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협력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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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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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4 00:00
1. 원칙
부산 연구소와 협력은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 홈은 이 노선의 가치를 아는 누구와도 가능한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상대가 거부를 해도 설득하며 기다릴 것이고, 상대가 외면을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할 것입니다.
2. 시행 중인 조처
- 이 홈 초기화면
이 홈은 어느 공회나 어느 교회나 어느 단체보다 제일 앞 서 부산 연구소를 대대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 홈 초기화면에 누구라도 그냥 넘어 갈 수 없도록 표시를 해 두었습니다. '더 나은 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적극 소개하고 있습니다. 너무 지나 치다는 지적들이 있어 일단 한 달 정도라도 그렇게 한 후에는 표현을 조금 객관화 시키고 이후에는 고정 소개로 이어 갈 것입니다.
- 이 홈의 보충 보완
이미 개설한 홈에서 부산 연구소가 할 일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재독과 영상에 중심을 두겠다고 하셨고 백 목사님의 생활까지를 다 보여 주는 면을 주력하겠다고 했습니다. 재독이 유료화가 되어 있어 이 홈은 무료로 제공해야 부산 연구소의 보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만일 부산 연구소가 무료화로 정책을 변경한다면 이 홈의 설교록 게시판은 부산 연구소 바로 가기만 걸 생각이며 혹시 그 곳의 이용이 불편한 계층이 있거나 이 홈의 게시판이 더 효율적이라는 분들이 계시면 부산 연구소의 게시판의 변화를 요청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부산 연구소가 '연구' 분야를 포기한다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에 이 홈은 처음부터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연구'에 중심을 두어 연구소들의 전체 운영이 하나의 큰 그림을 바로 그리는 데 도움 되게 하겠습니다. 만일 부산 연구소에서 이 홈의 연구 기능을 과거 1997년 이전으로 원상 복귀를 원한다면 더 없는 이상적인 상황일 것입니다.
- 다양하게 검토 중
지금 1 년 이상을 준비하여 개설 되었고 답변자 역시 바쁜 일정이 있어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부산 연구소를 잘 살펴 이 홈이 할 일은 최선을 다하되 앞 서 설명한 원칙과 자세는 변치 않을 것입니다.
3. 이미 시행했던 사항
- 최창원 선생님과 번역 협조
부산 연구소에는 영어 번역을 맡은 최창원 선생님이 연구소의 실질적이고 최종적인 기획과 결정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창원 선생님과는 1984년 이래로 답변자가 가장 가깝게 모든 것을 협력했고 2004년부터 번역을 정식으로 한다고 할 때는 이미 답변자와 가는 방향을 오늘처럼 달리 잡고 있던 시기였으나 최창원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준비했던 번역 내용들을 답변자에게 개인적으로 전달하여 이 홈에 적극 활용하며 또는 답변자의 충고나 지도를 요청했습니다. 따라서 이 홈은 이후 그 번역본에 대한 외부적 활용도 자유롭게 해 왔습니다. 그 분은 1984년 답변자가 미국에 있을 때 고1이었고 한글의 초기 학습과 설교록의 중요성과 번역의 필요성을 직접 전했던 분입니다.
최 선생님의 번역 훈련에 있어 한국에서의 생활과 대학에서 영어 회화를 가르치는 것이 긴요할 것으로 보아 부산대학교와 동아대학교 등에서 강의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등 여러 협력이 있었습니다.
- 김경수 선생님의 자료 제공
김경수 선생님은 최재현 목사님의 운전기사였고 최측근 수행직을 맡아 왔습니다. 그 분과도 남들리 가까운 사이였고 그 분이 가지고 있는 미공개 중요 자료들을 받게 되어 이 홈의 활용자료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 정영세 목사님의 자료 제공
지금 부산 연구소의 운영 주체 중에는 부공1 소속 교역자들이 활동하고 있는 바, 류정현 목사님은 지도급이라 한다면 정영세 목사님은 실무적으로 중요하게 활동하고 있을 듯합니다. 원래 그런 일에는 체질적으로 맞는 분입니다. 정 목사님께서 답변자에게 미공개 테이프를 포함하여 100여 개가 넘는 중요 설교 테이프를 제공해 주셨고 그 중에는 이 홈에서 보유하지 않았고 또한 과거 부산 연구소에서도 보유하지 않았던 자료들이 있었습니다. 이 자료 중에는 음질 등에서 재구성을 해야 할 테이프들이 있어 아직 외부 공개를 하지 않았으나 곧 자료를 검토하여 부산 연구소에도 전달하고 일반에게도 공개할 예정입니다.
정 목사님께서 가지고 계신 테이프 중에는 최금주 권사님의 가정에서 준 다른 자료들도 있고 그 자료들 중에서 일부는 아직 정 목사님께서 부산 연구소에도 공개하지 않은 것이 있는 듯합니다. 아마 정 목사님께서 공개하실 시기가 되면 부산과 함께 이 곳에도 제공해 주실 것입니다. 이미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 서규용 선생님의 자료 제공
지금은 서부교회를 떠나 타 진영에서 일한다 하여 공개할 수 있게 된 서규용 선생님은 부공2의 김 목사님들이 서 목사님의 서부교회 부임 후 당시 부산 연구소가 설교록 출간을 중단하자 테이프를 구입해서 설교를 타이핑하여 자료를 축척해 가던 시절에 서부교회의 서 목사님 측 직원 역할을 하면서 목사님들의 자료를 취합하고 관리하던 분으로 당시 부공2 김 목사님들에게 필요한 자료를 답변자에게 요청하여 답변자는 김 목사님들의 자료 축척에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또한 김 목사님들이 축척해 가던 자료와 부산의 연구소 내부에 있던 자료를 비교하기 위해 김 목사님들의 결과물을 받아 확인을 해 드렸습니다.
