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의 죄론 - 8계명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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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의 죄론 - 8계명을 중심으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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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리의 중요성
건축 자재를 아무리 많이 쌓아 두어도 건축법을 알지 못하면 무더기에 묻힐 뿐이고 그 무더기가 고층 건물로 지어 져 가지는 않습니다. 성경의 성구 기억이 건축 자재라면 성경 전체를 살피는 교리는 건축 설계법입니다. 말씀을 가지고 자기를 돌아 보는 사람이라면 회개할 거리는 수 없이 많습니다. 깊이 고뇌하는 사람, 많은 죄를 나열하며 오열하는 사람, 남에게 설명을 잘 하여 모두에게 깊은 회개자라고 알려 진 사람 등 별별 사람이 있으나 죄 하나에 들어 있는 내용을 얼마나 아는지에 따라 회개는 달라 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을 알고, 양심을 가지고, 죄를 제대로 연구하여, 죄에 내용을 깊게 살필수록 회개할 여지는 많아 진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같은 양심과 같은 노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죄에 대한 연구 실력에 따라 죄를 파악하게 되고 죄의 종류와 내용과 범위를 아는 만큼 회개의 역량은 많아 집니다.


2. '8계명'을 예로 든 이유
- 8계명의 의미
신앙의 죄는 객관적으로 조사하여 밝히는 것이 어렵습니다. 도적질은 도덕적 죄여서 불신자도 알고 또 조사를 하면 바로 정확하게 드러 나는 죄이므로 예를 들겠습니다. 도난품을 조사하든 지문이나 CCTV나 계좌 추적하면 가장 쉽게 확실하게 드러 납니다.

- '절도죄'와 '심층 심리의 고등 죄'
지금 이 글의 바로 밑 3246번에 '오웬'이라는 청교도 대표적 인물에 대한 질문이 들어 와 있습니다. 답변자는 존 오웬이나 조나단 에드워즈 등을 미국교회사를 배우며 이름만 잠깐 들어 봤습니다. 그런데 이 홈이 운영 된 이후에 공회 외부에서 신학을 하신 분들은 이 분들에 대해 너무 매료 된 말씀들을 소개해 주셔서 오웬이나 에드워즈 등의 글을 인터넷에서 직간접으로 간략히 살펴 봤습니다. 과연 깊이 있는 사색에 놀라운 신앙이었으나 이 분들의 저작을 모두 살필 수는 없었고 그냥 첫 느낌에 이 분들은 일반 우리 교인들이 고민하는 죄를 넘어 서서 아득히 높은 세계에 있음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쉬웠던 것은 그들이 목회하고 그들이 가르쳐야 했던 그들의 양떼들은 오웬이나 에드워즈가 투쟁한 심층 심리적인 고등의 죄악 문제가 급한 것이 아니라 도적질이라는 1학년의 초보 죄였습니다.

- 모든 죄의 겉 모습과 그 배후
지금 북한의 지도자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일제의 식민지가 되느냐 미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느냐는 문제가 아니라 굶어 죽는 백성을 일단 살려 놓아야 하는 문제입니다. 북한이 조선의 식민지가 되느냐 일본이나 미국의 식민지가 되느냐는 것은 김씨 가족만의 문제고 북한 주민 전부는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면 아주 벼락 출세를 할 것입니다. 오웬과 에드워즈의 글을 여기저기 훑으며 그들의 죄에 대한 전쟁은 대단히 지고하였으나 그들로부터 그들이 시급히 지도해야 할 절도죄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평양 김씨들은 우주와 천체의 생성을 고민할 상황이 아닐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린 사람의 초보적 죄악을 최대한 가르치고 훑으면서 그 죄의 원인과 배후를 파고 들어 가다가 그 죄의 본부를 발견하고 그 곳에서 고차원의 죄의 세계를 다루었다면 다행입니다. 그 분들의 저작을 다 조사하기는 또 한 사람의 평생이 필요할 듯하여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계에 제대로 된 신학자와 해외에서 공부한 목회자들은 오웬이나 에드워즈를 하도 많이 설명하고 있어 그들을 통해 간접으로 추론해 보았습니다. 도적질이라는 가장 작고 쉽고 흔하고 간단한 죄를 가지고 그 분들이 고차원적 고민의 세계를 엮었는가? 누구에게서도 그런 흔적을 아직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3. 절도죄란
⑴ 죄의 4 가지 차원
① 좁은 의미의 '죄': 말씀이 금한 것을 어기는 행위를 죄라고 합니다.
② 자율의 '불의' 죄: 말씀을 지켜도 그 속에는 자기 마음대로 했다면 불의의 죄라 합니다.
③ 하나님의 '원수'된 죄: '죄'와 '불의'를 넘어 서도 하나님과 하나가 아니면 죄입니다.
④ 소망 버린 '절망' 죄: 우선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 해도 내일이 없으면 절망 죄가 됩니다.

