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무투표의 현장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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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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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7 00:00
: 1. 100% 신임시무투표 결과는 어떤 면에서 유익하며 어떤 면에서 단점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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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 목사님의 경우
목사님도 생전에 시무투표를 받으면 3 - 4 %의 불신임을 받았습니다. 물론 투표 방법에서 찬성은 좀 더 어렵게 표시하게 하고 반대는 쉽게 할 수 있도록 하여, 실제보다 어느 정도 반대가 더 나오도록 유도한 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중간반 학생들이 장년반 예배에 참석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안 믿는 집 학생들이 왔다가 교회가 커서 선생님을 만나지 못하고 이 학생들은 시무투표 설명은 관심이 없어 듣지 않다가 표를 나눠 주니까 들고 있다가 내라니까 그냥 내는 경우인데 그 수가 적지 않았습니다. 또 외부 손님들도 많았는데 예배만 드리러 왔고 투표를 하는 것은 양심에 좀 걸려서 주저하는 상태에서 투표지를 받은 다음 반대를 표시해서 그냥 내는 것이 아니라 투표에 참여할 사람이 아니라는 뜻으로 투표지를 그냥 내는 경우 등입니다.
실제 반대한 경우로는 교회를 다닌 지 좀 되는 분들이 교회가 늘 천편일률 그대로니까 어떤 형태로든지 교회가 좀 변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반대표를 하는 경우가 있고, 또 백 목사님은 교인 사이의 일이 생길 때 명확하게 잘한 사람과 잘못한 사람을 판정해 버리는데, 잘못했다고 지적을 받는 분들은 속으로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반대표를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2. 시무투표와 100 % 찬성
비록 완전은 아니나 사람으로서는 완전에 가깝도록 목회를 했던 백 목사님의 경우도 100 % 찬성은 위에서 살펴 본 대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사람을 기르려면 야단을 쳐야 할 때가 있는데 아무리 친 부모의 사랑을 다 쏟는다 해도 반항기 아이라는 시기는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분과 비교하면 아주 형편 없는 우리로서 100 %를 받는다면 여러 가지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답변자도 100 %를 받아 본 적이 많았으므로 경험자입니다.
우선, 교인들에게 꾸지람을 하지 않고 좋게좋게 목회한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이런 목회자는 팔방미인이라고 합니다. 술집 여자라는 뜻입니다. 삯꾼 목자라고도 합니다. 교인들의 신앙과 천국과 구원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자기가 2 년마다 투표를 받아야 하니까 사람만 좋게 한 경우입니다. 사람을 좋게 하면 하나님을 좋게 할 수는 없으니 인본주의라고도 합니다. 물론 교인에게 야단을 친다 해서 목회를 잘한다 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를 자기 화풀이 장소로 만들고 자기 자식에게는 벌벌 떨면서 교인에게는 눈을 부릅 뜨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경우는 귀신 들린 목회자일 것입니다.
다음, 교인이 적은 상태에서 대세가 찬성인 경우가 있습니다. 현재 공회 교회는 서부교회 하나를 빼 놓고는 그 규모를 볼 때 투표하는 날의 예배당 내부 분위기가 자유롭게 반대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교인들의 앉는 좌석이 옆 사람의 시야에 들어 오기 때문입니다. 내가 투표지를 찢음으로 찬성을 표시하는지 아니면 받은 그대로 내어 반대를 하는지 바로 옆에 앉은 사람이 눈을 돌리지 않아도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체 교회가 목회자를 대체로 찬성하는 분위기가 된다면, 그리고 반대할 사람들이 꼭 반대를 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면, 주변 분위기 때문에 반대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됩니다.
다음, 역시 교인 전체가 찬성하는 분위기에서 자기가 반대를 하게 되면 반대표의 숫자만 가지고도 누구누구가 반대를 했겠다고 드러 나게 되어 이를 염려한 분들이 찬성을 표시해서 자기 입장을 보호하는 경우입니다. 자기의 투표용지 표시를 남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게 하려면 가방 안에 손을 넣고 움직이는 척한다거나 몸을 움츠리며 옆으로 약간 돌아 앉는 등의 방법도 있으나 바로 그런 몸 짓 자체가 남들에게는 뭔가 자기가 감추려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반대를 표시하지 못합니다.
