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 비슷하지만 특별하게 나타 난 점을 중심으로

공회내부 문답      

두루 비슷하지만 특별하게 나타 난 점을 중심으로

설명
yilee 0 2


장남 장로님은 모든 면의 실력으로 출중하여 어느 면으로 나가든 다 정상급 인재입니다. 세상 정계 관계 재계 학계 심지어 스포츠 계통으로 나가도 다 정상급 지도자가 되실 분입니다. 신앙 면에서는 '목회자가 되었다면 세계까지는 몰라도 아시아 제일의 실력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백 목사님이 직접 말씀하신 내용을 바로 옆에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실제 겪어 봐도 감탄할 뿐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지 않으셨고 본인은 여러 면에서 포부가 높고 컸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우리 주변에서 이루고자 한 그런 것을 추구하지 않아서 재야에 계신 것처럼 사셨습니다. 백 목사님 소원대로 조기에 목회를 나오시고 그대로 배우셨다면 오늘 공회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늘 아쉽습니다. 이 홈은 여전히 늘 이 시대에 큰 어른으로 모시고 배울 분으로 평가합니다. 하나도 모르는 것이 없다 하는 말로 요약하고 싶습니다.

둘째가 되는 백순희 사모님은 '백영희목회연구소'의 운영을 맡겼습니다. 본인의 실력과 지난 날의 공로와 가족 사랑을 보시고 맡겼습니다. 물론 연구소는 목사님 생전에 미리 주신 '규약'이 있고 이 내용에는 연구소의 자료 수집과 연구 활동과 출간 전파 사역의 세부 내용을 다 담고 있기 때문에 운영자의 주관이 들어 갈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이런 기관을 맡겼다는 사실은 둘째 되는 분에 대한 평가를 다 담고 있다고 보고 싶습니다. 현황만 가지고 본다면 백 목사님으로부터 '목회연구소'의 운영권을 받았다는 말은 그 분의 모든 것을 다 받았다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아쉽게도 그 운영 지침 그대로 하지 않으므로 연구소가 공회처럼 서부교회처럼 둘로 나뉘고 이 홈이 잠정적으로 그 분이 하실 일을 다 하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능력 있고 사명 있는 분이어서 그 분이 안정적으로 하시게 되면 해당 분야는 이 홈이 즉각 활동을 중단할 것입니다. 고대하고 사모하고 있습니다.


셋째가 되는 백은희 사모님은 미국에서 평생 그 넓은 대륙과 절정의 문화 속에서도 주님 오실 날을 사모하며 고국의 아버님 밑에서 직접 배운 신앙과 그 곳의 사명에 있는 힘을 다하는 분입니다. 하나님과 동행의 내면이 특별하여 평생 하나님의 특별 인도를 직접 보며 따라 가는 분입니다. 국내 공회 상황을 기준으로 보면 예배 시간이나 교회의 운영 형태 등 여러 면에서 공회 노선을 비껴 섰다고 비판하는 분들이 계시나 한 몸에 지체를 따라 주신 위치와 사명이 다르다 보면 왼 팔이 앞으로 나갈 때 오른 발은 뒤로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의 기준에서 다른 것을 보면 탈선처럼 또는 반대나 반항처럼 보이나 각각 자기 위치에서 받은 사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앞 날에 대한 예언적 직관이 특별하고 살아 온 지난 날에 자기 관리가 철저하여 빈 틈이 없는 분입니다. 공회 기준으로 대외 활동이 없어 가족 중에 묻혀 계신 분처럼 보이나 가족 전체 중에서도 하나님과 거리를 실제로 잰다면 1번과 2번 사이에서 오 가실 분으로 생각합니다. 백 목사님은 하나님 앞에 서실 때까지 순간도 중단 없이 고치며 자라 가신 분인데 그 분을 지근 거리에서 모시지 못하여 인간적으로 약간의 거리감이 있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나 먼 곳의 선교 사명이 이를 상쇄할 수 있는 바입니다.

