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백영침목사님 (미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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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0 00:00
1920년생, 2004.1.15. 85세 임종. 2003년까지 설교는 아직도 계속
1968년 송용조 신도범목사님과 함께 안수받을 때, 대구에서 중생교리로 극심하게 이단 정죄 받고 합동측 경북노회 정죄로 시무 교회 사면, 동성로교회에서 청빙하려 했으나 거절하고 꾸려나온 것이 비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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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6.27. 8:00-20, 전화통화
1)국기배례건
1973년(추산) 나는 제천 남천교회로 부임하고 그해 여름 당시 남천교회 소속 제천중학교 학생들이 국기배례를 거부하여 학교에서 물의가 되었고 학교에서 처벌도 있었고 결국 경찰, 검찰로 이어지는 조사, 구속, 기소까지 이어졌다.
내가 부임후 매주 수십명에 이르기까지 한달에 근 100여명 이르는 전도가 이루어지는 등 그 파장이 제천 주변 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고 당시 경찰서의 경목회에 가입되어 활동하던 대부분 큰 교회 목사들과 달리 그기에 가담치 않는 등 원인으로 경찰이 파악하고 있던 남천교회는 불리하게 오해를 받음. 그 과정에서 경목회원 목사등 시내 타교회 목사들이 경찰측에 협조하여 나의 문제가 구속으로까지 이어졌다.
주일학교 강태호선생님과 함께 ‘국기비기죄’로 정식 구속 기소되었으나 검찰이 집행유예 한 달 정도로 끝낼 터이니까 죄를 자인하고 합의하자는 제의가 있었으나 완전 무죄를 주장하며 1심을 치렀으니 결과는 무죄였다. 그 과정에서 국기배례 거부의 죄목을 국기모독, 반국가행위 등 여러가지로 검토해봤으나 결국 국기경례를 하지 말라고 교수한 죄목 ‘국기비기죄’로 밖에 걸 수 없었다.
나는 해방 후 자유당 때 국무총리 훈령으로 내려온 '국기주목'의 근거를 들었고 국기 경례를 못하게 했다는 문제는 ‘신앙양심상 국기에 절하는 것은 죄가 된다’는 교리는 성경의 교리이고 학생들에게 직접 하지 말도록 지시한 일은 아니고 본인들의 양심대로 한 일이라고 주장했으나, 검찰이 학생들을 유도심문해서 기소할 죄목을 만들었던 것이다.
결국 1심에서 승소했고, 청주고등법원에서 2심 승소, 그리고 대법원까지 가서 결국 무죄로 최종 판결을 받앗다. 물론 판결문 내용에 대해서는 애매한 요소도 있다. 재판을 최종 승리케하는 데는 많은 운동과 사연이 있었다.
2)신앙걸음
나는 이제 총공회에서 나왔다. 예수나 믿자는 뜻으로 총공회에서 나와 버렸고, 백태영목사님의 잠실동교회와, 달산교회도 함께 했다. 그동안 믿어 온 세월에 우리 교인들이 늘 하는 말대로 나는 신앙 팔자가 사나와서 그렇다는데 이제 나 할 일은 목사님에게 받은 교훈을 이어나 주자는 정도의 일이나 해야 되겠다. 올해 77살인데 얼마나 더 살겠는가? 전쟁 때 봉산교회 있었는데 봉산에서 빨치산들에게 잡혀서 개명 뒷재 넘고 북상 덕유산까지 재를 3개 넘어 끌려가다가 살아왔다. 어떤 신앙으로 살아왔는지 요즘 사람들이 알겠는가? 목사님 돌아가신 지난 8년간 교단 싸움에 긴세월 쓸데 없이 보냈다.
오늘 무월교회에서 거창 목사들이 함께 모여 정치는 두고 정담이나 하자고 해서 모임에 갈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