⑵ 좁은 의미의 '절도죄'
① 남의 수고를 먹지 말 것
세상도 알다 시피 내가 먹는 것은 나의 수고로 먹어야 하고 남이 수고한 것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 담을 넘는 도둑질만 금지한 것이 아니라 은행에서 숫자 변경으로 도둑질 할 수도 있으니 이 것도 포함합니다. 이제 절도죄와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범위를 살펴 보겠습니다.

② 절도죄와 연관 있는 여성 문제
자기가 땀 흘려 일하고 그 열매를 먹어야 절도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타락한 아담에게 주신 첫 계명이며, 여인들에게는 그 대칭 또는 그 보완으로 출산과 출산의 결과인 가정으로 인한 고난을 주셨습니다. 여자들이 결혼을 늦게 하고 남편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아이를 적게 낳고 아이를 바르게 기르지 못했다면 10계명 중에 8계명의 여자 쪽에 미치고 있는 의무를 범하는 죄가 됩니다. 물론 부부를 규정한 7계명에 해당 되는 것이 먼저지만 8계명의 한 쪽 끝에도 걸리는 죄가 됩니다.

③ 절도죄와 이웃 사랑
좁은 의미의 '절도죄'의 첫 단계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자기가 먹을 것은 자기가 수고하라는 간단한 원리지만, 우리는 이 절도죄를 두고 이웃 사랑을 먼저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는 이웃 사랑 형제 구제를 그렇게 철칙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구제나 도움은 주로 사람의 먹고 입고 살아 가는 문제에 어려움을 겪을 때 돕자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 주변은 사회 봉사가 절정에 있습니다. 전국의 교회와 교단과 신학마다 그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온 나라에 넘치고 세계 기독교에 흘러 넘치는 이웃 사랑과 봉사 문제를 두고 답변자는 자기가 땀 흘려 자기 것을 먹지 않는 사람은 여기에 해당이 없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자기가 수고하여 자기를 해결하고, 자기가 수고하여 가족을 책임짐으로 다른 사람이 나와 나의 가족을 짐으로 지지 않게 해야 하며 만일 남이 나와 내 가족을 먹이고 입히고 도와 주도록 짐을 지우면 나는 그들을 상대로 절도의 죄를 짓는 것이며 그들은 나에게 사랑의 외형은 가졌지만 나로 하여금 남을 의지하여 점점 더 절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조심 시키고 8계명과 관련하여 이 면을 살피는 글을 읽어 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참고로 답변자는 사회 봉사 영역에 대해서는 대단히 깊고 많은 면을 실무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웬과 에드워즈는 잘 모르지만 그들을 그토록 칭송해 마지 않는 미국 청교도 일방주의라 할 만한 국내 지도자들의 신학교와 목회하는 교회들의 사회 봉사나 설교를 통해 도적질 하지 말라는 설교는 곳곳에 있을 듯 하나, 남을 잘못 도우면 그들로 하여금 남의 것을 도적질하는 사람을 만드는 8계명 범죄의 조장죄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어 본 기억은 없습니다. 도적질이라는 쉽고 모두가 아는 죄 하나를 가지고 따지고 있습니다. 땀 흘려 자기 먹을 것을 스스로 책임 지고, 자기 식구를 책임 지는 것이 도적질하는 죄를 막는 근본 대책입니다. 