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교회-4

공회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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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교회-4

비고 90년 4월의 '서부교회 재독 공청회'

90.4.2. 서부교회 재독 공청회 사건




1.백목사님 사후 소사


⑴일시: 1989.8.27.


①사건: 백목사님 사후 노선 분리


②요약:


백목사님의 장례 후 서부교회에 강단을 맡을 적임자가 없자

생전부터 설교자료를 녹화하고 재독으로 설교를 대신 했던 전례를 따라

서부교회는 매 설교시간을 과거 설교자료를 재독하며 과도기를 보내고 있었고


서부교회의 재독예배를 두고 총공회와 서부교회에는 두 가지 흐름이 있었으니

백목사님 사후에도 총공회 원래 신앙노선을 유지하자는 보수측은 재독을 찬성했고

백목사님 사후에는 총공회 신앙노선을 수정해야 한다는 수정측은 재독을 반대



⑵1989.10.17.


①사건: 총공회의 재독정죄 분쟁


②요약:


백목사님 사후 총공회 방향을 의논하기 위한 임시총공회가 개최되자

총공회 교권을 확보한 수정노선 측은 재독을 우상의 죄라고 결의를 강행하고

총공회적으로 소수나 서부교회 교권과 다수를 확보한 보수노선은 결의 자체의 무효를 주장하여

총공회는 두 노선으로 나뉘어 분쟁 진행




⑶1990.3.4.


①사건: 주일예배 재독설교 도중의 집단 방해


②요약:


총공회가 두 노선으로 내면 분리되고 서부교회 내에서는 수정노선이 소수가 되자

서부교회 내 수정노선에서 재독예배는 우상예배이며 죄가 된다는 명분으로

수정노선 교인들이 예배 진행을 막기로 하고 주일오전은 어린 교인들을 위해 자제하고


매 주일 오후예배 재독설교가 진행되는 동안

미리 준비한 합판 조각 2개씩을 가지고 집단으로 박수를 치고 의자를 치며

2대의 핸드마이크로 설교 시간 한 가운데서 찬송을 인도하며 설교 끝날 때까지 소음으로 예배 방해


90.3.4.주일 수십 명, 3.11.주일 50여 명, 3.18.주일260여 명으로 확대되자

90.3.25.주일에는 수정노선 예배방해 교인들이 예배당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보수노선 교인 300명이 예배당 입구 계단에서 예배 방해 교인들의 진입 차단


부산 최대규모인 서부교회 예배당 입구에서 주일 대낮에 벌어지는 이 사건 때문에

서부교회와 공회의 혼란은 극도에 달하고 주변 이웃 불신자들의 비판도 한껏 고조되었으며

이 모든 갈등 과정에서 수정노선교인들은 '재독이 우상죄'라고 일제히 말을 맞추게 되자

총공회 분리의 모든 원인은 재독 문제로 부각




⑷1990.3.5.


①제목: 총공회의 양분


②요약:


총공회 내부 두 노선은 6개월 간의 논쟁과 투쟁을 총결산해도 함께 갈 수 없어

1990년 총공회를 분리 개최하고 나뉘고

부산 서부교회에서는 과거 총공회 신앙노선 유지를 선언한 '부산공회'가 시작되고

대구 달산교회에서는 과거 노선에 대한 수정을 주장한 '대구공회'가 발족


총공회는 이로써 공식적으로 두 개의 신앙노선으로 나뉜 두 개의 총공회가 되었고

수정노선은 대외 명분과 투쟁의 시발을 '재독'으로 삼았으나 내면은 노선 수정이었고

보수노선은 명분도 절차도 내용도 신앙노선 유지를 두고는 타협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양측의 분리는 자연스럽고 필연적

이 분리과정에서 발생한 소요는 양측의 인간적 실수가 다소간에 있었으며 이는 별개 문제




2.재독 관련 부산공회의 '공청회'


⑴1990.3.6.


