대한 선전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씩 살피면서 이 노선과 설교의 또 다른 세계를 봤고, 오늘 우리의 소망이 되기도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