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용

공회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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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갑용

내용 20세기에, 신비로 평생을 살았던 진정한 '교인' (2차수정)

정갑용


(*백영희목사님과 총공회 관련 자료 수집 차원에서 관련되는 분, 교회, 사건, 기타를 소개드리는 자료입니다. 관련된 사항 중 수정, 보완, 삭제 등 어떤 의견도 환영하며 개인 주소 (yilee@pkist.net) 로 연락 주시면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호적 교적 학적 등 어떤 자료도 좋으며 기록된 자료와 사실이 다른 경우 그 사실 내용을 추가하시던 또 일부 발췌해서라도 알려 주시면 대단히 참고가 되겠습니다.)



1.소개


백목사님께서 개인 신앙으로 가장 자기 경건을 크게 이룬 분으로 예를 들 때 정갑용집사님을 말씀. 그의 전기는 몇 권의 책으로 쓸 정도가 아니며, 프란시스나 어떤 성자와도 비교할 수 있는 분으로, 그 분에게 신령하게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계시들은 백목사님께서도 인정하셨던 한 분. 가난하여 누더기로 뚫어진 가마솥을 막고 죽을 끓여먹어야 했던 어려움에서 오직 주님으로 사신 분. 백목사님 이후 모든 교역자들이 거쳐 가는 동안에도 교회와 교역자에 대한 여 선지자로 많은 예언이 있었고 100% 다 이루어졌으며, 잘못 본 것이나 착오가 한번도 없었던 분. 울산 남산교회 이술이 장로님이 그 아들이며, 백목사님 설교에 많이 소개되는 가정.


정갑용 1899-1999년, 남편 이묘준 1886-1972년이며 이술이장로님이 큰 아들, 둘째가 이점석 송림교회 집사님 등 2남 1녀. 월천 모래목에서 살다가 개명으로 이사, 이사하던 그해에 바로 교회 출석, 이미 나이는 30이나 되었을 것. 처음 교회 갔을 때 목사님 가정. 웅양이 친정이며, 월천으로 시집, 그후 친정이 계명으로 이사. 위에 형이 노름으로 경제 탕진, 둘째를 업고 개명 친정살이로 이주.


친정 올케가 신두치이며 그 남편 정판경의 반대가 극심. 남편에게 톱으로 다리를 썰리면서도 신앙생활에 확고. 시댁 집안 압력, 박해가 많았으나 예수를 믿자 바로 제사 폐함. 부친은 10여년 뒤에 교회 출석. 아들 이술이 주일학교 출석했을 때 백집사님이 주일학교를 가르쳤고, 2년 후 이재순선생이 주일학교를 맡았음.


2.신앙생활


처음 믿을 때부터 기도생활이 대단. 장남 이술이 전쟁 중에 입대 시켜 기도하던 중, 전사자가 극심할 때 100일을 작정하고 밤마다 산에서 철야. 아무리 추운 날에도 얼음을 깨고 반드시 찬물에 목욕한 후 기도하는 지성, 100일 기도 기간 중에 이술이 전사 통지서 도착하고 위로금까지 받았으나 정갑용은 기도 중 하나님께서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말씀이 계셨고 확신. 3개월 뒤 편지가 도착하면서 생존 확인. 미3사단에서 육본으로 전달된 명단에 부상이 아닌 전사로 실수된 것.


기도 중에 맹수들이 덮치는데도 두려움 없이 기도하였고, 오히려 어떤 때는 털이 많이 난 짐승이 옆에 와서 따뜻하게 안보하며 기도를 도움. 새벽 기상시간이 보통 2시이며 늦을 때 3시. 교회 종을 계속 맡아 쳤으며 백목사님은 3시 30분 쯤. 기도 중 받는 계시는 반드시 백목사님께 말씀드리고 주의와 그 뜻을 배우게 됨. 가정이나 교회 동네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 항상 미리 기도로 알고 있었음.


백목사님의 개명에서 결혼 첫 주례는 박병덕 (장로님, 충남 온양, 장종범 처남, 새마을금고)

둘째 주례가 농산교회 이재옥 장로님(대구 고신 장로) 세째 주례가 이술이 장로 부부. 백목사님이 중매서고 말난지 5일만에 결혼, 양가가 다 가난했고 간소하게 하도록 지도. 잔치가 없었고 4촌들이 가지고 오겠다는 술도 금지. 몰래 한 말이 들어온 것을 알게 된 정권사님이 땅에 부어버림, 큰 아들 이술이장로님의 처가는 장모가 박봉선. 처남이 박영수. 박봉선, 박영수 모자는 백목사님보다 먼저 예수를 믿었던 분.