①사건: 총공회 세부 안건


②요약:


05:20, 총공회 전체회의 2일째 속회가 있었고

08:00, 총공회 노소원회의 구성과 몇 가지 중요한 안건이 의논


③총공회 노소원위원회 구성


(노원위원회)

노원장: 김응도

행정위: 이진헌 김응도, 교훈위: 최재현 송종관, 목회위: 김삼암 천세욱

개척위: 권오정 이만기, 경제위: 김상수 강행수 추은덕


(소원위원회)

소원장: 송종섭

서 기: 이영인

행정위: 김호경 김정웅 최현수 송종섭 이병철

교훈위: 이영인 김영환 이치영 김수복 김윤수

목회위: 이민영 서영호 이상규 백석도 전성국

경제위: 이창주 정정표 이탁원 신상만

개척위: 장영목 김춘도 구의남 이종출


*이재순(고문: 서부교회의 분쟁이 진행 중이어서 공회적 직책은 면제)



④양성원

원 장: 서영호(3년 임기)

교학실: 이영인(본인 고사) -> 송종관

운영위: 최재현 이재순(상임), 총공회장 소원장 노원장(1년직)

교 수: 서영호 최재현 송종관 이영인 송종섭



⑤지방공회

-원칙: 대구공회에서 돌아올 사람과 장차 성장할 소망을 가지고 현 골격유지

-구성:

서울: 권오정, 부산: 김삼암, 충청: 이만기, 대구: 최재현

남해: 이재순, 호남: 김응도, 거창: 이상규



⑥재독 공청회

(취지)

대구공회의 재독 정죄 논리가 어린 교인들에게 너무 큰 미혹이 되어

서부교회는 매주일 예배시간이 엉망이 되고 전국 교회의 여파도 엄청나게 크므로

공회 내 각 분야 인물에게 재독 입장을 공개 설명하여

재독이 성경과 총공회신앙노선에 옳은 것이며 신학과 상식 차원에 문제가 없음을 확고히 할 것


(발표)

-신학: 서영호

-성경: 김응도

-노선: 이영인

-현장: 구의남

-상식: 송종섭

-사회: 최재현


(준비)

장소 광고 등 실무 지원은 서부교회




⑵1990.3.15.


①사건: 양성원 운영위 교수회 합동회의

일시: 14:00

장소: 양성원(서대신동)


②요약:


-양성원 운영방향

(원칙) 백목사님 생전 운영 보수 원칙, 백목사님 교훈 기록 세칙 근거, 경건회 유지 등

(각서) 원칙 합의 후 교수와 운영위원 전체의 연명 각서 제출 제안 - 이재순

운영위와 교수 전원의 찬성과 서영호목사님의 서명 거부로 결의 무산


-백목사님 성경과목 후임

이영인 선정 -> 본인고사 -> 김응도 선정


-공청회 개최

(일시) 1990.4.2.-4.3. 19:00-20:00

(시간) 발표자 별 30분씩

(사회) 최재현

(발표) 서영호 김응도(4.2.), 송종섭 이영인(4.3.)




⑶1990.4.2. 19:00


①사건: '재독' 공청회


장소: 서부교회 본당

사회: 최재현

발표: 서영호 김응도


②요약:

(발표)

-서영호: 재독은 죄는 아니지만 위험하기 때문에 조심할 사안

-김응도: 재독은 죄도 아니지만 은혜가 되기 때문에 강하게 해야 할 사안



③발표회 중단

(발단)

서영호목사님의 발표가 재독이 위험하여 재독을 피해야 한다고

서부교회 2층 본당에서 전체 교인을 상대로 확실한 공개 발언


(과정)

서목사님이 1차 발언이 끝난 뒤 김응도목사님의 2차 발언이 30분 지속될 때

보수측 교인들이 긴급 연락을 취하여

수정노선 교인들의 예배 난동을 몸으로 막는 청년들을 이끌던 핵심 행동 책임자 10여 명이

공청회 발표가 끝나고 강단에서 내려오는 서목사님을 그냥 두지 않겠다고 격분한 상태가 되었고

핵심 지도부의 지시가 있으면 바로 행동으로 나설 교인들은 수십 명이 넘었던 바

훗날 서목사님은 전혀 다른 시기에 다른 사안으로 인하여

예배 강단 위에서 소수 반대측 교인들에게 폭행을 당하여 크게 부상을 입게 되는데

이 날 공청회 당시는 서부교인 전체가 하나였고 서목사님에 대하여 격분을 할 때였으므로


당시 서부교회 주일예배 도중의 극단적 충돌 때문에

재독을 반대한 서목사님에 대한 타격이 예상 못할 사태로 갈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이영인조사가 공청회 후에 서목사님이 강단에서 내려오기 전에