담을 넘고 금융 사기를 치는 것만 8계명으로 봤기 때문에 자기 먹을 것을 스스로 해결하는 문제를 가르치는 것은 너무나 빈약하고, 그리고 남에게 짐 되지 말라는 설교는 들을 수 있으나 한 걸음 더 나아가 여성이 아이 출산과 가정 살림에 책임을 소홀하면 남자에게 부과한 8계명에 필적하며 8계명이 닿아 있는 죄가 된다는 것은 들은 적이 없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온 세계 교회가 필사적인데 그런 봉사의 내면이나 결과에는 반드시 다른 사람을 대규모로 도적을 만드는 위험이 있음을 조심 시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남을 돕는 이들 중에 자기 경제에 충실하지 않거나 자기 맡은 1차 범위의 사람들에게 성실하지 않은 이들이 2차나 3차의 넓은 범위의 사람을 돕는다고 나갈 때 자기와 자기 책임에 가까운 이들에게 8계명과 관련하여 어떤 죄가 있는지를 생각하는 경우는 더욱 어렵습니다. 자기가 번 것을 가지고 남을 돕는다면 일단 '돕는 것'이 될 수 있지만 자기가 땀 흘려 자기 것을 먹지 않는 사람이 남을 돕는다면 이는 로빈훗이나 홍길동처럼 의적이지 의인은 아닙니다. 성경은 의적을 도적놈으로 분류합니다. 그 로빈훗이나 홍길동이 남이 아닌 자기 가족을 소홀히 했다면 불신자보다 악한 자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④ 절도죄와 집안 식구
자기가 땀 흘려 먹는 것이 8계명의 시작이라는 말을 이웃 돕기가 아니라 부모와 관계로 이어 간다면 자식이 부모 상대로 도적질하는 것이 가장 극심합니다. 서양 세계는 좀 덜하고 우리 나라는 극심합니다. 공통적으로 부모의 것을 도적질하지 않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어릴 때 모르고 자랐고 부모가 돌 봤다 해도 그 자녀가 신앙의 세계를 출발하려면 그 순간에 지난 날을 돌아 보며 부모로부터 부모의 땀을 댓가 없이 먹은 것은 전부 빚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신앙의 첫 순간에는 하나님을 몰랐던 죄와 내세를 무시한 죄와 성경의 구절구절을 예사롭게 생각한 그런 죄들을 모두 쏟아 놓아야 하고 이로 인해 다른 생각은 할 것도 없을 것이나, 그런 고등 범죄는 한 순간에 쏟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오웬이나 에드워즈처럼 평생을 갈수록 더 무겁게 회개하며 떨어야 옳습니다. 문제는 그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런 세계를 회개의 한 면으로 삼되 다른 한 면으로는 그런 죄의 고등 차원과 함께 우리가 믿기 전에 부모로부터 도적질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이 회개는 몽땅 모아 한 줄로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손을 꼽아 가며 종이에 적어 봐야 합니다.

뱃 속과 젓 먹이 시절까지는 부모는 일방적으로 의식주에 공간 이동까지 제공해야 했으나, 10 세 전후라면 일반적으로 자기에 대한 책임의 교체가 심각하게 활발하게 이루어 져야 하는 시점입니다. 가정에 따라 건강과 자기 발달의 수준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부모로부터 과도히 받은 음식 옷 공부 주거 등의 모든 일상사를 계산하여 과도하게 받은 것이 있으면 일일이 적어 봐야 합니다. 그 것이 절도 품목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계산을 한 사람의 회개는 회개를 실제하는 사람의 자세가 되나 도매금으로 묶어 '범사에 죄인'이라고 하는 사람의 회개는 전시용으로 끝 날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어머니 태중의 시절로까지 돌아 가서 회개했으니 바로 그런 회개라야 진정한 회개입니다.

이렇게 따지다 보면 개인주의가 발달하고 독립성이 강한 서구 특히 미국의 아이들은 우리에 비해 부모를 상대로 도적질하는 일은 아주 적을 듯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죄'에는 우리가 지은 죄만 대신 해결해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를 이길 수 있도록 하셨으니 우리는 다른 사람이 땀 흘리지 않고 남의 수고를 그냥 먹는 일을 막고 나서며 더 나아가 그 사람으로 하여금 게으른 죄와 남의 것을 그냥 얻으려는 죄와 싸워서 이기도록 만드는 범위까지 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사죄 생활이 되어 집니다.

