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웅

공회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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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웅

내용 이 교훈을 사모한 분

일시: 2011.12.28.

이름: 김영웅


1. 약력

42년생, 거창


66-67년 기간에 1년 반 정도 주교 부장, 박장관 선생님이 후임 부장


68년 위산교회 조사 인허 받고 부임. 전성수 조사님이 후임


73년, 5월, 대구비원 1년 몇 개 월 정도 부임. 백영침 목사님은 남천교회로 이동.


74년, 동성로교회 부임. 백영침 목사님이 국기배례 문제를 거쳐 비원으로 돌아 오심


동성로교회 전임자는 송용조 목사님이며 미국 유학 가면서 교체


1년 채 근무하지 못하고 덕수교회


75년, 덕수교회 송종섭 목사님 후임으로 1년 2개월. 당시 전성수 목사님은 화전. 76년, 남산교회로 부임했고 전임자는 김철수 조사님. 남산의 후임자는 이동화 목사님


81년, 서전교회 부임. 후임은 손오용 목사님. 남산교회 이동화 목사님이 손오용 목사님


계시던 광주 천광교회 부임


86년, 난곡 부임하여 지금까지 재임


2. 신앙 과정

(학생기)중학교 1학년 때 구포중학교로 전학을 가서 졸업하고, 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거창에 있었는데


(신앙기)


삼봉산 집회가 금굴 앞에서 개최 될 때 집회에서 은혜를 받고 그 동안 부모 때문에 믿던 것을 바꾸어 자발적으로 믿는 사람이 됨. 거창 창동교회에 와 있던 한종희 조사님이 지방 청년들을 모아서 성경을 좀 가르쳤는데 김철수 신용국 등은 고등학교를 다녔고 김영웅은 진주고등학교를 이미 졸업했던 시점. 당시 칼바르트 등의 주제로 가르친 기억. 김철수는 제사 때문에 박해가 심해서 집에서 쫓겨 나서 밖에 나와 자는 수도 있었는데 성경을 많이 보던 모습이 선하고, 학교에서 공부를 해도 책상 밑에 성경 놓고 읽는 정도.


부산으로 목사님을 뵈러 갔고 거창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군에 가기 전에 주교 부장도 했고 한종희 목사님 후임으로 송용조 목사님이 왔고,


(서부교회)


1963년에 입대해서 논산훈련소를 거쳐 육군본부에 배치를 받아 청량리교회를 출석했는데 당시 목사님은 청량리교회로 순회를 오실 때였고 목사님께 부산으로 가서 목사님께 직접 배우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청량리교회에는 육본 중령이 출석을 하고 있었는데 목사님이 김영웅을 부산으로 보낼 수 있도록 부탁했고, 부산 병무청에 국방부 소속으로 근무. 부산병무청을 근무하면서 동아대학교 정외과 야간을 입학했고 오후 5시면 병무청장이 공부하도록 퇴근을 시켜 주었고 제대 후 학교도 졸업하고 반사를 하면서 부장을 하게 되었다가


(목회)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위산교회로 첫 부임. 서부교회 건물을 지을 때 위산교회를 유차연 목사님이 오셨고


(서부교회 건축)


김영웅은 다시 서부교회로 와서 교회 건축에 종사하면서 이 기간인 1969년 결혼. 이상원 집사님과 세멘 철근 자갈 모래 등 가리지 않고 일했고, 기억 나는 것은 목사님이 차비 주면서 양산 등 모래 나오는 데를 보내며 먼저 샘플을 직접 가져 오게 하심. 가져 오면 왕사 몇%에 세사 몇%인지를 보며 왕사가 부족하다 좋다 하면서 전부 그렇게 보고 나서, 서부교회로 모래 실어 나르는 차가 있어 차를 가져 가서 재료들을 가져 왔고, 벽돌은 울주에 가서 찍으라 해서 찍었고. 박은석 목사님이 벽돌 찍어 내는 것을 맡아 현장에 있으면서 부산으로 보냄. 중2층 스라브를 칠 때 실수로 떨어 졌는데 마침 이종희 목사님이 사시던 집의 지붕에 떨어지고 다시 바닥으로 떨어짐. 부상으로 몸이 좋지 않아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고 다시 위산교회로 돌아옴. 위산교회에 빈 기간은 유차연 목사님이 맡음. 당시 교회 공사 중 마지막 층 목사님 들어 가는 입구 계단에 자재를 빼내다가 낙상하고 사망. 위산교회에 있던 중에 들음.


3. 난곡교회 부임 상황

목사님께서 서전교회에서 난곡교회로 가라 할 때 백 목사님 생전에는 서부교회 주변에서 배우기를 원하여 가지 못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3년만 서울에 있으면 부산으로 다시 부르겠다 해서 약속하고 감. 서울에 오니까 체질이 맞지 않았고 1989년에 목사님께 약속대로 서부교회 금요일과 주일오후 예배를 참석할 수 있도록 주변에 오게 해 달라고 청원. 목사님께서 다른 교역자들의 이동 문제도 있으니 9월 교역자회에 의논해 보자 했고 김 목사님은 집회가 끝나고 9월 교역자회가 되면 이동한다고 생각했는데 돌아가심.


4. 백 목사님과 마지막 대화

1989년 8월 집회 기간에 강사실로 불러서 왜 장내 정리를 하지 않느냐고 물으심.


그 해 집회 대회장이 이진헌 목사님인데 장내 안내를 맡은 김영웅 목사님을 다른 부서로 배치. 상황을 알게 되자 이진헌 목사님을 바로 불러서 장내 정리를 다시 부탁하여 수요일에는 다시 장내 정리.


5. 난곡교회

1970.4.20. 관악구 신림동 704-35번지, 원래 하천 가에 개척.


1972.4.11. 현재 646-94번지 현 주소로 대지와 건물 마련.


합정동교회 백영익 목사님이 신숙자 전도사님을 파송하여 개척. 김정웅 장로님도 교인으로 파송하여 돕게 함. 신숙자 전도사님은 거창 창북교회에도 있었고 가조 신천교회에 있던 중 백영익 목사님이 합정동교회를 세우고 공회를 나가자 합정동교회로 가셨던 여 전도사님. 당시 백영익 목사님의 사위 되는 이근영 목사님은 남해에서 합정동교회로 합류.


이근영 목사님이 난곡교회 2대 목회자.


백무창 목사님이 3대


정경수 목사님이 4대


6. 합정동교회 개척

합정동교회에서 여러 교회들을 개척. 난곡교회와 마찬가지로 경북 구미에 오리온 전기 전자 회사로 가는 교인들이 있어 구미에도 개척했으나 타 교단으로 넘어 갔고 그 때 있던 교인 중에서 신일교회가 개척할 때 일부 연결.

공회 인물사는
설교록 이해에 중요하기 때문에 설교록의 설교 배경 또는 설교록의 인용을 보충하는 자료입니다. 설교록에 언급되거나 목사님이 거쳐 온 걸음에 연관 된 분들을 파악하려고 노력한 이유는 설교록의 내용이 너무 엄청난 것이 많아서 자칫 지나친 자기 자랑이나 과대한 선전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씩 살피면서 이 노선과 설교의 또 다른 세계를 봤고, 오늘 우리의 소망이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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