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달

공회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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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달

내용 1970년대 만난 백영희와 공회 등

대담 : 이기달 목사님, 대신 교단

일시 : 2022년 1월 20일 18시 28분 31초

검색 : 1974년 백영희 목사님의 목회, 배수윤 목사님의 심방, 이원일 목사님, 손동길 목사님 등


통화원본 : 이기달 목사님 통화(22.1.20)





1974년도 배수윤 목사님 계실 때 서부교회 출석

이원일 목사님 대전 동북교회 계셨다가 서울 상남교회로 갔고 찾아 갔지만 커피 한 잔 안 줘.

내가 74년도에 처음 서부교회 갔을 때 백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공짜 밥을 안 먹고 하나님이 일을 하다가 지금은 평화로운 나라인데 순교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데 나는 순교로 가는 게 꿈이라고 그랬어요.


내가 목사님을 두 번 만났어요. 군대 갔다 와서 장림동에 살았어요. 장림에 고신측 교회가 있었어요. 거기 안 가고 서부교회에 나갔는데 배 목사님이 토요일 날 되면 심방을 오시더라고. 버스 타고 오시고 했는데 나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많은 성도가 있는데 청년 하나를, 충청도 증평 괴산이 고향인데, 등록하고 한 3개월 4개월인데 부르더라고. 친구 있느냐? 어디서 잠을 자느냐? 직장이 있느냐? 전부 물어보시더라고. 배 목사님이 나를 그때 동명합판이라고 있는데 나 보고 직장이 없으면 안 되니 일을 하라면서. 기운이 없어 못하겠다고 하니 한 번 다녀봐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갔더니 뽑는데 한 100명 뽑는데 천 명은 왔어요. 천 명. 그런데 나는 뽑혔어요. 이틀 해 보니까 못하겠더라고요 힘들어서요. 그냥 그만뒀는데 그만뒀다는 얘기를 백 목사님에게 하자 또 불러서 그 장로님 이름을 잊어버렸는데 집 짓는 장로님에게 그냥 데리고 있고 밥 먹여주고 돈 좀 주려면 주고 기술을 가르쳐주라고 그러더라고. 나는 기억에 제일 남는 게 백 목사님이 이런 얘기를 했어. 구원받은 영혼은 죄 짓지 않는다. 죄짓는 건 육신이 짓는 거지 영혼이 짓는 게 아니다. 영혼 이분설. 고신측에서 이단이라고 막 그랬어요. 그런데 이단이고 삼단이고 나는 그게 옳다고 생각하니까 다녔는데 이원일 목사님이 서울에 있는 큰 교회 700명 되는 교회을 맡으러 갔는데 대전에서 또 만났단 말이에요. 그다음에 서울로 가서 나는 하느라고 잘했는데 갔는데 커피 한 잔도 안 주는 거예요. 저 사람이 목사가 맞나 그랬어요. 손동길 목사님은 어떻게 만나냐 하면요. 최권능 목사님 따님이 나 개척할 때 우리 교회 항상 오시고 한 보름씩 쉬었다 갔어요. 또 박관준 장로님 아드님도 나 개척할 때 와 만나고 그랬어요. 내가 대한 신학교 나왔는데 여러 목사들을 만나봤거든요. 목사 아닐 때도 때 신학생이니까 학기에 200명만 돼도 담임 목사 만나기 힘들더라고. 안 만나 주더라고. 500명만 되면 만날 가능성도 없고 부목사하고 상담하라는데 성도 수가 몇 만 명 되는데 나 하나를 불러 가지고 객지에서 왔다고 챙기는 거 보고 한 번 겪어본 분들은 못 잊고 그다음에 그냥 평생에 마음속에 그렇지요. 시골 있으면 나 하나가 왔다고 그때만 해도 어려울 때잖아요. 굶고 그랬잖아요.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보고 두 번을 불러보고 직장도 넣어주고 또 배 목사님이 나한테 물어봐요. 일주일 동안 어떻게 되냐? 얘기하면 그걸 보고를 하더라고 또 보고를 해 가지고 내가 담임 목사님한테 얘기했다고 하는데 백 목사님을 못 잊지요. 왜 난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목사님들한테 그렇게 만나 가지고 나를 왜 기도해 주고 불러주고 이렇게 한 건 내 평생 처음이에요. 500명 모이는 목사님도 나 그렇게 해준 사람 없어요. 내 손동길 목사님 왜 찾았냐 하면 최강호 목사님이 그 얘기를 하는 거야 나보고 최권능 목사님 딸이 손양원 목사 아들이 있다는 거야. 내가 이제 그 후로 물어봤더니 대한신학교를 다녔다고 그러더라고.

