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순-2
내용 | 장정애 - 일편단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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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2.9.14.
제목: 장정애
1. 신상
1923년생, 올해 90세, 현재 평북 칠산군의 유력한 기독교 집안 출신
1남, 장해관(장준철?) - 장숙자 숙조 집사님들의 부친
2남, 장해남
1녀, 장선애
2녀, 장영애
3녀, 장송애(신의주로 결혼 가는 바람에 가족 월남에 합류 못함)
막내, 장정애
2. 가족
① 장준철
- 서부교회 초창기 회장으로 신앙 열심이며 당시 총무는 서영호
- 월남전의 2 회 참전과 훗날 고엽제로 사망
- 슬하에 장숙자(서부교회 집사, 홍응옥 모친) 장수자(학장 진용택 장로님 부인)
- 1978년에 김춘도 중간반사와 장 집사님의 조카 홍응옥의 결혼
② 장선애
- 청량리 교회 주력 교인
- 남편 유춘산: 6.25 전쟁 당시 군사법원 판사, 50년대 중령, 5.16혁명고등재판관.
1960.5.18.과 1972년 2월 5일 변호사 신분의 언론 보도를 통해 신분 확인 가능
부산시법률자문위원. 혁명 등 여러 과정에서 무고한 많은 사람을 돕고
이복순을 도왔을 가능성
- 자녀: 아들이 미국 의사, 큰 딸은 미국 학교장, 둘째 유혜자 셋째 백 목사님 며느리
1974년 백 목사님의 셋째 아들 백도충과 유화순의 결혼 후 부부 도미
- 이주: 1979년에 미국으로 이민
- 귀국: 1984년에 부부가 한국으로 돌아 와서 서부교회 옆 동대신동에 집을 사서 거주
백 목사님께서 대문 앞 명패를 ‘변호사 유춘산’으로 걸어 도적을 막도록 부탁
후에 대신동에서 하단으로 하단에서 딸을 따라 수영으로 집을 옮겼고 수영로교회
출석하고 수영로교회 장례. 딸이 정신이 좀 없고 수영로교인
③ 장정애
- 1931년생, 24세에 서부교회로 와서 처녀로 평생 서부교회 충성
- 평양 방송국에서 성우와 성악가로 활동하다 6.25 전쟁 전에 남한으로 내려 왔고 남한에서도 KBS에 당시 친구가 유명 가수여서 함께 성악가수로 활동. 서울에서 6.25 전쟁을 맞았으며, 피난 생활 중 평택에서 수십명이 현장에서 폭격 받고 죽을 때 장정애 가족만 무사하게 살아 나오며 대전에서도 죽을 고비를 넘기 등 여러 차례 위기를 넘겼으며, KBS로 녹음하러 가다가 호송하는 미군 차량 안에서 미군의 겁탈 시도에 ‘주여!’라고 있는 힘을 다해 외쳐서 물리침.
1991년경 발병한 종양을 치료나 수술 없이 22년 지내며 현재 90세에도 건강. 2012년 현재 서부교회 초창기 인물들 중에 홀로 남았고 최고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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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2.9.19.
이름: 장숙자 집사님
면담: 김춘도 목사님
수복 후 제기동을 통해 청량리교회를 통해 서부교회로 와서 거주.
공회 인물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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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록 이해에 중요하기 때문에 설교록의 설교 배경 또는 설교록의 인용을 보충하는 자료입니다. 설교록에 언급되거나 목사님이 거쳐 온 걸음에 연관 된 분들을 파악하려고 노력한 이유는 설교록의 내용이 너무 엄청난 것이 많아서 자칫 지나친 자기 자랑이나 과대한 선전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씩 살피면서 이 노선과 설교의 또 다른 세계를 봤고, 오늘 우리의 소망이 되기도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