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권식
내용 | 손성준이 정순의 서부교회 초기 신앙 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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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손성준장로님, 이정순권사님
1903년 부친이 경주 조양교회(現 경주 구정교회) 설립
1922년 출생
1930년 생 이정순권사님과 결혼 후
1950년 전시 전투경찰 재직 중 아들 사망으로 퇴직한 후 부산 이주 김창인목사님 시절 서부교회 출석
1950년 1男 손복식
1956년 2男 손권식
1958년 3男 손기일 손기미 손기열 등 5남매 자녀 서부교회 모태 신앙
1952년 백목사님 서부교회 부임 초기
손장로님은 주일성수 정도 신앙이나 부인 이
부인 이권사님 앞서 가고 주일 성수 정도였다가
결혼도 믿는 조건으로 결혼 한 정도, 이정순권사님이 신앙 매진
물장수 연탄장수 수퍼로 사업을 바꾸어 가는 동안에도
이정순은 하루 아침과 저녁 2회 가정예배와 집 안에서도 골방 기도 생활 계속했고
성덕금과 같은 구역 소속이었고 구역 식구 십 수명일 때 분구하여 서부교회 전체 구역에서 13등
150개 구역에서 20등 정도의 구역으로 확장 유지하며 하루 50명 전도와 성경읽기로 평생 계속
1970년대 말 남권찰 제도 초기
이동근 강행수 서천석 박영동집사님 등과 함께 직원으로 충성했고
1980년 장로 안수, 백목사님 생전 마지막까지 사회 기도로 은혜 끼치고
이권사님은
노년에 당뇨로 눈이 어두워지자 달력에 있는 큰 글자 성구를 읽고 외우며 끝까지 기도와 충성
2.손권식목사님
1956년생으로 서부교회 주일학생을 거쳐
1970년대 서부교회 주일학교 부흥기의 주력 반사를 거쳐
1982년 행정실장을 맡은 서부교회 내부 청년
1979년 백목사님 소개로 목사님 비서업무를 보던 김끝술집사님 딸 문경희선생님과 결혼했고
동아대학교 졸업한 후
서울의 삼환기업에 입사하여 당시 직장인으로 최고 대우였던 45만원 조건에서
백목사님이 직장을 찾아 신앙 손해의 길을 간다고 지적하자
잠실동교회에서 거주하며 당시 집회 중이었으나 바로 사표내고 부산으로 내려왔고
경북공고 교사 발령을 듣고 소식 전하러 간 자리에서
당시 배종일 행정실장 후임으로 출근을 지시받고 9시 출근하고 행정실장으로 근무
당시 행정실장 사례 12만원이었고
재임 1년 기간 중에 서부교회의 최대 건축인 신관과 행정건물 건축
백목사님의 7개월 병환 지속
장로님들의 교회 비판을 비롯한 교회의 위기 등으로 고생
1983년 격무 등으로 사표
1985년 집회 은혜 받고 양성원 입학
1990년 남정교회 개척 중심
1993년 4월 도평교회 부임 2년 재임 및 양성원 과정
1995년 신일교회 김명재목사님 후임으로 부임
1996년 목사 안수
공회 인물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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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록 이해에 중요하기 때문에 설교록의 설교 배경 또는 설교록의 인용을 보충하는 자료입니다. 설교록에 언급되거나 목사님이 거쳐 온 걸음에 연관 된 분들을 파악하려고 노력한 이유는 설교록의 내용이 너무 엄청난 것이 많아서 자칫 지나친 자기 자랑이나 과대한 선전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씩 살피면서 이 노선과 설교의 또 다른 세계를 봤고, 오늘 우리의 소망이 되기도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