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가는, 막가는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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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람이라서 사람이다. 사람이란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사람의 생각을 하며, 사람의 말과 행동을 한다. 그래서 사람이다. 짐승과는 다르다. 사람이 사람다울 때 도덕적이라고 한다. 도덕이란 사람이 사람다운 기본적인 모습이며 도리다. 도덕을 잊고 잃으면 사람의 모습 이하로 떨어진다. 인면수심이란 그래서 나온 말이다.
세상에 사람은 많다. 현존하는 인구가 대략 80억이다. 80억이면 아주 많은 숫자이다. 사람이 많다 보니 별별 사람이 다 있다. 사람은 사람이라서 사람의 본 모습을 잊고 잃고 살 때가 많다. 너나 할 것 없이, 사람이란 상황에 따라 그렇게 될 수 있다. 사람은 별사람이 없고, 예외적인 사람이 없지는 않으나 일반적으로 사람은 대동소이하다. 누구든지 그럴 상황이 되면 사람은 사람의 모습을 잊고 잃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자기도 모르게 그 순간 수성이 된다.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것이 사람인데, 그것을 그냥 방치하면 사람 사는 세상, 인간 사회가 엉망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경험 속에서 만들어 낸 것이 규칙 곧 법이다.
법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 같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만 있으면 법이 필요 없는데, 법이 없으면 안 되는 사람들 때문에 법을 만들었다. 말하자면 범죄 가능성이 있는 자들 때문에 만든 것이 법이다. 법은 몽둥이고 족쇄며 감옥이다. 그래서 법이란 그 수준이 아주 낮은 저급의 차원이다. 양심으로, 도덕으로, 사회 규범으로도 안 되면 막판에 가는 곳이 법이다. 법대로 하자고 하면 막가는 것이다. 대개 법이라고 하면 높은 차원인 줄 착각한다. 법은 막가는 수준이다. 법을 공부한 판사 검사 변호사들이야 최고 수준들이지만, 그들이 상대하는 사람은 다 범법자들이다. 막가는 사람들이다. 그 세계가 법이다. 법이란 그런 것이고 그런 수준이다.
노곡동을 두고 한쪽은 대화하자고 한다. 한쪽은 대화가 필요 없고 법대로 하자고 한다. 노곡동 문제는 교회 일이고 교회의 최고 위치인 목사들의 관계이다. 그 목사들이, 신앙 이치도 아니고, 양심도 아니고, 도덕도 아니고, 막가는 수준인 법대로 하자고 한다. 법이란 가장 낮은 수준인데, 막가는 것인데, 범법자들이 가는 곳인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목사들이, 다른 일도 아니고 교회 안의 문제를 그들 스스로 자청해서 기어코 가장 저급의 수준인 법대로 하자고 한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신앙으로 생각하고, 양심으로 생각하고, 인간 도덕 수준에서 생각해도, 백 번을 생각해 봐도 대화로 해결하는 것이 옳고 좋을 것 같은데, 왜 굳이 막가는 법으로 하자고 하는지? 법으로 간다는 말은 몽둥이, 족쇄, 감옥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뜻인데, 자신들이 그런 수준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것인데, 알고는 있는지? 그들은 신앙 세계 최고의 위치에 있다는 목사들인데, 그들의 신앙을 떠나서, 양심은 두고라도, 그들의 지적 수준이 의문스럽다. 도대체 그들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참으로 불가사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