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순

공회 인물      
​​

이복순

내용 심지가 견고한 자의 평강으로 충성한 사26:3의 종 (03.4.14.수정)

(소개)


이복순집사님은 백목사님을 모시고 서부교회를 세운 최고 원로교인 중 한 분입니다. 88년 1월 10일, 기존 4명의 권사님에 이어 이경순사모님과 함께 권사후보로 백목사님이 교회의 신임투표를 시행하였으나 먼저 권사님이 된 김권사님이 타 구역과 연계하여 조직적으로 불신임운동을 하여 두 분 다 권사님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복순집사님은 그해 9월에 임종하였습니다.


앞서 권사님이 된 4분은 1960년을 전후하여 백목사님 반대운동을 강력하게 펼쳤던 분들이었으나 구역 식구 순서로 권사를 임명한 첫 경우에 해당되어 먼저 권사님들이 되었습니다. 그 권사님들과는 달리 이복순집사님은 평생 한번도 배신이나 거역의 길을 걷지 않고 충성했던 종이었습니다.


백목사님이 특별히 아꼈던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총공회내부/일지요약/에 그 장례식 현황이 있어 잠깐 그대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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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09.03.토


1.이복순집사님 사망, 장례 때 약력 소개하라고 목사님 말씀

이말출, 김현찬, 김효순, 나인숙 4명 권사님이 서부교회 초창기 내력을 이복순집사님 중심으로 회고


2.임종

.11일간 계속 사경을 헤메고 9.3.11:00 임종


.입관예배 저녁 7시, 목사님이 예배 시작하자 비


.차량 15대와 도시락 1,000개 준비 (개당 2500원)


.설교: 이 집사님이 마지막 죽음에서 보인 사망을 이긴 신앙과 믿음에 대하여 위로와 새김


.수의: 목사님이 우리의 장례는 슬픈 장례가 아니라 기쁜 장례. 평소에 즐겨 입던 옷 사용


.


4.장례 진행

.총괄: 강상녕장로님.


.지원: 교회 행정 각부 및 각 직원.


.차량: 장영목 외 5명


.식사: 여전도회(2,000원 도시락 1000개)


5.장례 순서

①입관예배: 88.9.3.토 오후 7시, 예배: 목사님, 장소: 권찰사택 2층


②출상예배: 88.9.5.월 오전 9시, 예배: 백목사님, 장소: 예배당 1층


③예배순서:


사회: 이재순목사님


기도: 이동근목사님


설교: 백목사님


약력: 이영인집사


출상: 정재성목사님 김명재목사님 등 구역식구 6명


출발: 10시에 장례차, 목사님 차, 관광버스 15대 순서


장지: 도시락 11:30 분 도착


※약력 소개 내용


이복순 집사님께서는


1920년,

전남 순천에서 의사인 이정권씨의 2남 3녀 중 장녀로 출생하였습니다. 고인의 부친은 의사로서 순천의 초대교회를 세우심에 공로가 컸던 분이었으며 고인은 이러한 신앙의 가정에서 유복하게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1942년

고인은 숙명 여자 전문학교를 졸업하시고


1944년

결혼하셨습니다. 남편은 (목사님께서 부군대신 남편으로 호칭토록 말씀) 목사님의 자제였으며, 문인으로서 서울 중앙고등학교 교장을 지내셨고 대학강의도했으며 동생 두 분 역시 목사님입니다.


1950년

6.25전쟁으로 인하여 고인은 남편과 헤어지게 되었고 부산으로 피난 온 후 박윤철 현재 목사님과 박혜영집사님 등과 함께 동광성결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1953년

당시 조사님으로 계셨던 본교회 백영희 목사님께 은혜 받아 서울로 이주하는 전 가족에 대하여 세상과 혈육을 초월하고 주님 바라보는 신앙으로만 여생을 바치는 본 교회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36년간 신앙으로 지도한 당시 백영희 조사님을 모시고 신앙의 동지들과 더불어 행상과 연탄장사까지 하면서 연단 속에서 3년 이상 매일 계속된 구덕산 수원지 산기도와 철야

기도에 한번도 빠진 일이 없었습니다.


.고인은 특별히 1984년에 마련된 본 교회 양산동 기도원에서도 평생의 주님 사랑과 기도의 생활을 밤낮없이 계속하여 우리 전 교인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빛이 되었고 또한 오늘까지 15구역을 길러 분구시키는 충성을 다 하였습니다.


.고인은 암으로 인하여 극심한 고통의 마지막 10여일 기간 중에도 진통제를 맞지 않고도 넘치는 감사와 기쁨이 피부에까지 번져 나와 보고 은혜 받는 사람으로 끊어지지 아니했고 , 이 복음의 말씀과 36년 지도하신 목사님 아래 세상 혈육을 초월한 평생의 신앙생활까지 진정 감사하여 증거의 생활로 그대로 계속하다


.1988년 9월3일 오전 11시경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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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시동생 2명이 목사님이며 그 시아버지도 목사님이었고 남편은 서울 중앙고등학교 교장이었으며, 교수로도 있었다고 함)

.4세 때 다쳐서 머리에 피멍이 있고 이것이 평생 신경통이 되어 고생했고

.한번 시작한 일은 무엇이든지 끝까지 하는 성격이며, 제일 잘 하려는 승부욕이 철두철미

.1953년 부산남교회에서 김현찬권사님이 서부교회로 올 때, 이복순집사님은 동광성결교회에서 서부교회로 박윤철목사님 가정과 함께 합류)

.당시 부산 법원 앞에서 Milk Hall을 했으며 본 교회로 오면서 정리하고 전적 복음 일관

.서부교회로 온 이후 뜨개질하여 연명하였고 그 뒤에는 연탄 장사. 연탄 장사는 뒤에 박상이 집사님에게 인계

.최근까지 계속 편찮았고 낮에 교회서 구역을 돌보는 권찰로 전임하였고, 밤9시-10시가

되면 교회에서 차량 1시간 거리인 양산으로 출 새벽 2시경에 기도산 꼭대기에 이르러 기도

하고 새벽에 기도원 실내에서 예배드리고 다시 교회로 와서 권찰로 충성하고 마지막 11일

간, 장암으로 끓는 아픔 가운데에도 기쁨과 평화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음.

.그가 평생 돌본 구역식구들이 마지막 병 간호를 전적 맡아 대소변을 처리하였고 교회에서 심방을 담당한 오은해집사님이 문안하면서 마지막 그 대.소변을 받아 내려고 해도 구역

식구들 순서가 짜여 있어 그렇게 못했고, 그 딸도 그렇게 해 보지 못함. 그가 평생 돌본

신앙의 식구들의 간병으로 임종

.목사님이 임종 전 3회 심방(9.2. 새벽과 금밤 예배 후), 금밤 예배 후 찾아간 것은 마지막이

될 것 같아 일부러 가심.

.마지막 병석에서 백목사님 만나 구원 잘 이루고 가는 것을 한없이 감사하며 36년 서부교회

생활 충성으로 마감

.원래 자녀는 셋이지만 둘 죽고, 마지막 딸이 박윤철 목사님의 며느리



공회 인물사는
설교록 이해에 중요하기 때문에 설교록의 설교 배경 또는 설교록의 인용을 보충하는 자료입니다. 설교록에 언급되거나 목사님이 거쳐 온 걸음에 연관 된 분들을 파악하려고 노력한 이유는 설교록의 내용이 너무 엄청난 것이 많아서 자칫 지나친 자기 자랑이나 과대한 선전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씩 살피면서 이 노선과 설교의 또 다른 세계를 봤고, 오늘 우리의 소망이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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