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주<br />최금주
내용 | 최기주 최금주 집사님 자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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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주집사님
참고: 최기주가 맞으나 최귀주로 혼동되기 쉬워 곳곳에 최귀주라 적힌 곳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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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송종섭목사님
장소: 청량리교회예배당 4층 목사님 사무실
시간: 96.9.16.16:3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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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가족:
부부, 최기주(부인) 정기수(남편)
큰딸, 정영숙 김증한교수님 부부
둘째딸, 정신숙 우현룡목사님 부부
셋째딸, 정은숙 송종섭목사님 부부
큰아들, 정병철장로님 이선희 (이재순목사님큰딸) 부부
막내, 정병준목사님 백진옥 (백태영목사님큰딸) 부부
둘째딸 손주사위: 김영채목사님 부부
2.해방 후 북한에서의 활동
소문난 평양부자의 6남매 중 자매. 최기주의 남편은 정기수로 서울대전신인 수원고농과 삿뽀르농과대학을 졸업했으며 중국만주로 다니면서 돈도 많이 벌었으며 최기주와 결혼했고, 이북에서 조만식박사 뒤를 이어 오산교장이 되었던 조만식의 최측근. 조만식은 조선민주당 당수로 나오면서 정기수를 오산 고교 교장으로 앉혔으나 곧이어 조선민주당 외교부장으로 정기수를 데려갔고 이후 북한 주도권을 두고 김일성과 조만식의 대립에서 결국 김일성이 조박사를 가두고 승세를 잡게 되니까 조만식은 사태를 파악하게 된다. 공산당과는 맞서 싸워봐야 아까운 인재들만 희생하겠다고 판단하고 아끼던 젊은 부장들을 이남으로 내려보내게 되어 이때 월남.
3.월남 후 제천으로 정착
월남 후 이화여대 교수를 했고, 이승만대통령으로부터 농림부장관(해방 후 정부에서는 요직) 제의가 있었으나 북한에서 조민당으로 겪은 경험으로 험한 정치판을 이미 혐오하였고 또 생명까지 내놓아야 했던 일들 때문에 거절. 청주대학의 학장 제의도 있었으나 거절하고 제천 인근 청풍에서 광산사업에 손을 댔었다. 전처에서 딸 둘, 재혼으로 최기주에게 다시 딸 넷을 낳았다가 제천에서 막내 병철을 가지게 되자 제천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정을 붙임. 이때 제천고교 교장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교장으로 추천, 거절하였으나 제천의 유지들이 최정기의 경력을 알고 강력하게 요청, 원래 오산학교 때와 같은 교육사업으로 제천에서 다시 힘을 쏟음
4.전쟁 중에 이 복음으로 연결
6.25전란이 발생되자 월남 이전의 경험 때문에 일찍 트럭에 짐을 싣고 부산으로 피난하였고 이 시절 막내 최금주가 먼저 믿게 되면서 부산서부교회로 부임했던 백목사님이 시내 하단교회 집회를 인도하고 있었는데 이 집회에 언니 최기주를 전도, 1주간 은혜를 받고 본격적으로 신앙생활. 수복 후 제천이 복구되지 다시 귀향하게 되고 부근 감리교를 다녔으나 거리가 멀어 1953년 부근에 개척. 우선 혼자 3개월 산기도로 준비하고 집 한 채를 마련 수명이 회집.
아직 몇 명 모이지 않은 상태에서 백목사님이 집회를 인도. 우현룡목사님의 부친이 원래 감리교 장로였는데 합류하였고, 외삼촌인 최동영집사님 역시 경제적 여유가 있었고 합류하는 등 여러 유지들이 합세. 당시 검찰청이 신설될 때였고 그곳 직원으로 취직만 해도 굉장하던 시절, 대검찰청 직원이었던 김증한 부친 김익진 친구 등이 되어 협조하였고 교회 출발과 함께 단기간에 대부흥. 당시 30년 감리교 기성교회와 단 1년만에 교세가 같을 정도.
제천출신으로는 고장환목사님, 최현수목사님, 최광수조사님, 사직동교회 양순봉권사님, 동문교회 박찬성장로님, 잠실동교회 정병철, 유병로장로님, 청량리교회 김중국집사님, 그리고 부산공회(2)의 설립 공로자이며 최고 핵심 교인인 양희선집사님, 임원기집사님 등
5.김증한교수님의 신앙
최기주집사님은 맏사위가 교회를 출석하지 않는다고 병신이 되더라도 믿도록 해 달라고 가정예배에서 기도하였고 결국 몸이 불구가 되는 상황에서 믿고 교회를 출석하게 되었으며 이후 치료가 되어짐. 김증한교수가 문교부 고등 교육국장으로 부산 해운대로 출장을 갔고 이때 숙소에서 연탄까스 질식으로 위태로운 상태, 거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백목사님은 최금주집사님에게 매일 가서 말씀을 전하도록 했고 한 달 정도 지나면서 깨어나게 됨.
이후 교회를 다니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명륜동 이병규목사님 교회로 다녔고 뒤에 총공회 사직동교회로 출석 신앙생활을 잘 하였고 특히 85.9.-87.5.27. 기간 동아대 교수와 부총장(86.3.1.-87.5.27.)으로 재직하며 서부교회 교인으로 신앙생활을 잘 했습니다. 사직동교회 송종섭목사님의 마지막 심방 예배가 끝나고 나갈 때 하늘나라에서 만나자고 손을 흔들 때는 얼굴에 빛이 환하게 나타나서 큰 은혜가 있었고 장례 때는 청와대 비서실장, 국무총리, 장관, 서울대총장, 검찰총장, 법대교수들이 다 참석, 모두들에게 가신 석학이 예수 믿고 신앙으로 임종한 소식으로 모두에게 큰 전도.
