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침
내용 | 백영침 목사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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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원 교회 개척에서 임종까지
1970. 1., 대구시 서구 비산동558번지, 윤봉수 정비공장 창고 일부를 임시로 세 얻어 개척
1970. 1., 초대교역자로 백영침 목사 취임
1970. 2., 비산동 1249-4번지 1차 대지 130평 구입, 동소 건평 40평 스레트 예배당 건축
1974.9., 김영웅 전도사 임시교역자로부임
1976.11., 김영웅 전도사 동성로교회로 이동
1976., 백영침 목사 부임
1980., 교회신축으로 비산동1233-5 지하실세 얻어 예배드림
1981., 김동일전도사 부임
1980.11., 유년주일학교 추수감사절 주일학생 800명이상 출석
1986., 교회준공필 지하1층 지상4층, 비산동 1249-4 번지 2차 대지 1,161.81㎡ 구입
1987. 3. 2., 성기정 장로 장립
1988.11., 본찬양대 조직
1989. 3.6., 신일성 장로 장립
1992.10., 김동일목사 송백교회개척
1994. 8.31., 비산동 1249-2,4 본당 증축 연면적2121.72㎡ 입당예배
1994., 이원득전도사 부임
1995., 이수호 장로 이명시무
1995.11.26., 총동원주일(이웃가족모시는 날행사)예배드림
1997., 이수호 장로 달산교회로 이적
1997., 지하실 주차장사용으로 5층 사찰 및 휴게실증축 186.05㎡
1997., 비산동 1249-5 대지25평 구입 주차장용
1997., 교회 입구 자주 로터리식 주차장설치
1998. 4.5., 전교인체육대회개최(인지초등학교)
1998. 9.15., 이원득 강도사 소망교회로 이동
1998. 9.15., 김영덕 목사 부임, 백영침 목사 은퇴 및 원로목사 추대
1999.10.28., 형근호 장로 장립, 심부옥 이준자 김소형 권사 취임
2000. 5.20., 2층 중층(자모실)증축 (72.0㎡)
2000. 4. 3., 염영원 전도사 부임
2000. 7.29., 염영원 전도사 사임
2002. 6. 2., 이익현 전도사 부임
2002. 3.20., 옥상 종탑 2개시공
2002. 7. 1., 김영덕목사 원동교회로 이동(총회인사)
2002. 7. 1., 김소형권사 원동교회로 이적
2002. 7. 1., 정우경 목사 부임
2003. 2. 9., CBS 女 합창단 본교회 순회 찬양
1979년 뇌 수술
부산에서 교역자 공부 중 쓰러졌고 주 덕원 장로님이 진찰하고 뇌 문제로 판단. 당시 기술로는 암인지 다른 원인인지 알 수 없는 상태였고, 백 영침 목사님은 수술을 포기하였으나 백 영희 목사님의 강력한 지시로 주 장로님이 서울 세브란스 병원을 추천했으나 입원과 수술 일정이 잡히지 않아 우선 돌보다가 수술. 79년 말 정도로 짐작 되고, 수술 결과 암은 아니고 물혹이었으며 건강 회복
비원 개척
달성교회에서 백 태영 목사님이 달산교회를 개척하여 나간 후, 백 영침 목사님이 후임으로 부임했고 몇 년 후 교리 문제로 분쟁이 있어 그들에게 교회를 돌려 주고 나와서 남산동에 개척으로 나온 뒤 비원교회로 옮겨 지금까지. 처음 현 부지로 올 때 땅을 이후 건축 때 땅 일부를 팔아 예배당 짓고, 이후 교세가 늘고 재 건축이 필요하여 다시 땅을 구입해서 건축 완료. 달성 교회 시절부터 교인으로는 이 준자 권사님 정도.
장례식 연혁 소개
(신앙이력)
본 고향이 도평 도로변, 부인되는 사모님은 무월분이고 사모님의 모친이 완수댁으로 무월로 시집을 가서 백목사님 막내 여동생 백계순집사님 가정 등과 함께 믿게 되자, 백영침목사님을 전도, 초기에 백영침목사님은 성경을 군불 때는 부석에 집어넣기를 수차, 결국 믿게 된 후 열심
일제 때 웅양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중학교를 공부하였으며, 측량 토목기사로 거창군청에 공무원으로 근무. 1949년 29세 때 예수님을 믿게 되고, 6.25 발발로 거창이 점령 당했을 때 주상면에서 적군과 아군의 점령이 교차되는 순간에도 지방의 좌 우익 인사들을 잘 중재하여 지방민들이 교차되는 점령부대에 의하여 살상되는 일이 없도록 처리
전쟁이 아직 종료되지 않은 시점에 고제면 둔터 정한봉장로님 집안의 물레방아를 매입하고 정미업을 하면서 봉산교회 집사로 출석하고 교회를 맡아 목회하다가 빨치산들에게 잡혀 북상 덕유산 속으로까지 죽으러 끌려 가다가 생환
정식 목회 출발은 종전 후 웅양신촌교회였고, 백목사님 목회하던 부산 서부교회로 내려와서 목회를 배우며 주일학교 부장을 했으며, 서전교회, 남천교회, 1969년 대구 비원교회를 개척하고 대구를 중심으로 주로 목회, 특히 대구지방에서 국내 최대 강경노회로 알려진 합동측 경북노회와 중생 교리 문제로 이단 시비의 중심에 섰으나 끝까지 승리. 최근 은퇴하여 후임으로 정우경목사님 담임 중
1968년 안수를 받았고
1973년 제천남천교회 담임 중 국기배례거부 사건으로 투옥 고생했으나
1심과 2심에서 계속 승소했고 대법원까지 승소
공회 인물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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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록 이해에 중요하기 때문에 설교록의 설교 배경 또는 설교록의 인용을 보충하는 자료입니다. 설교록에 언급되거나 목사님이 거쳐 온 걸음에 연관 된 분들을 파악하려고 노력한 이유는 설교록의 내용이 너무 엄청난 것이 많아서 자칫 지나친 자기 자랑이나 과대한 선전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씩 살피면서 이 노선과 설교의 또 다른 세계를 봤고, 오늘 우리의 소망이 되기도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