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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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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8 00:00
이 노선에 목회자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글을 대할 때마다 당연히 자책감에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말로 '불행 중 다행'이며 '차선'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이 홈에는 이 노선의 모든 교훈을 다 담아 놓았습니다. 혼자 또는 가족 단위로 재독하는 것이 차선일 것이며 이런 길이 있다는 상황이 우리에게는 불행 중 다행입니다. 공회 목회자들로서는 책임을 질 수 없는 교인들의 유리함은 하나님 앞에 설 때 심판 받아야 할 죄입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 피할 곳이 있고 일단 살 길이 있으니 불행 중 다행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본 교회를 정하여 모든 예배와 충성을 눈에 보이는 한 교회에서 평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소원은 불신자들이 걸핏하면 '3 대 적선지가에 가는 복'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의 자기 소원과 노력으로는 가질 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답변자는 1977년 서부교회로 가면서 이제 죽을 때까지 본 교회로 삼을 교회가 생겼다는 하나의 소망에 그렇게 기뻤습니다. 그래서 부산에 첫 발을 딛자 마치 오랜 만에 찾는 어머니의 품 같았고 전혀 낯설거나 어색함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부산을 떠난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 본 적이 었었고 백 목사님이 돌아 가신다는 상황은 상정조차 되지를 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서부교회를 지금은 20 년 넘게 발도 딛지 않을 곳으로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설교록의 은혜성은 누가 뭐라고 표현을 하면 더 훼손이 되는 차원입니다. 그런 줄 알면서도 신앙의 첫 날에 선 분들에게 고통스럽지만 뭐라고 안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 홈을 차려 놓고 무슨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정신병자 피카소 그림조차도 있는 그대로 보라 하고 말아야지 그 그림에 누가 설명을 하고 있으면 피카소가 뒷꼭지를 때리면서 '야이, 소경아! 이게 그런 뜻으로 보여?'라고 할 듯합니다.
공연히 억지를 부리고 싶은 분들이 우상화라는 표현을 가지고 시비를 걸까 싶어 말을 조심하고 있으나 설교록의 내용은 사실 누가 설명을 하는 것보다 그냥 권해 보고 듣게 하며 들어 본 사람에게 들리면 그 순간부터 그 은혜를 가져 가거나 대신 할 길은 아마 오늘 우리가 죽을 때까지 다시 찾기 어려울 듯합니다. 말세는 갈수록 어두워 지는 때임을 감안한다면 아마 주님 오실 때까지 없을 듯합니다. 바로 이런 면을 본 사람들이 '예수님 재림 때까지 우리는 재독한다'라고 내 걸었는데 그 분들의 표현이 이 노선 수정 측 교인들에게는 교권 싸움에서 불리하게 작용했는지 모르겠으나 그 심정은 사실 솔직하며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면 대단히 유력한 학설이라고 극찬하고 싶습니다.
가족끼리 둘러 앉아 조용히 재독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그 안에 모든 길이 다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런 세계가 이해가 되지 않거나 반발이 된다면 가족이라도 사실 호적상 가족이고 경제나 사회 공동체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어짜피 신앙 공동체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냥 이 노선 이 교훈 재독에 빠져 고요히 주님 앞에 설 날이나 세상 마지막을 기다리는 것이 이 노선의 생존력이며 최후 보루라고 생각합니다.
답변자조차 목회를 하고 있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전도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는 이런 세계를 전하고 싶고 그렇게 하는 데 도움을 드리는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이런 모든 의미를 담은 윗글에서 이미 답은 다 적어 드렸는데도 답변자의 답변 약속 때문에 몇 글을 더했습니다.
>> 옛교인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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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어지러운 일들이 벌어질 줄 알았겠습니까? 갈 교회가 없다는 현실을. 오래토록 찾아보고 어떻게 해봐도 현재 사는 곳에서는 갈 교회가 없습니다. 공회 옛교인으로서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렇게 갈 교회가 없는 상태로 고착되면 어떤 길이 있을까요? 저만 아니라 알고 지낸 분들이 적지 않게 고통받는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