6.최기주집사님의 형제, 석굴암 조실대사의 서부교회 장례
첫째: 동경대 졸업, 중앙청, 공직마치고
둘째: 제천 남천교회에서 신앙생활.
셋째: 최기훈으로 결혼하고 잘 살았으나 아기가 없다는 것으로 공연히 심경 변화가 생겼고 부자였기 때문에 재산을 아내에게 다 주고 불교 승려로 평생을 살게 됨. 명치대학교 출신으로 불교의 대표적 학승이며 석굴암 '대사'로 '조실스님'이라는 직명을 가졌던 불교계 명망있던 거물. 백목사님과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있어 불교 교리로 잠깐 대화한 적이 있었으며 이때 받은 충격으로 노후에 결국 완전 돌이켜 예수를 믿고 서부교회 장례를 부탁하고 임종. 불국사에서 수십명의 승려들이 서부교회로 진입 큰 대치가 벌어졌고 경찰에까지 가족과 승려들이 가서 충돌을 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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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8월 19일 금야 설교 중에서)
........ 고전4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사람의 판단은 매우 적은 일이라 했습니다. 또 자기 양심에 가책되지 않게 한 것도 보잘 것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 가지고 안심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 앞에 가면 나의 모든 것이 다 드러날 터이니까 그분이 그때 나를 어떻게 인정하시나? 그분 앞에 설 때 그분이 됐다 하면 되었지만 그분에게 인정이 되나 안 되나 이것 때문에 죽는 날까지 뻘뻘 떨면서 산 것이 사도 바울의 생활입니다.
제가 땅 위에서 신앙생활 하면서 그런 의인을 하나 만나 봤습니다. 남천교회 최기주집사님인데 죽었습니다. 사위 둘은 지금 목사고 또 아들 둘인데 하나는 지금 전도사인데 곧 목사가 될 것이고 큰아들은 지금 돈벌이하고 있는데 돈을 얼마나 벌지 모르겠습니다.
그분은 항상 속으로 주님 인정을 묻습니다. 그분이 나 모른다 하면 그만 아닙니까? 여호와께서 나 모른다 하면 어찌 되나 하는 그것을 두려워하여 그분이 인정을 하나 안 하나 그분이 어떻게 여기나 이것 때문에 늘 떨면서 모든 일을 해 놓고도 이것 때문에 항상 마음이 눌려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서는 제가 그런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목사에게도 못 봤고 또 뭐 장로 집사들에게서도 못 봤고 남반에게도 못 봤고 여반에게도 못 봤습니다. 그분 하나에게서 ‘여호와께서 인정 안 하시면 참 비참해진다. 그분이 인정해야 될 터인데 그분이 인정하나 안 하나?’ 그저 일편단심 그분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그렇게 노력하기 때문에 그분의 생활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를 못합니다. 교인들이 이해를 못 합니다. 그분을 너무 과격하고, 너무 지나치다고 다 합니다.
그분이 안 믿는 사람으로서 6.25 피란 때 부산에서 제가 집회하는데 설교를 꼭 4일 듣고, 예수 믿기 시작해서 돌아간 뒤 총공회 교회를 세우고 지금 제천 남천교회를 세워서 큰 교회가 돼었습니다.
그분은 처음 예수 믿을 때부터 ‘여호와께서 인정하셔야 되지 그분에게 인정 안 되면 안 된다’, 해서 항상 자기가 무슨 일을 해도 그 일하는 것이 잘 되고 바로 되면 안심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인정받기를 목표하고 일을 합니다. 그러니까 그분에게는 무슨 신앙 생활에서든지 항상 미완성이고 미비고 안심하지 못하고 항상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 인정을 그렇게 두려워하고 사는 것을 봤습니다. .........
(88081953)
(2024-02-29)
장소: 남천교회 기도원, 충북 제천시 송학주천로 71-1
일시: 2012.3.27
부모 정기수 최기주
①장남 정병철 자부 이선희
-손자 정일환 손부 최유진
-증손자 정시원
-증손녀 정시연, 정세현
②차남 정병준 자부 백진옥
-손자 정봉수, 정기영
-손자 정대선 손부 채지민
③장녀 정영숙 사위 김증한
-외손자 김학동, 김작동
-외손녀 김헤동, 김윤희
④차녀 정신숙 사위 우현용
-외손자 우강업
-외손녀 우성실, 우성심, 우성연, 우화진
⑤삼녀 정은숙 사위 송종섭
-외손자 송민영, 송도영, 송지영
-외손녀 송효영
공회 인물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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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록 이해에 중요하기 때문에 설교록의 설교 배경 또는 설교록의 인용을 보충하는 자료입니다. 설교록에 언급되거나 목사님이 거쳐 온 걸음에 연관 된 분들을 파악하려고 노력한 이유는 설교록의 내용이 너무 엄청난 것이 많아서 자칫 지나친 자기 자랑이나 과대한 선전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씩 살피면서 이 노선과 설교의 또 다른 세계를 봤고, 오늘 우리의 소망이 되기도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