다음, 표시를 할 때 찬성하는 분들이 모두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투표지를 좀 잘 보이게 한 상태에서 찬성이라는 표시를 확고하게 하면 옆 사람들이 오해할까 해서 자기도 찬성 표시를 옆 사람에게 좀 보일 수 있는 듯이 하게 됩니다.
이제 이런 면과 좀 다른 시각에서 또 살펴 볼 문제가 있습니다. 투표 방법은 전혀 부담 없이 이루어 졌는데 100 %가 되었다면, 그 교회의 발전을 봐서 그 100 %의 내용을 살필 수 있습니다. 교회가 바른 방향으로 발전을 하고 있는데 100 %가 나왔다면 그 100 %는 그 숫자 그대로 받아 줄 수 있는데 교회가 발전하지 않고 정체 되어 있는 상태에서 100 %가 나왔다면 자칫 그 교회는 신앙 면에서는 목각 인형들만 모여 앉아 있는 곳이어서 희망이 없다는 표시가 될 수 있습니다. 목회자를 싫어 하는 이들은 소리 없이 다 떠나고 또 외부에서 오는 분들은 없고 요즘 경제로 볼 때 좀 아껴 살면 십일조하는 교인 5 가정만 되어도 목회자는 기도원 생활처럼 하면서 오히려 경건한 목회자인 척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만의 모임'으로 울타리를 쳐 놓은 철의 장막, 죽의 장막과 같은 곳에서는 100 %가 계속 나올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 백 목사님은 100 %라는 말이 나오거나 평소 교인들이 단합이 잘 되고 목회자에게 은혜를 잘 받는다는 말이 계속 나오는데도 교회의 발전이 없으면 심각한 속 병을 가진 경우가 아닌지 아주 근심스럽게 그 속을 깊이 들여다 봤습니다. 물론 특수 환경은 있을 수 있습니다.
: 2. 예전 백목사님께서 신임반대투표운동도 할수도 있다는 말씀을 한적이 있는데 반대로
: 신임찬성투표운동도 할수 있지 아니한가 생각이 됩니다 문제는 목회자가, 사모가 신임
: 찬성운동을 하기 위해 사람을 동원하는 것은 어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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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투표 방법론
위에서 설명한 것은 예배당의 구조와 주일 오전예배의 전체 분위기나 시간 등 많은 면을 고려할 때 완벽하게 비밀투표를 보장할 수 없어서 생기는 '예상 가능한 변수'입니다. 불신 사회의 투표처럼 막을 가루고 한 사람씩 따로 하게 할 수도 있으나 그 정도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면 이미 그 곳은 교회로서 의미는 없는 곳일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 분위기 속에서 최대한 반대 표시를 할 수 있도록 연구한 것이 공회의 투표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를 더 확고하게 보장하기 위해 반대는 찬성의 3 분지 1만 가지고도 견 줄 수 있게 했습니다. 어느 정도는 찬성을 교묘하게 끌어 갈 수 있으나 반대자들에게 최종 결정권을 맡긴 것입니다.
2. 목회자나 그 가족의 찬성 운동
아예 불법으로 찬성을 더 만들 수는 있다 해도 공회 투표 제도는 투표 제도의 본질을 지킬 수 있도록 잘 만들어 졌습니다. 목회자와 그 가족의 찬성 운동도 금지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목회자나 가족이 찬성 운동을 하게 되면 사람의 본능은 반발심이 생기게 되어 찬성 운동이 오히려 반대를 하도록 만드는 수가 있습니다. 목회자가 '나 갈 곳이 없다'고 하거나 '저 어린 자식들을 좀 생각해 주시라, 일부 교인들이 반대를 하는데 철이 없어 그런다'는 정도로 말을 하게 되면 연세 많은 분들이나 성격이 강하지 못한 분들이 반대를 잘 못하는 것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반대를 부르게 되는데 서로 운동을 하게 된다면 반대하고 싶은 사람이 1 명을 운동하면 찬성하는 사람은 3 명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넓게 본다면 목회자나 가족의 찬성 운동은 결과적으로 손해를 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결과적으로 찬성 운동이 성공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그 교회가 전반적으로 반대의 표시가 그렇게 심하지 않고 좀 애매하게 반대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에 사회자가 반대를 하는 데 불편이 없도록 잘 인도하면 부표가 날 수도 있고 또 찬성 운동을 하면 잘 넘어 갈 수도 있는 상황이 생깁니다. 이런 경우는 목회자의 찬성 운동이나 제도의 잘못으로 인해서 생긴 왜곡 현상이 아니라 그 교회의 반대는 목회자를 실제 교체할 정도까지는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찬성을 해서 한 번 기회를 넘어 간 목회자는 이상하게 교인들에게 비굴하게 살게 되어 그 다음에는 더 큰 반대를 만들고 그 다음에는 운동을 해도 안 되는 상황까지 만들어서 아주 확실하게 쫓겨 나게 되거나, 평소는 멋대로 하다가 투표 때만 되면 슬그머니 분위기를 바꾸어 동정을 사는 등으로 변신을 한다면 한 번은 속일 수 있다 해도 2 회 이상 그리 되면 교인 전체 마음으로부터 확실하게 멀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목회자는 교회를 옮겨서도 그 목회 인생 전체가 참으로 좋지 않은 쪽으로 가게 됩니다.