⑤ 절도죄와 전 성경
지금 절도죄의 단순한 모습에서 출발하여, 남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절도죄의 다른 모습이라는 점과, 남을 도울 때 자기 수고로 자기 해결을 철저하게 하지 않아도 도적이 되는 것, 그리고 절도죄와 늘 연결 되어 있는 여성의 평생 문제도 살폈으며,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살펴 봤습니다. 만일 여기서 시간이 있고 꼭 더 설명할 필요가 있다면 신구약 66권 전체를 8계명의 절도죄 하나만 가지고 살펴도 다 엮여 집니다. 죄에 진상을 알아야, 죄에 대한 회개가 제대로 되고, 죄에 대한 회개를 제대로 밟아야 '불의'의 세계를 해결하기 위해 등불을 켜고 나설 수 있습니다. 사색을 많이 하고 철학과 함께 총명하면서도 양심적인 분들의 글을 읽다 보면 우리 일반인의 범위를 넘어 가는 세계를 접하게 되어 부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절도죄를 너무 쉽게 본 것은 아닐까? 그 의구심을 접기에는 제가 접한 자료들은 너무 빈약합니다. 누가 도와 주면 좋겠습니다.

* 타 교단의 절도죄 연구와 비교
이런 면을 오웬이나 에드워즈의 글에서 읽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답변자는 그렇게까지 조사할 시간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면이 나올 것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가 알고 가르쳐 준다면 좋겠습니다. 그 분들에게 그런 세계가 있었다면 공회는 오웬이나 에드워즈를 우리의 선배로만 기억하지 않고 시대를 초월하여 신령한 세계를 함께 걷는 현존의 동지로 모실 수 있고 그들은 이런 면을 먼저 깨달았으니 우리의 역사적 선배에 머물지 않고 현존의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⑦ 이제 죄 문제의 정점을 향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따져 본 것만 가지고 생각해도 적지 않은 분량이며 절도죄의 지평은 그렇게 쉽지 않음을 알 수가 있다고 생각하나, 그러나 죄 문제를 두고는 우리가 늘 생각해야 할 것은 주님은 나의 죄를 단순히 씻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죄와 싸워서 이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다는 적극적인 차원의 사죄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과거의 죄와 함께 미래에 지을 모든 죄를 다 걸머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보통 이 것을 예수님의 사죄라고 합니다. 그러나 공회의 '우리 택자들의 죄' '주님의 사죄'는 지은 죄를 해결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사죄의 은혜로 중생이 되면 이제는 죄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여건과 자격과 힘과 그런 실체를 주신다는 세계가 있습니다.

이 문제를 성구로 제시하려면 너무 많아서 그냥 생략하고 넘어 갑니다. 도적질의 일반적인 죄 문제뿐 아니라 도적질과 관련 된 여러 내용을 다 살핀 다음, 이제는 내가 도적질을 하지 않음으로 주님의 사죄의 실상을 다 입은 것이 아니라 그 것은 한 면만 해결한 것입니다. 이제 또 한 면으로는 내게 오는 죄를 이제는 싸워서 이기는 세계가 있으니 이 기준을 두고 우리가 죄 문제로 회개를 하려면 얼마나 많은 사색이 필요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그들에게 닥치는 죄와 싸워 이길 수 있게 하는 것, 이 것이 주님이 주신 사죄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드러 난 도적질뿐 아니라 숨어 있는 도적질, 연관 되어 있는 도적질 관련 모든 죄들을 다 살펴서 연구하고 회개해야 하고, 그리고 이제는 어떤 종류의 도적질이 나를 향한다 해도 남를 삼키려고 오는 천하의 모든 종류의 도적질들과 싸워서 그런 죄들이 내 주변에 얼씬하지 못하게 하고, 더 나아가 내가 맡은 사람들로 하여금 도적질이 그들을 유혹하거나 삼키려 할 때 도적질의 세계를 제대로 알고 그들이 도적질 죄와 싸워 이기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이 노선의 도적질에 대한 교훈 또는 교리의 세계를 대충 소개한 것입니다.


