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혜
내용 | 목사님의 교계 창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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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오은해가 맞으나 오은혜로 혼동되기 쉬워 곳곳에 오은혜라 적힌 곳도 있습니다.
1.첫 신앙
①1927.11.15. 울산 넉넉한 가정에서 출생
②20세 되던 해 해방이 되면서 신앙출발.
이인재목사님 사모님인 문상문 당시 유치원 보모가 결혼하기 전 고향에서 친분이 있었고 그분을 만나러 교회를 갔다가 누가복음 15장의 잃은 양 설교를 하던 집회 말씀에서 예수님이 우리 위해 죽으셨다는 내용을 들을 때 내가 그분을 죽였다는 것이 믿어져 통곡하고 회개하며 신앙생활을 시작
③신앙환란
신앙생활을 완강히 반대하는 가정이었고, 오빠는 장작으로 죽어라고 때렸고 어머니는 보는 데서 실제 목을 매달고 죽겠다고 나서는 중 3년이 지나면서 장질부사로 거의 생명을 포기해야 하는 상태에 있던 중 박인순전도사님이 신망애양로원 집회 인도차 와있던 유재현목사님을 집회 기간 도중에 모시고 문상문사모님과 병문. 의식은 있었으나 육체는 완전 기진하여 임종 직전. 초량에 있는 동광병원 입원실에서 유목사님이 이사야 53장의 '우리 질고를' 증거할 때 큰 은혜를 받았고 병 중에 고통받던 데에서 예수님 대속의 고난을 깨닫고 느낌. 설교 후 유목사님은 일어나라고 했고 옆 사람들이 부축하여 일으켜 세우려고 하자 스스로 일어나라고 함. 그 말씀에 의지하여 그 자리에서 일어나 앉을 수 있었는데 바로 머리에 손을 얹어 안수하자 즉시 완쾌가 되어 버려 그 날 저녁 집회 예배에 참석하고 간증. '금덕'이라는 본명을 유목사님이 '은해'로 개명
*당시 유재현목사님은 '육이 죽고 영이 살아' '목마른 사슴이가' 등 복음성가로 유명하였고 6.25 때 순교.
2.전도사 생활
①고려성경학교 및 신학과정
죽을 가운데서 살아났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바로 막 설립되고 출발하던 고려고등성경학교 입학하고 3년과정 졸업. 이후 고려신학교로 진학하여 예과를 공부. 1960년 남편 강영순과 결혼, 여러 교회를 떠돌던 남편이 서부교회로 정착하면서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였고 교회 회계집사를 맡는 등 은혜생활을 했으나 결혼 10년째 사망하여 오늘까지 홀로 복음운동
②50세 넘어 고신대 복음병원 원목실 전도사로 근무하다 56세에 1981년 은퇴
은퇴하고 다시 서부교회 집사로 신앙생활. 백목사님 말년에 서부교회 병원심방을 맡아 구역을 초월하여 일하도록 하여 오늘까지 계속
3.백목사님의 대외 연락 전담
①교계 접촉의 전담 수고
오은해전도사님은 신앙초기부터 이인재목사님 부부, 박인순 조수옥전도사님 박윤선목사님 등 출옥성도나 신학교 교수 등 교계의 보수 주요 인물들과 폭넓은 신앙교류 또는 지도받는 관계를 특별히 유지하고 있는 분이어서 백목사님이 예외적으로 대외 접촉을 하게 될 때는 반드시 연락 동행 등을 일체 담당시켰던 분
석원태목사님이 신학생 시절 오전도사님 댁에서 백목사님과 식사하던 자리에서 원어 관련 언급이 있었던 예화는 설교록에서 대단히 많이 찾아 볼 수 있는 내용이며 이 외에도 많은 교계의 종들을 사적으로 모시는 면에 특별함
②1980년대 후반, 백목사님의 신앙투쟁기에 반대측에 있던 분들과 인사 만남
현재 맡은 양떼를 위해서만 전념한다는 것이 백목사님의 목회와 신앙걸음 원칙이었고, 이에 따라 고신시절 신앙의 동역자들과 한번 갈라선 뒤에는 미워서가 아니라 맡은 사명만을 바라보고 나간다는 충성의 개념 때문에평생 연락될 일이 없었음.
그러던 중 1979년 이후 백목사님과 서부교회의 신앙노선이 한국교계를 강타 하게 되자 20여년 전 교계에서 그를 제거하던 출옥성도들과 유력한 교계 인물들이 백목사님에 대한 참 모습을 다시 새겨볼 수 있게 되었고 이후 백목사님께 연락과 연결의 요청이 잇따르게 되었는데, 이 시점은 백목사님이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반대측에 있었던 분들에게 그들의 마음 벽을 허물어 주는 기회로 하나님이 섭리할 때.
③박윤선, 이인재, 손명복, 박인순, 조수옥, 주경순, 박복달, 한명동, 남영환 등과 만남
국내 교계 최고 성경학자로 사후인 지금까지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박윤선 목사님이 중생교리와 대구동성로교회 건 등으로 백목사님을 이단으로 지목할 정도였는데, 1988년을 전후하여 백목사님에게 먼저 전화를 하고 만남을 청하였고 백목사님의 사역이 하나님 앞에 크게 영광되는 길이었음을 감사.
고신대학교 강의 등이 있어 부산을 내려올 때마다 만나는 사이가 되었고 이 때도 반드시 오은해전도사님을 대동하고 또 연락을 맡아 수고 고신 시절 백목사님을 극히 따랐던 이인재 박인순 조수옥 등 출옥성도들과 한명동 남영환 등 백목사님과 맞섰던 분들 그리고 백목사님과 특별한 관계였던 박복달전도사님 주경순권사님 등과 모두 세상에서 마지막 작별인사를 위해 몇 차례씩 만나게 될 때에도 오은해전도사님이 전담 수고
공회 인물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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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록 이해에 중요하기 때문에 설교록의 설교 배경 또는 설교록의 인용을 보충하는 자료입니다. 설교록에 언급되거나 목사님이 거쳐 온 걸음에 연관 된 분들을 파악하려고 노력한 이유는 설교록의 내용이 너무 엄청난 것이 많아서 자칫 지나친 자기 자랑이나 과대한 선전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씩 살피면서 이 노선과 설교의 또 다른 세계를 봤고, 오늘 우리의 소망이 되기도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