그래가지고 내가 찾아 봤더니 성남서 개척하고 있더라고. 나도 개척하고 있고 그러고 헤어졌어요. 서로 어렵다 보니까 그러고 항상 마음에 이제 걸려 가지고 교회가 한참 부흥 돼서 찾으려고 하니까 안 가르쳐 주더라고 손동일 목사님을. 알아보니까 손동길 목사님 제일 친한 분이 한 분이 있더라고 그분한테 얘기했어요. 내가 만나고 싶다. 그분도 안 나 가르쳐줘. 1년 동안에 조였어요. 계속 나 만나야 된다고 그래 만났어요. 지금 여기 있는 이 화성시에 손동길 목사님이 여기서 3년 동안 같이 있었어요.


같이 있다가 그리로 내려간 거예요. 여수로요. 내가 가라고 그랬어요. 목사님 여기 계실 게 아니고 아버지 유적도 보고 그래서 아버지 얘기하라고 그래서 내려간 거예요. 제가 지금도 잘 통화하는데 난 참 안타까운 건 주기철 목사님 있죠. 주광조, 목사님 아들 그 통합측으로 갔잖아요. 예 통합에. 그런 자식이 자식이여 그거? 그거 참. TV에 나오더라고 주기철 목사님 아드님이라고

목사님 서울 쪽에 오시면요. 한번 전화 주세요. 나도 나이가 이제 70이 훨씬 넘었으니까 기억을 못해요. 목사님 서울 쪽 오시면 전화만 주시면. 손동길 목사님은 건강하셔야 되는데 건강해요? 손동길 목사님이 목사님께서 돈 준다고. 목사님 생활비는 어떻게 했더니 여기 목사님은 교회에서 거기서 생활비도 주고 다 도와준다고 하고. 손동길 목사님 찾느라고 나 1년 동안 그랬어요. 1년 걸려 찾아 가지고 내가 들어서 모셔와 가지고 3년 동안 있었고 그 사람이 이제 내가 난 생각해도 여기 있을 게 아니고 그리로 가야 될 것 같은데 이 여수로 내려 보냈지 내가.


하여튼 서울 가까이 오시면요. 요 전화번호로 한번 전화 한번 주십시오. 네 참 반갑습니다. 목사님 또 저는 나이가 많아서 전화도 잘 못하고 입력 같은 것도 못해요. 그날 제일 마음 아팠던 건 여기 우리 백 목사님 순교한 것보다도 교회가 갈라지고 목사들이 싸웠다는 거 그 소식을 들었을 적에 참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진짜 여기 깡패에 깡패들이 의리만도 못한 놈들이라고 내가 그랬어요. 장돌뱅이만도 못한 놈들이라고. 예 백 목사님 후계자 딱 정해놨으면 똘똘 뭉쳐야 되지. 내 소리 들을 때 너무 마음 아프고 지금도 가끔씩 기도할 때 생각나면 그게 마음 아픈 거야. 그때 갈라지지 말고 똘똘 뭉쳐 잘 했어야 되는데


한국교회 보배가 되어도 되는데 그냥 내부가 그냥 모두 다 깨버렸습니다. 그때 나 있을 때 있잖아요. 조용기 목사님 교회보다 열 배는 컸어요. 조용기 목사님 그때 500명 모였거든요. 우선 서울 쪽으로 오시면 꼭 연락 주세요. 한번 만나요. 그리고 손동길 목사님 혹시 저기 어려운 일이 있거나 힘든 일 있으면 나한테 연락을 좀 주세요. 그분은 절대 나한테 있잖아요. 어려움이 있어도 어렵다는 얘기 절대 안 하는 분이에요. 잘 있다는 얘기 말만 하지.


목사님 몇 살인데요? 57년생 66세입니다. 나보다 10살 어리네. 지금 34년째 근무하고 있는데 교회 분위기나 제 건강으로 봐서는 제가 90이 돼도 설교할 수 있으면. 해야 돼요. 설교 해야 돼요. 서서 못하면 의자 놓고 앉아서 하고 앉아서 못하면 침대에 누워서 하고. 목사님 무슨 얘기인지 알겠죠? 그렇게 하는 거예요. 앉아서 못하면 침대에 누워서 하고 예 그 하나님이 원할 때까지 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연세가 많으면 발음이 안 좋아도요.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다 알아들어요. 다 알아 들어. 여하튼 목사님 반갑고요 잘 지내세요. 목사님

공회 인물사는
설교록 이해에 중요하기 때문에 설교록의 설교 배경 또는 설교록의 인용을 보충하는 자료입니다. 설교록에 언급되거나 목사님이 거쳐 온 걸음에 연관 된 분들을 파악하려고 노력한 이유는 설교록의 내용이 너무 엄청난 것이 많아서 자칫 지나친 자기 자랑이나 과대한 선전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씩 살피면서 이 노선과 설교의 또 다른 세계를 봤고, 오늘 우리의 소망이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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