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수

공회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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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내용 개인 정보 일부 비공개 조처. 22.8.19

김기수/나병재 관련 상기 내용 중 다음 자료를 비공개로 전환합니다.


원글 : /초기화면/총공회/자료/인물 '11507번, 김기수 - 서부교회의 대표적 교인, 전도의 생애 " 2022.04.03'

근거 : 상기 게시판의 12073번, 나병재목사 개인 정보 수정요구 나병재 목사 2022.08.19

'노력하는 목사님께 감사하며 목사님의 영육 강건함을 기도합니다^^ 저의 가족이 근번에 사이트에 저의 이력을 보고 나병재목사님의 개인적 성장 과정은 삭제를 요구합니다^^ 학벌이라든지 목사님 면담과정 이라든지 이런건 삭제를 요청합니다^^


꼭 부탁합니다^^'





나병재 조사님

① 신상


1962년생, 1990년 3월 2일 김인선 반사와 결혼식.


누나 부부가 중간반사 서용오 나복희 선생님. 나복희씨는 현재 괴정교회에 다니시고 서용오씨는 지금은 용두산 쪽 어느 교회 집사님으로 충성.


서울이 고향이며 오남순 모친이 가정 문제로 부산에 이사 온 후 동대신동 살 때에 추순덕 구역의 백말년 집사님에게 전도를 받음. 어릴 때에 서울에서도 교회는 좀 다녔으나 부산에 와서는 출석하지 않았는데 먼저 다니신 어머니를 따라 교회를 갔고 백익인 집사님의 반 학생이 됨.


1973년경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시점에 주일학교를 출발하면서 바로 8명 정도 학생들을 맡아 보조반사 역할.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하던 시절에 윤정숙 집사님이 야학인 상록학교 교사였기 때문에 중등 과정은 공부를 했고,


② 생활


야간학교를 다니며 제조업 직장을 다니고, 배우자는 마음이 있다 보니까 뭔가 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늘 공장만 있겠다. 해서 자격증 공부를 해서 고압가스 냉동관리사 등 당시에 부산경남에 몇 개만 나오는 자격증을 4개를 취득하였음 당시에는 자격증 대여만 해도 월급만큼 나올 정도. 중간반사 들어 올 때는 그 자격증들을 다 버리고 출발하였음


③ 신앙생활


주일학교를 졸업할 때는 중간반이 없어서 바로 장년반에 출석했고, 당시 장년반에는 학생들 별로 없을 때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질문을 하면 꼭 나 조사님에게 했고 대답도 잘 하고, 스스로 대답을 하기도 해서, 손성준 이동근 장로님 등의 눈에 띄었으나, 중간반 제도가 없어 잡아 주는 사람이 없다 보니 교회를 오가다 6-7년간 세상적으로 방황을 함. 나중에 신앙생활하면서 그 때 중간반 반사의 중요성을 실감 했고 누나 부부가 반사하는 것을 볼 때에, 중간반 반사들은 반사를 하다가 목회를 나갔고 목회를 나갈 때 마다 당시에 학생들은 반사가 바뀌면 교회 출석까지 요동치는 것이 좋지 않다 생각 하였고 될 수 있으면 반사가 바뀌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는데 백목사님도 그와 관련된 평생직 중간반 제도를 말씀 하셨고 마침 1989년 김춘도 목사님이 찾아 와서 평생직 중간반사를 해 보자고 권유함. 생각하고 있던 차에 추천이 있어 하겠다 했고, 후에 김춘도 목사님께 누가 추천했는지 물으니까 이치영 목사님이 했다고 말함.


중간반사 등용 때 5층 백 목사님께 김춘도 목사님 없이 4명이 직접 올라가서 면접을 봤는데, 학력 등을 물어 보면서 학생들 지도하는 데는 세상지식도 좀 필요한데 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면접을 본 유주열(남해 출신. 경남대 법학과) 선생님과 홍순호(부산대 국문학과) 선생님은 학벌이 좋았고 나 조사님은 공부를 많이 못하였고. 또 집안 사정을 물어 보시면서 장남이니까 다른 사람들은 넉넉한데 장남으로서 집안을 돌봐야 하지 않겠나 라고 물어 보셨다, 이어 나 조사님은 주님 부르시면 순종하겠다고 했으나 속으로는 여러모로 등용되지 않겠다고 생각을 하던 중, 며칠이 지나 김춘도 목사님께서 전화 와서 반사로 허락이 나왔다 해서 그 순간 온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음.


④ 중간반사


1989년의 중간반 재구성 때 반사는 사례가 13만원, 가 감봉을 적용하되 80명 기본수에 월 평균 1명이 증가하면 1,500원의 월급이 추가 되었고, 김인선 선생님은 편집실 근무 때와 비교하면 중간반사를 하면서 100만원을 모아서 결혼할 때 아버지께 드렸고, 나병재 조사는 이미 당시 사회생활을 하면서 월 60만원을 벌고 있었음.


1989년에 재구성한 중간반은 평생계약서 조건으로 등용되었고 60세를 정년으로 하되 마지막 3개월 치 월급을 평균으로 정하고 직분을 그만두지 않는 한 종신 지급하는 평생직을 보장하였으며 계약서는 남녀 부장에게 제출했으나 전체를 백명희 부장 선생님이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됨. 백 목사님은 ‘너희는 결사대’라 하셨고, 백 목사님 사후에 서부교회를 원래 노선으로 지킬 사람들이라는 사명을 주심.

세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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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록 이해에 중요하기 때문에 설교록의 설교 배경 또는 설교록의 인용을 보충하는 자료입니다. 설교록에 언급되거나 목사님이 거쳐 온 걸음에 연관 된 분들을 파악하려고 노력한 이유는 설교록의 내용이 너무 엄청난 것이 많아서 자칫 지나친 자기 자랑이나 과대한 선전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씩 살피면서 이 노선과 설교의 또 다른 세계를 봤고, 오늘 우리의 소망이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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