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
내용 | 이인재 목사님의 동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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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목사님은 이인재 목사님의 동생으로 박인순 전도사님의 동생인 박경순 사모님과 결혼했고, 이 분들은 해방 후 백 목사님과 제일 가까운 신앙의 동지가 되어 공회의 전국화 과정의 1세대에 해당 되는 인물이 된다. 이인재 이명재 가족과의 특별한 배려로 가족이 보관한 각종 1차 자료를 연구소가 기증 받거나 공유하게 되었다.
아래는 가족이 펴낸 책의 번역본이다.
어느날, 이 목사님이 사모님께 직장을 구해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오래 전 결혼한 이후 돈 받고 일해본적이 없어 생활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사모님은 독일계 회사에서 일을 해보다가 시카고 심포(Chicago Shimpo)라는 일본계 신문사에서 조판 글자를 배열하는 일을 했다. 혜경은 어느 고등학생 시절 여름에 어머니와 같이 그 일을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여러 일을 했지만 이 일을 대부분 했었다. 어머니가 매일 8시간씩 즐겁게 일하던 것을 생각하면 혜경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사모님은 7시에 시작하는 오전근무를 위해 일찍 일어나야 했는데 쉬는 시간에 커피 한 잔 마시지 않고 1원까지 아껴서 모았다.
나중에는 Crane Packing Company라는 곳에서 조립공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거기서 교육을 받아 설계도면 보는 법과 칼리퍼를 쓰는 방법을 배웠는데 나중에는 감독관으로 승진했다. 총 20년을 일하시고 71살에 퇴직하셨다. 혜옥도 이 회사에서 여름방학동안 일을 했었다. 후에 백악관에서 대통령 여자 장학생으로 선정되었을 때, 이 회사에서 그의 이야기를 취재했었다.
한국성경교회는 무디교회(Moody Church)에 있는 작은 예배당을 빌렸다. 전일제 담임목사를 모실 형편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재명 목사님은 인쇄회사에서 전일제 야간근무를 뛰었다. 신애가 미국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가 밤새도록 일하신 후에 낮에는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한국인 광부와 간호사들이 독일에서 시카고로 건너와 정착했는데 그분들이 이재명 목사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목사님은 공항에서 태워주기도 하고 출입국사무소에서 통역 해주기도하고, 집과 직장을 찾는 것을 도와주기도 했는데, 운전연습까지도 도와주셨다. 그렇게 일하시다가 겨우 몇 시간 자고 다시 야간근무를 하러 나갔다. 신애는 아버지가 전임 목사가 되어 목회일만 할 수 있도록 기도했다. 그 당시에는 불가능해 보였지만, 몇 년 만에 그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 교회가 지원하는 전임 목사가 되어서 밤에는 일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교회가 Paulina Avenue에 있는 3층짜리 아파트 건물을 사기 전까지 두 곳을 이사 다녔다. 목사님의 목회는 언제나 건축중이거나 교회건물을 리모델링하거나 그랬던 것 같다. 1층은 예배당으로, 2층은 사택으로 바꾸었다. 큰 거실과 세 침실이 되었다. 사택 식구에게는 저택처럼 느껴졌다. 효선은 결혼해서 나갈 때 집안의 온 가구를 새걸로 바꿔주고 이사갔다. 미국에 이민 온 후 처음으로 산 가구였다. 시간이 흘러 모든 식구가 분가했을 때 식구가 교회 근처에 작은 집을 하나 샀다.
한국성경교회가 개혁교회에 가입하고 나서는 이름을 한국개혁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1977년, California Avenue에 있는 창고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이사해갔다. 15년 만에 모기지를 다 갚아서 일리노이주 휠링(Wheeling)에 좋은 건물을 살 수 있었다. 1993년에 이명재 목사님은 48년간의 주님과 교회를 위해 헌신한 목회생활을 뒤로 하고 은퇴하였다.
하지만 은퇴가 목사님을 느긋해지거나 활동적이지 않게 만들진 못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그린스보로(Greensboro)에 있는 교회가 임시목사로 목회시무를 부탁했다. 그래서 부부는 집을 팔고 1993년 11월에 노스캐롤라이나로 이사갔다. 여기서도 예배당을 짓게 되었다. 은퇴하고 70대가 되신 이 목사님은 또 하나의 큰 프로젝트를 맡으시고 즐거워하셨다. 이 예배당은 1997년에 건축이 완료되고 입당예배를 가졌다. 그리고 은퇴하여 1997년에 시카고로 돌아오시고 아들 정식의 집으로 이사했다.
