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홈의 주소록에 착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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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1 00:00
>> 행정실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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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금 대구공회 주소록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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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글에서 말씀하신 '경기 용인시 기흥구 신갈동 397-3' 주소로 되어 있습니다. 바로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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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실동교회가 백태영 목사님이 개척하시고 성장했으나 아들 백광진 목사님으로 후계를 세웠다 해서 반발한 분들이 계셨고 때마침 용인 신개발로 그 주변에 이주하는 교인들이 계셔서 잠실동교회가 충인교회를 개척해서 내 보냈습니다. 경제가 좋은 잠실동교회가 마음 먹고 내 보낸 곳이어서 당연히 예배당을 잘 지어 갔다는 말이 당시에 있었습니다.
:
충인교회는, 잠실동교회가 마음 먹고 지원해서 개척한 교회가 아닙니다~!!
담임목사은 전병두목사님이고,
백태영목사님의 잠실동교회에서 3년 부목사 임기를 마친 후
1995년 2월, 수지 풍덕천에서 개척하니,
전혀 공회성 없는 아들 백광진목사를 후계로 세움에
반발하던 잠실동교회의 35-45세 사이의 주일학교 중간반 부장들과 반사들
그리고 다수의 교인들이 잠실동교회를 나와서, 함께
그 교인들이 연보하여 개척한 교회입니다.
(그 당시 잠실동에서는 이 교회를 자기들 소유로 할려고 많은 운동을 했으나,
정식으로 신문광고를 내는 등, 잠실동교단과의 관계를 탈퇴 단절했습니다.)
개척한 지 6개월쯤에 그 지역인들 전도도 상당히 되어서,
장년출석 100명이상 주일학교 150명 이상이 되어, 예배당이 좁아,
교인들의 연보로,인근에 지하 1층 지상 4층 빌딩을,
세를 안고 구입했고,
그러나, 전병두목사님이 점점 지역에서 전도된 공회성없는 교인들을 위주로
신앙의 정체성을 의심할 만한 일들이 여러번 있었고,
말씀도 공회말씀을 들어보기가 어려워지고 있어서,
개척된 그 해 부터, 점점 공회교인들이 빠져나가기 시작,
아마 1998년쯤엔, 일부 교인들이 여기 부공3의 이영인목사님 주도로
서울에 강동교회를 개척하게 되었고,
그후 1999년 쯤에 충인교회를 개척했던 여러 중추 교인들이
개별적로 교회를 떠나게 되고,
그 교인들이 개별로 가끔 만나다가
2000년 초에 개척한 교회가
서울송파교회이고,
그후 충인교회는 공회성을 주장할 교인은 거의 없다고 할 정도가 되었고,.
교인수는 거의 1/3정도로 줄었습니다.
1995년 당시에 구입한 빌딩을, 꽤 많은 금액으로 교회 이전을 위해 팔고,
교회 건축을 위해 넓은 땅을 구입했으나,
지역 주민의 반대로 교회건축을 못하고,
다시 판 금액이 크게 비싸게 팔 수 있어서,
들리는 얘기로는 두번의 되팔기로, 1995년 구입금액의 2배가 되었다는 소문입니다.
그 돈으로 건축한 것이 지금의 신갈 신 개발지에 건축한 충인교회입니다.
잠실동교단에서 1995년 탈퇴한 후, 여러해 후에 대구공회측으로 소속했고,
지금의 예배당은, 본당에 약 500백 좌석을 갖추었으나,
교인이 불과 40여명 정도라, 본당에서 예배드리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 교회를 개척할 때, 잠실동교인들이 주축이 되다보니,
외적으로는 잠실동을 따라 흉내 내게 되었고,
그래서, 간판도 '예수교 장로회'로, 찬송가도 통일찬송가를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