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명은 몰라도 '설교록' 전함만은
| 설명 |
|---|
yilee
0
6
2012.03.31 00:00
골목의 전도나 심방, 타 교단의 교류나 일반 신학의 탐방, 해외 선교, 또는 양성원이나 집회나 다른 종류의 이 노선 복음 운동을 두고는 할 수 있는 분들도 많고 또 이 홈보다 훨씬 훌륭한 분들이 많으므로 이 홈은 그런 사안을 두고는 뒤에 서서 따라 가는 편입니다. 그러나 '백영희 신앙노선'의 전달에 관련한 문제를 두고는 이 홈의 힘을 다하려 합니다. 1982년 10월 5일의 첫 출발에서부터 최소한 지난 30 년은 변해 본 적이 없습니다. 자연 수명이라면 30여 년을 더 살아야 할 것인데 현재까지 변치 않은 것으로 보아 앞으로도 변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이제 답변자가 걸어 온 이 걸음을 대신할 후배들이 있는지 살펴야 할 때입니다. 있다고 생각한다면 많습니다. 다른 교단이나 다른 교회의 교인들과 목회자 사이에 존재하는 소속감이나 연대감이나 충성과 비교한다면 비교가 되지 않을 분들이 답변자 주변에는 수십 명은 족히 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노선의 교훈의 가치성을 생각한다면 이 길을 맡아 훗날을 맡을 분들에게 답변자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요건들이 있는데 이 면을 생각한다면 아직은 한 명도 없습니다. 최소한 자기 한 사람의 평생과 가진 전부와 목숨만은 던질 수 있어야 하는데 정말 죽을 때까지 시대와 교계와 공회와 자기 출석하는 교회와 주변 동지 전부가 다 돌아 서도 혼자 끝까지 갈 수 있어야 할 터인데 과연 주변이 다 바뀔 때 바뀌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해 보면 불안한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1989년에 가신 목사님도 목사님 기준에서 볼 때 이 노선의 백 목사님 사후가 한 치 앞도 희망 있게 볼 수 없었고 답변자를 지켜 보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안심하지 못하셨고 부뚜막의 3 세 아이 보듯 보셨으나 다행스럽게도 현재까지는 그 희망을 아주 꺼지는 않고 미약하나마 불씨라도 붙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답변자 볼 때 아주 불안하나 그들 중에도 최소한 한 사람 정도는 이 노선의 앞 날을 적어도 불씨는 전달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설교록 출간에 관한 한 그 어떤 경우가 있다 해도 끝까지 출간 완결 지울 것입니다. 그리고 백 목사님의 설교록 출간 추진 과정에서 명백히 약속한 것만은 이 홈이 책임 질 것입니다. 1989년 8월 백 목사님 사후 하루 아침에 총공회 전체와 서부교회 전체의 분위기가 과거와 정반대로 돌아 서며 불원장래 공회와 서부교회가 단체 차원에서 설교록 출간과 구입을 거부하고 심지어 연구소의 운영 전권을 쥐고 있는 지도부가 내부에서 설교록 출간을 금지 시키며 경제 차단을 시키겠다는 판단이 섰을 때를 기억합니다. 그 때 몇 직원들이 있는 데서 반대 쪽에 설 분을 향해 그런 말을 했습니다. '자연 상태에서는 우리 몸에서 스스로 베어 낼 부분이 하나도 없으나 설교록 출간을 두고 만일 안팎에서 경제 문제로 조여 들어 온다면 여기 직원 몇 사람이 순서를 따라 배를 열고 신장 하나씩만 내 놓으면 설교록 출간만은 완료할 수 있다! 설교록 출간 문제를 두고 조절과 협의는 가능해도 출간 자체를 중단하거나 금지하는 조처는 그 뜻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실제 몇 직원들의 자세는 그러했으나 그런 자세 때문이었는지 지금까지 출간은 물론 도서 출간으로는 생각하지도 못할 인터넷 활용 시대를 주셔서 이미 과거 목표는 달성이 되었습니다. 남은 것은 불필요 하다고 보이는 종이 출간까지 역사를 위해 그리고 인터넷 이용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기본 장서로 끝까지 출간할 것입니다.
