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화의 원칙, 세상과 생활을 떠나는 원칙, 그리고 신앙 유익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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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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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6 00:00
1. 공회 집회를 두고 바뀔 수 있는 것
과거 하지 않았던 것을 한다고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집회의 역사는 처음에 군용 천막 하나에서 예배를 드렸고 집회 기간에 숙소는 강사 백 목사님과 김영웅 목사님의 부친 김봉태 당시 집사님 두 분만 미군 야전용 개인 텐트 A형을 쳤고 나머지는 별도 숙소가 없었습니다. 그 때는 서부교인들은 집회를 참석하지도 않았습니다.
삼봉산 집회가 도평 집회로 장소를 옮겼고 금정산 집회가 대구 집회로 장소를 옮겼습니다. 따라서 오늘도 장소는 옮길 수 있는 문제입니다. 당시 산 집회는 '세상과 생활을 떠나 산 속에서 말씀만'을 원칙으로 삼았는데 삼봉산은 당시 기준으로 교통편 때문에 그리고 금정산은 폭우에 피할 곳이 없어서 안정적인 장소를 기준으로 현재화가 되었습니다. 부공3은 이런 역사를 알기 때문에 장소와 시설을 변경하는 데는 주저하지 않았고, 특히 현재 대구와 도평 집회는 과거 세상을 떠나 산 속이라는 원칙에서 본다면 대구는 도심이 되었고 도평도 도심 접근이 되었으므로 장소 이전도 생각할 시점입니다.
2. 공회 집회를 두고 바뀔 수 없는 것
어느 지역, 어느 산 속, 어느 정도인지 그 구체적 수치를 댄다는 것은 곤란하지만 '세상과 생활을 떠난다'는 원칙은 공회의 2 회 집회가 기본적으로 지킬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 것이 바뀐다면 공회의 과거 집회가 아니라 공회의 새로운 집회가 될 것입니다. 새로운 집회도 가능하고 과거의 집회도 끝 낼 수는 있으나 이런 중대사는 대단히 신중해야 하고 현재 공회의 과거 집회는 오늘 그대로 유지하면서 받는 은혜가 크고 오히려 다른 대안도 어렵고 향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는 필요성과 유효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를 재독해야 하느냐는 문제도 바뀔 수는 있습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도 공회 집회는 이인재 이진헌 김석준 목사님이 대신 인도한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강사 설교도 좋고 또 재독도 좋습니다. 필요하면 몇 번 개최하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공회 내에서 말씀의 은혜를 가장 크게 받을 수 있는 설교거나 아니면 강사를 기르기 위해 강단을 맡길 수 있습니다. 바뀔 수 없으면 원칙이고, 바뀔 수 있다면 현실입니다.
3. 질문의 경우
공회 집회 원칙 중 시설 문제는 '세상을 떠나 산 속에서'라는 원칙이 있습니다. 세상과 생활 속에 편의 시설이나 위락 장비가 집회 장소 내로 온다면 당연히 안 됩니다. 그런데 그 선이 있는가? 선은 없습니다. 2 명의 개인 텐트로 시작한 개인 숙소가 1970년대에 이르러 PT 천막천이라는 푸른색과 흰색의 세로 줄 무늬 재료가 나온 뒤 집회 장소 전체에는 이 천막의 색깔로 물을 들였고, 80년대에는 무겁고 비싸지만 방수가 확실한 녹색 계통이 늘어났습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 잠실동교회는 철제 비닐하우스 모습의 콘센트형 숙소를 만들어 마치 단독 주택의 서울에 아파트가 들어 선 느낌이었습니다.
그 후 본당의 확장 공사로 지하 2층이 골조 상태로 제공되고 여기는 평당 분양을 했으며 커텐으로 칸을 막고 와상이 들어 가면서 콘크리트 지하였으므로 냉방 효과도 많았습니다. 과거 집회 장소와 비교하면 그 곳은 호화판이었고 돈을 많이 지출해야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80년 대에 집회가 확장일로로 있을 때 또 하나의 집회 설비 관련 중요 조처가 나옵니다. 70년 대부터 백태영 목사님이 해마다 열리는 집회에 천막을 쳤다 거뒀다 하기 불편하니 천막 밑에 콘크리트 한 평씩만 깔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백 목사님은 '주님 언제 오실지 모른다'는 말로 막았습니다. 그런데 서부교회 중간반이 2천 명을 집회에 참석시키게 되었고 이들을 위해 부엌과 급수가 대규모로 필요하게 되자 비록 부분적이지만 콘크리트가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강사실과 평소 거창지방 교역자 기도실로 사용하던 사무실 외에 건축물은 일절 허락하지 않던 집회 장소에 해외에서 오는 수십 명의 교인들을 위해 2층 건물을 마련했습니다.
