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길
설명 | 봉산교회 양혜원교회 창동교회 개척 및 개척관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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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운길 ( 1914년 10월13일 - 1978년 4월1일 )
1. 가족
부 이남신
모 변와룡(와룡댁)
부인 김봉선
형 이홍길
제 이상길 이순길
자 이영호 이영인 이완영 이신영
녀 이정애 이정선 이정난
2. 생애
이운길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13세에 면서기집에 머슴으로 가게 되었고
집주인이 믿는사람이었고 이운길의 성실함을 보고 여행증을 마련해주어 일본 노무자로 일하러 가게되었다.
일본에서 여러가지일을 하다 집주인의 소개로 고물장사를 하여 큰돈을 벌게 되면서 번돈을 한국으로 보내 논밭을 구매하여 재산을
불리게 되었고 훗날 모친 변와룡(와룡댁)이 봉산교회를 개척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6.25전쟁후 봉산교회를 지키며 봉산에 거주하자던 부인 김봉선의 만류를 뿌리치고 거창읍으로 이주한 이운길은 철공소를 운영하며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부산에 있던 백영희조사가 전국을 순회하며 거창도 집회등으로 종종 들렀는데 백영희조사가 거창으로 온다는 소식이 교회를 통해 전달이 되면 읍 바깥쪽까지 나가서 기다렸다가 모시고 시내로 들어오곤 하였다.
백영희조사가 고제쪽에서 거창읍으로 들어오는경우 예외없이 현재 양혜원 건너편 마을에 들어가는 다리가있고 그 밑에 움막생활을하던
나환자들에게 함께 들어가서 예배를 드리고 시내로 들어왔다.
한번은 다리밑의 움막에서 백조사가 설교하던중 "이 교인들을 위해 집과 예배당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 지나갔고 이운길은 이 설교에 은혜를 받고 집으로 돌아와 환자들에게 집과 예배당을 마련하겠다고 나섰고 백영희조사의 지도가 있었다.
당시 이운길의 공장이 번창했고 주택은 애매했는데 본인의 집을 지으려고 마련했던 자재로 예배당을 마련하고 공장에서 번 돈으로 양혜원의 예배당과 그 주변 수천평 땅을 매입하여 초기 양혜원 마을이 형성되고 예배당이 건축되게 되었다.
당시 양혜원교회는 고려파소속이었고 1959년 4월부터 소속교단인 고려파가 백영희조사를 교권에 방해가 된다고 불법으로 치리하기 시작한 시점에 거창읍교회는 이운길집사를 장로로 예정한 상태에서 이운길이 백영희조사의 신앙노선을 따를것으로 보고 양혜원의 소유권을 고려파교단으로 옮기게 하자 이를 거부햇고 거창읍교회 당회는 3차례 소환을 통해 1959년 9월20일 이운길을 제명 출교조치하게되었다.
하여 백영희신앙노선을 원하는 교인들이 더이상 거창읍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할수 없으므로 중앙교회(현 창동교회)를 개척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된다.
거창읍 중앙리 278번지 이운길 가옥의 마루에서 이순길가정, 변종희청년등이 모여 첫 예배를 드렸고 초기 봉산교회 교인, 삼봉산집회에서 은혜를 받은 분들이 합류하게된다.
( 계속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