따라서 교인 입장에서는 우리 공회가 목회자 시무투표까지 하도록 해 놓은 정도에서 만족하시고 꼭 마음에 맞지 않더라도 기어코 이 번에 해결을 해야 하겠다는 식으로 팔을 걷어 붙이는 일은 최대한 조심할 것을 부탁합니다. 눈이 밝은 교인은 벌써 그 목회자의 문제점을 발견했다 해도 그 목회자를 보내는 것은 눈이 밝은 그 교인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라 전체 교인이 느낄 때까지는 기다려야 합니다. 이 시차는 그리 오래 가지 않습니다. 시무투표의 부작용 중에 하나는 성격이 급한 분들이 당장에 뿌리를 뽑으려고 나서는 경우인데 마치 목회자가 찬성 운동을 하는 것과 비교할 때 별로 다르지 않는 행동입니다. 질문자를 두고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한 면만 보고 이 글을 사용할 분들이 계실까 하여 양 면을 설명하는 것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3.예전 인산교회로 알고 있습니다만 소속 공회교회를 살린다 보수한다는 생각으로 다른
: 교회의 중간반 등을 동원해서 투표케 했다는 사례를 통해서 잊지말아야 할 교훈이 있다
: 면 무엇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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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공1 교역자들의 책임
소속 공회를 살린다는 명분도 말이 안 되는 말이었습니다. 당시 투표 직후에 그 쪽의 교역자 거의 전부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고 들고 일어 났습니다. 그러나 실제 행동에 나선 분들은 몇 명뿐입니다. 그 분들은 그래도 과거 판단 잘못은 있었다 할지라도 양심만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교역자들은 결국 인정과 사정과 자기들의 보신에 급했습니다. 그 공회가 살아 나려면 그 때 모두가 나서서 끝을 냈어야 했습니다.
교역자들의 집단 반발 소식을 들은 지도부가 화를 내고 손을 대기 시작하려는 분위기를 잡으면서 한 편으로 와서 용서를 빌라고 하니까 벌떼처럼 일어 난 분들이 결국 자기들의 먹고 살 구멍가게가 걱정이 되어 초기에 비판을 하다가 나중에 모두 인천으로 올라 가서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해서 용서를 받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만일 사실이라면 부공1은 뒤골목 병정놀이를 하는 초등학교 아이들입니다. 양심도 공회도 배운 노선도 교인도 그들의 훗날도 그 어떤 것도 그들의 눈에는 없고 오로지 전화로 큰 소리를 치고 달래고 야단을 치며 잡아 당기는 대구의 정치와 인정과 사정과 천박한 육체만 남은 곳입니다.
마치 대구공회 소속 교역자들의 책임은 백 목사님 사후에 그 공회의 방향을 오늘에 이르도록 만든 것이라면, 부공1 교역자들의 책임은 오늘처럼 죽도 밥도 아무 것도 없고 오로지 악과 깡으로 붙든 공회 재산권뿐입니다. 제대로 운영 되는 교회가 거의 없습니다.
2. 동원 투표
다른 교회 중간반도 몇 명 정도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당시 듣기로 주변 태권도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을 모두 데려 왔습니다. 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까지 해서 유지한 것이 무엇인가? 그 쪽에 계신 분들은 5계명으로 신앙의 부모를 잘 모셔야 한다는데 그 분을 잘 모시는 것이 이 노선에 배은하는 것임을 보지 못하고 있으니 억지며 소경입니다.