이런 역사를 볼 때 어느 정도 설비와 어느 정도 시설이 들어가느냐는 문제만 가지고 '세상이 되었다'고 비판하기는 어렵습니다. 70년대 시골교회들은 집에서 장작을 패서 묶고 솥단지를 매고 기차나 노선버스를 몇 차례 바꿔 타며 왔습니다. 그 후 식모를 구입해서 부엌을 맡겼습니다. 현재 서부교회 중간반의 시설은 많은 돈을 들여 좋게 만들었다는 말은 공통된 관찰 같습니다. 어느 정도 선에서 규제를 해야 하느냐는 것은 그 분들 스스로 그 분들이 데려 가는 학생들과 교인들의 신앙 수준과 세상 수준을 고려해서 결정할 일입니다.
몇 년 전 도평집회 장소를 들렀던 적이 있었는데 과거 재래식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바꾸었습니다. 재래식 화장실은 해외 교인들이 강력하게 개선을 요청해 왔는데 목사님께서는 자연의 냄새며 화장실 냄새는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리는 약효까지 있다 하시면서 묵살했습니다. 만일 이 기준으로 현재 도평과 대구 집회 장소의 화장실을 과거 재래식으로 둔다면 현재 각 가정의 화장실 사용이 습관화 된 아이들이나 이제 막 신앙을 출발하는 이들을 집회로 데려 온 교회나 질문자께서 어떤 자세가 될까요?
4. 결론적으로
집회의 시설 원칙은 '세상과 생활을 떠난다'는 것이며 이 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사안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떠나야 하는지를 두고는 참석하는 교인들의 신앙과 생활 수준과 그들을 지도하는 각 교회와 신앙의 책임자들이 너무 편해도 안 되나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어 정작 말씀 중심의 집회에 집중시키는데 크게 손해를 본다면 이 역시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최소화'의 원칙 하나를 더 말씀 드립니다. 개신교와 개혁교회와 우리 신앙의 선배와 우리의 신앙은 세상을 사용하는 문제를 두고는 항상 최소화의 원칙으로 내려 왔습니다. 이 역시 그 선은 각자 각 교회가 정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개교회 자유주의'입니다. 다만 원칙 문제를 두고는 세상을 덜 사용할수록 좋으며 이는 집회 장소에도 적용되는 문제입니다. 70년 대 초반까지는 집회 장소에 사용되는 전기는 발동기를 돌렸습니다. 그 소리는 예배 말씀 듣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이후 전기를 끌고 와서 소리 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체를 두고 역사를 두고, 훗날 나 자신에게 적용될 문제까지를 두루 살펴
그 누구에게도 할 수 있고, 그 언제라도 제기할 수 있는 문제를 살피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이 홈은 현재 거창집회나 대구집회를 그 자체가 아주 몹쓸 곳이며 그 운영이 아주 교계의 쓰레기같은 곳인데 이 노선의 모습을 담아 전시하므로 이 노선을 철저하게 짓밟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심으로는 그 집회에서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현재까지 상황만 가지고는 그 집회로 들어가는 분들이나 그 집회를 주도하는 분들이나 이 노선의 원수적인 언행을 하는 정도로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 지나가다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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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거창집회를 참석한 한 교인입니다. 우연히 지나가다 보게 된
: 어느 집회장소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호화찬란하게 만든것을 보고
: 정말이지....이건뭐 은혜를 받으러 온건지 자기들 과시를 하러 온건지...
: 지금 서부교회내에 있는 어떤 집단이라고 들었습니다.
: 과연 집회장소가 그래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 몇년만에 온 집회 모습이 조금은 변해 있으나 그것은 모든 교인이 공존하는 가운데
: 최소한의 편리를 위해 변했다고 생각이 드나 이 소속의 집단의 거처는 좀....
: 아예 빌딩을 짓지요 그게 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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