당시 시작되던 신사참배 문제를 두고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에게 신사참배하는 죄인들의 회중에도 들지 말라고 가르침. 고제 쑥대이 재를 넘어 학교를 다녔고 학교에서 하던 신사참배 구경을 했다고 목사님 꾸지람. 막상 신사참배 문제로 순사가 목사님 사택을 출입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어린 마음에서는 대단히 긴장감. 그러나 어떤 순사 어떤 주임이 와도 꿈쩍도 없었고, 순사 한 사람이 말하기를 '저 사람은 무슨 변호사라 도무지 말이 안 서.' 예배 때 마다 목사님은 이미 버린 생명으로 생각하여 사진이나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음.

설교 중에 주남선목사님 옥고 말씀이 많았고, 특히 환란 이기려면 우리 것 가지고 안되고 주의 것 주에게 팔린 우리를 기억하라는 말씀이 많음.


3.해방 후


장남 이술이는 학업이 끊어지게 되고 남의 집 머슴으로 또 읍에 트럭 조수 등으로 타형살이 많이 하였으나 항상 백목사님의 지도가 있었고 다른 학생 또는 청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아주 친자녀들로 늘 지냄. 독학으로 중앙 통신학교 (중,고,대 과정 통합)의 대학 과정 공부중 입대, 입대전 51년 3월 24세에 결혼 8월에 전투 경찰로 입대후 육군으로, 그다음 52년에는 미 8군 3사단 15연대 1대대 (아이젠하우어 대통령 아들이 소령으로 대대장) 로 차출. 53년 7월 금화 백암산 전투중 중공군의 수류탄에 왼쪽 무릎 부상 후 명예제대. 부대가 몰사되던 중 미5전투대 헬기 구조로 후송, 어머니 기도. 3년 병원 생활 후 충남 정양원 (상이군인 수용소)에 수용, 마산에서 합동택시에 기사 혹은 직원, 호남 비료 7년 정도, 거기서 서독인 사무실에서 근무하다가, 그 사람들 공장 설립후 떠난 뒤 울산에 있는 한국비료 근무하다 울산 남산교회 개척으로 이어짐.



3.전성수목사님 부친이었던 전문용의 백목사님 살해 기도 사건


교회가 있던 문임이(수유) 동네 윗산으로 온 교인들이 1주간 예정으로 산 기도. 가정마다 박해가 심했고, 기도 첫 날부터 자기 식구들을 잡으러 오는 남자들이 있었음. 정갑용 기도 중 술잔이 계곡 물을 건너 오는 것을 보았고 그런지 잠시 후 김명준 남편이 자기 여자를 잡아 감. 다음날은 기도 중에 술잔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술도가지가 물을 건넘을 보고 경사지 언덕으로 급히 몸을 움직임. 백목사님이 정갑용 행동을 보고 큰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모두들 흩어져 몸 조심토록 주의. 이미 숲속을 헤치며 사람을 찾는 기운은 산중 호출이라 할 만했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여기 저기 헤짚다가 백목사님 이미를 물괭이자루로 난타. 죽일 수 있는 분위기며 타격이 그러함. 옆에 있던 청년이 낫을 들고 백목사님을 막아서며 함께 살기를 가질 분위기. 청년을 막기 위해 분출되는 피를 보이며 먼저 다친 사람을 보라고 유도하여 두 사람이 맞서지 않도록 하여 전문용으로 벗어날 기회를 주고 목사님은 그 자리에서 쓰러짐. 그 상태에서 한 주간 계획을 다 채우고 하산.


4.백목사님 위천교회로 이동 때 계시


백목사님에 관련된 일은 항상 사전에 정갑용은 계시로 기도 중에 먼저 보고 있었고 개명교회에서 위천교회로 부임하는 일도 그러함. 백영희조사님을 하늘로 불러 올라가시는 것을 보고 뒤 따라 올라가려는 정갑용에게 백목사님은 무엇을 주시면서 따라 오지 않도록 제재. 그때 받은 것은 평생 함구. 더 이상 확인치 못함.


