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공회의 학생 지도, 그 방향과 내용 - 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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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회의 학생 지도, 그 방향과 내용 - 총론

설명
yilee 0 5


1. 공회의 어제와 오늘

- 어제
공회처럼 예로부터 복음의 정 중앙을 맡아 내려 온 신앙 노선은 모든 면에서 온전하다 할 만큼 빈 틈이 없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광야교회, 다윗과 솔로몬의 왕정교회 그리고 초대교회와 칼빈의 목회하던 교회도 참으로 감탄할 만큼 거의 모든 면으로 좋았습니다. 그렇게까지는 아니라 해도 시대를 감당하던 교회들은 그런 면이 탁월합니다. 이 노선도 연구할수록 감탄입니다. 온전하고 거룩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할 수는 없어도 거의 그렇다 할 정도의 모습을 가졌습니다.

- 오늘
지금 공회는 여러 면에서 현저하게 약화 되거나 여러 면은 공중 분해가 되었다고 할 만한 상황도 많습니다. 그러나 다른 면은 봄이 되면 또 새움이 돋으며 새 세상을 대처할 여지가 있는 등의 상황으로 보고 희망이라도 가지는데 자라 나는 학생들에 대한 문제는 확실하게 위기감을 느껴야 할 상황입니다. 예전에는 공회 학생이나 공회 청년의 모습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을 보기 어렵습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질문 내용은 단순히 어느 한 공회 교회의 현장 문제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2. 공회의 학생 지도

- 세상과 일전의 각오와 인식

그 누가 뭐라고 말하든 이 문제를 두고는 세상과 일전을 각오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5백 년 유교 사회에 기독교가 첫 발을 딛는 순간 조선과 선교사 사이에서는 그 누가 무슨 말로 미화를 한다 해도 생사를 건 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기독교가 전해 지는 만큼 유교는 미신이 되어야 하고, 유교가 버티는 이상 기독교는 목숨을 내 줘야 합니다. 만일 둘이 공존한다면 기독교는 간판만 걸고 생명은 버린 상태입니다. 한국에 있는 기독교 묘지일 뿐입니다.

칼빈이 교회는 전투교회라고 이름을 지어 놓고 5백 년이 지났습니다. 기독교 사회인 서양에서도 교리 문제로 또는 교회의 운영 모습 문제로 목숨 걸지 않은 시기가 별로 없었고 최소한 소리 없는 전쟁은 없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하물며 동양의 불교와 유교와 미신으로 장악 된 사회에 '일신교' '유일신교' '예수님 외에는 전부 지옥'을 본질로 하는 교회의 출발은 전쟁입니다.

지금은 외부 환경은 정반대로 보입니다. 자유의 세상, 자유가 넘쳐 썩어 나자빠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가든 절을 가든 무엇을 해도 마음대로 하라고 하는 세상입니다. 바로 이런 세상이 생명 없는 종교와 이 세상만을 자기 나라로 삼은 불신 모든 이들에게는 좋은 환경이나 오로지 딱 하나, 생명을 가진 교회에게만은 전장이 된 상태입니다. 100 년 전의 첫 선교 상황은 외형적 전쟁이었다고 하면, 오늘은 외부적으로는 100 % 자유가 보장 된 것 같은데 내적으로는 과거보다 말할 수 없이 어려운 전쟁터입니다.

놀자판과 먹자판, 흥청망청 취하고 미쳐 버린 사회, 천지만엽 갈갈이 찢겨 진 인간성, 그 끝을 모르고 발전하는 과학... 이 모든 것으로 인해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기 싫어 하고 모두가 극단적 자기 중심이 된 세상이니 믿는 우리를 빼면 이 사회는 극단적으로 좋아 졌고 믿는 우리의 신앙 시각에서 보면 역사 6천 년 중에 가장 적의 세력이 강합니다.

천국만 골수에 사무치고, 하나님만 전부며, 세상은 철저히 이용만 할 대상이고, 가족까지 그 누구라도 나를 삼킬 원수로 돌변할 터인데 정작 더 무서운 살인마는 내 속에서 나를 째려 보고 있습니다. 다행히 그 모든 것을 다 파악하고 대처하고 통제하고 넘어 설 수 있는 수단이 우리에게는 주어 졌습니다. 바로 말세를 감당하도록 미리 예비 된 이 노선의 교훈과 행정 노선입니다.

이 노선은 일도양단의 이분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게 질 망정 또는 꺾일 망정, 세상과 타협하거나 비빔밥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이기든 지든 둘 중에 하나입니다. 공회의 학생들에게 중간이 없고 타협이 없고 비켜 가는 길이 없고, 오로지 죽든 살든 이기든 지든 둘 중에 하나만 있는 것이 신앙이며, 이 노선이며, 가장 극단적으로 내 몰린 상황이 오늘의 그들임을 설명하여 그들이 인식하는 것입니다.


- 세상과 일전의 자세와 준비

신앙에 유익하고 필요하다 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바로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고, 돌아 설 수 있고, 가질 수도 있고, 인생을 끝내 버릴 수 있도록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데 그렇게 인식이 바뀌려면 먼저 학생들을 지도하는 목회자, 반사, 부모들이 바뀌어야 합니다. 지도하는 이들이 바뀌어도 아이들은 될지 안 될지 모르는데 윗 사람이 주저하면 밑에는 볼 것도 없이 전멸입니다.

