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김응도목사님의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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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김응도목사님의 회상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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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현동교회 홈을 방문하여 올라온 글을 캡쳐해서 이곳으로 옮겨 왔습니다.
아현동교회 담임목사님이신 김응도목사님이 백영희목사님, 김현봉목사님을 가까이 뵙고 그분들에 대한 회상을 한 글로서 이곳에서 소개한 백영희목사님과,김현봉 목사님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되는 것 같아 새롭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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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
일시: 1996.10.22.8:40-15:00
장소: 삼각산기도실 (서울시 종로구 구기동 245번지)

1.신상

생년: 1933. 11. 1.
출생: 평안북도 영변
성명: 눅1:1 뜻으로 이름

2.6.25전쟁

1950년 6.25 전쟁에 인민군으로 참전, 1951년 가을 거제도에 포로로 수용, 1953년 이승만박사의 포로석방 조처로 부산에 거주, 친구가 서부교인이었고 당시 자유당 치안국장인 문봉근의 누님되는 문봉례집사가 서부교회를 출석했으며 그 아들의 전도로 서부교회 출석.

수용수 석방 후 여러 다른 교회를 가본 것과 비교가 되었고 다른 곳에서 받은 느낌은 세상공부가 있어야 되겠다고 느껴졌으나 서부교회는 성경대로만 하기 때문에 나도 기도하고 성경만 열심히 봐도 되겠다고 느껴졌고 예수를 믿으려면 저렇게 믿는 것이 옳겠다고 판단되어 서부교회로 확정.

3.서부교회 신앙생활

백목사님 설교는 은혜로웠고 그 설교를 듣고 뭐든지 그대로 하는 것이 모든 생활. 생활은 장사를 주로 하였고, '대한셀룰로이트공업회사'에 취직했다가 25세에 목회 출발. 당시 목사님 거의 매주 집회 인도 때문에 출타하며 청년들이 설교 인도. 월요일 새벽을 주로 맡음, 철야기도를 하고 있으면 지나가면서 ‘새벽기도 인도해’그렇게 시킴.

1954-5년 남전도회 첫조직, 회장 박신한집사님 전도 부장을 김응도가 맡음, 주일 오전 예배 마친 다음 첫 노방전도를 나가는 날 비가 오기 시작했고 바로 나가자는 주장과 다음에 가자는 주장으로 실랑이, 백목사님 설교 마치고 2층에서 내려오다가 '가는 것이 승리!'라는 한 말씀을 던지고 지나침. 다음에 가자는 사람이 미안해 할 것 같으니까 빨리 지나치는 백목사님. 목사님 자신부터도 전도에 철저했고 전도를 계속하기 위해 몸이 아프면 예배당 앞에서 전도를 해도 계속했고 심지어 주일오전예배 시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도 전도를 위해 예배당 문 앞에서 두리번 하던 모습에서 깊은 인상. 집회 인도를 가도 전도지를 챙겨나가면서 '좀 전해야 화를 면하지' 혼잣말. 청량리교회에서 내수동교회까지 가면서 '주의 재림이 가까웠습니다' 외치며 가는 분이며 그 전도가 힘이 있었음.

4.연경과

1956년 백목사님은 서부교회 자체적으로 목회자 양성을 위해 청년들을 학생으로 '연경과' 과정 운영. 강사로서는 한동희조사님이 창세기, 장렬집사님이 총각으로서 교회사, 조직신학 이말출, 성경신학 나인숙집사님이 각각 맡고 백목사님께 지도 받아가면서 강의. 저녁에 한 번씩 강의하던 것을 '연경과'라고 이름까지 붙여 1년 1학기 과정으로 운영.

성경과목은 먼저 성경 8장을 연속 읽고 그다음 1장을 두 번 읽으면서 주어진 과제에 답을 적어가는 것이며 양심으로 정독을 하고 답을 쓰게 함. 과제는 고친 것, 고칠 것, 현재 고치는 것이 있었고, 기른 것 길러 갈 것 또 현재 기르고 있는 것을 적게 함. 또 만든 것, 만들 것, 만들고 있는 것 이렇게 주어짐. 각 장마다 큰 뜻 또 모르는 것은 마지막에 위에 과제에서 다시 시작시킴.

병원에서 사람을 고치듯 성경을 가지고 자기를 고쳐 나가게 하면서 성경을 깨닫게 하였고 성경에 대하여 많은 말씀으로 지도. 그다음 해 2학기를 다시 받아 나가다 민수기 정도에서 연경과를 중단. 이유는 행함이 없어 아는 것으로 교만을 우려.