⑵ 자율의 '불의'의 죄
① 불의의 죄란
도적질에 대해 위에서 설명한 전부를 다 지켰다 해도, 만일 그 마음 속에 매 순간 주님이 자기를 인도하지 않고 자기가 자기의 길을 결정했다면 그 것은 자율이니 곧 이 것을 불의의 죄라고 합니다. 줄여서 '불의'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땀 흘려 일을 해서 내가 먹을 것을 내가 책임 지고 남이 흘린 땀을 먹지 않는다는 도적질의 첫 단계를 바로 지켰다면 그 사람이 지킨 것은 '좁은 의미의 죄'는 벗어 났지만 자율이라는 '불의'의 죄를 벗어 난 여부는 새로 따져 봐야 합니다. 놀고 먹던 청년이 도적질에 대해 제대로 알고 나서 일을 하려고 고민을 하다가 현장 노동은 힘 드니 사무직을 지향했을 때 만일 주님이 그 사람을 노동 현장으로 인도하셨는데 그 사람이 자기 취향과 체질 때문에 거부했다면, 그가 사무직을 잡고 아무리 땀 흘려 일을 해서 자기 먹을 것을 벌었다 해도 불의의 죄가 됩니다. 좁은 의미의 죄를 벗어 났다 해도 자기 속에서 자기 원하는 대로 하게 되면 이 것은 불의가 됩니다.

② 주님의 인도를 찾는 길
모든 계명, 모든 말씀, 모든 신앙 생활 전체를 통해 아무리 흠 없이 다 지켜 행했다 해도 마7:21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하는데 그렇지 않는 행위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심지어 목회자가 되어 말씀을 전하는 생활을 했거나 귀신을 쫓아 내는 신령한 역사를 했거나 일반 교인을 훨씬 넘어 서는 능력의 신앙 생활을 했다 해도 그런 행동들이 주님이 원하니 한 행동 한 행동 순종함으로 했는가?

도적질하지 않고 땀 흘려 먹고 살았다 해도 어느 직장에서 어떤 돈을 벌었는가? 그 돈으로 무엇을 사서 먹었는가? '좁은 의미의 죄'라는 1차원의 세계를 다 벗어 나면 '불의'와 '칭의'의 문제라는 2차원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2차원이라는 것은 물품을 더하는 1 + 1 = 2 되는 수학이 적용 되는 것이 아니라 1차원을 1천 개 모아 늘어 놓아도 2차원의 입문에도 들어 가지 못합니다. 2차원이란 다른 세계를 말합니다. 협의의 죄라 할 수 있는 외형적 도적질은 왠 만큼 노력하면 피할 수 있으나 우리 중심, 우리 마음, 우리 생각을 아시는 주님이 우리가 우리 속으로 우리 마음대로 하는지 아니면 주님 뜻을 찾아 순종하는지를 지켜 보는 세계입니다.

③ 끊임 없이 주님의 뜻을 찾는 생활
공회의 예전 교인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 마음이 늘 '주님!' '주여!'를 끊임 없이 부르며 그 뜻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징검다리를 건너게 된 어느 공회 교인이 징검다리에서 실수하지 않으려 하다가 물에 빠지지 않는 것만 집중하고 주님의 뜻을 찾아 한 걸음씩 내 딛는 일을 잊어 버렸습니다. 다리를 건너 가다가 다시 돌아 와서 다리를 건너기 전에 노심초사하던 그 자리에 서서 다시 '주님!'을 부르며 한 걸음 한 걸음을, 한 마디 말을, 눈 빛 하나를 주님 원하시는 뜻을 찾아 걷던 그 자세를 다시 붙든 다음에 새로 돌 다리를 하나씩 딛고 나갔다는 예화가 있습니다. 이 예화는 잘 믿는 어느 교인의 특별 사례가 아니라 공회 교인들에게는 생활 속에 모두가 그렇게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백영희 설교록 전체의 내용이 이 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4. 이제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답변자가 간추린 조직신학에서는 비록 몇 줄로 요약했을지라도 이제 설명한 이 내용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훗날 오웬이나 에드워즈처럼 인간적으로 신앙적으로 특별하게 은혜를 받은 공회 주일학생이 하나 자라게 된다면 아마 이 홈에서 앞 서 간추린 내용을 보고 인간으로 넘어 갈 수 없는 많은 차원을 초월하여 우리를 가르칠 세계를 구성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답변자는 스승에게 배운 것을 요약만 했습니다. 그 요약은 답변자와 우리 세대의 자기 정리일 것입니다. 그 요약의 소망은 훗날 우리를 지도할 다음 지도자가 주어 진다면 그 요약을 도약판으로 삼아 우리가 넘어 가지 못하는 일반 벽을 단숨에 넘어 버리고 그는 그 다음 세계의 광활한 내용을 우리에게 지도해 주기 위해 주력하며 과거 것을 찾느라고 시간을 소비하지 않도록 될 것으로 봅니다.