북한 내의 문제점은 남한의 전문가보다 황장엽 씨가 더 잘 알 듯이 부공1의 문제점은 부공2나 대구공회나 서울공회에서 보는 것보다 이 홈이 보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 설명을 하려면 이미 희망 없게 된 그 분들을 상대로 입이 더러워 질 면도 있고 또 그 분들 중에 곧 돌아 올 분들이 계신다면 너무 미안해서 고개를 들지 못할까 해서 그 굴 속에 불을 켜 놓지는 못하겠습니다.
이재순 목사님은 동원 투표를 함으로써 그 분의 건강치 못한 말년을 더 춥고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전체 공회를 위해 일부 잘했던 부분도 있어서 어느 정도의 예우는 받아도 될 정도인데 그렇게까지 해야 인산교회를 유지할 수 있었던 모습에서 이미 전체 총공회에 목회자로서 이재순 목사님의 평가는 남의 말을 빌릴 것 없이 스스로 묘를 팠습니다. 그리고 지켜 낸 그 동원 투표는 자기가 과거 잠깐이라도 공회를 위해 걸어 온 것이 실제로는 자기 이익에 맞아서 그렇게 한 것이지 그 분의 마음에 진심은 아니었다는 것을 드러 냈고 도장을 찍어 버렸습니다. 인산교회의 재산은 지켰으나 남은 것은 없으니 사업가로서의 목사님만 남고 사업을 털고 나온 후의 목사님은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사실 이 정도가 되었는데도 그 분께 돌을 든다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진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려야 하며, 진리의 적과 싸울 때 상대를 진멸 시키도록 명령하지만, 한 편으로는 자비의 법도 가르 치고 있어 상대편을 향하여 너무 지나 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우리들임을 기억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3. 결론
질문 내용과 조금 다르게 읽을 분들도 계실 듯합니다만 이런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공회의 시무투표처럼 좋은 제도는 없습니다. 나와 남이 함께 살고,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찬성할 수 있는, 거의 완벽한 제도입니다. 이런 좋은 제도는 답변자와 여러 분들이 함께 연구해서 만든 것이 아니고 어느 날 이상한 제도를 들었고 그 제도 속에서 살아 오다 보니까 그 속에 좋은 것이 기독교 역사적 사건이라 할 보배였습니다. 세계 기독교는 모르겠으나 현재 한국 기독교를 살리는 단방의 비약입니다.
그런데 너무 가까운 곳에서 현미경을 들여다 대고 보면 어느 교회에 이런 단점, 저런 교회에 저런 모순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손바닥에 세균이 득실 거린다고 우리 손목을 잘라 내지는 않습니다. 그 세균이 나를 해하지는 못합니다. 또 씻으면 됩니다. 그런 줄 알고 좀 조심하면 두루 좋습니다. 이 것이 공회의 모든 제도이며 특히 시무투표 제도입니다.
이 제도를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활용하시되, 각자 자기 신앙과 판단에 따라 지켜 보며 응하시면 좋겠습니다. 혹시 못 보실 것이 보이거든 어지간하면 덮고 넘어 가시도록 부탁합니다. 이 홈은 원래 매사에 면도칼을 들이 대고 잘라 버리는 곳이지 어물쩡 넘어 가지 않는 곳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목회 현장에 가까울수록
원칙과 교훈은 더욱 단호하게 날을 세워야 하고
개인별 적용은 조금 지켜 보며 멀리 보며 부드러워야 좋습니다.
시무투표는 교단 전체의 교인이 전국적으로 자기 목회자를 내 보내자며 공식적으로 기회를 받고 행사하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의 뒤에는 그 동안 잘했든 못했든 상관 없이 오 갈 곳이 없는 목회자들이 자기 처자식을 생각하며 한 순간에 절벽에서 떨어 져야 하는 인간적인 십자가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목회자가 한 짓을 보면 단두대에서 쳐 버리고 싶으나 과연 그렇게 해야 할지를 두고 조금 더 생각했다 해서 그렇게 돌이 키지 못할 잘못이 생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장에 운동을 해서 내 보내는 것보다 차라리 한 번 더 지켜 보다가 목회자가 스스로 무리를 하고 그 것이 누적이 되어 이제는 더 이상 길이 없어서 저절로 밀려 나가는 방법이 된다면 비교적 나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답변자는 목회자여서 평소 목회자의 반대 쪽으로 설명한 적이 많으므로 이 번에는 교인 입장에 서서 다른 면을 살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