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교회

공회교회 개척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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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교회

비고 대구 명성교회

(공회의 대전 지방 역사 25.11.28)


* 이름: 문준집 목사님, 1951생.

* 신앙 출발 

19세쯤 대전 대동장로교회를 출석

1974년 3월에 이원일 목사님이 선화동에서 동북교회를 개척하고 대동장로교회의 기도산을 사용하게 되면서 대동장로교회 목사님이 교회 내 고등성경학교의 성경 강의를 1주 1시간 맡겨 이원일 목사님이 진행. 이원일 목사님의 성경 강의가 워낙 특별하여 대동교회의 젊은 사람들이 열몇 명이 함께 그 해 8월부터 동북교회로 다니게 되었고, 문준집은 그해 12월이 내년의 신년 연초 행사 때문에 교회가 집사를 임명하는 등 준비를 하게 되며 집사 말이 나올 때 담임 목사님에게 말을 하고, 23세쯤 동북교회 이원일 목사님께로 간다고 정식으로 말하고 교회를 옮겼고 같이 간 청년들이 많았으나 문준집만 동북교회에 끝까지 남음


* 부산공회

백 목사님 생전에 양성원에 입학을 해서 한 학기 공부할 때 문석표 백차인 신두범 같이 한 기억. 목회 나오기 전 설교록 100호부터 182호를 다 읽어 보면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공회에 대해 인식이 제대로 된 듯. 목사님 돌아 가신 후 1991년경? 대구공회보다는 부산공회가 목사님의 원래에 맞다고 생각하여 부산으로 양성원을 다닐 때 임시 총공회장이었던 이재순 목사님과 대화를 했고, 부산공회 소속으로 용천교회를 집사로 개척. 입당 예배 때 이재순 목사님이 오셨고 장사를 하기 때문에 교역자회를 출석할 수 있었으나 불가피할 때는 가지 못할 때도 있었고, 교회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는데 원금과 이자 변제가 어려웠고 92년 12월 이후 서영호 목사님의 시무투표 문제로 교역자회가 양측의 분쟁이 극심. 이재순 목사님께 당분간 교역자회를 가지 못한다고 통고를 하고 1993년 4월 이후 공회와 연결이 끊어짐. 교학실 김영환 직원이 전화로 여러 차례 참석해 달라고 했으나 부산공회와 끊어짐.


* 대구공회

대전에서 집사로 여전히 용천교회를 유지는 하고 있을 때, 대구공회의 이진석 조사님이 대전에 한서교회를 개척했고, 1-2년 후 유학을 가면서 임상렬 목사님이 후임으로 한서교회에 왔고. 임 목사님이 3년인가 있다가 타처로 이동하면서 후임으로 신화식 목사님이 오셨고, 신화식 목사님이 오셔서 한서교회를 명성교회로 바꾸고 지하에서 지상으로 예배당이 올라 오게 되었는데, 그 후임으로 서부교회 중간반 출신 지경식 목사님이 계시다가 이유빈 장로의 ‘예수 전도협회’에 들어 가면서 교회를 비워 후임으로 온 분이 서부교회 출신이며 지금은 은퇴하신 임규완. 7~8개월이나 계셨지만 건강이 어렵고 사모님이 없어 혼자 계시기 어려워 부산의 아들 집으로 갔고, 그래서 ‘용천교회’와 ‘명성교회’를 합하면서 대전 명성교회로 지금까지 존속.



* 동북교회 출신

* 임상렬 목사님

대전북부교회? 쪽에서 문준집보다 늦게 동북교회로 왔고 충남대를 다녔으며 이원일 목사님께 그 모친이 아들을 목사 시켜 달라고 했고, 이원일 목사님이 나와 1년 정도는 기도원을 함께 다니고 성경을 읽고 기도부터 하면서 나중에 목회자가 되려면 서부교회 가서 반사도 하고 직접 목사님께 배우라 하였으며, 훗날 서부교회에서 노동도 했음


* 김용호 장로님 

전매청 신탄리 제조창 근무하는 분으로 설교록이 좋아서 녹음과 타이핑으로 자료화를 했던 분. 편집실만큼 또는 더 많이 자료화를 했다는 말도 있으나 그렇지는 않을 듯.


이름 설립 자립 개척 추가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