1998년, 이번에는 애리조나에서 부름을 받았다. 이명재 목사님은 진실로 복음 전파하기를 좋아했다. 기회가 되면 언제나 복음을 전하기 원했다. 언젠가 한번은 “여기 계신 성도들 중에 어떤 분은 이번이 복음을 들을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설교할 때마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증거하려한다”고 말했다. 1998년. 애리조나주 더글라스(Douglas)에는 혼자 건너갔다. 1년 동안 그는 시카고를 종종 왔다갔다하면서 전임목사를 모실 수 없는 교회를 도와줬다. 왜 그는 은퇴하였는데 쉬지도 않는 것일까? “그래야 내 자녀들이 하나님께 복을 받지.”라며 간단히 대답했다.
이명재 목사님은 한국인 사회에서 공헌한 일로도 표창을 많이 받았다. 동우클럽은 시카고 지역의 회원들의 정착을 도와준 것을, 한국선교 100주년 위원회에서는 시카고에서 6개 한국인교회를 개척한 공로를, 한국개혁교회에서는 교단의 첫 한국인교회를 개척한 공로를 인정받아 표창을 받았다. 한 신문사에서 그에 대한 기사를 썼는데 짧은 인터뷰였지만 잃어버린 양에 대한 열정과 주님과 교회를 향한 사랑을 집중하여 말했다.
이 목사님은 1973년 10월 16일 미국 시민권을 얻었고 세 형제와 한 자매를 식구까지 모두 초청했다. 박경순 사모님은 1975년 2월 25일에 시민권을 취득했고 자매인 박인순을 미국으로 초청했다. 그들은 한 집안을 통째로 외국으로 이전시킨 진정한 개척자들이었다. (부록 ‘족보’를 참고)
이 목사님은 북침례신학교(North Baptist Seminary)에서 교육의 여정을 이어갔다. 이번엔 통학을 비행기로 했다. 그는 마침내 Faith 신학교에서 1982년에는 목회학으로, 1984년에는 종교교육으로 박사학위 두 개를 받고, 교육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명재 목사님은 책을 11권을 집필하셨는데 다음과 같은 책과 설교집을 내셨다.
- 새 언약의 영광 (The Glory of New Covenant)
- 예수님의 초대 (The Invitation of Jesus)
- 영생의 소망 (The Hope of Eternal Life)
- 그리스도의 증인 (The Witness of Christ)
- 말씀이 육신이 되어 (The Word became Flesh)
- 알파와 오메가 (Alpha and Omega)
-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The Holy Spirit - He will teach you everything.)
- 하나님의 선물. 우리는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God's Gifst - How can we use them?
- 불의 혀 (The Thongs of Fire)
- 구름기둥, 불기둥을 따라서 (Following the Pillar of Cloud and Fire)
- 영광의 광채 (The Reflection of Glory)
목사님의 배움에 대한 열정이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는지 그들도 학위를 추구했다. 효선은 서울대학교에서 간호학사를 받고 등록정간호사가 되었다. 신애, 정식, 정혜, 혜영, 혜옥은 모두 일리노이대학교를 졸업했고, 신애는 생화학 석사학위를 받고 화학/정보시스템분석 분야에 종사했다. 정식은 전기기술자가 되었고, 정혜는 공인회계사가 되었고, 혜영은 컴퓨터과학을 전공하여 시스템분석가로 일하고 있고, 혜옥은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었다가 공학자로 일하고 있다. 혜경은 루즈벨트 대학교에서 음악학사를 받고 칼빈대학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청년사역자를 하고 있다.
목회가 끝났고 자녀들이 모두 자랐는데, 이제 무엇을 하십니까? 이 목사님 부부가 사는 일리노이는 아름다운 산림공원이 있다. 그 공원을 매일 걸으며 버섯을 캐기도 하고 새와 꽃을 보기도 한다. 박경순 사모님은 다리가 약하시고 눈이 침침하셔서 서로 손을 꼭 잡으시고 걸으신다. 산책로 끝에는 소풍할 수 있는 장소가 있어서 거기서 잠깐 멈추고 휴식을 취한다. 날씨가 쌀쌀하면 작은 나뭇가지를 모아서 불을 피우기도 한다. 같이 찬송하며 기도를 하기도 하는데 세상의 시국과, 한국과 미국 정부와 대통령, 전 세계의 선교사와 교회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자녀들과 19명이나 되는 손주들을 위해서 한명한명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한다. 매일매일 하나님과, 또 서로와 친밀해지는 시간을 갖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맨 하늘 밑에서 하는 그들의 찬양과 기도는 천국에 계신 하나님께 직통으로 전해지는 것 같다. 그들의 목회 활동은 끝났으나 그들의 중보기도를 통한 목회는 멈추지 않는다.
공회 인물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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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록 이해에 중요하기 때문에 설교록의 설교 배경 또는 설교록의 인용을 보충하는 자료입니다. 설교록에 언급되거나 목사님이 거쳐 온 걸음에 연관 된 분들을 파악하려고 노력한 이유는 설교록의 내용이 너무 엄청난 것이 많아서 자칫 지나친 자기 자랑이나 과대한 선전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씩 살피면서 이 노선과 설교의 또 다른 세계를 봤고, 오늘 우리의 소망이 되기도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