부산 연구소는 당시 지도부가 설교록을 5 년에 걸쳐 출간을 금지하던 시기여서 답변자는 연구소 내부적으로 출간을 계속 금지하면 단독으로 출간을 하겠다며 긴장이 고조 되던 시기였습니다. 어디에 있든 이 노선의 가치를 알고 백 목사님 관련 자료의 중요성을 파악하던 분들은 답변자와 하나님 앞에서 양심을 터 놓고 서로 협력하였습니다. 답변자는 백 목사님 생전에 이미 공회와 서부교회와 백 목사님 및 그 가족들로부터 호적이나 학적부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자료를 다 받아 두고 있었습니다. 다만 자료가 너무 많아서 급할 때 찾지를 못하는 경우가 있고 그런 경우에 자료 확인을 부탁하는 정도이므로 항상 답변자가 자료를 대량으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고 극히 예외적으로 자료 확인을 부탁하는 때도 있습니다.
4. 시행할 예정
이 번에 부산 연구소에서 백 목사님의 생활 모습까지 다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실제 그렇게 했으므로 이 홈에서도 백 목사님의 관련 다른 자료들을 제공하여 전체적으로 백 목사님을 바로 아는 데 협력할 예정입니다.
백 목사님은 순교가 가까워 지면서 과거 서부교회 5층 중심의 생활을 양산동 기도실과 양분합니다. 현재 부산 연구소가 제공한 5층의 목사님 서재는 목사님의 교회 내 일상 생활을 보여 주고 있으며, 5층의 서재 모습은 목사님께서 지인들이 보내 온 자료를 꽂아만 둔 것이나 목사님께서 직접 적고 평생을 간직하셨던 성경 연구와 교리 정리집이나 심지어 논문과 개인 일지 및 일본에 계실 때 찍은 사진까지 모든 종류의 개인 자료들은 이 홈이 백 목사님 장례식 기간이 마친 직후 가족회의를 통해 받아 두었습니다. 또 목사님 순교가 가까와 지던 시점에 절반의 생활을 하셨던 양산동 기도실에도 목사님은 서부교회 5층처럼 생활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양산동에서 생활하던 목사님의 성경과 생활용품과 옷가지와 신발과 지팡이까지 또 기도산의 천막 안에 있던 일체 용품 등은 이 홈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산의 연구소와 이 홈이 협력한다면 백 목사님의 평소 생활까지 그 때 입장에서 목격해 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부산의 연구소가 백영희 연구에 필요한 협력이나 제안을 한다면 이 홈은 항상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다만 협력이나 제안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백 목사님의 자료는 모든 사람에게 무제한 무조건 제공'이 전제 되어야 합니다. 이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시고 가신 그 분의 원칙이며 답변자는 이를 위해 1982년 10월 5일부터 지금까지 만 30 년 동안 답변자의 시간과 경제와 노력과 가족과 목회까지 다 일편단심 쏟아 왔습니다.
사람의 오기나 감정이나 이해타산쯤은 이 노선의 연구와 전달을 위해서는 최소한 30 년을 초월하고 살아 왔으므로 이 홈의 협력이나 자세를 두고는 전혀 염려하지 않아도 되고 오직 부산 연구소의 활동이 장구한 세월을 이어 가도록 우리 함께 기도할 시점으로 생각합니다.
>> 교역자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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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회교회는 거의다 작습니다. 대부분 20명 안팎입니다. 가족과 오래된 공회교인 몇분이 모이는데 가끔 타교단 출신교인이 오면 굉장히 긴장합니다. 한번 둘러보고 가지나 않을까 해서요. 아주 가끔 교인이 될만큼 다니게 되면 꼭 주변에서 이런저런 말을 듣고 흔들립니다. 참 가슴아픈 일입니다. 교역자회에 가보면 다 느끼는 일입니다. 주변 지역에 공회교회들이 있으면 새교인이 간판을 보고 어디에도 공회교회가 있더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과거 이야기를 다해야 합니다. 서로 소통을 할 때는 우리 공회교회들이 서로 힘이 되었는데 지금처럼 서로 보지않고 지낼 때는 우리 작은 교회들은 자립할 의지조차 꺾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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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소는 포탈에서 아무나 들어올 수 있고 이미 백목사님 자료는 유명해서 이용자가 많습니다. 이제 두개가 되었는데 여수 연구소가 그냥 조용히 운영을 했다면 부산 연구소는 알려지지 않았을 것인데 부산 연구소가 개설이 되자 바로 대대적으로 여기서 알려버렸습니다. 이미 엎지러진 물이 되었습니다. 이왕 알려졌으면 두개 연구소가 서로 잘 협력해서 누가 봐도 사이좋게 형제우애가 돈독한 모습으로 운영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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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연구소에서는 여기 자료를 대부분 가져다 사용했는데 여기서도 그렇게 하겠지요? 찬송가도 링크를 걸어 아무곳에서나 바로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료 공조와 링크를 통해 이용을 하면 부산에서는 영상재독으로 여기서는 연구 중심으로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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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드립니다. 부산 연구소와 협력을 부탁합니다. 이미 협력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설명 좀 부탁합니다. 앞으로 계획도 함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