어린 사람을 위해서는 연보를 해도 교회를 위한 충성이나 계명을 지키는 문제를 두고도 슬슬 하라 대충 하라 뒤를 보고 잘 생각하라고 여유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문제를 두고는 일도양단으로 단번에 끝장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다만 바로 지금이 그런 시기인지 그리고 그 대상이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지를 몰라서 더듬고 주저하며 시간을 통해 지켜 보는 것입니다. 만일 확실하게 이 것이 주님의 뜻이라 한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부모 지도자 반사가 된 다음에 이 노선의 학생들을 다시 상대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내 아이가, 내 반 학생이, 내 교인들이 신앙에 꼭 필요하면 초개처럼 세상을 버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을까? 늘 우리가 배운 것처럼 기도와 말씀으로 성령님이 그들을 변화 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교리 이 진리 때문에 공회의 지도자들이 반대 행동을 보입니다. 성령이 바꾸지 않고는 바꾸어 지지 않으니, 때가 되면 성령이 해 주실 것이고 내가 미리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면서 맡은 학생들을 슬슬 세상으로 몰아 나가고 있습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세상 공부를 사용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신앙과 멀어 지고 세상 공부에만 매 달린다거나 아니면 여러 종류의 세상에 깊숙히 빠져 들어 가는 자식을 공회의 지도 책임에 있는 분들이 방치를 하거나 심지어 부추기면서 그 학생들의 신앙 문제는 성령이 역사하면 된다는 말로 자기들의 직무유기를 미화하고 자기 학생들을 속속들이 세상으로 내 보내고 있습니다.

바로 왕궁의 모세처럼, 바벨론 왕국의 다니엘처럼, 굴뚝에 처 박힌 흰 개 꼬리가 3 년이 지나도 털고 나면 본색이 나오는 것처럼, 공회의 학생들은 언제든지 신앙에 필요하면 그림처럼 눈깜빡할 사이에 모든 것을 털고 나서야 하는데 그렇게 만드려면 그런 인식을 심어 놓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그런 인식이 심겨 질까? 우리가 배운 말씀을 복습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돌아 서야 합니다. 먼저 지도 위치에 있는 분들이 돌아 서서 과연 그렇게 해도 될지, 그렇게 할 수 있는지,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인지를 철저히 철저히 되새기고 살펴서 확정을 지워야 합니다.

확정이 되고 나면 학생들을 한꺼번에 손을 대려 말고 서서히, 끝임 없이 지켜 보며 젖어 들어 간다는 자세로 그들의 모든 선입견, 세상 고정 관념, 그들의 주변의 별별 언행 전부를 뚫고 하나씩 침투해야 합니다. 공부란, 학교란, 경제란, 돈이란, 땀이란, 가정이란, 지식이란, 살아 간다는 것이란, 죽음이란, 교회란, 예배란, 출석이란, 찬송이란, 간판이란, 결혼이란, 자녀 출산이란, 다산이란.... 그 어느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훑고 파악하고 항목별로 전부 해부를 다 해 놓고 취사선택을 해야 합니다.


- 참고로

유대인의 교육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구약 교회의 구약식 교육법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범위만 가지고 세상을 제패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구경하면서 신약 교회이니 이 노선 이 말씀으로 천국을 제패해야 합니다. 이렇게 대상과 범위와 출발과 기준만 다르게 해 놓고 그 방법론은 유대인들에게 배우면 대단히 유익하고 싶습니다. 그들이 했는데 우리야 더욱 잘 할 수 있고, 그들이 그렇게 해서 이룬 것을 눈 앞에 펼쳐 보며 우리는 천국을 그렇게 장악해 나가는 숙제를 풀면서 힘과 소망과 참고를 삼을 수 있습니다.

먼저, 학생들이 완전히 인식이 바뀌어 지식의 일대 전환이 있어야 하고
둘째, 전환한 지식에 따라 새로운 길에 욕망이 불 타 올라야 하고
셋째, 서슴 없이 실행해 나가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답변자는 시골 조용한 곳에서 소리 없이 이런 면을 두고 샘플링을 좀 해 봤습니다. 물에서 수소와 산소의 분리가 1 g이라도 가능하다면 이제 1 톤이든 1만 톤이든 만들어 내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이 시대, 우리에게 맡겨 진 학생들을 어떻게 개조하여 이 노선에서 주님 오실 날을 맞을 수 있을까? 백 목사님 생존의 마지막 숙제였고 답변자에게 주어 진 주요 업무였고, 이 홈에서는 주로 교리 이치적인 것만 살피고 있으나 생활 속에 조금씩 실험하며 표준화하며 확대 생산에 막 나서는 순간입니다.

더 이상 자세한 방법론은 시간이 있으면 이 곳에서 좀더 설명하겠습니다.











>> 집사 님이 쓰신 내용 <<
:
: 공회교회에서 주일학교 , 특히 중간반에 대해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 목회자들이 더욱 지금의 상황을 세밀히 파악하고 계실 것인데 어려움을 타개할 방안이 없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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