이제 설명한 이런 세계는 '죄론'에서 '말씀을 어긴 죄' '자기 마음대로 산 불의' '하나님과 원수' '세상만 보고 사는 절망'의 죄에 대해 요약이 되어 있고 예수님의 사죄는 이 4 가지를 각각 그 차원에서 죄의 값을 치르시고 더 나아가 그 죄를 이길 수 있도록 해결을 해 주셨다고 설명을 해 두고 있습니다. 지금 도적질 하나만 가지고 풀어 적으려면 책 한 권은 더 나올 듯합니다. 이 정도 적음으로 질문자께는 답변의 성의를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더 적는다면 질문자의 독서력을 무시하고 질문자의 자기 연구의 기회를 침범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홈의 /연구실/문의답변/ 쪽에서 아마 이런 죄의 여러 차원에 대해 몇 번 설명을 드렸고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과 화친의 세계도 단순히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분을 즐거워 하는 그런 감상적 접근이나 체험담이 아닌, 이 노선의 교리 차원의 안내를 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쌓여 있는 건축 자재는 그 자체로 고층 빌딩을 건축하는 것과 별개의 일입니다. 없어서도 안 되지만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고층 빌딩을 건설하는 것은 건축 설계에 있습니다. 주님 사랑에 사무치고 주님 앞에 죄를 지어 몸 부림 치는 세계는 역사의 어느 교회라도 제대로 살아 보려고 한 사람들에게는 흔한 이야기입니다. 그들 중에 학적 배경과 표현력이 좋은 사람들의 글은 깊은 세계를 구성하고 많은 이들에게 유명하게 되는데 문제는 그 것이 그의 회개 세계의 깊이를 말하거나 회개의 세계를 건축한 실체는 아닙니다. 사람들의 착시입니다. 정말 깊은 세계에 몸부림 친 이들은 역사 속에 이름도 남기지 않고 어느 산 속에 혼자 뒹굴다가 죽었습니다. 거의 모든 경우, 알려 진 사람들은 B급들입니다. 아주 가끔 산 속에 뒹굴다가 죽을 사람 하나를 주님이 우리 앞에 끌어다 놓고 우리를 가르치고 우리에게 좀 보일 기회를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김현봉이나 백영희는 그런 인물로 봅니다. 칼빈이나 루터 같은 분들은 그런 차원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기에 주저 되는 면이 있습니다. 미국의 청교도로 유명한 분들은 이 노선에서는 B급의 유능한 분들이 아닐까? 물론 우리는 낙제급인 F나 아니면 낙제를 막 면한 D급이어서 감히 B급에게 B라는 분류표를 건 것 자체가 망발이며 맞아 죽을 죄에 해당할 것으로 보나, 우리 위에 계신 분들을 설명하기 위해 편의상 그렇게 붙여 본 것입니다.

신학에서도 감히 성경은 등가성의 절대적인 말씀인데도 대선지 4명, 소선지 12명 식으로 나누는데 그 것은 성경의 표면적 기록만을 기준으로 적은 것이지 대소선지의 분류가 실제 그 선지들의 신앙과 사명의 평가는 아닐 수 있습니다. 아가서는 가장 분량이 적은 성경이나 성경 전체를 통해 제일 깊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깊은 것도 우리의 취약점을 기준으로 그렇게 본 것입니다.




>> 양성원생 님이 쓰신 내용 <<
:
: 목사님 많이바쁘신데 정말 죄송합니다.
: 저에게 너무 필요한 내용이어서,
: 시간이 되실때 원래 적으셨던 장문의 글을
: 다시 부탁드립니다.저는 죄론을 살펴보아도 잘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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