5.정갑용 권사님 96세, 임종 직전 방문한 목회자에게 육성 기도 녹음:


'거룩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진실로 진실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야 참 귀한 아들을 이땅 위에 허락하야 우리 주님에 낮아지고 천해지고 마지막으로 십자가 지고 가신 사랑의 주여 진실로 진실로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진실로 진실로 감사합니다. 집사님을 통해서 아버지여 0 목사님을 이곳에 보내 주시니 진실로 진실로 감사합니다. 목사님 성령의 권능에 들매 주시고 능력의 힘이 같이 하여 주시고 우리 주님 권능으로 안보하시고 능력으로 안보하시고 사랑으로 안보하야 자녀들까지 아버지여 믿음으로 성령의 길 걷고 은혜의 길 걷고 생명의 길을 걸어 영원한 생명의 길을 바로 걸을 수 있는 믿음의 용사가 되고 기도의 용사가 되고 신앙의 용사가 되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나이다.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 그 자녀들이 아버지여 지혜로 살며 영감으로 살며 신령계를 바로 바라보고 세상으로 물들지 않도록 세상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주님 만을 진리로 살고 주님만 모시고 아버지여 일생을 바칠 수 있는 믿음 주시기를 간절히 빌고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충심으로 빌고 원하옵니다. 우리 목사님 성령의 권능에 들매 영감에 충만 우리 주님 능력으로 안보하시고 권능으로 안보하시고 사랑으로 안보하야 많은 영을 진리로 생명으로 먹여 주시며, 주여 벌떼같이 많이 붙여 주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빌고 소원하올 때 모든 것이 부족하오나 나를 위하여 피 흘려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100세를 바라보는 연세, 초막 안에서 허리를 펴지 못하는 성녀의 기도였고, 그 기도의 마디 마디는 습관적 암송 기도가 아니라 늘 주님을 현실에서 동행하며 나오는 바로 성령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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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7.19.40.



백 목사님의 전도


제가 있던 그 개명교회에 정갑용 집사라 하는 사람은 꿈에 볼까 겁이나요 어떻게 그 상이 흉하게 생겼는지 시커먼 여자가 얼굴이 기다나고 꾸부정하고 이는 썩은 이를 이래 드문드문 성글 성글 이렇고 그 뭐 참 시커머 이래 노니까 또 키는 크단하지 꿈에 볼까 겁나 그런 여자인데 지금은 개명교회에서 제일 미인이요. 제일 미인이라 그분은 암만 봐도 성녀라 내가 볼 때에 왜 좀 무식하기는 무식해요. 무식하지마는 글자 하나도 모르는데 진리는 제일 많이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여자가 못났고 (그런지) 그 뭐 밥도 해먹을 것도 없지마는 밥을 해 먹으면 때마다 이런 행주 가지고서 어찌 됐든 간에 이 주먹디만한 행주 서너게 해야 됩니다. 솥에 이 구멍 저 행주로 또 막고 저 한 서너 구멍 막아 가지고서 그래 밥안치요. 예수 믿기 전까지는 나가 한 사십 됐는데 그때까지 장은 한 번도 담아 본 일이 없어 항상 남의 장 얻어먹고 그런데 그러춤 용모가 미인이 돼 버렸소. 계명교회 가면은 그 집사님 안 좋아하는 사람 하나도 없소. 그 동리서 안 좋아하는 사람 하나도 없소. 아주 미인이라. 그분을 제가 전도를 했는데 그 하두 흉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내가 맘이 갔어. 저러춤 흉한 저 사람도 전도해야 되겠다. 해서 그 전도해 가지고 그 그저 늘 갑니다. 가면은 그라면 나중에는 피해 그만 피해 가지고서 분명히 있기는 있는데 내 소리가 저 밑에서 전도해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니까 고만 신을 안에다 딱 거석해 놓고서 문을 안으로 딱 장가 놓고 사람 없어 암만 불러야 안나와 그 비는 그날 밤에는 막 비기 거 쏟아지는데 내가 암말도 안하고 이래 부르다가 오늘 저녁에 예배를 아무집에서 보는데 그 왔으면 좋을 간데 그만 집에 안 계시는 가배 하고 갔다 그 말이요 그래 가서 있으니까 울면서 왔어. 와서 이 이런 죄인이라고서 하면서 자기가 방안에서 그래 놓고 나니까 마음에 안됐던 모양이 야 그날 밤이 믿기 시작하는 밤이요. 그래서 그이가 성녀입니다.

공회 인물사는
설교록 이해에 중요하기 때문에 설교록의 설교 배경 또는 설교록의 인용을 보충하는 자료입니다. 설교록에 언급되거나 목사님이 거쳐 온 걸음에 연관 된 분들을 파악하려고 노력한 이유는 설교록의 내용이 너무 엄청난 것이 많아서 자칫 지나친 자기 자랑이나 과대한 선전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씩 살피면서 이 노선과 설교의 또 다른 세계를 봤고, 오늘 우리의 소망이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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