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학일-3
내용 | 진학일 목사님 부인 : 백 목사님이 '전우'라 하신..(3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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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강희주 사모님, 남편 진학일 목사님
별세 : 2021.8.30. 아침 5시
출생 : 1931.11.23.
결혼 : 1951년 위천교회
* 세부 내용은 장례 진행에 따라 추가합니다. 일단 다음 내용을 적습니다.
백영희 목사님은 생전에 '전우'라고 부른 분이 2명이었습니다. 천세욱 진학일, 두 분이 6.25 점령 기간에 점령지에서 평소 예배를 모두 계속하면서 목사님과 함께 교회를 지켜 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만을 두고 말한다면 위천의 교인들은 더 많겠지만 천세욱 진학일 두 분은 당시 초등학교 교사로서 6.25 전쟁 직전인 1949년부터 당시 국기배례 사건으로 어린 주일학생들을 지도하며 적접 지역인 위천에서 한국교회사에 기록 될 고난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국법을 바꾼, 위천교회 주일학교 - 1997년 출간'에 자세히 소개 되었고 진학일 천세욱 목사님의 개인 소개는 '초기화면/총공회/자료/인물'에서 참고하기 바랍니다.
위천 지역은 1948년 여순반란사건을 일으킨 주모자들이 위천까지 세력을 뻗쳤고, 이미 좌익의 실력자들이 암약하고 있었으며, 지역적으로 지리산의 빨치산들이 북한을 오가는 요충지이며, 거창경찰서가 이들 빨치산에게 점령까지 당하고 불 태워 지는 상황 때문에 6.25 전쟁 전에 이미 최전선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반란 사건과 이 지역이 전투 지역으로 전개 된 표면적 이유는 1948년 8월 15일에 남한 정부가 단독으로 정부 수립을 하면서 그 표시가 태극기였는데 위천교회는 제2계명의 우상 금지 때문에 태극기 배례를 거부하게 되자 이 사건은 일반 종교 분쟁이나 학칙 위반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좌익의 조직적인 내란 선동으로 다루어 졌습니다. 당시 위천파출소와 거창경찰서에는 좌익을 잡는 사찰계 조직이 전투 분위기로 살벌했는데 이들은 어린 주일학생 50명 이상이 초등학교에서 집단 저항하는 것은 천세욱 진학일 2명의 교사에 그치지 않고 그 배후에 백영희 전도사가 두목이라고 봤고 그 수괴를 잡아 들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2명의 교사는 목회자는 목회자의 신앙이 따로 있고 그 목회자는 그의 설교를 할 것이나, 교사 자신들은 신도로서 제2계명은 상식이기 때문에 당연히 자신들의 양심으로 거부한 것이라고 버티며 사찰계의 혹독한 고문 협박에 맞섰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백 목사님은 평생에 그 2명을 동지로 아꼈습니다.
이로부터 20년이 더 지나고 제천의 남천교회에 같은 문제가 생겼을 때 주일학교 교사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여 백영침 담임 목사님이 감옥을 가게 됩니다. 이 사건 때문에 위천교회 당시 진학일 교사의 신앙과 지혜와 처신은 더욱 빛을 발합니다. 오늘도 평소에는 온갖 큰소리를 치다가 막상 자기에게 책임이 돌아 올 상황이 되면 모두가 발을 빼 버립니다. 도장도 마구 찍어 주고, 목사 설교는 목사 자녀들의 것이라며 복음을 배신하는 일은 서부교회와 모든 공회들에 흔한 일입니다.
장례일정
일시 : 2021년 9월 1일 화요일 오전 8:30
장소 : 포항성모병원 장례식장 2호실
하관 : 포항시립우현화장장
장지 : 경주공원묘지
교회 : 포항대흥교회 조지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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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공회 이름을 사용하는 곳은 많다. 총공회 이름으로 인사할 곳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주남선 목사님의 자녀 주경순 권사님과 주경효 장로님의 장례라면 백 목사님은 인사를 표시하는 곳이다. 천세욱 목사님의 사모님 장례도 그렇다. 이 번에도 그렇다. 연구소가 알아서 모두 하고 있다. 이경순 사모님의 장례식 비용도 전부 이 곳에서 지출했다. 서부교회나 각 공회들이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면 우리는 가장 작고 약하기 때문에 양보하고 싶다.
포항 대흥교회는 고신 소속이며 백영희 목사님의 손주가 집사로 계신 곳입니다. 2018.11.11. 공동의회에서 선출 되었습니다.
공회 인물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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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록 이해에 중요하기 때문에 설교록의 설교 배경 또는 설교록의 인용을 보충하는 자료입니다. 설교록에 언급되거나 목사님이 거쳐 온 걸음에 연관 된 분들을 파악하려고 노력한 이유는 설교록의 내용이 너무 엄청난 것이 많아서 자칫 지나친 자기 자랑이나 과대한 선전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씩 살피면서 이 노선과 설교의 또 다른 세계를 봤고, 오늘 우리의 소망이 되기도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