5.가까이 뵙던 백목사님

1961년 제대 후 2개월 간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방석을 2개 챙겨 동아대학교 뒤 구덕산으로 다님. 그렇게까지 오랫동안 기도할 것이 없어 눈을 떴다 다시 기도하는 반복 중에도 목사님은 일부러 위험한 바위를 택해 기도하는 모습, 해가 부산 앞 바다에서 떠오르기 시작하면 햇빛의 일부분이 목사님을 비취면서 그 모습이 천국의 햇빛 같아 보이고 하나님과 만물이 환영 고대하는 그런 모습으로 은혜.
기도 중에는 이남과 이북에 대한 국방 기도가 늘 있었고 나이 많은 사람들은 쭉정이지만 자라나는 어린 학생들을 보시라는 기도

금정산 기도 중에 목사님 세수법을 볼 수 있는 기회, 원주 하종택목사님도 동행한 기도였고 비누를 사용할 때는 손에 물을 적시되 비누를 묻힐 수 있는 정도로 최소한만 우선 바르기 때문에 다시 비누를 놓아도 비누에 묻은 물기가 없어 비누 아래 부분이 조금도 녹지 않도록 하는 자세.

성경 찬송을 들고나서면 반드시 먼지를 닦고 어깨 밑에까지 바짝 당기는 자세, 찬송을 부를 때 늦게 오는 교인을 쳐다보지 않는 것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 찬송가를 다 외웠기 때문에 찬송가 없이 목사님을 따라 간 적이 있는데 목사님은 알아도 찬송가 책을 가지고 보면서 하는 것이 겸손이라 가르침. 그분은 찬송가를 부를 때도 부동자세로 떨고 보시니 그 모습에서도 은혜, 기도할 때 자세는 양쪽 엄지손가락을 맞잡고 다른 손가락도 전부 안으로 들어가도록 잡아 동상에 걸리지 않도록 하심. 박영기조사님은 양손가락으로 꽉지를 끼는 형.

6.박영기조사님, 3대 부흥사

백목사님이 꼽는 한국의 3대 의인은 한부선선교사, 박영기조사님, 김현봉목사님이며, 고신의 2대 부흥사는 백영희, 박영기였고 3사람을 꼽으라면 김창인으로 다 전도사. 박영기 조사님은 십자가 외에는 전하지 않는 분인데 그는 십자가가 믿어지지 않아서 100일간 12시에 일어나 목욕하고 기도를 계속, 100일만에 시험이 되고 어려움이 왔으며 그 고비를 넘기면서 십자가 대속의 은혜만을 전하게 됨. 백목사님은 늘 같은 설교라도 새 깨달음이 있었고 그분은 노트를 들고 다녔으며 설교 내용이 동일했던 것이 달랐고 그는 후에 교회를 맡지 않고 집회만 다녔고 유랑객이 되어버림. 신학교를 다닐 시간이 없다며 복음을 전했고 부흥회를 수없이 맡았던 분이었으나 같은 내용만 가지고 다녔으며 나이가 많아지면서 영감이 없어지게 되면서 마지막이 아주 어려워짐. 박영기조사님의 한참 때는 가는 곳마다 눈물바닥이 되었으나 노인이 되어 신앙까지 함께 노쇠해짐이 백목사님과 차이.

7.목회출발

①1957년 25세에 경남 선원학교에서 예배 인도, 대예배만 인도하고 새벽예배는 서부교회서 계속 은혜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목사님께 부탁. 새벽기도는 송용조반사가 맡으면서 선원학교를 운영하던 목사님 집에 가정교사. 강경재집사님 남편 김응주목사님이 고아원으로 운영했고 그 아들 사무엘이 계대. 그 해 12월 예배 인도하러 가는 길에 병역기피로 분류되어 1958년 1월 육군 입대. 이어서 송용조반사가 후임. 정식 목회로 시작한 이는 백태영목사님. 백태영목사님은 원래 청량리교회로 최금주집사님이 원했으나 제대로 잡힌 것이 없어 부산에서 배우고 가야한다고 하여 선원학교로 오게 되고 대신 청량리교회는 송용조조사님이 정식 부임했다가 군 기피자로 입대.

②1962년 30세, 월급 500원으로 위산교회 조사로 정식 부임. 백목사님이 기도해서 보냈는데 그것이 바로 인허식이 됨. 25세때 선원교회에 고아원 교역자로 가는데 새벽기도만 은혜받도록 대신 갈 수 없느냐 해서 송용조 반사가 그 집에 가정교사를 하면서 새벽기도를 맡고, 그것이 송용조목사의 길이었다. 3살 아래고 신용인목사 소개로 뒤에 들어왔고 그랬다.