부산 연구소가 회원들을 향해 채무이행포기를 일방 선언해 버리고 또 사유재산의 국고화에 해당 되는 타인의 재산을 불법 편취한 조처를 두고 이 홈은 그 조처와 관련 된 모든 것에 '백영희 목사님의 책임'이 명백하게 있고 그 내용이 설교록 출간과 제공에 관련 된 것이므로 비록 그 분 앞에 이 홈이 천하의 못난 자식이라 해도 최소한 그 정도의 효도는 한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연구소 문제는 백 목사님 생전에 '공회'와 '교회'와 '가족'으로부터 완전 독립을 시켜 놓았기 때문에 공회 관련 다른 사안과는 달리 총공회의 책임이나 서부교회의 의무나 가족들의 효도를 촉구하는 문제는 연구소 설립의 취지와 과정에서 배제할 문제입니다. 만일 총공회나 서부교회를 비롯한 전국 어느 교회나 가족 중 어느 분이라도 설교록 출간을 위해 도와 주신다 하면 감사 무지할 일일 뿐입니다.
>> 장로 님이 쓰신 내용 <<
:
: 도의적 책임과 법적 책임은 엄연히 다릅니다. 부산에서 연구소를 운영하는 부공1에 관련 있는 분들은 서부교회 2층에서 중간반 반사들을 해고한다고 말할 때 노동법을 운운하며 민형사 고발을 언급했습니다. 그래서 황급히 반사들의 월급계좌를 만들어 보존해 주었습니다. 노동자의 임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지방노동청에서 바로 처리해 버립니다.
:
: 그러한데 백영희 목사님이 공석에서 약속하고 광고하고 모집한 평생회원들의 회비는 일방적으로 연구소 회계의 수입에 잡고 회원들에게 약속한 설교록 무료 배부는 중단했다면 종교적으로 도덕적으로 또 민법상 계약법상 중대 불법행위입니다. 이 책임은 부산 연구소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수 연구소가 부산 연구소의 부채를 떠 안겠다고 선언을 했다면 여수 연구소가 형님이며 본부가 되는 형국입니다. 자식이 사고를 치는데 부모가 뒷감당을 하는 모습이군요.
:
:
:
:
:
:
:
:
: >> yilee 님이 쓰신 내용 <<
: :
: :
: : >> 중진 님이 쓰신 내용 <<
: : :
: : : 평생회원비는 최소금액이 50만원이었고 몇백만원씩 회비로 납부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교회가 회원으로 가입할 때는 금액이 좀 더 많았을 겁니다. 평생 설교록을 무료로 배부한다는 조건을 붙여서 돈을 받은 다음에 돈을 떼먹은 겁니다. 지금 부산연구소든 신풍연구소든 백영희목회연구소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곳이 있다면 우선 그 돈을 먼저 원래 회원들에게 내줘야 할 겁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교인 님이 쓰신 내용 <<
: : : :
: : : : 백 목사님 생전에 50만원을 내고 평생회원이 되면 부산의 연구소에서 회원이 죽을 때까지 연구소에 출간하는 모든 책을 무료로 준다고 했습니다. 당시 50만원은 적은 금액이 아닙니다. 서부교회 부자 장로님들도 경제 부담 때문에 망설였고 몇 년이 지나서 겨우 가입한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때 가난한 청년 반사들이 대거 가입했습니다. 그런데 1998년에 부산연구소는 어느날 과거 평생회원들의 모든 혜택을 일방적으로 취소 시켰습니다. 조건부 기부였는데 일방적으로 이렇게 하면 세상법정에 불법입니다. 소송감입니다. 증거가 있고 설교록에도 다 나오는 약속이어서 백 목사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든 것입니다. 가족이라는 분들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되지요. 오늘 소식 게시판에 부산연구소가 또 회비를 걷는다고 하니 화가 납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여기는 당시 연구소가 아니더라도 관련이 있지 않습니까? 당시 직원들이었고 또 여기는 당시 부산연구소와 자매 연구소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더군요. 여기서 출간하는 책들을 가지고 당시 책임을 질 의향은 없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