먼저 예배당 출구를 봉쇄하고 있던 교회 청년 지도부들을 만나

어떤 경우라도 주먹이나 욕설을 하게 되면 수정노선 교인과 꼭 같은 사람이 되는 일이며

서목사님의 잘못된 발언에 대하여서는 발표자 서목사님을 상대할 것이 아니라

서목사님과 같이 잘못된 발언을 할 인물을 발표자로 세운 공회 교역자회와 노소원회를 비판하는 것이

순서라고 현장에서 설득하여 상황 종료


당시 서부교회 분쟁에서 현장에 동원 된 청년들은 주일학교 반사들이었고

수백 명 청년 반사의 핵심 지도부는 조일원 정만수 최갑용집사님 등이었으며

핵심 지도부를 통해 반사들의 움직임을 총괄한 분은 장영목조사님이며

장목사님은 당시까지는 이 홈 답변자와 뜻을 같이 한 서부교회 5명 직원 중 한 분이었고

답변자가 현재 이 홈에서 소개하는 이 노선의 원칙과 이 노선의 방향을 가지고 설명하면

당시 장조사님은 답변자의 모든 설명을 존중하던 때



(종료)

일단 첫날 공청회 발표장의 불상사는 막았지만

열심있는 서부교인들, 특히 최종 책임자들은 서목사님을 발언자로 세우고 그렇게 발언하게 만든

교역자회와 공회의 노소원위원회를 세살 먹은 철없는 아이들로 생각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어

서부교회가 청원을 하고 공회가 개최하기로 했던 재독 관련 공청회는

서부교회 핵심 교인들이 요구하여 당장 중단.





3.질문자께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당시 서부교인들은

서목사님에 대하여 신학교 교재나 읽고 소개하는 강사로서는 훌륭한지 모르지만

한 교인의 상처와 고통을 느끼는 목회자로서는 낙제점 이하라고 당시 서부교인들이 일치 평가했고

평소 이 노선에 대한 그분의 부정적 시각과 행동을 알고 있기 때문에

교회의 중심부로 올라갈수록 서목사님에 대한 반감은 타 교파 인물 보듯 했으며


재독을 두고 공청회를 개최할 당시

서부교회는 주일예배가 통째로 무너지며 극단적 위기감에 휩싸여

그날 재독을 반대한 서목사님을 예배당 안에서 그냥 두 발로 걸어나갈 수 없게 하겠다고

청년 교인들은 물론 그 지도부와 서부교회 최종 책임자들은 격분을 했는데


07.4.2.의 그날 저녁으로부터 불과 8개월 만에

서부교회 교인들은 서목사님께 그들의 천국 준비를 앞서 이끌어 주시라고 담임목회자로 결정했고

전체 서부교인들은 전원일치로 서목사님의 서부교회 담임목사님 부임을 찬성했으니

이 홈의 답변자 개인 입장을 전혀 무시하고 서부교회 당시 교인을 기준으로 말할 때

이것이 도대체 무슨 조화이며 무슨 변덕인지

도저히 맨 정신 가진 인간으로는 이해를 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때 그렇게 반대를 하지 말든가

아니면 그렇게 격분을 했더라면 그 뒤에 청빙을 하지 말든가

무슨 세상 정치가들이 야당 여당을 오가며 좌익 우익을 오가는 것도 아니고

이권 따라 움직이는 일반 교단도 아니고 신앙노선 하나에 생명을 건다는 총공회에서

그것도 총공회의 중심 중에 중심인 서부교회의 가장 핵심 교인들이


불과 8개월 후면 휘떡 뒤집어질 자신의 행동을 알지 못하고

그렇게 격분을 하고 나섰던가?



당시 강단에서 내려오는 서목사님 얼굴에 주먹이 날라가거나 적어도 멱살을 잡아 팽개치고도 남을

그때 그 격분을 가졌던 서부교회 핵심 지도부 교인들은

그 당시 그들이 가진 격분의 내용이 무엇이며

그 격분은 무엇에 충격을 받아 나온 것인지....


다른 사건은 한번씩 재론이라도 되지만

그때 그 사건은 재론조차 되지 않고 그때 서목사님을 그렇게 격분하고 막고 나선 이들이

지금은 그분 밑에 충성된 양떼가 되어 백목사님 생전과 반대 방향으로 지도하는 서목사님을 따라

백목사님 때보다 더 조용히 충성하고 순종한다고 보이는 정도인지


이 홈이

서부교회를

서부교회 전체 신앙을

서부교회 교인들의 숫자와 교인 한 분씩의 개별 신앙의 실력과 수준을

숫자에 계산하지도 얺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인데


이제

자세히 설명을 해도

서부교회 담임목사님의 소신있는 목회에 전혀 영향이 가지 않을 정도로

서부교회는 서목사님의 지도 하에 안정적으로 나가고 있으므로


이번 질문에 대하여서

답변자가 비교적 소상하게 설명하는데 별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이름 설립 자립 개척 추가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