넷째가 되는 백도진 집사님은 신앙과 세상 면에서 단순하며 무난하여 무색 무취하다고 표현할 정도의 평생을 사셨습니다. 바로 이런 면에서 백 목사님의 직계 자손으로서 일반적이기 어려운 면까지를 넘어 선 분입니다. 아무 말씀이 없는데도 저절로 답변자의 마음과 고개가 숙여 지는 것은 왠 일인가? 다른 분들에 대한 소개는 답변자 평생을 이야기 할 수 있을 만큼 이야기거리가 많습니다. 그 하나하나가 참 믿기 어려운 기적이며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백 집사님에 이르면 그 모든 이야기거리가 갑자기 찬반간에 명암간에 아주 잔잔해 지며 빈 공간이 된 듯합니다. 그 빈 공간 속에 백 목사님의 원 모습이 투영 되며 설교록이나 백 목사님을 직접 접하며 발견하지 못했던 백 목사님의 내면이 보입니다. 말 없는 말씀을 하시고, 소리 없는 발성을 내시며, 움직이지 않는 행동으로 사람을 감화 시키는 그 분의 그 장점, 그 모습 또한 감격스럽습니다.

다섯째가 되는 백도충 장로님은 백 목사님 마지막 순간에 서부교회를 맡겨 체계화와 정상화를 시키고 싶어 노력을 많이 했던 분입니다. 목회 일선은 백 장로님이 극구 사양하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없어 보였으나 서부교회가 백 목사님 지도 하에 모세 시기처럼 또는 사사 시기처럼 발전하며 매 순간 하나님의 인도를 직접 받아 성장했던 바, 백 목사님의 생존 기간을 얼마 남기지 않았던 시점에 백 목사님 사후 시기를 생각할 때 백 목사님으로서 공회와 서부교회를 백 목사님 없는 상황에서 최적의 체제와 운영 상황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바로 그 적임자로 백 장로님을 소원했습니다. 백도충 장로님은 평생에 다시 올 수도 없고 거부하기도 어려운 조건을 두고 많이 고민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받지 못할 사명이라고 생각하여 사양했습니다. 백 목사님으로서는 서부교회의 안정화와 그로 인해 공회까지 안정화를 두고 생각한 모든 면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 공회를 생각하며 늘 그 분이 그립고 아쉽습니다. 힘으로 모실 수 있었다면 납치나 협박을 해서라도 모셨어야 했는데 답변자는 그 분 밑에 아득한 후배였고 다른 분들은 이 세계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여섯째가 되는 백도영 목사님은 백 목사님께서 자녀 전체가 신앙의 사람들이며 그 중에 사위 두 분은 목회자가 되셨음에도 불구하고 직계 자녀 중에서도 목회자 이름을 가진 자녀를 배출하고 싶어 생존 마지막 기간에 전력하셨고 그 결과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이 한 가지 사실만 가지고도 가신 목사님은 소원을 이루셨고 백도영 목사님께서도 지극히 큰 효도를 하셨습니다. 답변자나 우리 주변에 목회자 되는 분들이 목사 안수 받는 것은 세상 살기 어려워 교회 안으로 도피한 면도 있고 또 목사 하지 않고 세상으로 나갔다 해도 목사 한 것만큼 나을지도 모를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백 목사님 가족이 되어 목사님이 되셨다는 사실은 그 한 가지만 가지고도 우리는 '소중한 가족'을 향해 감사할 뿐입니다. 더하여 미국의 유펜과 같은 정상급 대학에서 캠퍼스 목회에 주력하셔서 유학이나 이민 교인이 있다면 소개할 수 있다는 점도 감사할 일입니다. 백도영 목사님은 과거 몇 년 동안 이 홈을 방문하시고 이 홈에 직접 글도 적어 주시고 또 발표하신 글에 틀린 부분이 있을 때는 일일이 교정해 주셨고, 타 공회나 총공회적 지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 홈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 홈의 역할을 격려하시고 이 홈에 반대 되는 안팎의 세력을 대신 막겠다 하시는 등의 지원을 약속하신 점 등을 생각할 때 감사할 뿐입니다.