8.김현봉목사님에 대한 기억

①관악산집회

김현봉목사님이 인도하던 아현교회의 관악산 집회를 백목사님과 동행. 아직 백목사님이 조사님이었으나 안수를 먼저 받은 이병규목사님이 자꾸 붙고 배우려고 따를 때. 조사님은 아는 척하는 것이 없었고 풀밭에 자연스럽게 눕거나 대화를 통해서 가르침. 백목사님이 김현봉목사님에게 한번씩 질문할 때가 있었고 김현봉목사님의 물질관이 물질 개악설로 가는 것이라고 말을 했다가 김목사님이 싫어할 때였으나 또 질문. 김현봉목사님의 걸음은 청년이며 군인이었던 김응도가 기를 쓰고 따라가도 따라 붙지 못할 정도였고 그의 발은 아예 땅에 붙지 않을 정도. 한번은 사53:10의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성구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을 때 영혼이 죽었는지 죽지 않았는지를 김목사님께 질문하였고 김목사님은 '아는 것 실행하면 되는데 왜 묻느냐' 면서 회피. 김목사님은 옆을 보지 않으며 말이 없었고 앞만 보고 갈 길만 보고 가는 분.

②거창위산교회집회

거창 위산교회 집회가 있었고 백목사님은 김현봉목사님을 강사로 모시라고 하여 신도범조사님과 김응도조사님이 함께 아현교회 방문. 사택에는 당시 부자들이나 가지고 있던 콜라로 대접. 김목사님은 먹겠냐고 물어보고 예라고 하면 바로 주고 예의 차리면서 괜찮다고 하면 두 번 다시 먹으라고 권하는 일 없음. 식사도 마찬가지. 아무리 배고픈 사람이라도 안주면 다음에는 진실해진다는 생각. 차비를 줘도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어서 해당되는 구간요금을 동전까지 계산해서 떼어 지출.
집회 때 파리채를 들고 와서 쉬는 시간이면 계속 파리를 잡는 분. 살이 보일 정도의 삼베옷을 입었고 건강. 위산교회 집회 도중 강단에서 웃통벗고 하나님 주신 건강을 보라면서 자랑. 냉수마찰을 꾸준하게 하는 분으로 수건은 빨래해야 한다면서 돌로 수건을 대신하여 찬물로 몸을 닦는데 그 돌이 다 달아버린 정도. 강단에서 그렇게 웃통을 벗어 보인 것은 강단에서 의로운 체 하지 말고 생활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교훈이며 또한 강단을 우상시 하지 말라는 평소의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한 듯.

③영도벧엘교회집회

영도에 있던 벧엘교회에서 김현봉복사님 집회가 있었고 백목사님을 따라 갔을 때, 설교를 하다가 좀 쉬고 하자며 설교를 중단. 사택에 들어가서 먹고 쉬고 다시 하는 식. 그날 설교는 '아무 목사 그 목사가 요즘 믿는 일 하고 있나? 안 하지 아마! 믿는 일을 해야되. 요6:27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 믿는 일을 해야 되.' 이렇게 그 내용이 쉬웠으나 그 설교들이 교인들에게 박히고 있었음. 설교도중에라도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는데....' 하는 대목에서는 그냥 눈물을 주르르 흘렸고, ‘내가 혈기 하나 끊기 위해 40년 노력하고 있는데 여기 끊은 사람 있냐?’손들라고 했는데 드는 사람이 없자 '왜 못들어 양심이 간질간질해, 나는 40년 걸려 끊었어. 이렇게 믿는 일 해야 되.' 라고 설교했던 기억이 생생.

④교역자회인도

대구 주암산이나 삼각산에서 백목사님은 교역자를 대상으로 집회를 자주 인도. 김현봉목사님을 모셨을 때 그는 여반들을 다 참석시킴. 교역자만 모아놓고 할 말이 있는 법이지만 여반들을 불러 함께 앉혀놓으니까 이병규목사님은 반대를 잘했으나 백목사님은 그런데 마찰하지 않고 꼭 할 말은 뒤로 조용히 하심. 김목사님은 배우면 되지 여반 앉혀놓는 것이 무슨 상관이냐고 책망. 동침문제가 있었고 김목사님은 동침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침. 김현봉목사님의 부인은 전혀 부부로 김목사님을 상대하지 못했고 김목사님은 아이 낳을 때 동침한 것만이 죄가 아니라고 하는 가르침을 가진 분, 아이를 가지지 않고 낙을 누린 것은 다 죄라고 함.

9.백목사님의 교훈에 대한 강조면을 시대적으로 비교

백목사님의 1950년대 설교는 십자가, 고난 환란, 승리를 계속 강조했고 그다음은 진리와 영감을 많이 말씀. 그리고 물질 이치를 가르치는 순서로 나가다가 다시 진리와 영감을 가르친 다음 십자가 사활로 마지막을 맺음. 사직동교회의 이전 이름인 성은교회로 신도범목사님이 부임할 때 신명기 28장 설교에서 영의 이치와 도덕의 이치 그리고 물질 이치로 순서를 잡았고 영의 이치를 앞세워 도덕으로 나가고 마지막으로 물질 이치로 나가야되며 이것이 역순되면 안된다는 설교로 한 주간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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