일곱째가 되는 백명희 사모님께는 백 목사님 생전에 서영준 백명희 목사님 부부를 지정하여 서부교회 후임을 정식으로 말씀하셨으니 그 누가 뭐라 해도 답변자 머리 속에 이 사실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후계자로 지목했다는 사실과 서영준 백명희 목사님 부부께서 백 목사님만큼 실력이 되었는지는 별개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홈에서 백 목사님의 지난 날 기록을 세밀하게 살피고 있습니다. 백 목사님도 자라 가신 분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서 목사님 부부의 훗날이 백 목사님의 절정기와 비교하여 더 낫게 될지 같아 질지 아니면 좀 못하게 될지는 우리가 지켜 볼 일이지 우리가 서 목사님과 함께 가깝게 지낸 날에 자기 주관에 사로 잡혀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고 평할 일은 아닙니다. 서 목사님이 계셨다면 답변자는 백 목사님께 했던 충성을 그대로 죽는 날까지 이어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1989년 4월에 백 목사님은 백명희 사모님을 서부교회 중간반 부장 이름으로 임명했으나 그 내용은 서 목사님께 맡긴 바로 그 자리를 부탁했습니다. 신앙과 실력과 역사와 실적을 포함한 모든 면을 본 것입니다. 만일 백명희 부장님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서부교회는 삼일교회나 초량교회나 수영로교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백 목사님의 지도는 늘 우리가 보는 시야를 몇 세월 앞에 보셨습니다.





사실에도 부합하고 또 우리가 마땅히 표현해야 하며 그렇게 알아야 할 내용을 설명 드렸습니다. 혹시 그 가족분들이 우리와 가깝게 생활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실수로 인해 그 분들을 향해 섭섭함을 가진 것이 있다면, 이 홈은 가족분들 중 일부의 조처에 의해 제명도 여러 번 당하고 3 개 경찰서에 10여 건의 형사범죄 범인으로 조사도 받다가 검찰의 최종 판단에서 모든 것은 오해였다는 처분을 받은 사람으로서, 답변자가 먼저 가족들에게 섭섭함을 가질 수도 있으나 오히려 답변자를 포함한 우리는 이 복음을 가지는 과정에 너무 부족했고 우리는 덕만 봤고 그 가족분들은 그 반대였다는 점을 생각할 때 늘 감사함을 잊지 않아야 인간 된 최소한의 도리가 아닌가 하는 심정을 담아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소중한 이 노선과 이 교훈을 가질 수 있고 또 걸어 갈 수 있도록 수고한 선생님, 그 분의 가족이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생각하지 못할 고난의 길을 걸은 소중한 가족분들 전체를 향해 우리는 늘 감사하고 그 분들의 영육의 복을 비는 것이 상식이 아닐까? 성경이 그렇게 가르 치는 것이 아닐까? 우리끼리는 뭣이 틀어 져서 따져도 보고 싸울 수도 있으나 그 분들을 향해서는 먼저 한 번은 더 생각해야 할 분들이라는 생각을 전해 봅니다.




나이 들어 가며 철이 좀 드는지 싶은

이영인 올림












>> 교역자 님이 쓰신 내용 <<
:
: 훌륭한 자녀를 두신 백 목사님은 영육에 복이 넘치는 것 같습니다. 자녀분들이 한결같이 드러나기를 원치 않으신다는 말씀을 들을 때 그런 모습에도 은혜를 받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 노선을 연구해야 하니까 공인인 백 목사님의 자녀 7남매께 하나님께서 맡긴 남다른 은혜와 사명이 있다면 보신 대로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쓰기 공회내부 문답 초기목록
어린 신앙에 혼란을 주는 글은 '공회 회의장'을 이용해 주십시오.
내용이 애매하거나 글의 진행이 적절치 않으면 관리자가 이동하겠습니다.
(1) 게시판 검색
분류별
자료보기
상담 비판 노선 갈등 인물 교회 서부 기타
부산공회 (부산공회1, 부산공회2, 부산공회3, 부산공회4) 대구공회 서울공회
번호제목이름파일날짜
  • 3190
    무명
    2014-01-12
  • 3189
    신학
    2014-01-11
  • 3188
    지교회
    2014-01-08
  • 3187
    서부인
    2014-01-11
  • 3186
    공회원
    2014-01-05
  • 3185
    yilee
    2014-01-06
  • 3184
    원로
    2014-01-04
  • 3183
    yilee
    2014-01-04
  • 3182
    2층교인
    2014-01-05
  • 3181
    무명
    2014-01-05
  • 3180
    목회
    2013-12-30
  • 3179
    yilee
    2013-12-31
  • 3178
    부공
    2013-12-27
  • 3177
    yilee
    2013-12-28
  • 3176
    서부인
    2013-12-25
  • 3175
    yilee
    2013-12-26
  • 3174
    부공
    2013-12-21
  • 3173
    yilee
    2013-12-22
  • 3172
    독자
    2013-12-23
  • 3171
    yilee
    2013-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